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에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지만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여성이 상담을 청해왔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나 언니들을 보면 ‘저게 뭐지?’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당장 자기 큰 언니만 해도 맞벌이를 하는데 가사를 전담하다시피하고 육아를 책임질 사람이 없어 임신도 미루고 있단다. 꿈도 많고 야무진 언니였는데 자기 인생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1남 3녀 중 막내로 엄마가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키웠고 하고 싶은 공부도, 꿈도 많은데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남자친구가 내년엔 결혼하자는데 두렵다고 했다. 결혼하면 자기 인생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고 남편 하나만 믿고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단다.큰 언니나 친구들처럼 아등바등하며 살고 싶지 않고 굳이 애를 낳아야 하나 싶지만 애가 없으면 부부관계가 소원해진다니 망설여진다고 했다. 정말 결혼하면 자신의 인생이 사라지는 것이냐며 그나마 남친을 사랑하니 이런 고민을 한다고 하소연했다. 사연을 듣고 내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다. 걱정 많은 겁쟁이가 문제인지, 그냥 달려들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무모한 용기가 더 문제인지. 사실 이건 문제라기보다는 성향의 차원이다. 유전적으로 겁쟁이형도 있고 무모한 용기형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타고난 성향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인생을 남들 사는 대로 대충 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적당히 기뻐하고 적당히 괴로워하고 적당히 걱정하고 적당히 허무해하다 죽으면 된다. ‘겁쟁이’의 미래형 유사어가 ‘적당히’인 것 같다. 겁쟁이로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행복의 산물들은 주변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기에 에너지가 안으로만 쏟아지면 실제 삶은 적당히 이루어지거나 공허하고 허무해지기 일쑤다. 나이가 들수록.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감성시스템은 적당히 보다 훨씬 큰 극한의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절대 밋밋한 시스템이 아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천국에 이른다’는 성경구절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를 심리학적 표현으로 바꾸면 순수한 진실 속에 절정의 행복과 쾌락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당신은 본인이 순수하고 착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친구관계는 어떤지? 친구들이 예쁘고 못 나가는지, 아님 모 생기고 잘 나가는지? 내 예상엔 예쁘고 잘 나가는 친구는 곁에 두지 못할 것 같다. 왠지 질투도 많고 비교도 잘할 것 같다.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매일 끝도 없이 쫓기는 꿈, 시험공부 안하고 시험 보는 꿈 등을 꿀 것 같다.겁쟁이의 핵심적 특징은 순수해 보이는 외양 뒤에 숨어 있는 이기심이다. 손해 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항상 불안하다. 비즈니스의 핵심은 기회비용의 계산이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더 받을 것인가가 이슈다. 심리 경영도 마찬가지다. 겁쟁이 심리상태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큰 성과를 이룰 수 없다. 실수 없이 고만고만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역설적으로 겁쟁이치고 꿈이 작은 사람이 없다는 거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허무함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심리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거다. 상담 의뢰자에게 묻고 싶다. 언니는 꿈이 없어졌다 했고 당신은 하고 싶은 공부도 있고 꿈도 많다 했는데 일단 공부는 잘 하시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스물아홉 살에 꿈도 많다고? 공부도 하나의 기능이자 재주니 적성에 맞는다면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그런데 서른이 다 되어 결혼도 미루고 공부에 매진할 정도라면 이것 아님 안 된다고 할 만큼 하고픈 공부, 그걸로 이루고픈 꿈이 명확해야 할 텐데 꿈이 많다고 하니 당혹스럽다. 사연을 보면 ‘물’의 반대가 ‘공부’인 것 같다. 손에 물 묻히기 싫은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여자가 집안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반대다. 단지 물 묻히기의 반대가 공부는 아니라는 거다. 손에 물 묻히기 싫으면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들어가니 본인의 능력으로 어렵다면 그것을 대줄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가진 남편을 구하는 게 정답이겠다.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다시 듣고 싶다.남친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해서 사연을 보냈다고 했지만 내가 남자라면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게 맞나 싶을 것 같다. ‘남편 하나 믿고 살기 두렵다’, ‘애 키우는 건 부담인데 애 없으면 부부관계가 오래 못 간다 하니 걱정된다’고 했다. 정말 남친을 사랑하는 게 맞는가?상담 의뢰자에게는 겁쟁이적 불안과 이기심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 있는 격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끓어오르게 하는 남자가 필요하다. 겁쟁이는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에너지가 너무 커서 주변으로 발산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안으로 향하게 하고 숨어서 걱정만 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어정쩡한 당신과 당신의 남친 나이다. 아직 죽음을 생각지 않는 나이이기에 인생의 중요한 주제인 일과 사랑에 대한 함수가 복잡한 거다. 40대 중반을 넘기면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죽는데 대한 걱정이 생기면 함수가 간단해진다. ‘적당히 살자’ 아니면 ‘모든 기득권을 던져서라도 순수한 그것을 찾자’로.당신의 인생은 작년보다 올해 일 년 짧아졌다. 당신을 방어하는 껍질을 깨고 나와 뜨겁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너를 닮은 아이를 너무 낳고 싶은데 집안일은 하기 싫으니 돈 많이 벌어와라, 그리고 나를 평생 미치도록 사랑하라, 그럴 자신 없으면 떠나라가 당당하게 이야기하면서.일도 하고 애도 낳고 평생 사랑하는 부부로 살 수 있다. 이런 이기심은 버리면 안 된다. 현실의 삶은 이기적으로 살되, 마음은 가장 순수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차게 하라. 지금 당신은 행동은 이타적이되 마음이 이기적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울화병이 되는거다. 세상은 전부 비슷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다. 쫄지 말고 기죽지 말고 꿈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란다.
2022-01-28 14:10:06
욱하는 성격 때문에 고민이라는 40대 직장인이 이메일로 상담을 청해왔다. 자신이 사회생활하며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게 ‘거짓말, 시간 개념 없음, 자기 맘대로 일하기’인데 부하직원들이 이를 어기고 변명하면 경고를 주곤 하는데 얼마 전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근데 문제는 그러고 나면 오히려 맘이 안 좋다고 한다.평소 성격도 쾌활하고 배려심도 깊어 대인관계도 원만한 편인데 한 번 꼭지가 돌면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넌다고 했다. 욱하면 백날 잘해도 한 번에 다 망치게 되고 스스로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데 어찌하면 좋겠냐고 하소연했다. 욱한 마음이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욱하고 나서 맘이 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곤란하다. 상대방에게 언어적, 행동적 공격을 가하고 나서 마음에 동요가 전혀 없다면 사이코패스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확한 의학용어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사한 정신병리로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있다. 두 인격장애 모두 타인에 대한 공감 결여와 착취, 사기성 등을 보인다.사연을 보낸 사람은 욱하기는 하지만 이런 문제로 사연을 보낼 만큼 고민하는 것을 보면 사이코패스나 자기애성 인격장애일 가능성은 떨어진다. 사이코패스라 하면 매우 폭력적이고 감옥에나 있을 법한 살인마를 떠올리지만 상당한 지적 능력과 인간적 매력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적잖다. 산업심리학자인 보드와 프리츠는 영국 CEO들의 인격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사이코패스의 특성과 일치했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상당히 먹힐 만한 효율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상당히 무리한, 때론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일을 지시하고 추진하면서도 전혀 양심에 가책이 없다면 업무추진 에너지가 대단할 것 같지 않은가?이런 사이코패스 상사는 부하직원과 일종의 피학-가학 관계를 형성한다. 병적인 관계지만 그 안에 안정성과 일관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가학 자체보다 일관성 없는 상사의 태도가 때론 더 힘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성격적으로 무난해도 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욱하기’만 잘하는 상사는 최고 진상이 될 수도 있다. 기대치가 흔들리는 것,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예상치 못한 야단, 특히 인격적 모욕이 담겨 있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사람을 처참하게 하고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없다. 평소 성격도 쾌활하고 배려심도 있었던 사람은 부하들의 기대치도 높았을 텐데 한번 욱한 것만으로 직원들의 만족도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분노 반응도 더 크게 일어난다.욱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가 많다. 일단 자신부터 후회하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힘들다. 욕먹은 부하직원도 일정하지 않은 기대 경험치 때문에 힘들다. 그들에게 욱한 당신은 그 옛날 ‘마징가제트’에 나온 악의 축, 아수라 백작이다. 회사 주변 호프집의 제일 잘나가는 안주가 아마 당신일 게다.욱해 놓고 미안한 당신은 회식이라도 해서 직원들 기분 풀어줘야 하니 경제적 손실이 생긴다. 이에 짜증난 직원들도 당신의 화해 제스처에 억지로 웃으며 임해야 하니 두 번 괴롭다. 화를 못 참는 건 감성의 뇌가 지쳐 있기 때문이다. 신경생물학적으로 감성의 뇌, 즉 변연계(limbic system)가 제멋대로 작용해서 나타난다. 변연계는 분노하거나, 공포를 느끼거나, 웃기도 하는 등 감성 에너지를 표출하는 역할을 한다. 변연계가 망가지면 아무 데서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실실 웃으면 사회적 규범에서 어긋나는 사람이 된다. 그러기에 이성을 지배하는 전전두엽이 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라고 너무 강하게 압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성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피로가 쌓이면 ‘욱하는’ 성격이 표출된다고 봐야 한다. 욱, 즉 화를 조절하려면 감성의 뇌에 쾌감을 줘야 한다. 주말에라도 사색하며 걷는다면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웃으며 넘길 수 있을 것이다.또 하나 욱하는 것은 상대방이 내 기대치를 저버렸을 때 나오는 감정 반응이다.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적어도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리더가 되기도, 직원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기대치가 모두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세로 사는 게 남는 장사다. 미안한 마음에 쓰는 에너지가 줄어들고 회식비가 절약될 테니 말이다.화는 결과물이다. 결과물을 직접 통제하면 정말 화병에 걸린다. 마음의 화가 유통될 수 있는 채널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라는 존재의 작음을 실감할 때 우리는 나와 상대방의 결코 작지 않은 가치에 대해 역설적인 기쁨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단, 사랑할 수 있는 만큼 만이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의 70%만 활용해야 한다. 무엇이든 과열되고 에너지가 결핍되면 욱하는 화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작은 사랑이라도 일관성 있게 전달하는 게 신경생물학적 측면에서 좋은 사랑이다.
