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 찬란한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은 이제 많이 왜소해졌다. 땅 면적도 작고 경제력으로도 유럽에서는 소국에 속한다. 와인도 인접한 스페인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포르투갈은 여전히 생소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와인 강소국으로 불릴 만큼 역사적으로나 품질이나 개성, 인프라 등에서 대단한 나라다. 이 나라는 청동기 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와인을 제조했다. 이처럼 유구한 와인 역사를 지닌 포르투갈은 달콤한 디저트용 와인을 대표적으로 수출한다. 자국 내 와인 소비량은 유럽연합(EU)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한다. 더욱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코르크 마개의 대부분이 포르투갈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면 포르투갈이 와인 종주국 중 하나라 해도 토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빛나는 도우루 계곡, 그 멋진 생산물포르투칼의 와인은 대부분 도우루(Douro) 계곡에서 생산되는 포도를 원료로 한다. 도우루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1756년 세계 최초로 포도 재배 구역을 지정해 통제했다. ‘원산지 통제 명칭(Denominação de Origem Controlada, DOC)’의 시초가 된 지역이다.도우루 계곡의 토양은 편암으로 이루어져 척박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바위로 형성된 경사지들은 한 여름에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며 건조해진다. 기계나 차량 진입이 어려웠기 때문에 와인을 담글 때 사람이 일일이 발로 포도를 밟는 전통적인 방식의 작업이 오랫동안 자리잡았다. 비옥한 토질은 아니지만 배수가 잘 되는 편암질에서 재배한 포도는 섬세한 맛을 낸다. 건조한 바위 언덕에서 역경을 딛고 자란 만큼 더욱 짙은 맛이다. 포르투갈 와인이 프랑스로 수출할 만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데는 독특한 기후 환경도 한몫을 한다. 두 개의 바다 면이 대서양과 지중해를 향해 있어 양쪽 기후를 누리를 한편 맞은 편으로는 유럽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여름에는 매우 뜨겁고, 겨울에는 춥고 건조한 극단적인 기후 특성 덕분에 어느 곳보다도 다양하고 고유의 개성이 넘치는 와인이 생산된다. 지역적으로 근접해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와 같이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하며, 오크통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킨다. 포르투갈의 레드와인은 서양자두, 바닐라, 초콜릿 향이 어우러져 있으며 약간 시큼한, 매우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다.와인 변질 방지를 위한 신의 한 수, 브랜디 그리고 포트와인 포르투갈의 대표 와인으로는 포트와인(Port Wine), 마데이라(Madeira), 비뉴베르데(Vinho Verde) 와인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주종을 막론하고 수많은 발효주들이 특수한 환경에서 우연히 새로운 카테고리로 태어났는데, 포트와인 역시 마찬가지다.지리적 이점으로 뛰어난 항해 기술을 익힌 포르투갈은 12세기 미뉴(Minho) 지방에서 영국으로 와인을 수출하기 시작한다. 이후 전 세계 와인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이 발발하면서, 17세기에 포르투갈 와인이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자리잡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백년전쟁에서 패한 영국이 과거 자국 영토였던 보르도(Bordeaux) 지방을 프랑스에게 빼앗기고, 그토록 즐겨 마시던 보르도 와인 수입이 금지되면서 이를 대신할 와인을 찾다가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눈을 돌리게 됐다. 영국은 이때부터 포르투갈 와인을 대거 수입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와인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장거리 항해 과정에서 와인이 변질되고 만 것. 포르투갈에서 새로운 와이너리를 발견한 영국인들은 와인을 운송해 가는 도중 고온의 환경에서 와인이 부패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포르투 항구에서 와인 통을 선적하기 전에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첨가하면 발효나 부패가 멈춘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인 포트와인의 역사의 시작이 됐다. 포트와인이라는 명칭은 도우루강 지역의 와인이 수출된 항구 이름인 ‘오포르투(Oprto)’에서 유래되었다. 사실 ‘포트(Port)’라고 부르는 것은 영국식 표현이며, 생산지인 포르투갈 관점에서 보면 ‘포르투 와인(Porto Wine)’이 자연스럽다. 포르투는 항구란 뜻이기도 하고, 지명이기도 하며, 국명인 포르투갈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리지널 포르투갈 산 포트와인의 패키지에는 ‘Port’ 대신에 ‘Porto’ 라 표기돼 있다. 포르투갈에서 처음으로 생산됐고, 후에 영국이 더욱 개량했으니 포르투든 포트든 둘 다 들어맞는 이름이라고 볼 수 있겠다.달콤하고 상냥한 맛, 그러나 만만찮은 도수 … ‘포트와인(Port Wine)’주정강화 와인이란 알코올 농도를 인위적으로 높인 와인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와인의 도수가 12~15% 정도라면, 포트와인은 보통 20~24%다. 포르투갈의 포트와인은 대부분 달콤한 디저트용 와인으로 많이 나온다. 발효 중에 브랜디를 첨가시키면 효모가 파괴되면서 아직 발효가 끝나지 않은 포도당 당분이 그대로 남게 된다. 이는 잔당 9~11%에 해당하는 양이다.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브랜디, 견과류 고유의 향이 그윽하게 나며 단맛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하지만 달콤한 맛 뒤에는 뜨겁게 입 안을 감싸는 타닌, 만만찮은 알코올 도수로 극단의 맛을 동시에 지니는 게 포트와인의 매력이다. 포트와인은 특정 품종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포도 품종의 블렌딩으로 구성된다. 법적으로 허용된 12가지의 품종들 중 대표적인 4대 품종으로는 투리가 나치오날(Touriga Nacional), 투리가 프란체스카(Touriga Francesca), 틴타 로리츠(Tinta Roriz), 틴타 바로카(Tinta Barroca) 등을 꼽을 수 있다.포트와인은 색깔에 따라 화이트 포트와 레드 포트로 나뉜다. 화이트 포트는 주로 차게 해서 식전에 마시며, 청량감이 돈다. 그러나 화이트 포트는 최근에 개발된 제품인지라 전통적으로 포트와인 하면 레드 포트를 지칭한다. 레드 포트는 색깔에 따라 루비(Ruby)와 토니(Tawny)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밝은 적색이 나는 루비는 2~3년간 숙성시켜 달콤하고 신선한 생동감을 낸다. 이에 반해 토니는 숙성기간이 더 길어 진한 황갈색을 띠며, 묵직한 맛을 낸다. 이밖에 특정 연도의 포도만을 가지고 양조하는 최고급 포트인 ‘빈티지 포트(Vintage Port)'가 있다. 수확한 해의 이듬해 1월부터 9월까지 포트와인기구(Instituto do Vinho do Porto, IVP)에 신청해야 빈티지 포트가 되며 그 맛을 보는 게 귀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맛, 강렬하고 자극적인 산도 … ‘마데이라(Madeira)’포르투갈의 디저트 와인으로 포트와인이 있다면 식전 와인으로는 마데이라(Madeira)가 있다. 마데이라는 대서양에 있는 포르투갈 섬 이름 중 하나다. 15세기부터 아프리카, 인도, 남미로 수출하기 시작한 마데이라 역시 장거리 항해 중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결과물이다. 마데이라 섬에서 만들어진 와인의 당 성분이 45도 이상의 뜨거운 날씨 속에서 캐러멜로 변한 것이다. 그 결과 누른 냄새가 나면서 독특한 맛을 냈고, 무엇보다 보존성이 높은 와인이 만들어졌다. 현재는 ‘에스뚜아(Estufa)’라 불리는 가열실에서 인위적으로 고온 숙성시켜 제조하고 있다. 마데이라는 와인을 오랜 시간 가열하여 누른 냄새가 배게 만든 다음 브랜디를 첨가하기 때문에 특이한 향을 가지고 있다.마데이라는 과장을 좀 보태면 영원히 보존된다고 할 정도로 와인 중에서 가장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실제로 약 100년간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마데이라를 만들 때, 95%이상의 증류주를 첨가해 알코올 함량을 18~20%로 높인 뒤에 오크통에서 약 3년간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포트와인이 75~77%의 브랜디를 사용하는 걸 생각하면 훨씬 높은 알코올 함량을 첨가하는 셈이다. 마데이라 와인은 사용되는 포도 품종에 따라 나뉘는데, 식전주로는 ‘세르시아르(Sercial)’ 품종의 와인이, 강한 단맛을 지닌 디저트 와인으로는 ‘마르바시아종(Malvasjiya)’ 품종이 사용된다. 요리용으로도 많이 사용되는데, 마데이라 와인을 졸여서 만든 소스는 스테이크와 곧잘 어울려 요리사들에게 사랑받는다.어린 포도로 만드는, 신선한 비뉴 베르데 와인(Vinho Verde)비뉴베르데 와인은 포르투갈에서만 생성되는 와인으로 최근 국내에서도 슬슬 열풍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 비뉴는 ‘와인’을, 베르데는 ‘어리다’ ‘초록’ 등을 뜻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어린 포도를 따서 화이트와인으로 만드는데, 포도가 아직 덜 익은 상태에서 숙성시키므로 신맛이 강한 게 특징이다. 흔히 ‘그린 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알코올은 9~11%로 낮은 편이며 여름에 시원하게 마신다. 전체 수출량 40%에 해당하는 효자 품목, 로제 와인(Rose Wine)포르투갈 와인의 수출량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템이 로제 와인이다. 물론 포트와인 역시 포르투갈의 고급 수출 상품이다. 수출용으로 개발한 포르투갈 로제 와인은 톡 쏘는 발포성이 강하며 상큼한 맛을 지녀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도 빠짐 없이 나와 식욕을 당긴다.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몇 안 남은 국가, 포르투갈 포르투갈은 12세기부터 부분적으로 원산지 통제 제도를 시행했을 만큼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이다. 유럽엔 아직도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지역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오크통을 사용해 오랜 시간을 거쳐 숙성하며, 발로 직접 밟아 와인을 생산하는 전근대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지역도 존재한다. 포르투갈은 사실 양적으로 우세한 스페인보다도 빠른 속도로 와인 생산 공정을 현대화한 바 있다. 1986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후로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해 품질 향상 및 신품종 재배에도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최근에는 대표적인 와인 산지이자 포트와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포르투에 와인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 개설됐다. 2020년 7월, 로컬 와인과 함께 포르투의 역사, 문화, 미식을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월드 오브 와인(World of Wine)’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총 5만5000㎡ 크기의 와인 저장고를 개조해서 만든 이곳은 2020년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관광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화 사이에서 와인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포르투갈 와인이 국내에서도 더욱 친숙하게 소비자들에게 다가올 날이 오길 기대한다.
