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마지막날은 해외여행의 루틴처럼 도심의 유적지나 공원에 들르는 일정이다. 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면, 혹시나 생길 불상사를 감안하면 그렇다. 아침 일찍 서둘러 오호리(大濠)공원으로 나갔다. 오호리공원은 1927년 이곳에서 개최된 동아권박람회를 계기로 조성공사를 시작해 1929년 정식 개원했다. 지금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물의 정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후쿠오카성을 축조할 때 북서쪽 습지를 해자(垓字)로 만들었다가 성의 방어적 쓰임새가 무용해지자 하카타만으로 열린 습지를 메워 공원으로 조성했다. 연못이 공원 면적의 약 60%를 차지한다. 연못 둘레엔 3000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는 약 2㎞의 산책로가 있다. 호수 안에 세개의 섬을 네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산책로도 있다. 중국 항저우의 서호(西湖)를 모방했다고 한다. 오솔길을 소요하니 여행 마지막날의 무거운 마음이 안온해진다. 여기만 둘러봐도 좋지만 바로 붙어 있는 오호리공원일본정원으로 발길을 돌리면 그리 후회할 일이 없다. 오호리공원 개원 50주년(1979년)을 기념해 조성공사를 시작해 1984년 완공했다. 인근의 야트막한 구릉인 석가산을 병풍 삼아 흰색 벽의 치즈이베이(진흙 담)와 소나무숲이 가미노이케(상류 연못)을 감싼다. 계류는 낙차는 낮지만 나름 3단 폭포로 만든 곳을 포함해 모두 3곳에서 흘러나와 가미노이케로 흘러 시모노이케(하루 연못)으로 흘러나간다. 공원 동편 길다랗게 모래와 돌, 분재로 조성된 가레산스이정원은 정적이고 평온한 근세 중기의 일본 정원을 지향한다. 가미노야케 서편의 다실, 차회관, 로지니아(부속정원) 등은 키높은 관목으로 둘러싸 외부와 잠시 단절된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정원 입장료 외에 추가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자연 속의 일부처럼 어우러지는 한국의 고궁과 정반대로 내추럴한 맛은 없지만 인공적으로 잘 짜여진 일본정원의 정수다. 졸졸 흐르는 계류를 따라 꽃밭과 다리가 어우러진 산책로를 회유하자니 태평세상의 주인 같다. 3600평에 걸친 일본정원은 아늑하면서도 발랄하고 현대적인 세련미를 갖추고 이번 여행의 느낌표를 찍어주었다. 일본정원에서 동쪽으로 200m가량 걸으면 후쿠오카성터다. 1607년에 완공된 성터는 석벽이 튼튼하기로 유명해 세키성(石城)으로 불린다. 근대화가 시작되는 1871년부터 점차 허물어져 지금은 성터(전망대)와 일부 석벽, 무기고 건물만 남아 있다. 성내 전망대인 천수대(天守台)는 후쿠오카 주오구(中央區, 하카타 도심의 서쪽)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외적을 조망하던 성루로 각(閣)이 없다. 붉은 색으로 위용 넘치고 화려지게 지었다가 소실됐다는 설과 원래 지대가 높아 굳이 각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는 설이 전한다. 성 근처에는 후쿠오카시립미술관과 이 곳의 ‘센트럴파크’이자 소풍 장소로 사랑받는 마이츠루(舞鶴)공원이 있다. 성터 입구로 올라 벚꽃이 만개한 마이즈루공원을 거쳐 아카사카(赤坂)로 내려가는 산책로를 이 곳 시민들이 아낀다. 성터 입구에는 조그마한 연못에 수련이 예쁘고 길 건너에는 전범들의 위패를 모신 고코구(護國)신사가 음산하게 자리잡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라는 카페비미(美美)도 있으니 여성과 동행하면 꼭 챙겨줘야 한다. 예멘과 에티오피아 원두를 주문 즉시 융 드립으로 내려 서비스한다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 숙소로 돌아와 캐널시티에서 좀 떨어진 재래시장 내 나가하마케(長兵家)란 돈코츠라멘집에서 마지막 식사로 늦은 점심을 했다. 돈코츠라멘은 뼈가 붙어 있는 돼지고기(돈코츠)와 무·곤약 등을 소주·된장·흑설탕 등으로 푹 끓인 라면으로 가고시마현(鹿兒島)의 향토요리다. 요리해설가 백종원 씨가 방송해서 소개했다고 해서 가봤다. 양은 푸짐했다. 깊은 맛이나 미적 포인트는 드물었는데 돼지국물이라 그런 가 싶다. 서운해서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려고 하카타역 안근 전문점을 헤맸다. 세일한다고 해도 워낙 일본 물가가 세다보니 한국 인터넷몰에서 사는 것보다 비쌌다. 시간 낭비였다. 후쿠오카공항엔 의외로 명품 브랜드나 가성비 좋은 상품이 없었다. 늘 그렇듯 양주를 면세로 사고 귀국길에 오르니 지난 3박4일의 여정이 아스라히 포말처럼 사라져간다.