2022-01-14 13:39:39
술을 못하는 탓인지 유독 회식자리가 불편하다는 30대 직장인이 상담을 청해왔다. 직장생활 1∼2년차 때는 회식의 중요성을 몰랐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아무리 일을 잘해도 회식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는 동기나 후배들 앞에서 자격지심이 든다고 했다. 특히 사내에서 라이벌인 직원이 있는데 자신도 그 직원처럼 음주가무에 뛰어나고 싶다고 했다. 회식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 직원에 대한 칭찬이 다음 날이면 열 바퀴는 돌기 때문이란다.노래교실이라도 다녀야 하는건지, 회사생활에 정말 회의보다 회식이 중요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며 조언을 청해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사에선 회의보다 회식이 중요하다. 회사, ‘company’라는 단어의 어원은 ‘com’은 함께, ‘pany’는 빵이라는 뜻이다. 빵을 함께 먹는 곳이 회사란 말이다. 그러니 같이 밥먹는 곳이 회사의 뜻인데 당연히 회식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동지(companion)란 말도 다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것이다. ‘companion’ 은 같이 빵을 먹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함께 회식을 해야 동지인 것이다.회사에서 일할 때 제일 짜증나는 유형이 일할 때는 “우리 동지 아이가, 친구, 서로 나눠서 대충 합시다”하다가 회식이나 회사 행사 때는 “난 파트너야. 내 업무만 하면 되지 근무 외적인 것까지 신경 쓰거나 그갈 평가받고 싶지 않아. 왜냐면 난 도도한 프로페셔널이거든, 흥” 하는 종족들이다.‘저 자식은 일도 못하는 주제에 회식에서 아부만 떨어서 나보다 먼저 승진하고, 더러운 세상이야’라는 푸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일만 죽어라 하는 사람보다 회식에서 상사 기분 잘 맞춰주는 사람이 더 인정받고 먼저 승진할까. 그 심리적 메커니즘은 뭘까?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근거한 속물 이데올로기 메커니즘 때문이다. 속물이란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내가 승진하면 나의 인간적 가치도 올라가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찬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된다.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불같이 분노가 일어나고 힘으로라도 그 사랑을 가지려 한다. 그 마음의 기저에는 ‘회식에서 직원들에게 칭찬받고 사랑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뻔한 아부에도 기분 좋은 게 우리네다. 속물적 상사일수록 칭찬에 예민하다. 왜냐하면 사회적 타이틀 이외에 자신의 가치를 지켜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칭찬에 민감하고 칭찬을 좋아한다. 속물적 상사가 가장 싫어하는 부하직원은 일은 똑 부러지게 잘하면서 회식에서 아부하지 않는 부하직원이다. 바로 상담을 청한 사람 같은 경우다. 왜?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 잘하는 직원이 바로 아래 직급이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잠재적 경쟁자일 수 있는데 그런 직원이 회식에서 충성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불안함에 내칠 수도 있다. 따라서 회의에만 집중하고 회식에서 충성 서약을 하지 않다가는 일만 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울화병이 생기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회사생활을 가장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며 즐겁게 보내는 것 아닐까. 회사를 마치 내 인생의 전부인 양, 자신의 자아와 회사의 존재를 일치시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너무 안타깝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도 들들 볶지만 아랫사람에게 주인의식이다 로열티다 하며 끝없는 희생을 요구하기 일쑤다.회사에서 회식은 업무의 상징인 회의 이상으로 생존과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자리다. 특히 어렵게 승진해 자리 잡은 이들이 자신의 고생을 보상받는, 매우 중요한 의식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회식은 회의보다 더 정교한 전략들이 오가는 전쟁터와 같다.동서양, 과거, 현재, 미래에도 회식이란 의식은 직장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상사들이 자기 내면에 있는 타인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 있는 성스러운 의식이자 자신이 고생해서 얻어낸 위치에 대한 심리적 보너스를 만끽하는 자리다. 부하직원들은 상사와 정서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자리고. 서류상으로 오가던 드라이하던 관계에서 끈끈한 정서가 혈관을 통해 오가면 정서적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회식자리에서는 감성적 교감이 중요하다. 사람은 애초에 정서적 동물이기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는 해도 자신의 정서적 흐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기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 감성과학의 진실이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디지털 세상이다. 그러나 모두 디지털에 젖어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적인 능력 자체는 아무런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 조물주가 디자인한 우리 뇌, 감성 시스템의 본질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세상은 돌고 돈다. 정반합의 변증법처럼 인류역사는 돌고 돌아 균형을 잡아간다. 디지털 세상이기에 아날로그적 감성과 테크닉이 다시 빛을 발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다시 인문학과 예술의 시대가 오는 것처럼.
2022-01-07 16:29:01
페북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가족이 사는 집으로 여긴다는 20대 후반의 청년이 상담을 청해왔다. 밥은 먹고 다니라는 댓글 덕분에 끼니를 챙겨먹고 감기 조심하라는 댓글에 옷을 든든히 입는다고 했다. 처음엔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구나’하는 뿌듯함을 느끼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과 연락하니 편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댓글이나 근황을 묻는 횟수가 줄고 사람들의 반응에 길들여져서인지 반응이 없으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글을 남겼는데 답이 없거나 무성의한 답변이 달리면 짜증까지 난다고 토로했다.친구에게 자신의 증상을 얘기하니 “애정결핍 아냐? 왜 가짜에 목매냐?” 하더란다. 이게 가짜라니 온라인상의 관계도 엄연히 관계 아니냐면서 자신은 진짜라고 믿는데 이런 자신이 이상한 것이냐고 물었다. 한마디로 디지털 스킨십과 관련된 고민이다. 온라인은 가짜고 오프라인이 진짜라…. 이제 이런 이분법적인 접근은 무의미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요즘 세상에 ‘또라이’소리를 들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서 시스템에 ‘공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반응에도 위로받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스킨십은 실제 스킨십 이상의 정서적 촉감을 제공하고 있지 않나 싶다.전자적 네트워크는 우리 신경에 연결되다시피 해 ‘매트릭스’라는 영화처럼 서로의 정보와 감성을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전달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를 올리는 것은 관심에 대한 갈망이다. 나의 콘텐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특히 전자적 네트워크는 정서교감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탁월하다. 시간과 공간도 초월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과 감성적 교류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이라는 게 정서적 중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중독의 핵심은 내성과 금단증상이다. 특징적인 것은 중독이 양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새로운 친구와 그의 콘텐트가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댓글로 자신의 따뜻한 감성을 전달해 제공자의 감성 뇌는 이에 반응해 관심의 핵심에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콘텐트가 쏟아지는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계속 새로운 자극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페북 방문자들은 이미 디지털 감성 자극에 내성이 생긴 사람들이라 같은 자극으로는 만족감을 줄 수 없고 다른 페북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 마음에 금단증상, 즉 애정결핍이 나타나게 된다. TV에 등장하는 유명인은 아니지만 우리는 크고 작은 공인으로 살고 있으며 페북이나 트위터는 ‘나’라는 공인이 활동하는 무대인 셈이다. 그래서 생겨난 게 ‘아이돌 허무 증후군’이다. 상담을 의뢰한 청년도 동일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스무 살 전후 어린 나이에 경험한 수많은 관중의 환호와 갈채는 뇌의 쾌락중추 시스템에 엄청난 강도의 마약을 생성시킨다. 그러나 그들을 향했던 갈채가 순식간에 악성 댓글로 변하는 일은 디지털 연예 세상에서는 너무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과 얘기해보면 더 고독하고 괴로운 것은 악성 댓글조차 달리지 않는 무관심이라 말한다.무관심은 사람의 심장도 멈추게 할 만큼 독성이 강하다. 특히 관심 중독자에게는 그 금단증상의 세기가 우울증상을 일으키고도 남는다. 단계를 뛰어 넘는 빠른 프로세스는 강렬한 맛은 있으나 모두 중독적 성향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디지털 세상일수록 아날로그적인 삶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모두들 만년필 회사가 망할 거라 했지만 늠름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아직도 비닐로 된 LP판을 듣는 음악 애호가들도 많다. 고가 마니아 시장이 존재하는 셈이다. 마니아야 말로 중독을 쫓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 그들이 아날로그적 방법론, 감성에 몰입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날로그 스킨십의 잔잔학 중독성 없는 매력을 놓치지 말라. 중독성 없는 쾌락 활동의 특징은 마약처럼 쾌락 시스템에 직접 강렬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뇌의 여러 감각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심리적 성숙을 통해 쾌감을 느끼게 한다. 웅울증 치료에 사용하는 항우울제는 마약처럼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만 미약은 아니다. 중독성이 전혀 없다. 왜냐면 쾌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하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날카로운 반응들을 여우롭게 볼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어 2차적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최고의 마약은 즉각적인 반응과 서서히 전해지는 반응의 쾌락 자극제를 섞어놓는 게 아닐까. 그러니 아날로그 그리고 디지털 스킨십을 적절히 블렌딩하도록 해야 한다. 흔히 스마트폰을 ‘손 안에 든 세상’이라고 한다. 그 세상에서 재밌게 놀되, 지배당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가 왜 그 조그만 녀석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웃고 울어야 하는가? 고차원적인 인간으로 태어나 디지털 기계에 너무 쉽게 자신을 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스마트폰에서 댓글 같은 거 체크하지 말고 미술관을 가거나 흙길이라도 밟으면서 살도록 하자. 아니면 인사동 쌈지길이라도 걷는 건 어떨까?