2021-03-12 02:57:57
세계에서 가장 먼저 와인을 양조한 곳은 8000년전에 시작한 구소련국가연합(CIS)의 한 지역인 조지아(Georgia)로 알려져 있다. 서쪽으로는 루마니아, 동남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둘러싸인 몰도바(Moldova)도 고고학 사료에 의하면 기원전 3000년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 양조 사업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위도 46~47도에 위치한 와인 산지는 질 좋은 포도를 재배하기 적합하다. 온화한 대륙성 기후와 비옥한 토지가 갖춰진 천혜의 자연 환경 덕분에 양질의 와인 생산이 가능했다. 중세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을 주요 수출품으로 삼았다. 이렇게 깊은 역사와 와인에 대한 강한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몰도바 와인이 빛을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통로에 위치한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몰도바는 안타깝게도 여러 세대에 걸쳐서 많은 침략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다가, 1991년에야 가까스로 독립을 했다. 유구한 와인 역사를 지닌 몰도바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몰도바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피노 블랑, 뮈스카(muscat) 등 프랑스 품종도 생산되지만,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역시 몰도바의 전통 품종이다. 페테아스카 알바(Feteasca Alba), 페테아스카 네아그라(Feteasca Neagra), 라라 네아그라(Rară Neagră 또는 Băbească neagră) 등으로 만든 와인은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영국과 덴마크 왕실에도 납품되고 있을 정도이다. 몰도바의 대표 와인 산지인 푸카리(Purcari)에서 생산한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 와인은 1847년 파리 국제박람회 금상을 받으며, 세계 시장에 몰도바 와인의 품질을 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1인당 포도나무 그루수가 가장 많은 나라 … 와인 종사자가 전체 경제인구의 15% 차지몰도바의 정식 명칭은 ‘몰도바공화국(Republic of Moldova)’이다. 국토 크기는 약 3만3700㎢로 남한의 약 1/3에 해당한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와 비슷하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국가의 인구는 약 400만명 정도인데 이 중 무려 30만명이다. 전체 경제인구의 15%가량이 와인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게다가 전체 포도원 면적은 11만2000ha로 몰도바 전체 면적의 4%, 전체 경작지의 7%를 차지한다. 전체 땅 크기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작지만, 포도원 밀도 자체로만 따져 보면 유럽의 최고 상위권에 속한다. 우리가 시골길을 가다 보면 배추, 무밭이 수시로 펼쳐져 있는 것처럼, 몰도바에서는 포도 농장을 그만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몰도바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 실제로 몰도바의 전체 수출액 중 와인이 25%,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2%를 차지한다. 2014년 기준으로 몰도바는 전세계 12위의 와인 생산국이다. 대부분의 와인은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약 7000만병이 넘는 수출물량의 수출량의 95%는 러시아로 빠지는데 스탠더드 와인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을 받는다. 한국에서 몰도바 와인을 만나기가 어려운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몰도바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에도 조지아와 함께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손꼽혔다.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영국 등의 서방 국가로도 원활하게 수출했다. 구소련 시절 수출품 다수에 러시아어 라벨을 붙이면서도 영어권 국가 수출용에는 일부러 영어 라벨을 붙였다.와인을 사랑하는 나라, 국가가 지정한 National Wine Day일찍부터 와인 문화가 꽃피운 국가라 그런지 몰도바는 세계에서 술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이 1인당 연간 10리터 이상 술을 마시며 높은 알코올 소비량을 보이지만, 몰도바는 연간 15리터 정도로 훨씬 많다. 그야말로 음주 강국 중 하나다.매년 10월의 두 번째 일요일은 몰도바 정부가 지정한 ‘National Wine Day’라는 국경일이다. 정부 차원에서 품종에 관계없이 와인을 즐기자는 취지로 만든 기념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마음껏 와인을 음미한다. 몰도바 사람들에게 와인이 없는 축제는 팥 앙금이 없는 붕어빵과 같다. 모든 가정에 와인잔이 갖춰져 있는 것은 물론이며, 집집마다 자신의 와인 경작지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포도를 오랫동안 경작해 온 민족답게 다진 고기 등을 포도나무 잎으로 감싼 요리인 ‘사르말레(sarmale)’를 즐겨 먹는다.유럽에서 포도가 맛있기로 유명한 몰도바 … 천혜의 자연환경몰도바는 평평한 초원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대부분 포도원인데 여름철이면 해바라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동유럽 끝 쪽에 위치한 몰도바는 흑해의 영향을 받아 겨울이 짧고 여름은 긴 기후 특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적절한 일조량까지 더해져 유럽에서 가장 농업 생산률이 높으며, 농축된 맛을 내는 포도로 유명하다.몰도바는 대부분 비옥한 토양을 지니고 있는데, 대표 와인 산지인 푸카리 지역의 토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카리의 포도밭은 흑해에서 비교적 가까운 드네스트르강(Dniester River)의 서쪽 언덕에 위치해 있다. 푸카리 토양은 ‘체르노젬(Chernozem)’이라고 불리는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르노젬은 농업에 최적화된 토양으로 부엽토 성분, 인, 인산, 암모니아 성분이 함유돼 있다. 포도 재배에 필요한 영양분이 풍부한 토지 특성 덕분에 몰도바 와인의 향미가 더욱 깊다. 이런 천혜의 환경 덕분에 몰도바의 토착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맛이 넉넉하고 향미가 진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특징을 보인다.몰도바 와인 슬로건 … 황새가 물어다준 포도알, A Legend Alive몰도바는 기원전 7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해왔다. 와인 양조는 기원전 3000년에 시작됐다. 2013년에 설립된 몰도바와인협회(National Office for Vine and Wine, NOVW)의 로고를 보면 포도송이 모양의 몰도바 지도를 황새가 둘러싸고 있다. 몰도바 사람들은 자국의 영토가 한 송이의 포도를 닮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The Grape Country’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포도송이를 물고 있는 황새 또한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5세기 때, 몰도바 군대가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황새가 날아오더니 입에 포도송이를 물고 와서 병사들에게 떨어뜨려 주었다. 달콤한 포도를 먹은 병사들은 다시 힘을 내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런 전설에서 유래된 황새는 와인 강국 몰도바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최근 다시 부활하는 몰도바 와인 산업(A Legend Alive)을 상징한다고 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지정한 와이너리, 샤토 푸카리몰도바 와인 중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품이 ‘푸카리(Purcari)’이다. 지역이자 와이너리 이름인 푸카리는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Chisinau)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무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푸카리는 1827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몰도바 최초의 특별 와이너리로 지정하면서 그 긴 역사를 시작했다.마치 미로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푸카리는 18세기에 수도사들이 건설한 곳이다. 지금 건물은 2003년에 새로 첨단시설로 지었다. 원래는 와인을 생산하고 보관하던 수도원이 있던 자리였다. 푸카리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비옥한 토양 덕분에 품질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 12세기부터 명품 와인 산지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8세기에는 프랑스인들이 찾아와 수도원과 협력해 와인을 생산하기도 했다. 유명한 일본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서는 푸카리 와인을 이르러 “영국 왕실에서 사랑하는 몰도바공화국의 숨은 명주”라고 표현했다. 이 숨은 명주가 바로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 와인이다. 네그루 드 푸카리는 국제품종, 코카서스품종, 토착품종을 블렌딩하여 프렌치 오크통에서 18개월 동안 숙성시킨 와인이다. 그 뛰어난 품질은 콧대 높은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마저 인정했다. 1827년 파리 엑스포에서 블라인드 테스팅을 한 결과,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이 푸카리 와인을 보르도 와인으로 착각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져 온다. 이후 네그루 드 푸카리는 보르도, 부르고뉴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와인대회에서 금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샤토 푸카리는 몰도바가 소비에트 연방에 흡수되면서 잠시 명맥이 끊기고 만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후, 2003년 현재의 샤토 푸카리 건물이 새로 건설되고 네그루 드 푸카리도 생산도 재개되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즉위식에도 이 와인이쓰였다. 현재는 푸틴 대통령까지 즐겨 마셔 ‘왕의 포도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특히 네그루 드 푸카리 1990년산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좋아해 자주 주문을 받는다. 덕분에 몰도바 와인은 잘 몰라도 네그루 드 푸카리를 아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있다. 기네스북 등재 세계 최장(最長) 와이너리 ‘밀레스티 미치’ 몰도바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코드루(Codru), 스테판보다(Stefan Voda), 발룰루이트라이안(Valul lui Traian) 등 세 곳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코드루는 사계절 내내 대체로 온화한 기후가 유지된다. 대표적인 품종으로 페테아스카 알바, 머스캣 오토넬(Muscat Ottonel),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를 꼽을 수 있다. 이 품종들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은 최근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코드루는 몰도바의 수도인 키시너우를 아우른다. 키시너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와이너리 두 군데가 있다. 바로 ‘크리로바(Cricova)’와 ‘밀레스티 미치(Milestii Mici)’다. 두 곳 모두 석회암을 채굴하던 광산을 개조해 만든 와이너리이다.크리로바는 와이너리 터널의 총 길이가 70km이며, 밀레스티 미치는 무려 200km에 달한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와이너리인 밀레스티 미치는 세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매년 이 지하 와인 저장고에서는 달리기 대회가 열릴 정도로 넓다고 한다. 전부 둘러보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니 하나의 지하도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365일 내내 12~14도, 습도 97~98%를 유지하며 와인을 숙성 및 보관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스테판보다 지역은 화이트와인으로 유명한 코드루와 달리 레드와인이 대표 상품이다. 전통 품종인 라라 네그라, 페테아스카 네그라, 사페라비(Saperavi)를 비롯해 메를로, 피노누아, 피노그리, 샤르도네 품종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발룰루이트라이안은 생산 품목의 60%를 레드와인이 차지하지만, ‘파스토랄(Pastoral)’이라는 달콤한 강화와인 역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높은 해발 고도로 인해 당도와 산도가 적절한 밸런스를 이루는 게 특징이다.몰도바 와이너리 투어의 간판, 카스텔 미미(Castel MiMi)몰도바 와이너리 중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곳이 바로 ‘카스텔 미미(Castel MiMi)’이다. 이곳은 몰도바 최초의 샤또식 와이너리로, 수도인 키시너우에서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893년 콘스탄틴 미미 총독이 와이너리 설립 사업을 시작하면서 1901년에 카스텔 미미 건물을 완공한다. 당시 그가 생산한 와인은 러시아 제국 전체에 판매됐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 군대에 납품될 정도였다.크리코바, 밀레스티 미치가 아주 긴 셀러로 장관을 연출한다면, 카스텔 미미는 역사적인 와인 저장 시설과 함께 화려하고 웅장한 연회장, 수영장, 게스트 하우스 등을 자랑한다. 와인 기념 공식 행사의 주관기관으로서 오늘날 몰도바 와인 투어리즘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구대륙, 신대륙 와인을 넘어 떠오르는 와인 샛별, 동유럽 ‘제3세계 와인’와인 주요 시장을 떠올리면 와인 종주국인 구대륙, 그 뒤를 바짝 쫒아가는 신대륙 와인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소한 이름의 국가들이 여기저기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명 ‘변방 와인’이다. 몰도바, 조지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생산된 제3세계 와인이 인기를 얻고 있다.몰도바는 최근 러시아 시장에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러시아가 소비하는 와인의 50%가 몰도바 산이다. 몰도바는 2018년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3억3000만유로를 포도나무 재배지 확장과 와인 생산시설 향상에 투자했다. 한 번 맛보면 품질에 반하고,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반하는 몰도바 와인이 동유럽 와인의 대표주자로 비상하고 있다.