2019-08-11 12:16:47
후쿠오카 셋째날 여행지는 기타규슈시(北九州市)다. 후쿠오카현의 최북단 항구로 후쿠오카시 하카타역에서 기차로 시모노세키 또는 모지코로 가는 노선을 타면 된다. 요시즈카, 카시이, 후쿠마, 오리오, 쿠로사키, 고쿠라, 모지코 순으로 동쪽을 향한다. 고쿠라, 모지코가 기타규슈에 속한다. 모지코역에서 간몬철도터널(해저구간 800m)을 지나면 기차로 약 8분만에 야마구치현(山口縣) 시모노세키역(下關驛)에 이른다. 이를 통해 규슈와 혼슈가 철도로 이어진다. 산요신칸센(山陽新幹線)을 타면 하카타역에서 출발해 고쿠라(신간몬해저터널 통과), 시모노세키, 신야마구치, 히로시마공항, 오카야마공항, 히메지, 신고베 등을 거쳐 신오사카항에 이르게 된다. 하카타역에서 1시간 남짓 달려 고쿠라역에서 내렸다. 기타규슈시는 성을 갖추고 교통의 요충지였던 고쿠라시(小倉市), 간몬쿄(關門橋)를 통해 시모노세키와 마주 보는 모지시(門司市), 공업도시인 도바타시(戶畑市)와 야하타시(八幡市), 석탄 수출로 번영했던 항만도시인 와카마쓰시(若松市) 등 5개시가 1963년 통합돼 출범했다. 고쿠라역에서 고쿠라성으로 가는 길에는 남북으로 무라사키(紫川)강이 흐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공업지대에서 흘러나온 폐수로 본래의 보랏빛강이란 이름이 ‘검은 강’으로 불릴 정도로 오염됐다. 그러다 1980년대에 본격적인 정화 작업에 들어가 지금은 초록 물빛이 됐다. 무라사키강엔 북에서 남쪽 순으로 무라사키대교(바다의 다리), 무로마치대교(불의 다리), 도키와다리(나무의 다리), 가스야마다리(돌의 다리, 勝山橋), 오카이다리(물새의 다리), 니카노다리(태양의 다리) 등 10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차도만큼 넓은 가스야마다리의 인도는 이벤트를 여는 무대가 되기도, 노상카페로 변신하기도 한다. 물새의 다리를 건너 고쿠라성정원(기타규슈 시립정원)에 먼저 들렀다. 고쿠라번(藩)은 일본 에도 막부 시대에 호소가와(細川) 가문(1602~1633)과 오가사와라(小笠原) 가문(1632~1677)이 통치했다. 고쿠라성정원은 1632년 오가사와라 다다자네(小笠原忠眞)가 번주로 부임하면서 고쿠라성을 축조할 때 함께 지었던 호소가와 가문의 중신 마쓰이 오키나가의 저택을 인수, 별장으로 활용한 데서 시작했다. 1798년 오가사와라 가문 5대 번주인 오가사와라 다다미스(小笠原忠苗)가 신지케(心字池) 연못을 도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을 조성했다. 지천회유식이란 흘러가는 물이 고이는 연못의 수면이 주변보다 낮아서 연못의 둘레길(園路)을 돌며 대화하고 교유하는 정원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 중 하나다. 목조건물은 1866년 조슈전쟁 때 모두 소실됐다가 나중에 재건된 것이다. 조슈전쟁(長州戰爭)은 조슈번(長州藩)이 천왕을 중심으로 외세를 배척하자는(나중에 서양의 실력을 보고 외세 수용으로 전환)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우며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려 하자 에도막부의 보수세력이 이를 억누려다 갈등을 빚으며 촉발된 내전이다. 조슈(長州)는 지금의 야마구치현으로 전쟁 당시에는 하기(萩市)가 중심지였다. 중국식 별명으로 나가토(長門, 야마구치현의 서북부)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전쟁은 1864년과 1866년에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이 일어났다. 1866년 8월 29일 오사카성에 머무르고 있던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후계자 없이 죽자 쇼군 지위의 계승 문제로 막부내 균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1866년 9월 5일 규슈 북부 아카사카(赤坂), 도리고에(鳥越)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막부군은 조슈번에 패했고, 9월 9일에는 고쿠라성까지 함락됐다. 이 때 고쿠라성정원도 불 타 없어졌다. 그러자 9월 28일 조정은 전투 중지 칙령을 내렸고, 10월 10일 막부와 조슈번은 정전에 합의했다. 이로써 막부와 조슈번 사이의 전투는 중단됐다. 조슈번에 영지를 빼앗긴 고쿠라번만 1867년 1월까지 단독으로 전투를 계속했다. 조슈전쟁은 에도막부과 와해되는 결정타였고, 1867년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왕정복고가 이뤄져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으로 싹을 틔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궤도에 올라타는 계기가 됐다. 야마구치현은 정한론(征韓論)의 전진기지이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제 56~57대 일본 총리의 고향이다. 야마구치는 일본의 근대화, 산업화를 가져온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본고장으로 한국에겐 악연이다. 아베 신조가 외가의 전쟁추구적 보수주의를 따르지 않고 친가(발해 또는 조선시대 도래인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음)의 평화주의적 성향을 닮았다면 요즘 일어나는 한일 갈등은 상당폭 완화됐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고쿠라성정원에 들어가니 쇼인즈쿠리(書院造) 목조 양식의 서원동으로 연결된다. 넓은 툇마루가 연못으로 튀어나와 눈 아래 펼쳐지는 정원을 조망할 수 있다. 정원을 회유하노라니 마음이 호젓해지고 시름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고쿠라정원을 나와 고쿠라성, 마쓰모토세이초기념관, 야사카(八坂)호국신사로 걸어나왔다. 고쿠라성은 에도시대 고쿠라번의 번청으로 사용됐다. 호소가와 가문이 지금 모습의 성곽 원형을 만들었다. 현재 향토자료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작년 가을엔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1998년에 만들어진 마쓰모토세이초기념관은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 1909~1992)의 문학기념관이다. 그는 현대소설, 근대 역사소설, 추리소설 등에 두루 능통했다. 영화감독 노무라 요시타로(野村芳太郞)와 공동 작업으로 자신의 소설 8개를 영화화했는데 그 중 ‘모래그릇’은 일본 영화사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야사카신사는 일본을 지키기 위해 순국한(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적대적인) 인물을 모셔놓은 호국신사다. 고쿠라성 둘레에 해자(垓字)가 파여 있는데 일부는 흙으로 메워져 있다. 야사카신사가 아주 옛날에는 고쿠라성의 일부였을 것처럼 해자가 신사를 감싸고 있다. 지금은 다리로 고쿠라성, 신사, 거리가 연결돼 있다. 신사를 나와 기타규슈 시청 전망대에 올라갔다. 시청 15층에서 내려 계단으로 한 층 더 걸어올라가면 전망대다. 아까 보았던 성, 정원, 기념관, 신사는 물론 고쿠라 시가지 곳곳이 한눈에 들어온다.