2021-12-30 11:41:26
특별히 못생긴 건 아니고 예쁘지 않을 뿐 뚱뚱하지도, 날씬하지도 않고 미니스커트가 덜 어울릴 뿐이라는 서울대 다니는 20대 여성이 상담을 청해왔다. 돈만 생기면 뷰티클리닉에 쏜살같이 갖다 바치다보니 가족들에게 “성형중독도 아니고 시술 중독”이라는 놀림을 받는다고 했다. 반면 자기 친구는 170cm에 75kg의 건장한 체구임에도 민소매 티셔츠나 꽉 끼는 청바지도 서슴지 않고 입으며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면 “저 남자가 나 보는 것 봤어?”하면서 우쭐해 하는데 자신이 보기엔 시선의의미가 그게 아니지만 친구의 자신감이 부럽기만 하다고 했다.자신의 소원은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55 사이즈를 유지하고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길 가는 남자들의 엉큼한 시선을 받아보고도 싶고 키가 159cm인데 딱 1cm만 더 커서 보통보다 좀 나은 예쁘장한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똑똑해도 어느 정도 예쁘지 않으면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주목받기 힘든데 이런 자신이 이상한 거냐고 물었다.여성의 아름다움이 권력인 것은 인류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자로서 예쁘다고, 미인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세상에 미인보다는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 많다는 거다.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남자들은 다 그리 생각한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멋있는 남자는 별로 없고 찌질이만 잔뜩 있을 뿐 좀 괜찮은 남자는 벌써 임자가 있는 유부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니 말이다.일단 상담을 청한 여성은 일급 미모도, 일급 추녀도 아닌 중간 그룹으로 여겨진다. 미모의 정도에 따라 삶의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일급 미모가 부러울지 모르지만 이건 알아야 한다. 전략 없는 일급 미모는 일급 추녀보다 못한 삶을 살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중급 미모인 상담 여성의 삶의 전략을 같이 고민해보자. 삶의 전략은 자신의 인생철학이다. 철학 없이 세상의 고장 난 시스템에 인생을 던져 놓고만 있다가는 어느덧 허무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전략을 잘 세우면 인생역전도 가능할지 모른다.우선 미용·성형의 문제에서 돈이 너무 아깝다. 애매한 시술에 돈 쓰지 않는 게 좋다. 기왕 할 거면 화끈하게 안면윤곽 수술처럼 뼈까지 손대는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는 게 낫다. 가급적 고민은 그만 하는 게 좋다. 여러 성형외과를 직접 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이미 성형한 친구들이 있으면 그들의 경험을 바닥까지 다 긁어 얻어내라. ‘애매한 고민’처럼 인생을 허비하고 뇌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매한 차선책만 찾는 건 용기 없는 자들의 행동이고 그러다가는 정말 이류로밖에 살 수 없다. 세상의 중심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외모는 중급이어도 삶의 태도는 얼마든지 올릴 수 있으니까.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방법을 다시 정리하자면 고민이 있으면 일단 ‘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하려는 일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과 미디어, 실제 사람과의 만남 등 다양한 경로로 수집한다. 우리 감성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반대 의견을 자동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이 때 정보수집은 이성적으로 하되 어느 쪽을 택할지는 결코 이성적으로 고민하면 안 된다. 감성적 결정이 확실치 않을 때 계속 더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 노력할 수는 있지만 억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기다림이 중요하다. 그리고 감성적 결정이 분명해지면 그 쪽을 택하면 된다.이 방법은 우리 안의 또 다른 나인 감성 시스템, 감성 자아를 활용하는 법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성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비즈니스를 위해 쏟아내는 수많은 감성 마케팅의 전염성 있는 정보에 이성이 마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감성 자아의 소리를 듣는 법’을 연습하는 건 일급의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테크닉이자 철학이다.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가로수길을 거닐고 남자들의 엉큼한 시선을 받아보고 싶다면서 보통 여자가 되고 싶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런 여자는 그냥 보통여자가 아니다. 대단한 여자다. 성적 매력이라는 점에서 일급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일급 미모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일급 미모의 여자는 남자에게 저 여자와 자고 싶다는 성적 반응과 엄청난 소유욕을 단번에 일으킨다. 그러데 그 바람에 감성적 느낌을 공유할 여지를 빼앗아버린다. 남자는 미치면 감성적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여자는 남자와 정신적 네트워크를 맺을 때 최대의 엑스터시를 경험하는데 말이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강렬하고 즉각적인 반응이나 모든 시선을 독차지하는 일급이 최고인 것 같지만 사실은 ‘볼매’가 실속을 챙기는 세상이다. 잉꼬부부들을 보면 미칠 듯 섹시하거나 일급 미모의 선남선녀끼리 만난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약간 부족한 이류의 만남이다. 이급이니까 강렬한 감성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그러기에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그런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진다.상담을 청한 여성의 외모와 지적 능력은 이급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행복할 수 있는 최고 품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 자체가 이급이다. 우리 시스템이 끊임없이 일급을 찾는 것도 이급이기 때문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일급에는 채워지지 않는 중독적 허무함만 존재한다.당장 가로수길에서 엉큼한 시선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볼매’기질을 알아보는 최적의 남자를 만났을 때 그 남자에게만큼은 최고의 섹시녀가 될 수 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뭇 남성들의 눈길만 받고 정작 밤에는 홀로 외로이 지내는 여자들이 더 이상 부럽지 않을 것이다.한 가지 더 말하자면 고령화 사회다. 쓸데없는 시술에 투자 말고 저축을 하는 것이 좋다.
2021-12-23 11:49:05
1남 3녀 중 막내로 지방대 졸업 후 대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여성이 상담을 청해왔다. 첫째언니는 선생님, 둘째언니는 변리사, 오빠는 세무사로 자신만 미운 오리새끼인데 친구들에게는 무시당하기 싫어 언니오빠의 스펙을 전시하며 자신을 내세운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신조는 ‘어느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어. 그럼 반드시 복수하겠다’라고 말했다.정규직은 아니지만 대기업을 다니고 돈도 어느 정도 모이니 자신감이 생겼는데 문제는 결혼이라 했다. 20대 때는 자신을 무시하지 못 할 만만한 남자를 골랐지만 서른이 되니 언니오빠들과 밸런스가 맞는 괜찮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5년 동안 사귄 오빠와 최근 헤어졌다고 했다. 여기서 결혼마저 뒤처지면 영영 미운 오리새끼가 될 것 같아서란다.그런데 이별소식에 언니가 “왜 그 정도면 괜찮은데. 네 나이에 새로운 남자 만나기 힘들어”라고 말해 충격이었다고 했다. ‘자기는 의사랑 결혼해놓고 여동생은 중소기업 다니는 남자랑 결혼하라는거야? 친언니 맞아?’하는 생각까지 들었단다.자신은 나름 괜찮게 성장했고 언니나 오빠처럼 부모님에게 고비용의 교육자금을 갉아 먹으면서 자란 것도 아니고 손 안 벌리고 스스로 힘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왜 자신을 집에서는 미운 오리새끼 취급하고 인정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은 모아야 하니 독립할 생각은 없는데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고 물었다.사연을 듣고 난 후 느낌은 ‘건강하다’였다. 잘 살고 있다 해야 할까. ‘어느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어. 그럼 반드시 복수할거야’란 말이 파이팅 넘치고 귀엽기까지 하다. 복수는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것 같지만 안으로도 쳐들어와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건강하게 잘 자란 것 같다. 자신감이 생겼다라는 말 정말 좋다. 그런 귀여운 복수 에너지는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서는 뒷심을 일으키는 보조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형제자매간 경쟁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 반응 중 하나다. 기본적인 생존 반응이랄 수 있다. 바라건대 미운 오리새끼님이 일등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꼭 복수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복수방법은 별로다. 말 그대로 ‘비추’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두 언니와 오빠의 짝퉁밖에 안될 것 같다. 짝퉁으로 오리지널을 이길 수는 없다. 두 언니와 현재로서는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의 승자들이다. 교사, 변리사, 세무사 등은 자본주의 속물 시스템에서 최상위 그룹은 아니지만 나름 어깨 펼 수 있는 레벨이다.게다가 언니가 의사랑 결혼했다니 정말 전통적인 만남이고 모양은 나쁘지 않다. 