2021-03-01 16:28:30
무엇인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그 축하를 즐기고 싶을 때 우리는 ‘샴페인’(Champagne)을 터트린다. 이산화탄소가 함유돼 구름 같은 거품이 일어나는 이 발포와인은 화려한 이미지 때문에 축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초대 손님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일반적으로 기포가 일어나는 와인, 즉 발포 와인을 통칭해 샴페인이라고 부르지만 오직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와인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샴페인은 샹파뉴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다른 발포 와인은 생산 국가와 지역에 따라 프랑스는 ‘뱅 무섹(vin mousseux)’ 또는 ‘크레망’(Cremant), 독일은 ‘젝트(Sekt)’, 스페인은 ‘카바(Cava)’, 이탈리아는 ‘스푸만테(Spumante)’, 미국은 ‘스파클링(Sparkling)’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샴페인이 발포와인의 대표주자가 된 것은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이다. 기술과 스토리, 그리고 그것을 엮어내는 마케팅이…. 프랑스 와인 생산지 중 가장 서늘한 기후 … 차가운 겨울 탓에 나타난 ‘악마의 와인’ 샹퍄뉴는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다. 프랑스가 현대화되면서 샹파뉴아르덴(Champagne-Ardenne)으로 불리다가 2016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다시 상퍄뉴로 바뀌었다. 어원은 라틴어인 캄파니아(Campania)에서 왔다. 평원이라는 뜻으로 샹퍄뉴 지역이 너른 평지인 데서 비롯됐다. 과거에 이곳은 켈트계 벨기에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여러 도시로 분열돼 있다가 프랑크왕국 메로빙거 왕조 때 공작령으로 묶였다 이후 10세기 베르망두아 백작 가문, 11세기에 블루아 백작 가문 영지로 있다가 1285년 필리프4세 때 프랑스 왕가에 귀속됐다. 12세기부터 이탈리아와 플랑드르(벨기에 저지대) 사이, 독일과 에스파냐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로의 교착점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점하면서 빠르게 발전했고 14세기 경에는 유럽대륙의 가장 중요한 교역지로 번창했다. 하지만 이후 해상항로가 발달하고 백년전쟁 등을 겪으면서 교역지로서의 역할은 점점 쇠퇴했다. 근세 이후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갈등할 때마다 단골 교전지로서 고초를 겪으면서 화려한 시가지의 위용도 사라졌다. 그러던 중 17세기에 이 지역에서 전무후무한 와인 즉 발포와인이 생산되고 이것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샹파뉴는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중요한 와인 생산지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이곳이 발포와인의 고향이 된 것은 지리‧자연적 환경과 영향이 깊다. 독일 인근에 위치한 샹파뉴는 프랑스 포도재배지 중 가장 서늘한 날씨를 보인다. 자연히 일조량이 많이 필요한 레드와인 품종보다는 산미가 두드러지는 화이트 품종 위주로 농사를 짓고 화이트와인이 주를 이뤘다. 통상 가을에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양조하고 병입한 후 겨울 동안 발효시키는데 유독 추운 겨울 날씨에 효모가 곧잘 활동을 중지해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전환되기도 전에 병입이 되곤 했다. 이렇게 병입된 와인은 봄이 되면서 다시 발효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발효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 가스가 발생한다. 특히 부족한 이 지역 포도의 당분을 만회하기 위해 추가로 넣은 설탕과 효모는 발효를 더 촉진했다. 양조통 속에서는 가스가 발생해도 자연적으로 배출되지만 병 속에서는 가스가 빠져 나갈 수 없다. 갈 곳 없는 가스는 보통 와인에 녹거나, 압력을 버티다 못해 병을 폭파시키기도 한다. 이때 와인 속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가 공기와 만나면서 화려하게 거품이 올라오게 된다. 당연하게도 양조장과 와인 업자들에게 이런 현상을 매우 골칫거리였다. 일년 내내 애써 만든 와인이 못 쓰게 될 뿐만 아니라 병이 터지면서 주변 사람이 다치는 일도 잦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런 와인을 ‘악마의 와인’이라고 부르며 양조가 잘못된 탓으로 여겼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악마의 와인’이 터지면서 파편을 맞은 다른 와인병도 파손돼 심할 경우 창고 속 와인의 90%를 잃게 되기도 했다고 한다. 발포와인의 가치를 알아본 돔 페리뇽 수사 … 샴페인 생산 기초 확립 및 발전 이 악마의 와인을 가치를 처음 알아본 것은 1668년 오빌레 대수도원의 와인 창고 책임자로 부임한 돔 페리뇽(Dom Perignon) 수사다. 그는 유독 샹파뉴 지방에서 잦은 악마의 와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명을 받고 이 지역으로 왔다. 그는 문제의 와인을 직접 마시고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구나”라고 감탄했다. 우아한 와인 향과 화려한 기포의 자극이 마치 별 같다는 뜻이다. 돔 수사는 와인 병 속의 탄산을 없애기보다 이 탄산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 끝에 그는 발포와인의 원리를 알아내고 기존 와인병보다 두께가 두껍고, 폭이 좁은 발포와인용 병을 개발하고 단단한 스페인산 코르크 마개를 철사줄로 묶어 고정 하고 기름 먹은 마로 싸는 등 탄산을 병 속에 안전하게 가두고 유통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내기에 이르렀다. 이로서 발포와인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돔 페리뇽 수사보다 먼저 다른 곳에서 발포와인의 원리를 발견하거나 혹은 발포와인을 생산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662년 영국의 과학자 크리스토퍼 메렛(Christopher Merret)은 와인을 병입할 때 설탕을 넣어 기포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기술하고 영국 상인들에게 발포와인을 생산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돔 페리뇽 수사가 샹파뉴에 부임하기 6년 전이다. 또 랑그독의 리무(Limoux) 지역은 이곳 생 틸레르(Saint Hilaire) 대수도원 베네딕트 수도회 수녀들이 돔 수사보다 1세기 먼저 세계 최초의 발포와인을 생산했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리무지역에서 생산되는 ‘브랑께뜨 드 리무’(Blanquette de Limoux)가 그 주인공이다. 최초 논란이야 어찌됐든 발포와인은 샹퍄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돔 페리뇽 수사는 이후로도 여러 밭에서 난 여러 종류의 포도즙을 블렌딩해서 맛과 향을 업그레이드 하는 등 샴페인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업적을 남겼다. 수사가 근무하던 오빌레(Hautvillers') 대수도원이 가지고 있던 포도밭은 현제 ‘모엣샹동’(Moët & Chandon) 양조장이 소유하고 있는데, 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생산하는 샴페인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이는 지금도 가장 많이 팔리는 샴페인이다. 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고급화 전략과 노력 … 까다로운 원산지 관리와 분류 샴페인은 상큼한 맛과 화려한 거품의 조화로 곧 유럽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요 파티에서도 기포가 올라오는 샴페인을 마시는 것은 필수적인 유행이었다. 특히 샹파뉴주의 중심도시 랭스(Reims)의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루는 프랑스 왕실이 대관식을 비롯해 왕실의 중요한 행사에 샴페인을 빠뜨리지 않았다. 때문에 샴페인은 ‘왕의 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같이 샴페인이 공전의 히트를 치자 다른 지역에서도 너도나도 발포와인 생산에 들어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발포와인은 샴페인의 이름을 달고 팔려나갔다. 이에 샹파뉴의 양조가들은 샴페인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1927년부터 철저한 AOC(원산지 명칭 통제제도)를 실시했다. 샹파뉴의 AOC는 깐깐한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더욱 유별나다. 사용되는 포도를 지정된 밭에서만 재배된 7종류(피노누아, 피노뮈니에, 샤르도네, 피노블랑, 쁘띠메슬리, 미포그리, 아르반드)로 제한하고, 가지치기‧수확량‧압착강도‧병입시 효모잔액 숙성시간‧시장공급량 등을 모두 규제한다. 이를 통과해야 비로서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또 라벨에 샴페인 브랜드 이름은 물론 당도, 협회가 발행한 생산자 고유 알파벳, 병목으로 모인 죽은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고쥬망(Degorgement, Disgorgement) 날짜, 알코올 도수, 배치 코드, 알레르기 유발물질 함량, 생산자 등록 코뮌 기호, 원산지 등을 모두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샴페인이 수출되는 국가에 명칭 보호를 요구하고 샴페인의 이름을 다른 주류 및 상품에 일정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117개국에서는 샴페인이라는 명칭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스스로도 AOC별로 샴페인의 품질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샴페인은 일일이 포도알을 손으로 수확하고 당일 바로 압착하는데 껍질의 색소가 묻어나오지 않게 살짝 짜야 한다. 그래서 샴페인은 레드품종인 피노누아(Pinot Noir)와 피노뮈니에(Pinot Meunier)가 섞인 경우에도 색이 맑고 투명하다. 160kg 정도의 포도에서 얻는 포도즙은 100ℓ에 불과하다. 이렇게 얻어진 포도즙은 즉시 1차 발효를 거쳐 다른 품종의 포도즙 혹은 와인과 블렌딩된다. 이 과정에서 각 와인마다의 개성이 완성되므로 매우 중요하고 섬세하게 이뤄진다. 블렌딩된 1차 와인은 양조장마다 엄격하게 정해진 비율의 당분과 약간의 효모와 함께 병입돼 서늘한 동굴에서 12개월 이상 보관돼 2차 발효된다. 