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도시락을 먹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적당하게 찾아왔다. 시청을 나와 니카노다리를 건너 단가(旦過)시장에 들어갔다. 재래시장으로서 스시, 빵, 라멘, 우동, 덴푸라 등을 가볍게 먹을 수 있다. 대학당이란 반찬가게 겸 식당이 유명한데 다른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와 여기서 먹어도 된다. 시로야라는 빵집은 달콤한 연유의 샤니빵, 깨가 든 버터빵이 알려져 있는데 기자의 구미엔 맞지 않았다. 고쿠라역에서 다음 행선지인 모지코(門司港)역으로 향했다. 한 정거장이라 금방이다. 역에 내리면 바로 우측 편에 규슈철도기념관이다. 과거에 역으로 이용됐고 실제 운행하던 기차를 볼 수 있으며 당시의 먹거리를 판다. 역 정면으로 걸어나가면 옛 미쓰이구락부(三井俱樂部)가 보인다. 일본 미쓰이기업이 직원의 숙소 겸 호텔로 이용하던 곳이다. 구락부는 클럽(club)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다. 수변을 따라 건너면 모지코 레트로(retro)를 볼 수 있다. 옛 오사카상선, 옛 모지세관 등 근대 산업화시기의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에 출정하면서 말에 물을 먹였다는 우물터도 보인다. 수탈과 전쟁의 냄새가 맡아진다. 옛 부산의 영도다리처럼 교량이 들어올려지는 ‘블루윙 모지’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일본이 오늘날 이만큼 잘 살게 된 과거의 노력을 되돌아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모지코 맥주공방엔 수제맥주인 바이첸, 레귤러 2종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조금 비싸지만 맛은 일품이다. 역사가 오래된 맥주집은 아닌데 여러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고 한다. 당초 계획엔 간몬교를 건너 시모노세키를 보려고 했는데 날씨도 비가 올듯 어둡고 낮술도 취하고 점심을 오래 먹었더니 나태해졌다. 끝내 시모노세키는 가지 못했다. 시모노세키는 시모노세키조약(日淸講和條約·1895년)이 체결돼 청나라가 사실상 조선의 관할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비극의 도시다. 지금은 시모노세키가 야마구치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됐다. 간몬교를 넘어 서쪽 해변을 따라 걸으면 조선통신사 상륙지가 나온다. 총 12번의 통신사 방문 중 마지막을 제외하고 11번에 걸쳐 여기서 기착했다 한다. 인근에 신사이면서 조선통신사 숙소로 쓰였던 야마카진구(赤間神宮)가 있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다. 또 근처의 가라토이치바(唐戶市場)는 금·토·일요일에 열리는 ‘스시배틀’이 유명할 정도로 싱싱하고 저렴한 횟감을 자랑한다. 자리가 늘 없어 개장 2시간 이내에 찾아가야 한다. 시모노세키를 어영부영 놓치고 후쿠오카시로 돌아온 뒤 아쉬움에 후쿠오카타워를 보기로 했다. 하카타역에선 제법 거리가 멀고 버스요금도 적잖게 나간다. 도심에서 해변도로를 거쳐 40분은 가야 한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후쿠오카타워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234m의 높이, 8000장의 반투명 거울로 1989년 아시아·태평양박람회에 맞춰 건설됐다. 방송국 송신장비가 탑재돼 실제 전망실(3층) 높이는 123m이다. 요금은 성인 880엔으로 센 편인데 비가 와서 조망이 나빠 올라가진 않았다. 타워 앞바다 모모치 해변공원엔 럭셔리한 이탈리아 음식점 ‘마마미아’가 있다. 그 앞편에 요트 유람선이 정박하는 마리나존이 따로 있다. 나무테크로 연결된 모모치 해변길(白道浜)을 따라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 걸었다. 거의 끝에 힐튼후쿠오카시호크호텔이 나온다. 그 옆엔 일본 소프트뱅크 프로야구팀의 홈구장인 후쿠오카돔이 나온다. 일본 최초의 개폐식 돔 구장으로 1993년에 지어졌다. 1980년대 말 일본 거품경제의 절정기에 일본의 유통 대기업 다이에가 자비로만 당시 금액으로 무려 8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세웠다. 당초 호텔을 야구장 안에 짓고 객실 창문을 야구장 쪽으로 내는 건설계획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지금의 힐튼호텔이 세워지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위용이 당당하다.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돌아와 허기가 지자 맛은 둘째고 양이 일단 많아 보이는 대중적인 일본 라멘집에 갔다. 열심히 다닌 여행 일정이었지만 시모노세키를 건너가지 않은 게 석연치 않은 채 잠들었다.
2019-08-08 19:37:11
후쿠오카(福岡)는 오사카(쿄토·나라)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인이 많이 찾는 일본 여행지다. 비행기로 인천국제공항에서 1시간 1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대도시이기에 탑승시간이나 항공료를 감안해도 이점이 크다. 사계절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음식도 한국인의 입맛에 꽤 맞기 때문에 스테디한 인기를 누린다. 매년 100만~150만명의 한국인이 다녀간다고 한다. 1983년 5월 26일 후쿠오카 시민회관에서 열린 개최한 조용필의 일본 순회공연이 그토록 절창이고 감동의 도가니였다니 리플레이하듯 연상하며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후쿠오카시는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현(縣) 북서부의 항구도시다. 메이지유신 때 후쿠오카와 어항·산업항인 하카타(博多)가 통합됐고, 쇼와(昭和) 시대에 기타큐슈(北九州)의 중화학공업 지대가 병합됐다. 하카타는 후쿠오카시 7개구 중 하나로 시의 동남부를 차지하며 지금도 여전히 후쿠오카와 혼동돼 사용된다. 사실상 도심의 핵을 이루는 게 하카타역으로 여기서 전철역과 다양한 노선의 버스를 환승한다. 하카타부두는 후쿠오카만의 가운데 박혀 있는 중심항으로 하카타역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요컨대 공항은 후쿠오카, 기차역과 항구는 하카타라는 이름을 쓴다. 후쿠오카역은 없다. 하카타 지구 서쪽엔 젊음과 쇼핑의 거리로 통하는 텐진(天神) 지구가 있다. 그 서쪽엔 넓은 호수의 오호리(大濠)공원이 적잖은 면적을 차지한다. 그보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서북 해안 신시가지(베이사이드, 시사이드로 불림)에는 후쿠오카 타워란 상징물이 멀리 부산을 바라본다.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교외의 ‘벳부(別府)’와 ‘유후인(由布院)’ 등 온천도시도 후쿠오카를 더 찾아오게 유인한다. 기자는 후쿠오카국제공항에 내려 버스로 하카타역에 도착, 환승한 다음 하카타 캐널시티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여행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구시다(櫛田)신사. 