현재 사회적 레벨이 언니들보다 떨어지니 이들을 확 누르려면 대기업 회사원으로는 어림없고 의사나 변호사랑 결혼해봐야 스스로의 레벨이 낮아 결국 언니 쫓아 사는 짝퉁밖에 안될 듯하다. 웬만한 기업 오너 2,3세라면 확 누를 것 같은데 현재 스펙으로는 만만치 않겠고. 그렇다면 싸움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 현재로서는 백전백패다.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테크닉보다 철학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에너지와 힘은 ‘철학적 용기’에서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쓰레기 같은 자본주의 속물 시스템의 미운 오리새끼로 살지 말고 고고하고 도도한 심리철학운영 소프트웨어로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언니 오빠를 물리치고 진정한 ‘심리적 승자’인 우아한 백조가 되도록 해야 한다.“왜 헤어졌어, 그 정도면 괜찮은데. 네 나이에 새로운 남자 만나기 힘들어”라니 정말 속물적인 말이다. 속물 랭귀지로 다시 번역하면 “왜 헤어졌어, 너의 사회적 레벨로는 그 정도면 서로 적당한데. 게다가 여자는 결혼 적령기에서 멀어질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는데 넌 이제 더 낮은 레벨의 남자조차 만나기 어려울거야”라는 의미다.속물 이데올로기란 자신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속물 이데올로기가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사람 마음속 감정까지 어찌할 수는 없다.사회적 레벨을 올리기 위해 애쓰는 것 자체는 성실하고 좋다. 어찌 됐든 자본주의 안에선.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함께 서로를 위해주며 건실하게 살 때 자연스럽게 상승되는 사회적 지위는 중독적이지 않고 상쾌하고 근사하다. 그러나 사회적 레벨 자체를 목적으로 사는 삶은 다른 고귀한 정신적, 심리적 가치를 손상시켜 결국 스스로를 ‘실존적 허무’에 빠뜨린다.특히 경쟁심리 자체가 동력이 돼 결혼과 같은 중요한 인생의 과제를 결정해나간다면 머지 않아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강력한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허무는 곧 행복에 대한 내성을 일으키는데 ‘행복에 대한 내성’이야말로 우리 현대인들이 겪는 가장 무서운 병이다. 자본주의 속물 시스템은 ‘더 강한 것!’을 외치며 가장 높은 마약을 끝없이 찾게 만들어버린다.상담을 청한 여성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적 레벨은 떨어져도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결혼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소위 ‘사자’커플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다. 우리네 감성시스템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만큼 강력한 갈망은 없기 때문이다. 요즘 모양과 안정성, 사회적 레벨에 대한 집착으로 병든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병에 걸리면 안 된다. 결혼은 누구와 하느냐가 90%다. 정말 사랑이 넘치는 결혼을 하려면 결혼 적령기 따위에 쫓기면 안 된다. 그리고 남자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속물 레벨로만 남자를 보기 시작하면 감성적 만족을 주는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된다. 여유를 갖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때까지 버티면서 그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 좋다. 오늘부터 인생의 목표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리세팅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1-12-17 16:28:48
20대 여대생이 상담을 청해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남자가 있는데 키도 작고 자기 스타일이 아니어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며 자신에게 몇 번 들이댔지만 모른 체 했다고 했다. 그래도 술 취하면 데리러 오고, 친구랑 싸우면 자기 편 들어주고, 군말 없이 쇼핑도 따라다니고 잘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사귈 정도로 좋은 건 아닌 게 결정적 한 방이 없기 때문이란다. 물론 그 남자가 자기를 여자로 보는 것은 알고 사귀고 싶지는 않지만 자기에 대한 애정을 문득문득 느끼게 해줘 고맙다고는 했다.그런데 얼마 전부터 연락도 잘 안하고 만나자 해도 튕기기에 카톡으로 “너 여자 생겼냐?”고 물으니 “고민 중”이라고 답변이 왔단다. 괜히 가슴이 철렁하고 심통이 나서 “여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사귀냐? 너 생각보다 가볍구나?” 했더니 “난 내 여자에게만 올인하는 스타일이야”라고 답변이 왔다고 했다.자신도 이러는 스스로가 웃기다는거 아는데 속된 말로 내가 갖긴 싫은데 남주기는 아깝다고 했다. 여자들에게 자상하고 유머 감각도 있어 인기가 있을 줄은 알았는데 한 후배가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주며 고백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니 후배 여자애가 자기 스타일로 바꿔 놓기도 했고.그런데 마음이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자기 마음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 갑자기 경쟁자가 나타나서 이러는 건지. 아마도 후배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예전처럼 곁에 두기만 했을 것 같은데 그 남자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싫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그 남자를 마음에 들여놓은 건지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했다. 상담 내용을 듣다보니 이 여대생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우락부락하고 무식한 근육질이 아닌, 섬세한 근육으로 뒤덮인 섹시하고 날렵한 몸매에 자기 일도 성실히 해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상대에게는 관심 없는 척 약간 나쁜 남자 스타일이지만 실상은 속 깊고 상대를 너무 사랑해 기념일에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이벤트로 뻑 가게 하는 남자인건지?그렇다면 상담을 청한 여대생의 인생도 뻑 갈 확률이 높다. 현실에 이런 남자는 거의 없고 만난다 해도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 질투 때문에 피곤해져 불행해질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내게 너무 잘난 당신’은 남자든 여자든 불행의 시작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남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낌이 오는 남자를 찾는다면 더 어렵다. 감성적 만족은 중요한 것이지만 구체적이지 못하면 세상에서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기준이기 때문이다. 감성적 만족은 결과물이어야지 그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면 인생이 어려워진다.일단 어떻게든 그 남자를 유혹해 사귀는 것이 좋다. 사귀다 아니면 그때 헤어져도 된다. 얘기를 들어보면 큰 장점이 있는 친구다. 부부갈등으로 내원하는 여성들의 90%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화 때문에 찾아온다. 여성은 남성보다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지 않는 스트레스에 훨씬 취약하다. 애완견의 가장 큰 특징은 짜증내고 뭐라 해도 결국은 꼬리를 흔들고 재롱 떨며 ‘닌 너밖에 없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공감능력이라는 측면에서 그 남자는 최상급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유전적으로 잘 공감하지 못한다. 여성스럽고 연애경험 없는 된통 당하는 경우는 남성적 매력에 환상을 갖고 마초 같은 거친 남자랑 결혼한 경우다. 멋지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가 알고 보니 자기 멋대로인 고집불통에 공감능력 제로인 수컷인 것이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낼 수밖에 없다.‘찬구처럼 지내요. 술 취하면 데리러 와요. 군말 없이 함께 쇼핑 다녀요’라면 애완견으로서의 기본적인 펀더멘털은 충실한 친구다. 크게 싫은 게 아니라면 무조건 결혼대상자 리스트에 넣어야 한다. 그 남자는 상대를 이성으로 느끼고 있고 내 여자에게만 올인하는 스타일이라니 그 또한 좋다. 두 가지 요소만 더 갖추고 있다면 완벽하다. 어찌됐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가정을 꾸려갈 능력과 침대 위에서 성적인 교감을 나눌 능력만 있다면 최상급 남편감이다. 한 방이 있는 남자는 피곤하다. 쾌감의 한 방도 날릴 수 있겠지만 당신 뒤통수에 한 방을 날릴 수도 있다.그 남자가 아직 ‘생각 중’이라니 결정은 하지 않은 것 같고 상대에게 할 만큼 했으나 요지부동이니 차선을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상담 내용을 들어보니 남자경험도 썩 많지 않고 공주병 비슷한 증상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수동적인 관계미학으로는 요즘처럼 치열한 연애 경쟁시장에서 제대로 된 남자를 낚아채는 것이 쉽지 않다.그냥 공격적으로 나가는 게 좋다. 나 너랑 사귀고 싶다고. 알고 봤더니 너에게 이성적 호감이 있었고 지금 그 여자보다 내가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라. 팜파탈적 테크닉을 지금 갑자기 배우는 건 불가능하고 어설픈 트릭을 쓰느니 정면 돌파하는 게 낫다. 세게 지른 후 반응을 보면 아마도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첫째, 뛸 듯이 기뻐하며 제안을 받아들여 사랑의 종이 된다. 그 남자가 나를 정말 사랑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둘째, 당신을 선택해 연애를 하지만 결혼까진 가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애라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뿐더러 인생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 미련이라는 게 사라진다는 것이다.셋째, 나를 차고 그 여자에게 간다. 아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진짜 사랑할 기회를 놓친 거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와도 결코 그를 받아주어서는 안 된다.