이 때 병은 45도 기울어진 선반에 거꾸로 놓여지는데 규칙적으로 병병을 회전시켜 발효된 효모 찌꺼기를 병 입구로 모은다. 이를 르뮈아주 (Remuage)라고 한다. 2차 발효가 끝나면 차가운 소금물에 병목을 담가 급속 냉각시켜 얼린 후 병마개를 열어 얼음이 된 효모 찌꺼기를 탄산으로 밀어내 제거한다. 그리고 빠져나간 양만큼 와인과 설탕을 혼합한 ‘리쾨르 드 도사주’(Liqueur de dosage) 액을 첨가하고 병을 봉한다. 이 때 당도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데 정해진 기준으로는 △1ℓ 당 당분 6g 이하, 엑스트라 브뤼(Extra-Brut) △1ℓ 당 15g 이하, 브뤼(Brut) △1ℓ 당 12~20g 이하, 엑스트라 드라이(Extra-Dry) △ 1ℓ 당 17~35g, 섹(Sec) △ 1ℓ 당 33~50g 이하, 드미섹(Demi-sec) △ 1ℓ 당 50g 이하, 두(Doux) 로 나눌 수 있다. 또 사용되는 품종에 따라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블랑 드 누아 샴페인((Blanc de Noirs), 로제(Rose)로 나눌 수 있다. 블랑 드 블랑은 청포도 품종으로만 만들어지며 매우 섬세하고 신선하다. 블랑 드 누아는 적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지는데 탄닌감과 복합적인 아로마를 자랑한다. 로제는 블렌딩 과정에서 레드 와인을 섞거나 압착시 적포도 껍질의 색소가 일부 배어나오도록 한 것으로 다른 샴페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묵직하다. 일반적으로 샴페인은 블렌딩 때문에 빈티지가 적히지 않은 논빈티지로 생산되지만, 작황이 아주 뛰어난 해에는 오직 그해 수확된 포도즙만으로도 와인을 양조하고 양조자들의 결정을 통해 빈티지를 표기한다. 2000년과 2005년 빈티지가 표기된 샴페인들이 대표적이다. 120개 와인하우스 중 20곳이 70% 생산 … 스토리를 더한 마케팅도 즐길거리 일각에서는 이같이 까다로운 규정과 복잡한 분류가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복잡한 규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샴페인은 1800년대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각국 왕실을 상대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규정과 돔 페리뇽 수사의 스토리 등이 과장되게 사용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와 달리 1800년대가 되어서야 샴페인 병들이 규격화되고 기술들이 통일됐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좋아한다며 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인연을 강조하는 것도 스토리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샴페인의 양조기술은 당시 첨단임이 분명하고 기술을 발전시켜온 그들의 노력까지 마케팅이라고 폄하한다면 억울한 일이다. 여러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당도를 다양하게 조절하고 투명도를 높이는 등 기술적인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각 와인하우스마다 가진 스토리들은 와인을 즐기는 재미를 더욱 쏠쏠하게 만들어 준다. 상파뉴는 포도밭을 중시하는 보르도와 달리 제조회사가 더 중요하다. 약 120개에 이르는 상파뉴 제조회사 중 상위 20개 회사가 상파뉴 전체 생산량의 70%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하우스라고 부른다. 돔페리뇽을 생산하는 ‘모엣샹동’, 르뮈아주를 처음 도입한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가장 비싼 샴페인으로 유명한 ‘크룩’(Krug), 007 제임스본드의 샴페인으로 유명한 ‘볼랭저’(Bollinger), 러시아 황가가 사랑한 크리스탈 샴페인을 생산하는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 할리우드 스타들이 좋아하는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 빅토리아 여왕이 즐겨마신 ‘페리에-주에’(Perrier-Jouët), 마를린 먼로와 마리앙뚜아네트가 파티 때 즐긴 ‘파이퍼 하이직’(Piper-Heidsieck), 원스터 처칠이 매일 마셨다는 ‘폴 로저’(Pol Roger) 등이 대표적인 샴페인 하우스다.
2021-01-09 11:39:38
와인은 원래 식사와 함께 즐기는 술이다. 그래서 음식과 와인의 어울리는 궁합인 ‘마리아주’를 따져 와인을 내는 일은 소믈리에 혹은 자리를 만든 호스트의 중요한 역할이다. 샐러드, 해산물 등 비교적 볼륨감이 가벼운 음식은 화이트와인과, 육향이 강한 고기 요리는 레드와인과 어울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찬에서 와인의 순서는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화이트와인에서 시작해 로제, 레드 순이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디저트를 즐길 때는 다시 화이트와인이 나온다. 이때 나오는 와인은 산도가 높은 처음의 화이트와인과 전혀 달리 아주 달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이를 ‘디저트 와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달콤한 디저트 와인은 포도의 수분을 빼고 당도를 높여서 만든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귀부균(貴腐菌)으로 불리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 곰팡이균을 이용해 포도의 수분을 뺏는 것이다. 주로 프랑스 소테른(Sauternes), 독일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헝가리 토카이(Tokaji)에서 생산된다. 이를 3대 귀부와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샤또 디켐(Château d'Yquem)이다. 일부러 포도를 늦게 수확해 포도알의 수분을 증발시키는 와인도 있다. 프랑스의 ‘뱅 드 파이유’(Vin de Paille) 등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디저트와인을 꼽자면 아이스와인을 들 수 있다. 수확시기를 일부러 늦춘 것은 뱅 드 파이유와 같지만 아이스와인은 차가운 기온에 포도알 속 수분이 얼음으로 떨어져 나가고 남은 당분이 농축되면서 깊고 진한 단맛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19세기에 처음 생산된 이후 아이스와인은 귀부와인을 누르고 대표 고급 디저트와인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세기 독일 한 양조업자의 욕심이 부른 실수 … 달콤한 신의 한수가 되다 아이스와인은 독일 라인가우(Rheingau)에 위치한 와이너리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Schloss Johannisberg)에서 19세기에 발명된 와인이다. 아이스와인이 처음 만들어지는 일화가 매우 재미있다. 라인가우는 귀부와인의 생산지로도 이름이 높은 디저트와인의 고장이다. 이 지역에서는 귀부균을 이용하는 방식과, 수확을 늦게하는 방식 모두를 이용하 와인을 만들었다. 그런데 포도를 늦게 수확할수록 포도의 당도가 높아지고 향도 깊어지는 것을 본 양조업자가 그만 욕심을 부려 수확일을 예정 날짜보다 늦췄다. 평소보다 이르게 닥친 한파로 남은 포도알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욕심을 부렸다가 한해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된 양조업자는 질 낮은 벌크와인이라도 만들어 팔 셈으로 포도에 달린 얼음을 떼고 포도즙을 내 와인을 양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귀부와인 못잖게 단맛이 강하고 향이 진했다. 이후 이 양조장은 이런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아이스와인을 생산해냈고, 주변 지역에도 이 같은 양조법이 퍼져 나가면서 아이스와인은 독일 와인산업을 떠받치는 히트 상품이 됐다.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아이스와인은 고급 디저트와인으로서 까다로운 생산 규율로 관리된다. 인공적으로 포도를 얼려서 만들 경우 아이스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오직 나무에 열려 있을 때 자연적으로 언 포도만으로 만들어져야 아이스와인으로 불릴 수 있다. 수확한 포도를 인공적으로 열려서 만든 와인은 ‘빈 데 글라셔’(vin de glacier) 혹은 ‘아이스박스 와인’(icebox wine), ‘아이스드 와인’(iced wine) 등의 이름으로 따로 불린다. 호주나 미국 등지에서 주로 생산되며 국내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되는 아이스와인 중 상당수는 이런 와인이므로 라벨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온난화로 생산 어려워지는 독일 … 떠오르는 아이스와인의 강국 캐나다 대부분의 와인 생산지는 기후가 온후하기 때문엔 수확 시기를 늦춘다고해도 자연적으로 포도가 얼기는 쉽지 않다. 오직 독일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오랜 세월 아이스와인은 당연히 독일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독일 내 아이스와인 생산량이 조금씩 감소하면서 아이스와인 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독일의 겨울 온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어서다. 급기야 지난 3월 3일 독일와인연구소(DWI)는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13개 와인산지 중 어느 곳에서도 아이스와인을 생산할 만큼 날씨가 춥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연구소측은 “아이스와인의 2019년 빈티지는 전국적으로 수확이 실패한 첫해로 이는 독일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아이스와인의 독자적인 상위급 와인 분류법인 Prädikatswein에 따르면 아이스와인용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영하 7도까지 내려가야 한다. 이 온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포도가 아이스와인을 만들기 알맞은 상태가 되기도 전에 부패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스와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독일 대신 아이스와인의 생산을 책임지는 나라가 나타났다. 캐나다는 1860년대부터 와인산업이 시작됐지만 너무 추운 기후와 알코올음료 판매를 통제하는 정부 정책 등으로 제대로 육성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와인 산업을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포도 양조 환경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소규모로 이뤄졌다. 