후쿠오카의 정체성을 간직한 신사다. 한쪽에선 결혼식을 올리고, 한쪽에선 정갈한 흰색 또는 검은색 차림의 중년들이 마치 도학자처럼 기도하고 수양하는 자세를 취한다. 참배하기 전에 손을 씻고, 후에도 또 손을 씻는다. 이 신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경복궁 황후 침전에 난입한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토오 가쓰아키가 사용한 히젠토(肥前刀) 칼이 보관돼 있다. 시해범이 1908년 구시다 신사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시돼 있지는 않다. 신사 앞에 작은 황소상은 민들민들하다. 소를 만지며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신사를 나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캐널시티 인근엔 라멘집이 늘어서 있다. 1884년에 개업해 지금도 수타(手打)로 면을 만든다는 카로노우동집에 들어갔다. 간판 메뉴는 고보텐 우동이다. 가쓰오부시, 다시마, 건표고, 건새우 등을 넣어 달인 육수에 수타면을 넣고 우엉 튀김(고보텐)을 푸짐하게 얹힌 게 특징이다. 우동 마니아가 아님에도 깔끔하면서도 깊은 뒷맛이 지금도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한 그릇에 520엔. 공간이 좁아 점심시간은 물론 늘 사람이 줄을 선다. 다음 견학지인 아사히 맥주공장에 들르기 앞서 짬이 좀 나자 기온(祇園)역 인근 도초지(東長寺)를 들러보기로 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후쿠오카 대불과 안뜰의 오층석탑이 대표적이다. 대불은 목조에 금칠을 한 것으로 50엔을 내야 참배 및 관람이 가능하다. 붉은 오층석탑과 그 옆의 오래된 나무가 인상 깊다. 도초지에서 서북쪽으로 몇 분가량 도심의 숲속을 지나면 안국산(安國山) 쇼후쿠지(聖福寺)에 도달할 수 있다. 도심에서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시간이 나면 가볼 것을 권한다. 도초지를 기준으로 남동쪽 멀지 않은 곳엔 만송산(萬松山) 조텐지(承天寺)가 있다. 우동과 소바가 후쿠오카에서 시작됐다는 그다지 미덥지 않은 내용을 적은 기념비가 있다. 이 절을 들르려면 하카타천년문을 지나야 하는데 2014년도에 하카타의 무궁번영을 기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기둥은 ‘학문의 신’이 모셔져 있는 다자이후(太宰府)시 텐만구(天萬宮)신사에서 가져온 나무를 썼다고 한다. 초기에 후쿠오카에 정착한 한인들이 허기를 달래려 곱창전골을 만들었고, 이것이 일본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모츠나베(もつ鍋)의 원형이란 설이 있다. 한국인이 곱창을 주로 구이로 즐긴다면 일본인은 전골로 먹는다. 이 곳 명란젓도 조선의 영향을 받았으리란 추정이다. 둘 다 서민풍 음식이다. 후쿠오카의 3대 음식은 하카타라멘, 모츠나베, 명란젓이다. 후쿠오카식(하카타식) 모츠나베는 일본 전역으로 퍼져 고단한 일본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식이 됐다. 도초지를 더 보겠다고 여유 부리다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다케시타(竹下)역 인근 아사히 맥주공장 투어에 나섰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무료다. 안내 직원들이 몇 명 단위로 조를 짜면 바로 투어가 시작된다. 여기선 하루에 350만캔의 맥주가 생산되고 약 15%는 한국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만원에 4개’ 하는 아사히 캔맥주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국내 유통 재벌인 롯데에서 수입하니 마케팅이 원활하다. 투어에서는 1인당 3잔의 무료 시음이 가능하다. 딱히 수량은 제한하지 않지만 30분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아 더 마시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일반 생맥주, 흑맥주, 프리미엄맥주가 제공된다. 생산 즉시 냉장해 가져온 것이라 맛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무료라 좀 미안하기에 과자 형태의 마른 안주와 닛카(홋카이도 양주회사)의 애플와인을 매장에서 샀다. 애플와인은 귀국할 때까지 밤마다 숙소에서 두세 잔씩 홀짝홀짝 마셨다. 해가 떨어지기 전 일본 하카타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1964년에 지어진 높이 103m의 하카타 포트타워에 올라 혼슈를 향해 펼쳐진 바다를 조망했다. 맑은 날엔 베이사이드 남서쪽의 후쿠오카 타워도 보인다는데 날씨가 흐려 감도 잡히질 않는다. 크루즈선, 상선 등과 도심지가 두루 눈에 들어온다. 일본에서 관광객이 두세번째로 많이 기항하는 항구임이 실감난다. 시장기도 돌아 저녁도 해결할 겸 완간(灣岸)시장에 들렀다. 도시락에 담겨 있는 100엔대 안팎의 스시와 초밥이 냉장고에 전시돼 있다. 깔끔하게 손질돼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오징어회, 고등어회, 초밥 등 서너 가지를 사서 꽤 즐겁게 먹었다. 해가 져서 숙소 인근의 맥스밸류, 다이코쿠드럭스토어에서 미리 사소한 선물을 쇼핑했긴다. 사탕, 동전파스, 사케, 치즈, 레이저칫솔, 마른안주 등등…. 귀국해 보니 유용한 것도 있고 덧없는 것도 있다. 점원의 권유나 인터넷, SNS 등의 평판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주관 있게 사야 후회가 없다. 밤이 어두어지자 인근에서 가장 핫한 캐널시티에 갔다. 인근과 드물게 세련돼 있다. 도쿄 롯폰기힐스를 설계한 미국의 유명 건축가 존 저디(Jon Jerde)의 작품으로 운하를 가운데에 놓고 C자와 역C자 모양의 건물이 마주 보고 있다. 밤이면 일정 시간에 뮤직 분수가 가동된다. 신나는 음악에 휘황찬란한 조명에 시원한 물줄기쇼가 단조로울 여행에 악센트를 준다. 끝나고 라멘과 스테이크로 출출함을 달래본다. 이로써 바쁜 첫날의 여정이 끝났다. 이동시간이 짧기에 아침 일찍 서둘러 이만큼이나 볼 수 있었다. 이게 후쿠오카 여행의 미덕 중 으뜸이지 않을까. ※ 기자는 작년 10월 중순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핵심부품 한국수출 중단 조치, 이른바 ‘일본 징용자 배상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경제보복’에 따른 ‘일본여행 안 가기’ 붐이 불기 한참 전의 일이다.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인간의 양심은 기본적으로 살아 있기에 양국민의 내면 밑바닥은 선하다고 믿으며, 한일 갈등은 엉키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겠지만 경제적·문화적 교류 만큼은 중단돼선 안 될 일이다. 상대를 더 알려 노력하고 상호존중의 마음으로 다가가면 한·일 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양국민들이 더 잦은 왕래와 여행을 통해, 오감을 다 동원해 교감해야 한다.