2021-12-10 17:00:17
지방소재 대학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며 서울 소재 대학에 다시 입학하려고 반수 중이라는 학생이 상담을 청해왔다. 공부를 할수록 잘할 수 있을지, 옳은 길인지 의문은 쌓여 가는데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건 사진이라고 했다.과 동기 중에 자신처럼 사진에 미쳐 명문대 졸업생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며 누가 보면 서울대 다니는 줄 알 정도로 자신감이 강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를 볼 때마다 수능을 준비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지고 스스로 치사하다는 생각에 자책감을 느끼다가도 ‘내겐 간판이 중요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고 했다.가끔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이 하고 싶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자신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닥치고 공부’가 최선책인지, 혹여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상담을 하다 보니 두 가지 고민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나는 내용, 콘텐트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 폼에 관한 고민이다. 인생을 사는데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학벌과 같은 폼을 갖추면 ‘각(angle)’있게 살기 편하다. 나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간편함이 있다. 그러나 내용이 없으면 실제 능력보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펴지기 쉽고 비즈니스 시장에서 일찍 신뢰를 잃고 도태될 수 있다. 따라서 내용인 콘텐트의 안정성과 신뢰성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다.세상을 오래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그것도 콘텐트가 받쳐줄 때 얘기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내용, 콘텐트가 중요해졌다. 폼이란 것은 단기적으로 강한 임팩트를 줄지 몰라도 지구력은 강하지 못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되는 상황에서는 폼으로 콘텐트의 부실함을 커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그래서 3대 7 전략이 필요하다. 폼에 30%, 콘텐트에 70%의 비중을 두는 것이 롱런하는 비결이 될 수 있다.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대중의 인기를 얻은 연예인들이 내실을 취하지 않고 계속 부실한 내실을 폼으로 커버하다 영영 재기 못할 정도의 슬럼프에 빠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위의 학생의 경우 명문대학이 폼이고 사진이 콘텐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폼만 있을 뿐 콘텐트,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보인다. 친구의 경우 폼은 무시하고 콘텐트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3대 7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좋은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과 습득된 기술, 프로페셔널한 업무에 대한 열정의 합이 필요하다. 특히 시장이 좁은 전문직은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많아 자칫 잘못 선택하면 인생 스토리 자체가 스펙터클해진다.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친구에 비해 사진에 대한 열정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다. 친구에게서 느끼는 자신감은 그 열정에 기인한 강한 자존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높은 자존감은 폼에서 나오고 강한 자존감은 콘텐트에서 나온다. 물론 친구에 비해 사진에 대한 열정이 떨어지는 것은 취향과 스타일의 문제이지 그 자체로 삶의 루저인 것은 아니다.지금 힘든 것은 여러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상반된 두 가지 감정 때문이다. 흔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말을 하지만 틀린 말이다. 사사로운 일상사를 결정할 땐 모르겠으나 인생의 중요사항을 결정할 때는 감성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사람의 행복은 이성이 아닌 감성 시스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감성적 결정은 두 단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먼저 정보수집 단계다. 많은 사람들이 결정에 대한 압박에 쫓겨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지 않는다. 정보가 ㅂ족한 가운데 이성적 결정을 하려 하니 양가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양가감정은 정보부족 상태를 경고하는 1차적 사인이다.현재 다니는 대학 학과의 통계적 취업률을 알아보고 사진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마켓 상황, 졸업생들의 양적·질적 취업수준도 수집해야 하며 현재 반수 중이므로 현 시점에서 내가 과연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도 변수에 포함시켜야 한다.충분한 정보수집이 되었다면 두 번째 단계로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을 반복하지 말고 ‘반수냐 아니냐’에 대해 마음에 아주 단단한 느낌의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생 진로에 대한 결정은 감성적 확신이 동반되지 않을 때는 큰 변화를 주면 안 된다.따라서 지금 사진을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이혼은 하고 싶은데 마음이 완전히 편치 않다면 일단 결혼생활은 유지해야 한다. 이혼준비를 하면서. 이 때 이혼 준비는 갈라서는 준비가 아니라 갈라선 후 어떻게 살지 준비하는 것이다.일단 스스로의 상황을 ‘명문 대학 입학 준비’를 고민하는 반수생이 아니라 인생의 30%에 해당하는 폼을 만드는 프로페셔널한 작업 중이라 생각해야 한다. 진지한 접근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알찬 콘텐트를 만들어낸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접근만큼 확실한 콘텐트는 없다.현재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는지 여부는 자아팽창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이것은 내 자아가 더 커지는 동시에 꽉차는 느낌이다. 내가 이전보다 근사하게 느껴진다. 나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느낌이다.수많은 교육정보와 처세전략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인공위성처럼 미친 듯이 돌게 하고 있다. 불안만큼 불안파생 상품을 구매토록 하는 확실한 마케팅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스스로 인생의 주인 되는 것이다.
2021-12-03 15:58:59
얼마 전 창업 2년 만에 사업을 접으려 하는 30대 초반의 청년이 상담을 청해왔다. 3년간 웹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하다 창업을 하면 다양한 경험도 쌓을 수 있고 돈을 못 벌어도 내 사업을 한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3명의 팀원을 데리고 창업을 했다. 그러나 유능한 직장인으로 대접받던 갑의 위치에서 직원을 다독거려야 하는 을(사업주)의 입장이 되니 갑(직원)의 무모한 요구와 횡포에 긴장의 연속인 생활이 이어지고 직원 중 한 사람이 퇴사하고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이후 남은 직원들도 술렁댄다고 했다.갑(창업 전)으로 일할 때 확보한 인맥이 을(창업 후)이 되었을 때 도움될 거라 착각한 게 후회스럽고 주변에서는 이제라도 다시 취직해 편히 살라고 하는 데 최근 한 회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고는 고민 중이라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취업이 힘든 시대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이러다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며 계속 사업을 해야 하는지, 취업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그냥 쉬어야 하는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어쩌면 좋겠냐고 토로했다.60세에 대기업 자회사 CEO로 재직하다 퇴임한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 있다. “월급쟁이로 이 정도 해먹었으면 성공한 거지만 조그만 회사라도 자기 것을 안정되게 하는 친구보다는 못한 거지요”100% 동감되는 얘기다. 갑과 을은 비즈니스 용어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진정한 심리관계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비즈니스적으로는 계약 당사자와 용역 제공자를 구분하거나 돈의 흐름을 나타내는 건조한 용어인데 ‘화(anger)’의 흐름이나 심리적 에너지의 흐름을 상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지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갑과 을의 포지션은 수시로 변한다. 조직에서는 성과와 상관없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갑과 을이 정해질 때가 많다. 회사원,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일수록 울화병이 많다. 그런 걸 생각하면 자기 사업을 하는 게 정답인데 개인사업도 절대 만만한 게 아니다. 상담을 청했던 청년의 경우 아직 젊고 재취업도 가능하니 매우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감성적으로 너무 지친 나머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픈 심리적 회피 반응이 일어난 것 같아 걱정스럽다. 심리적 회피 반응은 쉰다고 좋아지지 않으며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놀지 말고 일단 회사에 취직해 월급 받으면서 쉬는 것도 좋다. 뇌의 휴식은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아니라 뇌에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다. 갑일 수 있다면 갑을 즐기면 된다. 포악한 갑(사주)이 아니라 을(직원에게 밀리는 사업주)의 입장에 서보았으니 을(직원)을 이해해 주는 따뜻한 갑(사업주)이 되는 것이다. 대기업 계열사를 맡는 족족 성공시킨 유명 CEO가 이야기한 갑을론이 있다. “을일 때는 을의 상황을 즐기면 되고, 갑일 때는 갑의 위치에서 즐기면 된다. 어짜피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세상에 을의 포지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갑을 선호도에 따라 자기 사업을 할 것이냐 직장인을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다분히 감성적인 결정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총수라 해서 을의 한이 없을까? 어쩌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면밀히 분석해보면 상담을 청한 청년의 경우 비즈니스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업가들과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사업을 성공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첫째, ‘돈에 대한 욕심’이다. 설사 돈을 못 벌더라도 내 사업을 한다는 기쁨에 창업한다면 100% 망한다. 사업은 기쁜 일이 아니며 엄청난 자기희생과 노력이 99%다.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돈을 엄청 좋아하고 바쁘게 뛰어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간쓸개를 다 내주어도 상관이 없어야 한다. 을이 아니라 을의 할아버지라도 돈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티는 안 내도 자신의 자존심을 해쳐 감성시스템이 망가질 정도로 돈에 대한 욕망이 엄청나게 강하다. 거의 중독 수준의 갈망이다. 상담을 청했던 청년의 경우처럼 독립심, 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아름다운 심리적 목표로 창업을 하면 거의 100% 망한다. 목표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그 목표는 이룰 수 없고 결국 사업을 지탱할 동기 에너지가 사라져 사업은 멈출 수밖에 없다.두 번째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집중도’다. 모든 상업은 결국 휴먼 비즈니스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그 사람들을 집요하게 관리하는 집중력과 끈기가 필수다. 하지만 에너지가 자신에게 쏠리는 사람, 나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경영자로서 한계가 있다. 경영자는 단 둘이 하는 구멍가게라도 사람 관리에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사람 관리의 목적은 우정을 위해서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한 휴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결국 돈을 버는 데 장애가 되는 사람을 잘 쳐내야 한다.퇴직하겠다는 직원도 사업주 청년처럼 사람 좋은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돈에 미친 독한 파트너를 구했어야 했다. 양쪽 모두 심리적 독립감을 위한, 폼과 품격을 위한 창업을 하고 그에 응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야 하는가? 먹고 살아야 하는데 창업 외에 방법이 없을 때 창업하면 된다. 최고로 거룩한 창업 동기다. 이 정도 동기라면 갑의 압박과 을의 더러운 기분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그 전까지는 회사에 취직해 전문직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길게 보고 창업을 준비하면 된다. 내부적, 외부적 네트워크를 잘 다져놓고 창업의 핵심인 비즈니스 모델을 미리 준비한 후 창업해서 독하게 일하면 된다. 세상은 특별히 뛰어난 사람들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들의 리그다. 그렇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
