2015-03-11 16:25:27
인천국제공항 ‘Gate No 47’ 표시에 가까이 갈수록 한국인은 눈에 띄게 줄었다. 벌써부터 혼자라는 사실에 지독할 만큼 외롭다. ‘과연 내가 인도에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얻음이라는 게 꼭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가, 한국을 뜨기 전에도 수없이 되묻고 있다.
여행은 완생으로 향하는 자격조건임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행 자체는 지나친 자기합리화로 종결되고 말 것이다. ‘서른을 맞이하여 나에게 주는 뜻 깊은 선물’이란 아주 멋진 이름으로 포장되는 데 그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평범한 미생으로 살아왔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만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일상에 묻혀서 지냈다. 항상 똑같은 표정과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의 만지작거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전쟁터에서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내일을 위해 충전용 배터리를 꽂아야만 하는 삶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성식 차장은 “우리 모두는 미생이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버텨라,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일이 있다”고 뇌까렸다. 이 대사는 사실에 직면케 한다. 경우에 따라 버티는 게 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버팀에 대한 기회비용 가치가 과연 내 젊음을 희생할 만큼 가치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미래의 삶을 고민하게 한다. 반복적인 일상은 고민의 답에 다가가려는 속도를 부추긴다. ‘고민의 끝은 어떨까?’에 대한 대답은 있다.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미생에서 완생으로 향하는 방법을 삶에 대처하는 깨달음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자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했다. “부럽네. 근데 회사 그만두고 여행 다녀와서 어떻게 할려고?” 내심 날 부러워하면서도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처지가 상충한 듯하다.
“지긋지긋한 일상이 싫었어. 단지, 용기를 냈을 뿐이야. 미래 시제는 현재가 되는 순간에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완전체가 되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 위해’라고 거창하게 말하긴 싫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제로다. 내 삶을 리셋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잠시 일상과 작별인사를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 성숙해져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속으로 힘차게 외쳐본다. ‘화이팅! 아자! 아자!’
처음이 기억되는 이유
도착시간은 2013년 2월 22일, 새벽2시. 인도 뉴델리공항에 막 내렸다. 아직까지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바깥 공기는 한국과 다르다. 공기의 텁텁함이 목을 조인다. 컴컴한 어둠은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내가 상상한 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행자여 안녕?’하며 환하게 맞이주기는커녕 아무도 나를 알아주거나 반가운 체 하지 않는다. 집을 나설 때의 당당함은 어디로 가고 단 몇 시간 만에 겁쟁이로 변해버렸다.
나는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로 ‘인도’를 골랐다. 이곳을 흔히 떠올리는한 대부분의 선입견은-아직까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이들 위주의 생각이겠지만-‘위험함과 더러움’이다. 일부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좁은 길에는 다양한 운송수단, 예를 들면 자동차·버스·릭샤(사진)·자전거,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섞여 있다. 아니 그보다는 혼돈 그 자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심지어 소들이 거리를 제 집 마냥 활보하고 있고, 그들의 배설물을 하루에 한번이라도 밟지 않는다면 그날은 천운이 따른 것이다. 매연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관광객을 등쳐먹는 것을 업으로 아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만명 이상의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인도의 어떤 점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 대부분은 처음 일주일간 욕을 한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생각 이상으로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나면 ‘아예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강한 끌림의 이유는 기왕 도전하는 것이라면 더욱더 과감해지고 싶은 속내일지 모른다. 흔히 유럽여행을 쉽게 보듯 나도 그랬다. 내 젊음, 자만, 오만이 유럽행을 허락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자신감으로 가득 부푼 채 인도에 도착했다. 나의 첫 선택은 공항 노숙이다. 3개의 의자를 침대 삼아 웅크리고 눕는다. 가방을 감싸 안은 채 그렇게 여행의 첫날밤을 보낸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지 이틀이 지났지만 길거리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여전히 낯설다. 돈 많은 아시아 여행자, ‘호구’로 비춰질 나는 어깨를 당당히 피고 걷는다. 마치 ‘나는 인도가 처음이 아니에요. 난 잘 당신들을 너무나 잘 알아요’ 라고 허세를 떨듯이.
그럼에도 릭샤왈라(인력거꾼)는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쫓아온다. “오~마이프렌드. 어디가요? 싸게 해줄게요”
‘내가 언제 너를 봤다고 친구야?’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상을 쓴다. 조금은 까칠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릭샤왈라는 오늘 나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와이프에게 줄 용돈과 그의 오늘 저녁의 술값이 결정되지도 모르기에. 나의 목적은 최대한 요리당하지 않는 것이다. 적당한 가격에 흥정하고 릭샤를 탄다.
처음 타보는 이 요물이 마냥 신기하다. 묘하게 생긴 것이 달린다. 속도도 상당하다. 눈은 주변의 새로운 것을 익히느라 바쁘다. 하지만 머릿속은 다르다. 눈이 설렘을 인지한다면 머리가 위험함을 인지하는 것일까. ‘행여 나를 이상한 곳에 데려다 놓고 돈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마음은 그러지 않길 바랄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최악은 아니지만 최악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이 펼쳐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다. 다들 그렇지 않다면, 나만은 그렇다. 고됨과 힘든 상황을 스스로 즐기는 스타일, 아 피곤한 삶이다.
다행히도 나는 첫 흥정과 첫 릭샤 탑승을 무사히 마쳤다. 마치 첫 노숙 이후 앞으로는 어디에서든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 것처럼 그들과의 거리감이 차츰 사라진다.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것에 대한 설렘과 흥분이 가득하다. 이것이 인도여행에서 처음 기억되는 인상이다. 되새김질하기 충분하니까.
필자가 제안하는 인도에서 살아남고 여행의 맛을 더 하는 방법
1) 한국에서 하지 않는 것은 하지 말기
-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않기
-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 먹지 않기
-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2) 적당히 흥정하고 적당히 속아주기
- 한국 사람들은 항상 ‘너무 비싸요’ 라는 말을 버릇처럼 한다. 인도에서 바가지를 써도 한화로는 고작 몇 천원 차이다.
적당히 속아주면 그것 또한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3) 갑인 척하지 말고, 그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즐겨라
- 로컬음식을 사먹고, 길거리의 친구를 사귀고 먼저 다가가서 마음의 문을 열어라.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릭샤는 동남아의 흔한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개량한 사이클릭샤와 소형 엔진을 장착한 3륜차인 오토릭샤가 있다. 인도에서는 릭샤를 끄는 사람을 릭샤왈라라고 부른다. 오토릭샤 내부에는 계산 미터기가 달려있는 경우도 있으나, 99.9%는 승차 전 흥정해 결정한다.
※ 인도의 지배적인 종교인 힌두교 중심 사상에 따라 암소에는 3억 3천만의 신이 깃들여 있으며, 암소를 그들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믿는다. 이에 인도 재래종 소만 하더라도 2억마리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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