하지만 1978년 독일 이민자 월터 하인레(Walter Hainle)가 브리티시콜럼비아주(British Columbia)의 오카나간 밸리(Okanagan Valley) 아이스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캐나다의 와인산업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금도 캐나다 아이스와인을 대표하는 이니스킬린(Inniskiliin)이 1991년 세계 최대 와인 및 주류 전시회인 비넥스포(Vinexpo)에서 당당히 최고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됐다. 급기야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 최대 아이스 와인 생산국으로 등극하고, 2007년 양조자 제이미 맥팔레인(Jamie Macfarlane)의 2005년 빈티지 비달(Vidal) 아이스와인이 브뤼셀 인터내셔녈 와인콘테스트에서 그랑골드를 수상하면서 다시한번 뛰어난 품질을 확인했다. 독일과 캐나다의 아이스와인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지지만 몇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주로 리슬링(Riesling) 품종으로, 캐나다는 비달 품종으로 빚는다. 물론 아이스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규정된 것은 없기에 게부르츠 트라미너(Gewurztraminer),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비달 블랑(Vidal Blanc), 슈냉 블랑(Chenin Blanc) 등 추운 지역에서 잘 견디는 여러 품종으로 만든 아이스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메를로, 시라 등으로 만든 실험적인 아이스와인도 나오고 있다. 독일 아이스와인의 도수는 6%인데 비해 캐나다 와인은 8~13%로 조금 더 높다. 장기보전 능력은 독일 와인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이 적고 비싸다고? … 다른 와인보다 2~3배 손이 가는 귀족와인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아이스와인의 특징은 양이 적다는 것이다. 보통 와인병이 750ml인데 비해 아이스와인은 그 절반인 375ml가 통상적이다. 더 작은 187ml 병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커도 500ml을 잘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격은 국내 기준으로 7만~10만원의 고가다. 그러다보니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싸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아이스와인엔 일반 와인보다 훨씬 더 어렵고 고된 노동이 필요하다. 얻을 수 있는 포도액도 매우 적다. 긴 시간 수확하지 않고 밤에 얼고 낮에 녹으며 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는 상당수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낙과되거나 썪거나 새들의 먹이가 된다. 그 기다림을 이겨내고 12~1월까지 나무에 매달린 포도만이 아이스와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얼어도 포도즙이 나오지 않으므로 잘 조절해야 한다. 수확할 때도 언 포도가 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이른 새벽 혹은 한밤중에 단 시간에 조심스럽게 수확을 마친다. 이렇게 수확된 포도는 녹지 않은 상태로 온도가 낮게 유지된 양조장에서 포도즙을 짜내야 낸다. 착즙된 포도액의 당도는 32~46 브릭스(Brix) 정도로 30 브릭스 이하면 아이스와인이 되지 못한다. 수확을 늦추느라 일반 포도농장보다 수확량이 적은데다 수분이 날아간 포도알에서 착즙을 하다보니 와인의 원액이 되는 포도액도 아주 적어 다른 와인에 비해 많은 양을 생산하기 어려운 제약이 있다. 그래서 양은 적고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도가 매우 높아 다른 와인처럼 마시다가는 입맛을 버릴 수 있다. 적은 잔에 따라 조금씩 마신다면 한 병으로 여러 명이 충분히 즐겁게 나눠마실 수 있다. 6~10도 온도에서 마셔야 제맛 … 블루넌‧이니스킬린‧필리테리 에스테이트 등 대표적 아이스와인을 마실 때 온도를 너무 차갑게 하면 와인의 향이 살아나지 않아 도리어 손해다. 보관은 10도 정도에서 하고 마실 때는 6~10도로 식혀 마시면 향기와 단맛, 산미 등을 조화롭게 느낄 수 있다. 곁들일 디저트로는 달지 않은 다크초콜렛이나 치즈류 등이 잘 어울린다.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스와인 브랜드로는 블루넌(Blue Nun), 이니스킬린(INniskillin), 필리테리 에스테이트(Pillitteri Estate) 등이 있다. 블루넌 아이스바인(Blue Nun Eiswein)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현대식 아이스와인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독일 와인이자 아이스와인이다. 짙은 황금색으로 복숭아 등 과일향이 진하고 단맛과 산미의 밸런스가 절묘하다. 이니스킬린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아이스와인이다. 캐나다 와인 최초로 국제 무대에서 수상하며 품질을 인정받은 와인으로 지금도 캐나다 방문 기념으로 흔히 구입해 귀국한다. 이니스킬린 골든 비달(INniskillin Gold Vidal)은 잘 익은 복숭아와 살구 등 농익은 열대과일 향이 풍성하고 당도와 산도의 조화가 적절하다. 필리테리 에스테이트(Pillitteri Estate)는 캐나다 최대 아이스와인 생산업체로 다양한 종류의 포도품종으로 여러 아이스와인을 생산하다. 비니탈리(vinitaly)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며 뛰어난 품질을 입증, 세계적으로 이름값을 높이고 있다. 비달 품종으로 만든 ‘필리테리 에스테이트 비달‘(Pillitteri Estate Vidal)은 산도와 당도의 균형감이 좋고 마지막까지 안정적인 피니시를 보인다.
2020-12-26 16:33:08
한국인에 친숙한 프랑스의 와인 생산지를 꼽자면 보르도, 부르고뉴, 론, 그리고 샴페인의 발원지인 샹파뉴 등일 것이다. 이들 지역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명성을 누려와 지금도 그 전통 아래 품질을 유지·발전시키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새로운 양조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트렌드를 맞춰가는 신세계 와인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콧대 높은 프랑스 와인이 글로벌 소비자에게 서서히 잊혀져가는 대신 프랑스 안에 도전적인 와인 생산지로 부상하는 곳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랑그독(Languedoc)이다. 지역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여느 프랑스 산지와 달리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스위트 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 품질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최근 국제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찍 꽃핀 와인 문화 … 지리적 특성 탓에 중간 등급 와인 생산지 ‘르 미디(Le Midi)’로 정착 넓은 의미에서 랑그독(랑그독루시용 Languedoc-Roussillon, 2016년 이후 옥시타니 Occitany 또는 Occitania로 통합됨, 옥시타니의 2014년 당시 옛이름은 랑그독루시용미디피레네 Languedoc-Roussillon Midi-Pyrénées) 레지옹(région, 주보다 상위 단계의 광역자치단체)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서부 지방이다. 행정구역 상 오드(Aude, 오드강 유역 저지대로 와인 주산지, 주도 카르카손), 가르(Gard, 론강 하류, 주도 님), 에로(Hérault, 주도 몽펠리에), 피레네조리앙탈(Pyrénées Orientales, 주도 페르피낭), 로제르(Lozère, 목축지대, 주도는 맹드) 등 다섯 주(데파르트망, Département)로 이뤄진 지역이다. 그 중 중심 도시는 몽펠리에(Montpellier)이다. 랑그독은 오크어(langue d’oc)를 사용하는 지역이라는 뜻이며 카르카손(Carcassonne) 등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이 즐비하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자리해 사철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며, 다양한 식재료의 보고이다. 협의의 랑그독은 루시용과 미디피레네를 제외한 지역이다. 원래 루시용은 피레네조리앙탈(피레네산맥 동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프랑스 최남단, 지중해 연안 평야지대를 국한하는 말이다. 미디피레네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했던 레지옹으로 중심도시는 툴루즈(Toulouse)다. 남쪽으로 스페인, 안도라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으로 랑그독루시용과 붙어 있다. 피레네산맥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는 동서로 긴 산맥이다. 랑그독과 루시용의 와인 스타일도 완연 다르다. 하지만 둘은 하나로 묶여 ‘르 미디(Le Midi)’로 불린다. 르 미디는 ‘중간’ 또는 ‘한낮’ 이라는 뜻으로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중간 등급 와인 즉 ‘뱅드뻬이’(Vin de Pays)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이를 빗댄 것이다. 이래저래 ‘르 미디’는 랑그독의 와인을 절묘하게 상징하는 별칭이 됐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그리스, 로마와 가깝고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춘 랑그독은 와인 문화가 다른 프랑스 지역에 비해 빠르게 시작됐다. 이 지역에 처음 와인이 들어온 것은 기원전 7세기로 추정된다. 철 무역을 하던 그리스 선원에 의해 와인과 포도나무가 전해졌고 이후 이곳을 점령한 로마인들로 인해 본격적으로 포도나무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4~5세기 중세에는 지중해를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와인을 수출할 만큼 많은 와인이 생산됐다. 하지만 스페인과 가까운 탓에 프랑스와 스페인의 영토 분쟁으로 안정적인 와인 생산이 어려웠다. 랑그독은 13세기가 되어서야 완전히 프랑스로 귀속됐다. 