2019-08-02 10:57:08
지난 8월말 홋카이도 여행 3일차는 삿포로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져 우리 동해에 가까운 오타루(小樽)-요이치(余市)-샤코탄(積丹) 코스였다. 삿포로에서 약 35㎞를 30분간 차로 달리면 오타루에 이른다. 운하, 유리공예 공방, 오르골당, 초밥거리, 어묵공장 등으로 유명한 인구 28만명 안팎의 소도시이다. 오타루 운하는 시가지를 관통해 근해로 1㎞ 가량 이어진다. 9년간의 공사로 1923년에 완성되었고 운하 옆에는 창고가 즐비하게 늘어섰으나 지금은 이를 개조한 레스토랑, 바, 상점 등이 늘어서 있다. 폭이 40m에 불과하지만 계절을 가리지 않는 운치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밤에는 60개의 가스가로등이 애잔한 그리움을 키운다. 가이드는 샤코탄을 향하는 이른 아침에 오타루 운하를 경유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밤 시간에도 야경을 보여준다며 운하를 들렀다. 저마다 마음 속으로 그리움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면 노스탤지어가 절로 우러나올 만한 풍경이다. 인근엔 오타루 항구다. 1872년에 건설돼 홋카이도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가 1970년대 들어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 쇠퇴기를 맞았다. 이 때문에 오타루는 산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했고, 연간 7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항구엔 오르내리는 화물은 보이지 않고 인파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갈매기만 끼룩끼룩대며 자유를 만끽한다. 오타루 시장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어묵판매점이다. 가마에이 어묵공장에서 맛뵈기로 먹은 오뎅은 우리나라의 최고급 어묵과 다른 부드러운 속살이 느껴진다. 어육의 깊은 풍미가 뇌에 전달된다. 혹여 상할까 겨우 두 팩을 사 갖고 온 게 지금도 아쉽다. 유리공방은 1891년께 세워져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상당수 공방이 유리공예품을 전시하면서 카페나 레스토랑을 겸업해 수지를 맞추고 있다. 오르골(orgel)은 인형이 회전하며 음계판을 울며 스스로 연주하게 하는 일종의 음악상자다. 오타루 오르골당 본관은 1800년대 중반 오르골의 본산인 네덜란드로부터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지금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오르골을 만들고 있다. 본관은 100년된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그 안에 들어서면 어두운 조명 아래 오르골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반짝이며 멜로디로 공간을 메운다. 이 곳의 초밥거리는 싱싱하고 푸짐하며 비교적 가성비가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세스시, 마사스시는 미슐랭 별점을 받았을 정도로 유명한 초밥집이다. 하지만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가성비 높은 스시집은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거의 공짜라 할 수 있는 호텔 조식의 초밥에 크게 만족하는 까닭에 점심은 어묵·과자·아이스크림 등으로 때웠다. 오타루 시장엔 르타오(Le TAO), 롯카테이(六花亭), 기타카로(北菓樓) 등 3대 과자 메이커가 대형 매장을 유지하고 있다. 과자 맛에 정통하지 않지만 롯카데이가 가장 일본적이고, 르타오는 서구적 입맛이고, 북과루는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북과루 과자가 가장 구미에 맞았다. 주는 샘플을 두루 받아 먹다보면 과자 감평의 달인이 될 듯도 하다. 오타루를 돌아 오후 2시에 도착한 곳이 요이치 위스키 공장이다. 오타루에서 20분 정도 서쪽으로 차를 달리면 홋카이도는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니카(Nikka, 日果에서 유래된 이름) 위스키’를 증류하는 생산시설 겸 박물관이 나온다. 1930년대 스코틀랜드로 유학 간 다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가 현지서 만난 아내 리타의 장인으로부터 양조기술을 배워 1934년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가장 비슷한 요이치에 위스키 증류공장을 지웠다. 요이치 증류소의 빨간 지붕을 한 킬른 건조기(Kiln drier) 등 건물 9채가 일본 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다케츠루와 리타의 러브스토리는 유명하며 2015년 일본에서 방영된 아침드라마 ‘맛상<マツサン>’은 다케츠루의 일대기를그려 니카 위스키의 브랜드파워를 급상승시켰다. 그래서 재작년까지만 해도 저가에 팔리던 니카 위스키가 지금은 가격도 많이 올랐고 그나마 구하기도 힘들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니카위스키는 산토리, 도쿄양조에 이어 일본에서 세번째로 세워진 양주 브랜드이며 현재 일본 내 2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산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의 특성을 가지지만 몰트 위스키의 풍미에 중점을 둔다. 정통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피트탄(Peat, 土炭) 증류에서 우러나오는 숯향기가 매우 억제돼 있으며, 온화한 성격을 가진다. 발효, 숙성에 따른 방향(芳香)이 우수해 총체적으로는 풍미가 섬세하고 입맛도 순하다. 대체적으로 일본산 위스키는 증류의 숯향을 강조하는 스카치 위스키와 발효의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아이리시 위스키의 중간에 위치한다. 필자가 마셔본 니카 위스키도 과일향이 풍부하고 감칠맛과 함께 양주의 깊은 맛이 나는 게 특이하고도 일품이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5개 남짓의 자국산 양주 브랜드가 살아 남아 양주를 직접 생산한다니 놀라울 일이다. 국내 양주회사는 전부 자체 생산을 포기하고 외국서 원액을 들여와 잡스럽게 섞어 그저 ‘브랜드’ 장사나 하고 있으니 비교조차가 안 된다. 양주가 비록 서구의 술이긴 하나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장인정신으로 그에 버금가면서도 독특한 향미를 추구하는 일본인의 고집이 놀랍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용량 대비 가격이 비싼 니카위스키를 사는 대신 출국길 공항면세점에서 할인행사로 판매하는 ‘듀어스(Dewar’s)’ 15년산 위스키 한 병을 구입했다. 회식할 때 한 잔씩 돌리니 순하고 향도 적당해 다들 어찌나 좋아하는지 … 결국 서양이 원산인 것은 서양인이 가장 잘 만들 수밖에 없다고 동의하면서도 일본인의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고집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 더 서쪽으로 차를 달려 샤코탄 해변으로 갔다. 