2021-11-26 15:57:03
20대 직장여성이 진료실을 찾아와 상담을 했다. 첫 마디가 세상에서 거절당하는 게 가장 두렵다는 거였다. 타 부서 사람에게 업무요청을 하고 피드백이 오면 그 답변을 열어보는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해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다 퇴근 직전 열어본다고 했다. 이유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오면 상심이 커서 아무 일도 못하기 때문이란다.보고서 올릴 때도 상사의 눈치를 엄청 보고 회의라도 하면 거의 초죽음 상태라고도 했다. 일을 잘해 칭찬을 들어도 딱 1초만 행복하고 다시 자신을 검열의 무대에 올려놓는가 하면 타 부서 직원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소문에 ‘그 사람과 잘해봐야지’가 아니라 ‘이런 소문이 내게 미치는 영향’만 생각하고 그 사람과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도 했다.이처럼 자신은 매사 부정적인데 남들은 겉보기에 밝고 낙천적이며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며 ‘박하사탕녀’라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가 좋은 것이니 깨뜨리고 싶지는 않아 더 웃고 더 큰소리로 인사하지만 타인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는 게 너무 힘들고 한편으로는 이런 미련 곰탱이 같은 짓 그만두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겠냐고 하소연했다. 멘솔 담배는 박하향이 나는 담배다. 멘톨은 박하향이 나는 물질을 가리킨다. 멘솔 담배는 젊은 층과 여성들이 많이 피운다. 독한 담배 대신 상쾌한 박하향이 나는 순한 담배이고 왠지 몸에 덜 해로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그런데 이 순한 맛의 박하향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더 끊기 어렵고 건강에 나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멘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일반 담배 흡연자보다 니코틴에 대한 중독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멘솔 담배의 박하향 때문에 더 깊이 담배를 빨아들여 폐 속에 담배연기를 더 오래 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결국 담배 한 개비당 니코틴 흡입량이 일반 담배보다 더 많기 때문에 중독성과 의존성이 강해진다. 박하향 연기를 빨아들일 때 일시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그 효과가 순한 맛의 멘솔 담배를 더 독한 중독성 약물로 만드는 셈이다.상담을 한 여성의 심리반응은 멘솔 담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박하향 페르소나가 세상을 중독적으로 만들고 있다. 중독의 핵심은 자극에 대한 내성, 즉 저항이다. 같은 자극에 무디어지는 멘톨향 같은 밝고 낙천적인 페르소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 깔린 거절 공포를 깊이 관찰하지 못하도록 내성을 키우고 있다. 본인 스스로 세상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본인 내면의 자아는 거절 공포로 가득 차 있는데 외적 가면, 페르소나는 박하의 상큼함으로 상대방의 깊은 관찰을 통한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매우 발달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터넷을 넘어 SNS까지 자신의 이야기와 주변의 이야기를 사진까지 곁들여 주변 사람에게 퍼트린다. 깊은 정보가 서로 매우 빠르고 충분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반면 한편에서는 공감 부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극단의 행동학적 증상인 ‘자살시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인이 자살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친구가 절대 자살할 이유가 없다. 전날도 만났지만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깊은 관찰이 없었기에 그 친구의 속내 깊은 아픔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카메라를 싫어한다고 한다. 진정한 관찰은 연필을 들고 그릴 때 더 분명히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은 곧 공감이고 위로다. 모이기만 하고 서로 사진을 찍고 문자와 SNS로 각장의 근황을 알리는 우리는 과연 서로의 진심을 얼마나 관찰하고 있을까?아마도 위의 여성이 거절 공포에 시달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감성시스템이 예민해져서 부정적인 경향이 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감성시스템은 자신의 것이고 쉽게 튜닝되지 않는다. ‘아, 내가 예민하구나 부정적인 생각도 많고’라고 그냥 인정하는 것이 좋다. 감정을 찍어 누르거나 계속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괴롭힐 수 있다.이를 위해서는 먼저 할 일이 있다. 자신을 박하향을 뺀 일반 담배로 만들어야 한다. 박하향을 빼야 상대가 본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깊은 관찰이 없는 만남은 허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박하향을 주는 본인만 허무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진정한 감정적 소통이 없는 가면끼리의 만남은 서로에 관계적 허무를 안겨줘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그러니 거절공포를 고치려 말고 먼저 박하향을 빼야 한다. 힘들면 힘든 내색을 해야 한다. 거절공포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겨난다. 순간의 인기보다 진한 신뢰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박하사탕이 되는 것보다는 한두 명에게라도 진한 ‘쏘맥’이 되는게 낫다.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라도 본인을 감싸줄 친구가 최소한 두 명을 있을 것이다.지금 사람들은 본인의 박하향에 중독돼 감싸줄 수 없는 상태다. 하루 빨리 박하향을 빼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박하향에 길들여진 중독자로 가득해질 것이다. 중독자들은 본인의 거절공포를 더 크게 만들기만 한다. 용기를 갖고 앞으로는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지 말아야 한다. 싫다고 가버리면 그러라고 하면 된다. 진정한 친구 두 명만 있으면 세상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2021-11-19 15:45:31
얼마 전 직장 상사인 부장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하고 있는 20대 여성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뒤에서 엉덩이를 볼펜으로 치고 함께 외근 나가면 손을 잡으려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아무개 씨는 색기가 있고 몸매가 죽이니 라인을 살리는 옷을 입어라”는 식의 발언이 계속된다고 했다.이미 사내에서 그 부장의 성희롱은 유명하고 이로 인해 여직원 두 명이 사직을 했음에도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는 걸 보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식인 것 같다면서 21세기에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본인은 예전부터 불의를 보면 피하지 않는 타입이어서 이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은데 무언가 시위를 하고 싶어도 동조자가 없고 다른 직원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뒤에서 부장의 욕만 할 뿐 액션이 없다고 했다.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하면 부장의 성희롱을 멈추게 할 수 있겠냐고 하소연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게 자신의 지위와 파워를 이용해 상대방이 가진 무언가를 남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적인 요소일 때 성희롱, 성폭력이란 말을 쓴다.그런 비열한 사람의 특징은 역으로 파워와 협박에 약하다는 것이다. 세상 살다 보면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싸우는 일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든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 뇌는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창조적인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지, 파괴적인 활동에서 쾌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그대로 넘어가면 감성의 뇌에 압박이 오고 화병이 생기며 평생 울화로 고생하면서 살게 된다. 싸우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싸울 때는 확실히 싸워야 한다.다만 싸움은 전략과 기술이다. 그리고 일반 상식과 법적 상식이 꽤 다른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마음만 앞서다가는 더 억울한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잘 싸워야 한다.일단 법적 절차를 말하자면 우선 증거를 모아야 한다. 스마트폰 동영상과 사진, 녹음 등을 이용해 성희롱의 분명한 자료를 모으고 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잘 기록해야 한다.성희롱도 중독이다. 별 볼일 없는 후진 남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이다.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릴도 느끼면서 말이다. 두 명의 여직원이 그냥 퇴사했다니 아마도 이런 경험이 부장으로 하여금 이 행동의 위험성에 대한 불감증을 키웠을 것이다. 그러니 증인이 되어줄 직원, 즉 내 편을 많이 모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몸 사리고 있는 건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니 용기를 내 일을 진행하면 반신반의하다 같은 편이 되어줄 것이다. 자료를 모았으면 지방노동관서나 국가인권위원회에 가서 진정을 하고 상담을 받아본 뒤 의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를 만날 필요가 있다. 진정 후에는 민사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한다. 이쯤 되면 대부분 합의가 들어오는데 위자료와 정신과 통원 치료비까지 다 받을 수 있다.아울러 협박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실제로 공격을 당하면 무섭게 반격한다. 실제적인 공격에 강한 면을 보이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반면 협박에는 약하다. 우리 감성 시스템은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잇다는 걱정과 불안에 매우 취약하다.성희롱에 대한 부장의 안전장치도 협박이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불평등 인사를 하겠다는 암묵적인 협박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협박에 대응하는 최고의 솔루션 또한 협박이다. 역(逆) 협박인 셈이다. 성추행범처럼 약자에게 강한 사람은 스스로 협박에 몰리면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일대일 말고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 다시 성희롱적인 발언과 행동을 한다면 국가기관에 정식으로 진정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물론 이것은 만에 하나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결단이 필요한 행동이다. 부장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기회를 줄 필요조차 못 느낄 만큼 혐오감이 크다면 당장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면 된다. 싸움꾼으로 살 필요는 없지만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정말 악한 사람들도 있다. 악인이라고 겁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겁이 더 많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강하게 맞서야 한다. 성희롱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걱정과 염려, 협박이든 최고의 대응전략은 강하게 부딪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좀 먹게 하는 것은 실제 전투가 아니라 일어날지 모르는 불이익에 대한 불안과 염려다. 이 심리 싸움에서 지면 불안과 공포가 평생 내 뒤통수를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따라서 정면에서 응시하고 맞서야 한다. 그러면 의외로 그 불안과 공포가 쉽게 사라진다. 가끔은 독하게 살 필요도 있다. 내 감성을 위해서다. 거친 승리자로 사는 것이 착한 희생양으로 사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이득이다.