귀속 후에도 랑그독의 와인산업은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와인의 주요 소비지인 수도 파리와도, 와인 수입의 큰 손인 영국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19세기 후반 와인 흑사병으로 불리는 ‘필록세라’(Phylloxera, 북미 지역의 포도품종에서 유래된 진딧물)가 프랑스 등 유럽 포도밭을 강타하면서 이 지역의 와인산업은 회복이 어려울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처럼 막강한 자본력을 갖추지 못했던 랑그독의 농민들은 포도나무를 뽑고 올리브 나무를 심어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1차, 2차 세계대전과 산업혁명 등을 거치며 이곳은 군인과 노동자들에게 공급되는 저렴한 테이블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지역으로 굳어졌다. 심지어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수입한 포도 원액에 지역 포도를 섞어 양조하는 일이 흔할 정도로 질이 저하됐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면서 랑그독 지방의 다양한 세부 와인 산지들이 프랑스 원산지통제호칭제도(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AOC)를 획득하면서 와인 생산지를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랑그독이 가진 천혜의 환경이 양조가들의 눈에 들어왔다. 젊고 도전적인 양조가들이 이 지역에 몰리면서 랑그독 와인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08년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베스트 밸류 와이너리(Best Value Winery)로 선정된 제라르 베르트랑(Gerard Bertrand)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등급에 연연하지 않고 샤르도네(Chardonnay), 메를로(Merlot),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등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품종을 적극적으로 재배해 국제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뛰어난 품질에 다른 프랑스 와인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랑그독 와인의 인기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일조량 풍부한 지중해 기후 … 과일향 풍부한 신대륙 스타일 와인 생산 혹자는 랑그독 와인을 일컬어 “신대륙 와인 같은 프랑스 와인”이라고 평한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트렌디하며, 저렴한 소비자에게 친절한 태도 때문이다. 과실향이 풍부하고 비교적 가벼운 무게감을 가진 와인 스타일도 신대륙 와인을 연상케하는 요소다. 이는 랑그독의 가진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다. 이 지역의 포도밭은 대개 일조량이 좋고,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광활한 반원형의 평지에 있다. 이 지역의 우기는 겨울이라 포도가 한창 자라는 4~10월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아 포도는 풍성한 햇볕을 받으며 무르익게 된다. 때문에 햇살이 풍부한 신대륙처럼 이 지역의 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탄닌이 진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우수한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은 대체로 피레네(Pyrénées) 산맥과 세벤느(Cévennes) 산맥의 높은 구릉을 따라 위치한다. 이렇게 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란 포도는 뜨거운 햇살을 식혀주는 미풍 덕분에 산미와 당도의 밸런스가 좋아 섬세하고 우아한 맛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토양이 다양한 점도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해안에서 가까운 곳은 충적토, 내륙으로 들어간 곳은 백악질, 자갈, 석회질로 구성된다. 점토와 석회질이 많은 토양에서는 구조감과 바디감이 좋은 와인이 생산된다. 편암이 많은 흙에서는 섬세한 와인 맛을 기대할 수 있다. 자갈이 많은 지역은 낮의 열기를 자갈이 머금어 밤에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것을 막아준다. 이밖에도 북서쪽에서 불러오는 시원하고 건조한 바람과 지중해 해풍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로마를 선사한다. 양조가들은 천혜의 환경에만 만족하지 않고 양조법을 개발하는 한편 최근에는 친환경 농법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와인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유기농 농법의 발전으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유기농 와인 생산지로 자리잡고 있다. 랑그독의 주요 품종으로는 무르베드르(mourvedre), 시라(syrah, 그르나슈(grenache), 카리냥(carignan) 등 지중해 품종이라 불리는 강직한 레드와인 품종이다. 이 지역 와인 중에 GSM 블렌딩으로 표기된 레드 와인이 많은데 이는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 등을 블렌딩해 양조했다는 뜻이다. 화이트 품종으로는 샤르도네,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비오니에(Viognier) 등이 재배되지만,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 특성상 화이트와인보다 탄닌이 많고 보디감이 강한 레드와인의 품질이 더 우수하다. 아울러 샤르도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품종을 재배하는 양조장도 많다. 대략 이들 품종과 지중해 품종(프랑스 토종)의 생산 비율은 3대 7 정도로 본다. 랑그독 지역 역시 다른 프랑스 지역처럼 AOC를 운영한다. 뱅드페이(Vin de Pay), 뱅 드 따블(Vin de Table)의 와인 품질 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 뱅드페이는 IGP(Indication Géographique Protégée, 인디카시옹 제오그라피크 프로테제) 등급과 같은 말이다. 1973년에 공식적으로 제정해 현재는 150여개 산지에 대한 지리적 표시가 이뤄지고 있으며 프랑스 와인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1968년에 공식 출범했으나 1973년에 생산 규정이 확정되기까지 판매는 못했다. 상표에 원산지를 표시할 수 있으며, 품종은 선택 폭이 크고, 원료 대비 알코올 도수 수율이 높아도 된다. 좋은 것은 AOC 수준보다 나은 것도 있다. 랑그독 AOC는 지역단위AOC, 그랑뱅(Grand vin), 크뤼(Cru)로 나뉜다. 지역단위는 랑그독AOC로 통칭되는 와인으로 이 지역 전체 와인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쉽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스타일의 와인이다. 그랑뱅은 랑그독 특정 지역의 떼루아를 잘 드러내는 와인으로 부르고뉴로 치면 마을 단위의 AOC와인이다. 크뤼는 더 좁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이 지역 와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랑그독의 와인 생산자 중에서는 까다로운 규정을 지켜야 하는 AOC에 억매이지 않고 IGP 등급을 적용하며 자유롭고 개성 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이들이 많으므로 등급에 연연하지 말고 모험을 해 보는 게 추천된다. 국내에서 만나기 좋은 대표적인 랑그독 와인 라크리사드(La Croisade) 라 크라사드는 ‘십자가’라는 뜻.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 등 국제적인 와인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수상하며 랑그독 지역 와인의 우수성을 알렸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의 블렌딩으로 탄탄한 구조감에 과일향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진하고 복합적이며 긴 여운을 가진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 델리세 뒤 마르키스(Les Delices Du Marquis) 2016~2017년 대한항공 비즈니스 라운지 공식 서비스와인. 그르나슈, 쉬라, 까리냥을 블렌딩해 블랙베리와 검은 자두 향이 강하고 끝에 살짝 달콤함이 남는다. 미디엄 보디감으로 강한 부케를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아로마와 균형있는 구조감이 특징이다. 와인의 모든 향기를 아로마(aroma)라고 하며 좁은 의미로는 1차향(Primary aroma)이다. 1차향은 원래 포도에서 나는 향으로 소비뇽블랑의 풀냄새 같은 것이다. 2차향(Secondary aroma)은 양조 과정에서 생긴 향으로, 오크통에서 나오는 초콜릿향이 이에 해당한다. 3차향(Tertiary aroma)은 병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향입으로 낙엽 냄새가 이에 해당한다. 2차, 3차향을 부케(Bouquet)로 구분지어 말한다. 레 빈느 우블리에 랑그독(les vignes oubliees languedoc) 랑그독 지역의 유명 와인 메이커 올리비에 줄리앙(Olivier Jullien)과 그의 제자 장 바스티드 그라니에(Jean-Baptiste Granier)가 오래 버려진 포도밭을 다시 개간해 만든 와인으로 해발 고도가 높은 포도밭에서 자란 탓에 높은 퀄리티의 향과 안정적인 산미를 자랑한다. 롱독(longdog) 프랑스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한 두 명의 와인 마스터가 힘을 합쳐 만든 유기농 와인으로 그르나슈와 쉬라를 블렌딩해 묵직하면서도 스파이시한 맛을 자랑한다. 국내에서는 배우 장동건 씨가 즐겨 마신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리무의 크레망(Cremant) 리무(Limoux) 지역에서 나오는 스파클링 와인은 1531년 베네딕트 수도사들에 의해 처음 주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상파뉴 지방의 샴페인보다 100년 앞선 것으로 스파클링 와인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이 곳 스파클링 와인을 크레망(Cremant) 또는 뱅 무스(Vin mousseux)라고 따로 부른다. 이 곳 토착 품종이 모작(Mauzac)을 비롯해 샤르도네, 슈냉 블랑으로 양조한다. 기포가 상당히 오랜 기간 남고 미네랄감이 풍부한 게 특색이다. 따라서 샴페인보다 가성비가 높다 하겠다.