먼저 들른 곳은 시마무이(島武意)해안이다. 수십 m 작은 동굴을 지나니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물빛이 어우러진 해안이 나왔다. 수평적 시야는 좁지만 안온함이 느껴지는 포인트다. 조금 더 서쪽으로 달리니 샤코탄 반도의 끝이자 샤코탄 여기의 최고 절경이라는 가무이미사키(神威岬)다. 홋카이도에 본래 살았던 아이누족의 언어로 가무이는 신(神), 미사키는 곶(岬)을 말한다. 가무이미사키의 망부석은 우리나라의 전설과 마찬가지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한을 안고 바다 위에 홀로 서 있다. 광대한 바다가 더 넓어보이도록 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걸어갔다. 시마무이해안과 가무이미사키를 아우르는 42㎞의 해안은 니세코샤코탄오타루해안국정공원(ニセコ積丹小樽海岸國定公園)으로 지정돼 있다. 홋카이도의 유일한 해중공원(海中公園)으로 해안을 따라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다. 해안과 가까운 도로를 달릴 때면 파도가 차를 덥치지 않을까 싶은 느낌도 든다. 샤코탄의 바다는 얼핏 하늘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파래 일본인들은 이 빛깔을 ‘샤코탄 블루’라고 부른다. 이어서 미사키노유(岬の溫)에 들렀다. 야외 해수온천에서 시코탄 곶의 바다 일몰을 보면서 하루 여행의 피로를 씻는 게 루틴이라고 가이드는 일러줬다. 매일 보는 저녁 노을이지만 우리 동해로 떨어지는 일몰이라 왠지 이국의 외로움이 더해지는 듯하다. 촌스럽게도 가이드는 목욕 후 유리병에 들어있는 현지의 생우유를 마셔보라고 했다. 목욕하고 나면 체내 수분은 빠지기 마련, 과연 초등학교 시절 먹던 우유처럼 고소하고 잠시나마 허기를 잊게 했다. 여러 여행서와 가이드의 말을 종합해 홋카이도의 팔미(八味)를 들라면 징기스칸(양고기), 카레(전골요리 같은 느낌), 아이스크림(라벤더, 멜론), 위스키(니카), 라멘(미소라멘, 시오라멘, 쇼우유라멘 등), 스시(여름 성게, 가을 연어, 겨울 대구), 과자(르타오, 육화정, 북과루 등), 오뎅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번 여행에서도 시간과 경비 문제로 식도락은 충분하지 못했다. 다만 홋카이도에선 어딜 선택해도 크게 아쉽지는 않을 만큼 먹을거리가 많았고 그림책의 전원처럼 낭만이 묻어나왔다. 풍성함과 아늑함으로 홋카이도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2016-11-23 15:01:28
지난 8월말 홋카이도 여행 2일차는 삿포로 외곽의 비에이와 후라노였다. 삿포로에서 약 155㎞떨어진 후라노는 홋카이도의 정중앙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비에이는 후라노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30㎞ 더 가면 위치해 있다. 패키지여행이든, 개인여행이든 보통 후라노(富良野)와 비에이(美瑛), 다이세쓰산(大雪山)을 묶으면 삿포로에서 왕복 400㎞를 넘어가고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한다해도 14시간이 훌쩍 소요된다. 필자도 아침 6시반에 일어나 8시에 집결해 후라노로 향했다. 약 2시간을 달려 제일 먼저 들른 곳이 후라노 호수공원이다. 폭풍우가 지나간 지 며칠되지 않아 흙탕물이 바닥에서 올라와 호숫물이 탁했다. 옆에 대형 공룡 조형물이 있지만 방치된 듯 좀 으스스하다. 아무래도 화장실도 들를 겸 잠시 멈춰 선 곳인 듯하다. 정말 비경은 낙엽송 자작나무 등 죽은 수몰나무들이 서 있어 물 색깔이 옥빛과 파란색을 섞어놓은 듯한 비에이의 ‘청(靑)의 호수(池), 아오이이케)’이다. 도카치타게(다이세쓰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十勝岳, 해발 2077m) 분화 이후 콘크리드로 둑을 쌓으면서 호수가 조성됐는데 인근 시로가네 온천의 알루미늄 성분이 흘러들어와 비에이가와 강과 섞이면서 생성된 알루미늄 콜로이드가 빛의 산란을 일으켜 푸른빛이 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자가 간 시점에는 홍수가 나서 가지 못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또 하나의 호수 비경은 삿포로 남서쪽으로 1시간 이상 달리면 나오는 도오야(洞爺)호수다. 도오야호수는 백두산 천지처럼 화산활동으로 생긴 칼데라 호수로 둘레가 43㎞에 달해 작은 바다에 가깝다고 한다. 관광객이 흔히 가는 곳이 후라노의 메론농장, 라벤더꽃농원인 팜도미타(Farm Tomita) 등이다. 사실 메론으로 후라노보다 더 유명한 곳은 후라노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인접 소도시 유바리(夕張)이다. 이 곳에서 양질의 메론을 홋카이도는 물론 일본 전역에 대량 공급한다고 한다. 필자가 숙박한 호텔의 조식에서도 유바리 메론은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하지만 따로 사먹으려면 매우 비싸다. 후라노와 비에이는 전형적인 홋카이도의 농업도시이며 경관농업관광의 중심지이다. 마치 북유럽의 평원처럼, 어떤 면에서는 제주도 중산간 목장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강원도 고냉지 재배지 같기도 하다. 다만 지평선이 거의 어느 곳에서나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보이기 때문에 평안함을 선사한다. 경관을 파는 관광지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엄연히 치열한 농업생산기지다. 밀·보리·옥수수·감자· 해바라기·콩 등이 해마다 번갈아 기계화로 대량 재배된다. 순무 등 양질의 푸성귀도 생산해 도시에 댄다. 라벤더꽃농원의 절정기는 7월말에서 8월초여서 필자가 간 8월말에는 다 지고 몇포기 잔영만 남아 있었다. 가이드는 라벤더꽃을 머리 속에 넣고 머리속으로 수백번 복사하면 전체 꽃밭이 라벤더로 만발하게 느껴지지 않겠냐며 상상력을 가져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비단 라벤더꽃이 아니더라도 샐비어, 차이브, 아이슬란드양귀비, 해당화, 클레오메 등 다양한 빛깔의 꽃들이 후라노와 비에이를 수놓고 있었다. 라벤더꽃은 일본의 대표적 자생식물이 아님에도 경관 조성을 위해, 라벤더향을 향수·비누·향주머니(포푸리)·드라이플라워·착향료 등으로 상품화하기 위해 재배되고 있다. 필자는 라벤더향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향기는 기대 외로 약했고 오히려 메론 아이스크림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왜 이리 빨리 녹는지, 그게 흠이다. 오히려 휴게소에 먹은 갓 딴 생옥수수가 달달하고 청량감으로 갈증도 달래 더 깊게 인상이 남아 있다. 이곳은 축산물과 유제품도 이름이 나 있다. 청정지역에서 방목하는 젖소의 육질과 맑고 풍부한 우유가 좋다고 한다. 실제로 하얀 우유를 사 마셔보니 1970년대 어렸을 적에 처음 먹어본 바로 그 느낌이다. 당연히 양질의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치즈도 품질이 뛰어나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자랑이다. 후라노 호수공원에서 팜도미타로 가는 길에 들른 곳이 후라노 와인공장(Chateau Furano)이다. 