2021-11-12 14:28:18
최근 진료실에 20대 여성이 찾아왔다. 사연인즉 매달 13∼20일이면 미친 듯이 쇼핑을 하는데 그 때가 생리 전 주라고 했다. 신기한 게 그 때만 되면 백화점이 날 위해 세일하는 것 같고 디자이너들이 자신을 위해 ‘신상’(신상품)을 내놓는 것 같아 ‘뭐라도 사야겠다’라는 강박증까지 생긴다고 했다. 엄마한테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화장해서 백화점 정문에 뿌려라. 그래야 네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지 않겠니?”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했다. 그러나 막상 생리가 시작되면 식탐이나 쇼핑욕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모든 여자들이 생리 전이라고 해서 자신처럼 사고를 치는 건 아닌 것 같고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모든 여자들이 그런 건지 궁금하다며 어떻게 하면 사고를 덜 칠 수 있겠냐는 하소연을 했다.생리 전 감정 변화로 고생하는 여성들이 가임 인구의 3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호르몬에 민감한 감성시스템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성의 성호르몬은 사춘기 때 증가해 성인기에 일정 레벨을 유지하다 나이가 들면 떨어지는 간단한 변화를 보인다. 반면 여성의 성호르몬은 생리를 시작하면 매달 출렁거리고 출산 전후에 크게 흔들리고 폐경기에 또 큰 변화를 맞는다. 여성의 뇌, 특히 감성시스템은 남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호른몬의 진폭에 일생 동안 영향을 받는다.성호르몬은 생물학적 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인군자 수준의 여성 철학자도 호르몬의 난폭한 자극에는 깡패처럼 반응 할 수 있다.얼마 전 4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푸근하고 사람 좋게 생긴 인상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사회봉사를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경스러운 여성이었다. 한데 이 여성을 괴롭히는 증상이 있었으니 생리 시작 일주일 전쯤에 자기도 모르게 황당하게도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이 나오고 칼 같은 흉기를 보면 누군가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었다. 수녀 같은 삶을 살던 사람이니 당황스러움과 죄책감, 두려움에 클리닉을 찾아온 것이었다.필자는 이 여성에게 “이것은 인격적인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물학적 뇌의 감성시스템이 예민해져서 과민하게 반응하면 이처럼 원초적이고 공격적인 형태의 위험 시그널이 발생할 수 있다. 감성 뇌의 경고 시스템이 과도하게 반응한 탓이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본인을 탓하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이 여성은 큰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감성시스템의 과민성을 낮춰주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면서 증상은 점차 줄어들었고 몇 개월 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여성은 이를 계기로 상담심리에 관심이 많아져 2년 정도 그룹 정신치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더욱 성숙해졌다. 그러고는 본격적인 상담을 통해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상담심리학 석사과정까지 마쳤다.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이 여성이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잘 지내시죠?” 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당황스럽고 자괴감에 빠진 얼굴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다시 그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혹시 약을 안 드셨나요?” 물으니 한 달 전에 끊어봤다고 했다. “이 정도 노력했으니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자괴감에 빠진 이 여성에게 “절대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 과도한 반응회로가 이미 생물학적으로 뇌에 만들어진터라 평생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수밖에 없고 스트레스 자극이 오면 그 회로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거다. 이건 인격과 상관없는 일로 딸꾹질 잘하는 사람이 때만 되면 고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주변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원초적 용어가 나오는 경고 시스템이 활성화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평생 약을 복용해라. 그럼 편하지 않느냐”고 말해줬다. 이후 환자는 약을 다시 복용해 증상이 사라졌고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나가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생각보다 생물학적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밤에 했던 행동을 아침에 일어나 왜 그랬는지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저녁에는 이성 시스템이 피로해지고 약화되는데다 밤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이성 시스템이 가동되면 밤에 한 행동이 후회스럽다. 생리전증후군은 생물학적인 차원의 문제다. 따라서 이를 심리적인 방법으로 누르고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이다. 생리전증후군 말고도 산후우울증, 폐경기증후군 등이 여성 호르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성 호르몬은 심리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 친구와 잘 교감하는 게 중요하다.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여서 타인과 갈등을 빚을 때 먼저 남에게 문제가 있다는 논리적 추론을 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상대방에게서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편하고 자기애적 상처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성숙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려고 한다. 이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성호르몬과 같은 생물학적 요인이다. 우리의 감성시스템은 생각보다 생물학적 요인에 훨씬 영향을 많이 받는 탓이다.생리전증후군은 사실 쑥쓰러울 게 없다. 딸꾹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생리 전이면 쇼핑백을 10개 정도 들고 다녀야 하는 폭풍쇼핑병도 성호르몬에 의한 것이다. 딸꾹질이라 생각하고 빨리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1-11-05 15:57:38
얼마 전 상담을 했던 스물 네 살의 여성이 있었다. 상담 며칠 전 언니가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병원으로 가는 내내 패닉 상태로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고 했다. 열네 살 때 아빠가 공사장에서 일하다 추락사고로 돌아가셨고 이듬해에는 조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견디기 힘든 일이 일어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눈물도 나오자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남겨진 사람에게 죽음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두렵고,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더 이상 너무 이른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싶지는 않으며,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도 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이후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왜 내 주변 사람들만 떠나지?”하는 원망과 “혹시 나 때문에?”하는 터무니없는 죄책감마저 든다고 했다. 상주의 심정을 알기에 장례식장은 물론 발인까지 참석해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피해의식이라는 건 알지만 앞으로 살면서 더 많은 죽음을 겪게 될 텐데 그때마다 자신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죽음에 대한 심리반응의 교과서적 콘텐츠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5단계 반응론’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로스 박사는 ‘인간과 죽음’이라는 책에서 임종환자의 심리를 5단계로 구분했다.“암입니다. 1년을 못 넘기실 거예요”라는 통지를 받게 되면 우리는 일단 ‘부정’의 시기를 겪게 된다. ‘진단이 잘못됐을 거야. 더 큰 병원을 찾아가봐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분노’의 단계가 찾아오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등의 원망과 한의 감정이 배출된다. 뒤이어 자식이 결혼할 때 까지만 살 수 있다면 하는 ‘타협’의 단계가 찾아오고, 다음에는 슬픔과 비통에 젖는 ‘우울’의 단계를 겪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시기가 찾아온다.현실에서는 이런 단계들이 동시에 나타날 수도, 전후 단계를 여러 번 반복해 경험할 수도 있다. 가장 슬픈 경우는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고 우울과 분노로 점철된 채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죽음을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인간의 감성시스템은 엄청 강한 자극에 직면했을 때 놀라운 수용 능력을 발휘하도록 설계돼 있다. 건강한 사람이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막상 닥치면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여 남은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살고자 노력한다.사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환자들이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죽음은 심리학적으로 모두 피해갈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현대인의 문제는 죽음을 너무 피하려고만 한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피하려 할수록 죽음의 공포에 쫓기게 되고 감성 시스템이 미친 듯이 불안한 시그널을 생산해 공황장애서부터 강박장애, 건강염려증까지 수많은 감성장애들을 초래하게 된다. 상담을 청한 여성의 경우 죽음에 예민한, 즉 감성 시스템이 예민한 사람이다.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불필요한 죄의식에 휩싸인다면 그것은 좀비 같은 인생이지만 오히려 그 감성적 성숙을 자기 동력으로 만든다면 삶을 한층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소중한 죽음을 활용한 의미치료법이다. 사람은 죽음을 전제로 했을 때 가장 솔직하고 감성적인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사랑과 일, 죽음 중에서 사랑과 일은 상대적 가치인 것 같지만 사실 죽음과 마찬가지로 절대적 가치다. 사랑과 일에서 느끼는 만족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은 타협하기보다 더 순수한 것을 갈망한다. 생각이 복잡한 사람보다 단선적인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물질, 명예, 지위를 위한 타협의 연속이 되면 노년에 100% 외롭고 슬퍼진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느끼는 사별반응은 사람이 겪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크다. 실제로 사별반응 후 3∼6개월 사이에는 아무리 힘들어해도 정상적인 우울증으로 보며 우울장애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의 죽음에 깊은 사별반응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한 달 후 반려견이 죽었는데 반려견의 죽음을 더 슬퍼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서글픈 일이지만 지나친 자유추구와 독립의지 때문에 남남이 돼버린 현대인들에게 소박하고 절절한 반려견의 애정반응이 깊은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어쩌면 이제는 사별반응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배우자가 아닌 가까운 사람이나 반려동물이 죽었을 경우로.따라서 우리 모두는 죽음을 하루 앞둔, 그래서 누구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갖는 사람인 것처럼 하루를 보낼 필요가 있다. 사람과 함께 할 때 느끼는 따뜻한 정서적 스킨십만큼 행복하고 좋은 게 있을까? 상담을 청한 여성은 진짜 오지랖이 슈퍼울트라급인 듯하다. 남의 죽음까지 다 걱정하고 감내하려고 하니 말이다. 자기 에너지 함량 이상으로 주변을 걱정하다 스스로 좌절하는 사람처럼 중증 환자는 없다. 지나친 오지랖은 매우 중요한 심리적 문제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주위를 챙기는 것은 곧 위선적인 특성을 띠게 된다. 언젠가는 자신의 마음의 만족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돌변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스스로의 섬세한 감성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으로 내 자신의 감성에 대고 얘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 주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거야. 하지만 남 걱정하는 데 내 삶을 쓰기는 싫어. 나도 언젠가는 죽는 시한부 인생이니까. 대신 내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충실하게 살아갈 거야”라고. 그리고 오늘 꼭 내가 하고픈 일 하나를 하도록 해보자.