2020-12-12 18:06:16
어지간한 와인 애호가가 아니고서는 국내에서 조지아(Georgia) 와인을 아는 이는 드물다. 2008년 드라마 온에어에서 주인공 김하늘과 이범수가 조지아 와인 ‘오카디 레드 드라이 2005’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서 잠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이내 관심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최근 몇몇 와인 수입사에서 다시 조지아 와인을 국내로 들여오면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조지아는 와인을 가장 먼저 만든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그만큼 긴 역사와 깊고 순수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 8000년 전부터 이어온 와인 생산국 … 스탈린‧푸시킨이 사랑한 와인 조지아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 소련)에 속했던 공화국이다. 예전에는 그루지아로 불렸으며 소련이 무너지면서 독립했다. 한국과 큰 교역이 없어 비교적 낯선 국가이지만 이 나라에서 배출한 두 가지 명물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조지아의 명물 중 하나는 스탈린이다. 스탈린의 고향이 조지아로 스탈린은 젊은 시절 반대파에게 ‘그루지아(조지아)의 백정’이라 불렸다. 또 하나는 와인이다. 조지아는 고고학자들이 지목하는 와인의 최초 생산지 후보 중 하나다. 이 지역의 유적에서는 5000년 이전의 포도씨앗이 나온 바 있다. 심지어 꺾꽂이로 포도나무를 개량해 과학적으로 번식, 농사를 지었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나왔다. 학자들은 이 지역의 와인 양조역사가 8000년전부터 이어져 오는 것으로 추정한다. 일부에서는 와인이라는 말도 조지아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조지아어로 와인은 그비노(Ghvino)인데 이것이 이탈리아로 가서 비노(Vino)가 되고, 프랑스에서는 뱅(vin), 독일에서 바인(Wein), 영국에서는 와인(Wine)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스탈린이 고향 조지아의 와인을 사랑한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스탈린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도 조지아 와인의 열렬한 팬이었다. 러시아 귀족 출신인 그는 최고 인기인 부르고뉴 와인보다 조지아의 와인을 더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지아의 와인산업은 그동안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고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이는 조지아의 지리적‧역사적인 문제와 연관된다. 지리적으로는 중동과 러시아의 사이에 위치해 과거에는 로마‧페르시아‧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페르시아와 터키 간 분쟁으로 국토가 반으로 나눠지기도 했다. 1870년 러시아가 터키로부터 통치권을 뺏은 후 1991년 독립 전까지 조지아는 줄곧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에 들어 간 이후에는 상업적인 양조기술 발전이 막혔다. 지금도 조지아의 양조장은 과거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곳이 많으며 선진화된 양조기술의 도입에 수동적인 편이다. 하지만 현재 조지아의 와인산업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들의 포도원은 4만5000헥타르(4억5000만제곱미터)로 연간 1500억 리터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냉전시대에 조지아 와인은 거의 러시아로 수출됐으나, 소련 붕괴 후에는 여러 나라로 수출국을 넓히고 있다. 특히 2016년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중국으로 많은 양을 수출하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크베브리 양조법 … 묵직한 탄닌이 주는 매력 조지아의 전통 와인 양조법은 크베브리(Kwevri)라는 큰 항아리를 입구만 내 놓은 채 땅에 파묻은 후 포도를 으깨 넣어 발효시킨다. 한국의 과거 김장을 떠올리면 된다. 땅 속에 묻은 항아리는 온도의 편차가 줄고 적당량의 공기가 소통해 자연스러운 양조와 숙성을 돕는다. 양조부터 숙성까지 모든 과정이 이 크베브리 안에서 해결된다. 크베브리 용량은 20~5000L로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와이너리에서 사용하는 것은 2000~3000L가 보편적이다. 진흙을 한겹씩 덧붙여 가며 3~5cm 두께의 항아리가 만들어지면 1000도 이상 온도의 가마에 구워낸다. 이렇게 구워진 항아리를 땅 속에 묻은 후 수학한 포도를 껍질과 줄기째 으깨 넣고 입구를 진흙으로 밀봉한다. 6개월~1년이 되면 와인 액만 분리해 다른 크베브리로 옮겨 숙성한다. 남은 크베브리는 깨끗하게 세척해 다음해 양조에 사용된다. 조지아 와이너리 중에는 몇 세기 전에 만들어진 크베브리를 아직까지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껍질과 줄기에서 나온 탄닌이 강한 편으로 맛이 묵직하다. 화이트와인도 무거운 탄닌을 가지고 있으며 색은 호박빛으로 진하다. 그래서 조지아 전통 화이트와인을 오렌지와인 혹은 앰버와인(amber wine)이라고 부른다. 이런 양조 방식은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대규모 생산이 불가능해서 소규모 양조장을 남기고 대형 양조장은 조금씩 스테인리스 양조로 바뀌는 추세다. 드물게 5년 이상 숙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앰버 와인은 대부분 수확 연도에서 1~3년 안에 마시는 게 권장된다. 조지아 와인은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할 것 없이 고기 요리와도 잘 조화를 이뤄 최근에는 해외 미슐랭 레스토랑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열대성 해양‧산악‧반사막 등 다양한 기후에 와인 스타일도 제각각 … 재배되는 포도만 526종 조지아의 와인산업이 과거에 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지리와 역사에 있다면, 와인 역사가 오래된 이유는 자연환경에 있다. 서쪽에 따뜻한 흑해를 두고 북쪽으로 높은 산맥을 둔 조지아는 지나치게 덥지 않은 여름과 온화한 겨울로 포도가 자라기에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작은 국토에서 아열대성 해양기후, 산악기후, 온대, 반사막기후까지 다양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와인 맛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조지아의 국토의 3분의 1은 산악지대인데 가장 대표적인 코카서스산맥은 북쪽 러시아와의 경계에 있다. 해발고도가 4000~5000m에 이른다. 이 산맥이 러시아에서 오는 차가운 북풍을 막아준다. 이 지역은 차가운 대륙성 산악기후를 띠지만 흑해에 가까운 서쪽으로 갈수록 비가 많아지는 아열대성 해양기후가 나타난다. 그 사이 온대 기후도 볼 수 있다. 코카서스산맥의 남서쪽은 흑해까지 이어지는 평원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곳에는 크고 작은 강줄기만 2만5000여개에 이른다. 이 강은 미네랄이 풍부한 충적토양을 만든다. 조지아는 진흙의 땅이라고 불릴 만큼 진흙이 많고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 석회암질 토양이 분포한다. 때문에 조지아 와인은 미네랄감이 풍부한 순수한 맛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지아는 18개의 와인 생산지가 원산지 지정보호(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PDO)를 받고 있지만 가장 주요한 와인 생산지는 코카서스산맥 아래 분지 지역인 카헤티(Kakheti)다. 조지아의 와인 생산의 중심지로 70%가 여기서 나온다. 코카서스산맥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분지에 알라자니(Alazani)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다 보니 포도나무를 비롯해 과일나무들이 잘 자란다. 그 중에서도 카헤티주의 중심 도시인 시그나기(Sighnaghi)와 텔라비(Telavi)가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포도종류가 재배되고 있다. 집계된 포도 종류만 해도 526종이지만 정부는 이 중 38종만 공식 와인양조용으로 지정했다. 대표적으로는 청포도종인 므츠바네(Mtsvane), 캇세텔리(Rkatsiteli), 키시(Kisi)와 적포도종인 사페라비(Saperavi)가 유명하다. 므츠바네는 아주 옛날부터 재배된 전통 품종으로 양조 후 복숭아향과 풍부한 미네랄 풍미를 가진 와인이 된다. 캇세텔리도 1세기부터 재배된 것으로 기록된 전통 품종으로 줄기가 붉은색이며 산미가 인상적이다. 양조 후에는 청사과, 모과, 배 등의 복합적인 풍미를 자랑한다. 키시는 캇세텔리와 므츠바네의 교잡종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향이 매우 강렬하고 독특한데 양조 후에는 배, 금잔화, 담배, 호두 등의 묵직한 향을 가진다. 사페라비는 조지아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레드와인 품종이다. 두꺼운 껍질에 과육도 붉어 양조 후에는 매우 짙고 무거운 붉은 빛을 가진다. 사페라비는 조지아어로 ‘색의 장소(place of color)'라는 뜻이다. 감초, 구운고기, 담배, 초콜릿, 후추의 풍미를 가진다. 탄닌이 무겁지만 부드럽고 산미도 강해 식사와 함께 즐기기 아주 좋다. 치나달리 에스테이트 치나달리(Tsinandali Estate Tsinandali) 1888년 왕족이 소유한 프린스 알렉산더 차프차바제(Prince Alexander Chavchavadze) 와이너리에서 출시된 화이트 드라이 와인으로 조지아 최초의 병입 와인이자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랜드마크 와인 중 하나다. 두클라헤 르카치텔리(Dugladze Rkatsiteli)는 대표적인 조지아 화이트 와인으로 카헤티 동부 카르다나히(Kardenakhi) 지역에서 재배된 르카치텔리 품종으로 만들며 깊고 복잡한 맛을 지니고 있다. 르카치텔리 품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유래하며 러시아 및 구소련 독립국가연합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18%를 점한다. 주로 당도 높은 디저트와인이나 주정강화와인으로 만든다. 티빌비노 사페라비(Tbilvino Saperavi)는 카헤티 지역에서도 동부에 속하는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나파레울리(Napareuli), 크바렐리(Kvareli), 콘돌리(Kondoli) 등지에서 생산한 검은 빛에 핑크색 육질을 보이는 사페아비(saperavi) 포도 품종 100%로 만든다. 체리, 바닐라, 오디 향이 복합적으로 나며 여운이 길다. KTW 로얄 무크쟈니(KTW Royal Mukuzani) 조지아와 코카서스 지역의 가장 큰 와인회사인 KTW(Kakhetian Traditional Winemaking)에서 생산, 수출한다. 무크쟈니 지역에서 1888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카헤티 지역의 대표적인 핑크색 세미 스위트 레드 와인으로 사페라비 포도만을 쓴다. 여러 국제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조지아 토종 Chinuri, Tsolikauri, Tsitska 등의 품종으로 만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과 리즐링(Riesling)과 모스카토(Moscato) 품종으로 조지아에서 생산한 화이트와인도 갖추고 있다.