와인의 본 고장이 유럽과 기후와 풍토가 유사한 후라노는 포도생산의 최적지라고 한다. 여기에 품종개량, 양조기술도입, 포도재배기술 개선 등을 통해 유럽의 와인을 뒤쫓아가려 애쓴다고 한다.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이나 다 괜찮았지만 아직은 깊은 맛이 덜하다는 느낌이다. 생 포도주스도 판매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와이너리와 인근 도카치타게 산봉우리가 어우러지는 풍광은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와이너리와 인접해 롯카테이(六花亭)이란 일본과자 판매점이 있다. 연매출 200억엔으로 대표상품인 ‘마루세이 버터샌드’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기념품처럼 사간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쿠기 사이에 농후한 화이트 초콜릿 버터크림이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한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매장의 분위기가 아늑하면서도 호사롭다. 질 좋은 현지의 낙농제품 및 유기농 곡물이 뛰어난 과자맛을 내는 데 일조한다. 그 다음엔 쭉 비에이 풍경을 쭉 둘러봤다. 지평선과 파란하늘이 맞닿은 구릉진 전원에 화룡점정하듯 서 있는 나무에 의미를 붙였다. ‘켄과 메리의 나무’, ‘세븐스타의 나무’, ‘마일드세븐 언덕’, ‘크리스마스 트리’ 등으로 명명된 사진 찍는 포인트에는 사람이 몰린다. 자동차, 담배 광고 등에 배경으로 나와 인상 깊은 뒤끝을 남긴 명소라 한다. ‘마일드세븐’은 국내서도 친숙한 일본의 대표적 담배 브랜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순한 담배’라는 어감이 흡연을 조장한다고 지적해 현재 ‘메비우스’란 이름으로 사실 강제 개명당했다. 이어 형형색색의 들판에 꽃을 심어놓은 비에이의 사계채언덕(四季彩の丘)에 들렀다. 팜도미타보다 더 넓고,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다. 이어 다이세쓰산으로 가는 길에 미향부동존(美鄕不動尊) 암자에 들러 약수맛을 봤다. 차를 달리니 시로가네 온천가를 따라 온천호텔이 들어서 있다. 그 대각선 방향에는 양쪽 계곡을 잇는 블루리버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위에선 계곡 낭떠러지 바위 틈으로 여러 가닥 갈라져 내리는 폭포수가 보인다. 마치 흰수염 같이 보여 명명된 시로히게노타키(흰수염폭포)가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이제 날이 어둑하고 써늘한 바람이 불며 안개비마저 내려 겁이 나는 시간이다. 삿포로 돌아가는 길 마지막 코스로 도카치타게로 올라가는 표지판이 박힌 등산로 입구를 돌아봤다. 가이드는 “언제 화산이 폭발할지도 모르고 비와 눈 등이 수시로 변덕을 부려 도카치타게를 등반하려면 아무리 좋은 날이라도 마지막 저승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겁을 줬다. 실제로 조난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등반코스라 한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쏟아진 바위 덩어리로 이뤄진 등산로가 울퉁불퉁해서 등반하다보면 무릎연골께나 아프게 보인다. 늦은 저녁시간 삿포로 시내로 돌아와서 양고기 구이를 먹었다. 일본에선 양고기 구이집을 ‘징기스칸’이라고 한다. 징기스칸 다루마, 마츠오 징기스칸, 스스키노 징기스칸 등이 삿포로 시내의 명소다. 징기스칸 다루마는 등심, 안심, 다리살 등 여러 부위를 한 접시에 내놓는데 이 곳 특제 간장양념과 마늘·파·양파·고춧가루를 듬뿍 담은 요리풍은 한국인의 입맛을 겨냥한 듯 만족스럽다고 한다. 곁들이는 삿포로 생맥주 역시 그만이다. 필자는 당초 징기스칸 다루마를 들렀으나 줄이 너무 긴 데다 생후 14개월된 아기가 고기굽는 연소가스에 힘들어할까봐 마츠오 징기스칸으로 옮겼다. 쾌적한 공간에 깔끔한 인테리어가 만족스럽다. 진한 양념에 적신 양고기를 단호박 감자 양파 등에 구워먹는 스타일로 한국의 불고기와 유사하다. 직화구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징기스칸 다루마를 선호할 것 같다. 스스키노 징기스칸은 단골손님을 위한 소박한 가게로 시작했다가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한국 손님이 일본인보다 많을 정도라고 한다. 아이슬란드산 어린 양고기를 써서 살짝 익혀 먹으면 부드러운 육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츠오 징기스칸에서 양고기 굽는 소리에 삿포로의 셋째밤이 깊어갔다.
2016-11-11 18:40:25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는 설경이 아름답지만 여름의 지평선이 보이는 풍경과 꽃의 향연도 고즈넉한 낭만으로 다가온다. 중심인 삿포로, 오타루 등지의 대도시적인 매력과 비에이, 후라노 등 인근 전원도시의 감성적 여유를 다 갖춘 게 홋카이도만의 강점이다. 양질의 수산물과 농산물 등 식재료가 넘쳐나다보니 도쿄, 오사카 등 다른 일본 대도시보다 음식의 양도 많고 다양성과 다이나믹함에서 우월하다. 여전히 유럽지향적인 해외여행 마인드가 지배하는 가운데 유난히 더웠던 올해의 지난 여름에서 도피하고자 홋카이도를 택했다. 무엇보다도 돌을 갓 넘긴 늦둥이(생후 14개월) 아들과 함께 하려면 거리상 홋카이도가 적당했다. 지난 8월 27~30일의 홋카이도 여행은 최근 수년간의 해외여행 치고는 가장 느긋한 일정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분주하지 않았고 슬슬 걸었다. 현지 가이드도 올 여름엔 유난히 많은, 평년의 2~3배쯤 되는 한국 관광객이 폭염을 피해 홋카이도로 몰리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덕분에 수입도 크게 늘었다고 기뻐했다. 여행 첫날 오전 10시10분에 이륙하는 국적기를 타고 2시간 40분을 비행하니 홋카이도 신치토세(新千歲)공항에 이르렀다. 지도를 보면 서울에서 일본 최남단인 오키나와나 일본 북단인 홋카이도나 비슷하게 멀다. 1시간이면 김포를 떠서 오사카에 내린다고 표현하는 일본여행의 편이함과는 차이가 난다.공항버스를 타고 숙소인 도미인프리미엄삿포로호텔에 내렸다. 참치회, 연어회, 연어알이 풍성한 아침 뷔페식과 온천욕장, 저녁이면 야식으로 제공되는 요나키소바(간장라멘)로 인기를 얻고 있는 체인형 비즈니스호텔이다. 다만 토요일 밤을 끼면 숙박비가 평일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해 지출이 컸다는 게 아쉽다. 어쩔수 없이 휴일을 이용해 여행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토요일밤을 피하고 평일에 다녀오는 게 낫다. 다행히 3박으로 할인한 숙박권을 어렵사리 구해 호텔에 안착하니 6평도 못되는 좁은 객실이 답답하다. 말이 더블 침대지 혼자 자기에도 작아보인다. 여장을 풀고 답답한 호텔에 나와 시내관광에 나섰다. 오도리(大通)공원과 시계탑이 보이는 곳이 첫 포인트다. 오도리공원은 삿포로 중심부를 동서로 가르지르는 1.5㎞의 좁고 긴 도심공원으로 2월엔 눈 축제, 5월엔 라일락 축제, 8월엔 맥주 축제, 겨울엔 일루미네이션 축제 등이 열려 인파를 끈다. 때마침 다음날 열릴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스포츠용품 기업들이 각종 이벤트를 열고 흥행하기에 바쁘다. 8월말에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날이 쌀쌀했다. 