2021-10-29 16:51:51
얼마 전 진료실에 환자가 들어왔다. 첫 마디가 “저는 강박장애가 아주 심합니다”라는 소리였다. 들어보니 집에 귀가하면 현관문 보조키나 가스밸브, 욕실의 수도 등을 수시로 체크하고 일할 때에는 강박증이 더 심해져 혹 작업한 파일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백업과 저장을 미친 듯이 한다고 했다.더욱이 최근엔 친구를 만나 이동하다가 열려진 친구의 가방을 보며 누군가 지갑이라도 꺼내갈 수 있을 것 같아 친구에게 가방을 잘 챙기라고 계속 주의를 줬다가 “너 강박증 장난 아니다. 가방 땜에 집중이 안 될 정도면 심각한 것 아냐?” 소리를 들었다. 또 사무실에서 물기가 있는 컵을 사용하려는 팀장님에게 병균 운운하며 말렸다가 “상태가 심각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스스로 꼼꼼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니 자신이 과한가 싶기도 하고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그리 안절부절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강박증상이 사회생활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단순한 상담으로 해결할 수준을 넘어 강박장애 진단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군에 속한다. 불안한 마음이 강박적 사고를 만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박적 행동이 뒤따르게 된다. 불안은 감성 시스템의 영향이며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의지가 약한 사람이 걸리는 병도 아니다. 오히려 의지가 강하면 그만큼 감성 시스템을 짓눌러 압박을 주기에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강박장애는 약물치료를 기반으로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약물치료는 주로 세로토닌 시스템에 작용하는 약물을 이용하는데 우울증보다 고용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부작용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정도가 심하지 않다.진료를 하다 보면 소화가 안 되거나 간이 안 좋거나 관절이 나쁜 경우 등 다른 장기의 문제는 쉽게 질병으로 인정하지만 뇌가 안 좋다고 하면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뇌의 주된 기능이 정신적인 것이라 무언가 정신적인,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을 신체질환과 별개인 2분법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은 뇌라는 신체 장기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혼자의 의지로 극복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고 결국엔 감성 시스템을 더 피곤하고 예민하게 만들어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현대인들은 과거 선조들에 비해 감성 시스템의 피로를 쉽게 느낀다. 스트레스가 쉴 틈 없이 계속되는 탓이다. 더욱이 현대기술을 기반으로 한 편리성과 실용성이 변화를 가속화하면서 우리 뇌는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강박적 불안감에 휩싸이게 됐으며 이런 불안은 실제이기도 하다.문제는 전략적 사고를 하는 게 이성의 뇌라면, 그 연산 속도를 결정하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감성의 뇌인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물주가 세팅한 것보다 훨씬 빠른 회전수로 자신의 뇌를 혹사시켜 결국 감성의 뇌를 피로하게 만들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불안한 시그널을 만들어 내며,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때 강박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강박장애 환자의 경우 약을 복용하면 호전되는데도 스스로 노력해보겠다며 약을 끊고 고생하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의지가 약해 생긴 병이 아님에도 감성의 갈등을 강한 의지로 억누르려니 감성 시스템이 경직되고 이로 인한 문제를 또 의지로 누르려다 악순환이 반복된다.강박증 치료는 일종의 ‘도’라 볼 수 있다. 강박에서 멀어지고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이는 인생문제를 푸는 기존방식과 정반대여서 도라 할 수 있다. 살면서 어려움을 느끼면 계획을 잘 세워 의지력으로 돌파해야 한다 배웠지만, 강박증은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져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도인이 아니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도를 깨우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와 상담하고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를 하다 보면 약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환자보다 “선생님이 좋은 약 주셨을 테니 평생 먹을게요”라고 하는 환자들이 더 빨리 증세가 호전되고 약도 끊게 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반면 조금이라도 약을 줄이려 애쓰는 환자들이 호전도 더디고 약을 잘 끊지도 못한다. 집착을 줄이기 위해 약을 쓰는데 약에 집착하는 정도가 심해지니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환자들에게 약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약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어 ‘플라시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의사가 진정한 명의라 할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를 크게 만들면 실제 약의 용량을 줄일 수 있어서다.강박불안이 있다는 것은 남들에 비해 예민한 것일 뿐 사회의 낙오자도 아니고, 내가 못난 것도 아니며,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생물학적 시스템의 과민성을 약으로 치료하고 심리상담을 통해 강한 의지와 집착에 대한 힘빼기를 할 줄 알게 되면 오히려 그 섬세함을 창조적 힘으로 쓸 수 있다.의사와 환자 사이에 약이라는 건 의학적 효과를 넘어 서로의 신뢰가 담겨 있는 상징물이다. 그 상징이 강할수록 치료효과는 커진다. 피곤할 정도로 디테일해지고 끊임없이 체크해야 하는 우리의 지친 삶에 이성적 통찰을 가미한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의 에너지를 주입하면 어떨까? 깊은 신뢰만이 내면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21-10-22 15:40:32
얼마 전 새벽 3시에 상담을 원하는 글을 올린 청년이 있었다.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면 난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 지 3년 정도 된 것 같고 그 때부터 자꾸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애들 결혼하면 그 때 이혼하자”는 무늬만 부부인 부모님, 그런 부모님 뜻을 아는지 독신 선언을 해버린 누나, 자기는 결혼하면 어떻게든 강남에서 살 거라는 여자친구 등 각자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틈에서 ‘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할까? 하는 허무함이 자꾸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고 토로했다. 주변 친구들은 자기에게 조울증 증세가 있다는데 일상생활은 아무렇지 않고 그냥 혼자 있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울증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활기차게 살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군대도 갔다 왔고 연애도 더 해보고 싶고 회사에 취업해서 인정도 받고 싶다고. 하지만 열심히 살아봤자 삶의 끝은 결국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허무함을 느끼는데 일종의 허무주의가 아니냐면서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정말 행복한지 묻고 싶다며 글을 마쳤다. 글을 올린 시각이 새벽 3시니 고민만 하지 말고 내게 전화를 달라고 하고 싶었다. 소주나 찐하게 한잔 하자고. 자살은 대한민국 사망 원인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제일 높다고 한다. 이처럼 무섭고 부끄러운 데이터를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자살은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힘들어도 “죽고 싶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예전 자살예방협회 임원을 맡아 어느 신문사와 캠페인을 전개할 때 20대 젊은 여기자가 인터뷰 전화를 해온 적이 있었다. 그리곤 공식적인 질문 전에 솔직히 여쭤보겠다며 “자살예방을 왜 해야 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도발적인 질문에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 건 내 스스로도 갖고 있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자살도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 때 “왜 자살을 예방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살을 연구한 통계결과를 보면 과반수 이상이 충동적 자살에 해당된다. 죽은 영혼과 대화할 수는 없지만 충동적 자살을 기도한 사람의 상당수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한다. 실제로 간호사 한 명이 충동을 못 이겨 농약을 혈관주사에 넣어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는데 곧바로 사망했으면 차라리 편했을텐데 한 달 이상 사투를 벌이다 죽는 바람에 그 간호사는 자신의 행동을 처절하게 후회하며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죽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을 했고 그 기자도 수긍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앞서 언급한 남성 청년의 경우 삶의 의지가 존재하는 것 같다. 연애도, 취업도 하고 싶다니 말이다. 친구가 조울증 아니냐고 물었다는데 조울증은 단순 우울증보다 훨씬 자살률이 높다. 경과도 좋지 않고 치료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차리라 조울증을 선택할 것 같다. 조울증은 기복이 있는 만큼 삶의 굴곡을 증폭시키는 데서 느끼는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변화가 있어야 감동도 생기고 창조성도 발현된다. 자살은 자신의 가치가 없다 느껴질 때 저지르는 최악의 행동이다. 우리 뇌에는 내 가치의 값을 매기는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내가 인생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내가 주변의 또래와 비교해 쓸 만한지 등 몇 가지 알고리즘에 따라 반응하고 이를 자존감이라는 느낌으로 정량화한다.자존감 수치가 높으면 반드시 실제 가치와 동일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참 근사하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조울증은 이 수치가 매우 심하게 출렁거린다. 이 출렁거림은 통증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굴곡을 더욱 강하게 느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청년은 심리철학적으로 깊은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벌써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성숙하기 때문이다. 이런 감성적 변이는 잘만 활용한다면 좋은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냐고 물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스스로 자기가 근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라고 하면 손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 누가 봐도 잘난 사람들이고 내 자식도 저렇게 컸으면 하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이 불편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자주 하는 얘기지만 삶의 목표를 무엇으로 정하는지가 중요하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죽을 용기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라는 말이다. 너무 촌스럽다. 죽음은 인생에서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심오한 주제다. 살고 싶은 욕구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인생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말이다.필자는 허무주의야 말로 진정한 쾌락적 행복을 이끌어내는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원래 허무하고 그 허무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우리가 사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허무주의에 기반한 아주 강렬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스스로의 인생소설을 써 볼 필요가 있다.무늬만 부부인 부모님, 독신을 선언한 누나, 그리고 성공지향적인 여친… 이들을 스스로의 소설에 넣고 흔들어보라. 그리고 그 안에서 존재의 가벼움과 삶의 여유를 느끼며 가벼운 웃음을 한 번 지어보라.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살면 세상은 생각보다 살기 쉽다. 마지막 날에 하고 싶은 일이 내 감성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그 일을 할 때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고 자신의 인생도 구원할 수 있다.
2021-10-18 10:3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