며칠전 태풍 3개가 홋카이도를 훑고 지나간 여파가 있는 듯 날은 청명한데 온기는 없다.공원 끝에 1967년 설치된 높이 147.2m의 텔레비전타워는 삿포로의 랜드마크다. 90m 높이엔 전망대, 레스토랑, 기념품점이 운영된다. 일몰 이후 켜지는 조명이 도심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인근에는 1878년 미국 목조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탑이 자리하고 있다.삿포로(札幌)는 1868년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고 이듬해부터 개척이 이뤄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홋카이도 이주정책으로 신작로와 전차가 깔렸으며 서양식 벽돌건물이 삿포로를 채우기 시작했다. 시계탑과 1888년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홋카이도 옛 도청사는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정문에서 볼 때 정면과 양옆으로 이어지는 높은 2층 계단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양을 모방하고 그들처럼 근엄해지고 싶어있던 근대화 시절 일본인의 속내가 엿보인다.1972년에 열린 삿포로 동계올림픽은 삿포로의 극적 변화에 화룡점정했다. 해마다 2m가 넘게 쌓이는 겨울철의 골칫덩이 ‘눈’을 관광자원화하는 계기가 됐다. 삿포로 맥주축제나 후라노의 7~8월 라벤더축제가 세계화되는 데 삿포로올림픽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해가 지려하고 쌀쌀한 기운이 더해지며 배가 출출해지자 내친 김에 맥주 한잔하고 저녁식사도 할 겸 삿포로맥주박물관을 찾았다. 창립자들은 1876년 독일에서 라거맥주 공법을 배워와 시내 근교에 공장을 세웠고 현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3가지 타입의 맥주를 시음해봤다. 클래식, 블랙라벨, 카이타쿠시(Kaitakushi) 등으로 나뉘는데 카이타쿠시는 최초의 맥주공법 레시피 그대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역시나 클래식이 가장 무난하다. 3가지 타입마다 미묘한 차이가 나지만 모두 뒷맛이 개운하다. 귀국할 때 신치토세공항에서 구입한 24캔짜리 삿포로클래식 맥주는 며칠간 서울의 무더위를 이기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박물관 내부엔 오래된 스테인리스 발효탱크가 자리하고 있고 주위의 계단으로 관람객이 오르내린다. 삿포로맥주의 역사와 브랜드변천사를 담은 기록물과 포스트 등이 걸려져 있다. 삿포로맥주의 붉은 별 브랜드는 근대화 당시 붉은 벽돌건물과 북극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근처엔 삿포로맥주 관계사가 운영하는 양고기구이 야외 레스토랑이 있다. 입장하면서 레스토랑 표를 구했으면 충분히 시간이 났을 텐데 그것을 모르고 퇴장할 때 티켓을 구하려니 줄이 너무 길다. 가성비가 높아 양고기를 포식하는 데에는 최고지만 둘이 먹기엔 헤비한 양의 양고기가 나오는 데다 고기굽는 연소가스가 아기에게 해를 줄까봐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온다면 양껏 양고기구이(일명 징기스칸)와 이곳만의 프리미엄 생맥주(별 5)를 흡입해볼 수 있으련만….결국 호텔로 가는 길에 JR(일본철도)타워 내 식당가에서 무난한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려 했다. JR타워엔 호텔, 다이마루백화점, 식당가, 전망대 등 복합시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한국 백화점 음식처럼 맛없거나 조금 괜찮아 보이는 곳은 줄이 늘어서 기다릴 수 없었다. 속이 빈 처량한 마음에 저녁이면 호텔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야식거리인 간장라멘을 먹었다. 호텔주변은 바로 니조(二?)시장이어서 수산물요리가 넘쳐나고 징기스칸 구이 냄새가 진동한다. 가격도 한국에서 동네횟집이나 고깃집을 가는 정도로 저렴하다. 여기에 일본 사케가 얹혀지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호텔옆의 스시선술에 들어가 회덮밥과 소라세트를 시켰다. 맨밥을 시켜 아기에게 밥알과 미소국물을 먹이니 허기가 조금 가신 듯하다. 하지만 해외여행인 탓인지 기력이 한국에서만 못하다. 아기가 칭얼거려 밥을 먹다말고 애를 다독거리려 잠시 음식점 밖으로 나왔더니 무전취식할까봐 노려보는 눈초리가 매섭다. 식대를 치르고 나오니 기겁을 하며 우리가 다 마시고 놓고 온 생수병을 다시 가져가라며 불쾌한 티를 역력히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음식점이라도 손님이 휴지나 생수병 등 자기 가게와 상관없는 쓰레기를 놓고 가면 안된다고 한다.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지라 지금도 떨떠름하다.쌀쌀한 날씨, 허기, 비행기여행에 지친 아기가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한다 싶다. 내일 아침이면 음식의 양과 풍미에서 뛰어나다고 소문난 도미인프리미엄삿포로호텔의 메뉴를 골고루 먹여보겠다며 측은한 마음을 삭혀본다. 자기 전에 호텔 상층의 온천에서 아기와 함께 씻었다. 좁은 데다가 목욕물이 아기에겐 뜨거울까봐 탕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칭얼대는 아기를 대충 씻기고 나왔다.홋카이도 여행 셋째날 아침엔 삿포로 시내를 전부 내다볼 수 있는 아사히야마 전망대와 과자테마파크 격인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에 들렀다. 삿포로를 전망하는 명소로는 모이와야마, 텔레비전타워, JR타워전망대(T38) 등이 꼽힌다. 하지만 이들 명소는 혼잡하거나 돈을 내야 한다. 현지 가이드는 아사히야마는 한적한 데다 무료여서 자기는 가장 맘에 든다고 추천했다. 인근에는 고급주택가가 형성돼 있고 아침이라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여유층이 많다. 가장 유명한 모이와야마는 높이 531m의 얕은 산으로 원시림을 안고 있으며 케이블카(성인 왕복 1700엔)나 도보로 올라갈 수 있다. 시로이 코이비토는 ‘하얀 연인’이란 의미로 홋카이도의 대표 과자다. 프랑스어로 ‘고양이 혀’란 뜻의 부드러운 쿠기 ‘랑그 드 샤(Langue de Chat)와 진한 화이트 초콜릿이 간판 상품이다. 과자 생산공장과 과자만들기 체험장이 있다. 유럽의 중세시대 성을 모방한 듯한 외관에 어린이들 놀이터처럼 꾸민 정원은 다소 이색적이다. 귀국하는 날 아침엔 짜투리 시간을 내어 홋카이도대 캠퍼스를 돌았다. 홋카이도대는 1876년에 근대 농업발전을 위해 설립됐다. 초대 교감은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란 경구로 유명했던 윌리엄 클라크 박사다. 너른 잔디밭에 포플러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중간 지점에 자리한 연못이 학업에 지친 학생들과 삿포로 시민과 여행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근처엔 홋카이도대 식물원도 조성돼 있다.
2016-10-27 12: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