2020-11-23 12:29:50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아프리카에도 와인이 생산된다. 지구의 6대륙, 즉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중 와인이 생산되지 않는 대륙은 하나도 없다. 뜨거운 적도의 땅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생산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심지어 2015년 기준으로 세계 와인 생산량 8위를 기록한 와인 강국이다. 와인 역사도 오래돼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공 와인은 한 때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의 문호 제인 오스틴이 즐겨 마셨을 만큼 글로벌한 인기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후 질곡의 역사 속에서 남아공 와인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이 지워졌다. 21세기 들어 다시 비상을 시작한 남아공 와인은 처음에는 값싼 와인으로 자리를 잡다가 이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보물섬으로 인정을 받았다. 아직은 거칠다는 평가가 많지만 어느 지역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는 찬사도 나온다. 마치 오지탐험과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와인을 알아본다. 17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와인 양조 시작 … 인종 차별로 경제제제 후 2010년에 새롭게 떠올라 남아공 와인 역사는 17세기 네덜란드인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해상 무역을 위해 신대륙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때 앞장 선 곳 동인도회사는 아프리카 남쪽 지금의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유럽과 인도, 극동을 오가는 선박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식민지 기지를 만들었다. 당시 총감인 얀 반 리베크(Jan van Riebeeck)는 의사 출신으로, 지역의 기후가 지중해와 비슷하다며 선원들의 건강을 위해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양조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역 와인 양조 시작이다. 처음 밭이 만들어진 해는 1655년이고 첫 와인이 병입된 해는 1659년이다. 이렇게 시작된 남아공의 와인은 1688년 프랑스의 개신교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대규모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보르도 등 프랑스의 양조기술을 접목해 단숨에 이 지역의 와인 수준을 높이며 와인산업의 기틀을 잡았다. 18~19세기에 남아공 와인은 유럽에 대량 수출을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품질을 자랑했다. 특히 콘스탄시아(Constantia) 지역에서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랑(Muscat Blanc à Petits Grains) 품종으로 빚은 달콤한 디저트 와인 ‘뱅 드 콘스탄스’(Vin de Constance)는 유럽에서 큰 성공을 이뤘다. 1795년 영국이 이 지방을 네덜란드로부터 빼앗아 1814년 합병한 후 영국 최대의 와인공급지로 자리잡으며 남아공 와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당시 유럽 귀족 사이에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남아공 와인이 인기를 끌었는데, 프랑스의 루이 필립 왕은 이 와인을 원활하게 공수하기 위해 남아공에 구매 담당관을 파견했고,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후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갈 당시 뱅 드 콘스탄스를 매일 공급받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영국인 소설한 제인 오스틴은 그녀의 대표작 ‘이성과 감성’에서 뱅 드 콘스탄스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묘약”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큰 인기를 끌던 남아공 와인은 세계 1‧2차 대전과 독립 등 어수선한 시대상에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여전히 국제적인 팬들을 거느리며 탄탄한 입지를 자랑했다. 하지만 1970년 남아공의 잔혹한 인종차별 정책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남아공 와인의 위상도 떨어지게 됐다. UN은 남아공의 반인륜적인 정책을 적극 비난하며 경제제재를 선언했고,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인 남아공과의 교류를 단절했다. 글로벌 시장을 잃은 남아공 와이너리들은 저렴한 내수시장용 와인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하고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면서 경제제재도 풀렸다. 남아공 와이너리들은 새로운 양조기술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정비했다. 특히 스텔렌보쉬(Stellenbosh)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고 개성 있는 와인을 추구하는 양조자들이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대표적인 양조가가 ‘남반구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 양조자’로 평가받는 에반 사디(Eben sadie)다. 경제제재가 막 풀렸을 당시 남아공 와이너리는 마트에서 쌓아놓고 파는 값싼 와인들을 대량 생산했지만 지금은 어느 곳보다 젊고 개성 강하고 독특한 와인을 생산하는 주목할 만한 생산지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빠른 발전이 예상돼 많은 와인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랭 해류 영향으로 온후한 지중해 기후, 다양한 토질 … 피노타지, 슈냉블랑 대표적 품종 남아공의 와인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한 데는 환경적인 혜택이 컸다. 아프리카 대륙은 바다에 잠겨 있던 땅이 융기해 만들어진 곳으로 수십억 년에 걸쳐 융기‧침강‧퇴적을 반복해 어떤 땅보다 복잡한 지질과 토양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남아공은 적도와 떨어져 적당한 열기를 갖춘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여름은 따뜻한 편이며, 겨울 날씨는 선선하다. 특히 포도밭이 많이 있는 사우스웨스턴케이프(South Western Cape)는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으로 남극권에서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차가운 벵겔라 해류 때문에 기후가 같은 위도에 비해 기온이 낮다. 포도가 천천히 익으면서 맛과 향을 충분히 응축할 수 있기에 좋은 환경이다. 자연도 무척 아름다워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 지역의 와이너리는 해안가 산맥에 주로 자리잡고 있는데 골짜기마다 일조량‧바람‧지질 등 미세기후가 달라 같은 품종을 재배해도 맛과 향이 다르다. 양조자의 인종과 성향에 따라 양조법도 달라서 같은 지역에서도 와인의 특색이 제각각이다. 재배되는 포도품종도 다양해서 유럽에서 들여온 대부분의 인기 품종들이 다 있다. 하지만 기억할 만한 주요 품종으로는 레드와인 용 피노타지(pinotage)와 화이트와인 용 슈냉블랑(Chenin Blanc)을 들 수 있다. 피노타지는 피노누아(Pinot Noir)와 쌩쏘(Cinsault)를 교접해 개량한 남아공의 품종이다. 남아공 와인은 레드보다 화이트가 강세였으나 피노타지가 등장한 이후 레드와 화이트의 비율이 비등해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현재 남아공의 와인 비율은 대략 화이트 60%, 레드 40%이다. 피노타지의 첫맛은 쌩쏘의 특징처럼 강렬하지만 뒷맛은 피노누아처럼 부드럽게 섬세한 아로마가 지배한다. 맵고 향이 강한 아프리카 음식과도 잘 어울리며, 한식과도 멋진 마리아주를 만들어낸다. 프랑스 품종인 슈냉블랑은 남아공이 와인 생산국으로 입지를 굳히는 데 한몫했다. 달콤한 과일향이 맴도는 인기 화이트 품종이다. 프리미엄 슈냉블랑은 오크통에서 숙성시키기도 한다. 남아공은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슈냉블랑을 재배하고 있다. 케이프타운 내 와인랜드, 스텔렌보스크‧콘스탄시아‧로버트슨 등 … 남쪽 오버버그는 피노누아 산지로 유명 남아공 와인의 주요 산지는 남쪽 해안가 케이프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이 지역을 와인랜드라고 부른다. 스텔렌보스크(Stellenbosch), 콘스탄시아(Constantia), 로버트슨(Robertson) 등이 대표적이다 더 남쪽으로 오버버그(Overberg)도 유명하다. 스텔렌보스크는 남아공 최고의 와인 생산 지역으로 현재 남아공의 와인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1994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해제 이후 젊은 와인 생산자들이 몰려 새로운 양조기술을 적용한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기후는 상대적으로 덥고 건조하며, 남쪽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구릉지에 와이너리들이 모여 있으며 토양은 진흙이 포함된 화강암과 사암으로 함수력과 배수력이 모두 적당하다. 카베르네소비뇽, 시라 등 레드와인 품종이 유명하다. 카논콥(Kanonkop), 미어루스트(Meerlust), 루첸베르그(Rustenberg), 텔레마 앤 워릭(Thelema and Warwick) 등 남아공 유명 와인들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로버트슨은 브리드강 계곡에 위치한다. 석회암이 풍부해 샤르도네 재배에 적합해 스파클링 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시라, 카베르네소비뇽 등 레드와인 품종도 재배된다. 신선한 과실향과 단단한 탄닌감을 가진 와인이 특징이다. 콘스탄시아는 케이프 와인 역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해안가에 위치해 선선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신선한 화이트와인과 스위트와인을 생산한다. 이곳에 위치한 클레인 콘스탄시아(Klein Constantia)에서 만든 스위트와인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에 전파돼 남아공 와인을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귀부균(貴腐菌, 보트리티스 곰팡이)이 아닌 늦수확 방식으로 스위트 와인을 양조한다. 주요 품종은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랑이다. ‘그룻 앤드 클레인 콘스탄샤’(Groot and Klein Constantia)와 ‘부이텐버와치팅’(Buitenverwachting) 등 역사적인 와이너리들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어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다. 좀 더 남쪽으로 떨어진 오버버그는 서쪽으로는 엘긴밸리(Elgin Valley)와 보트리버(Bot River), 동쪽으로는 브리드리버(Breede River), 남쪽으로는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와인 생산지보다 적도에서 떨어져 보다 서늘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섬세한 피노누아 품종으로 세련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 엘긴밸리는 고원으로 사과, 배, 오차드(orchard)와 곡물을 재배한다. 남아공은 수확된 사과의 40%를 수출하는데 전체 생산량의 60%를 엘긴 지역이 담당한다. 서쪽 해안에 접한 워커 베이(Walker Bay)는 풍광과 먹거리가 좋은 고급 관광지에 속한다. 빠르게 성장 중인 남아공 와인은 지켜보며 그 안에 보석을 찾는 즐거움이 각별한 곳이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까지는 남아공 와인이 국제 시장에 넉넉하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남아공 정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와인 및 신선 농산품의 수출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얼른 이 사태가 끝나 남아공 와인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2020-11-07 16:29:30
한국에서 남미 와인으로 대표되는 곳은 자유무역협정(FTA)을 가장 먼저 맺어 저렴하게 와인을 첫 수입했던 칠레다. 하지만 남미에서 가장 와인을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곳은 그 옆나라인 아르헨티나다. 이곳은 남미 대륙 최대 와인 생산국이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에 이은 세계 5위의 와인 생산국이다. 하지만 글로벌 와인 시장에서 아르헨티나 와인은 칠레 와인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다.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이 50~60병(세계 6~7위)에 이를 만큼 내수시장이 발달해 자국에서 소진되는 양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경기침체를 겪으며 품질 향상에 소홀했던 이유가 더 크다. 비교적 경기와 정치가 안정된 1990년대 이후 품질 개선에 나서면서 최근 아르헨티나 와인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해외 자본과 양조가들의 유입은 아르헨티나 와인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시작돼 경제 성장과 함께 호황 … 침체기 겪고 1990년대 혁신 시도 아르헨티나 와인의 역사는 1557년부터 시작된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정복자과 수도사들이 이 해 북서부 산티아고델에스테로(Santiago del Estero)에 최초의 와인을 위한 포도원을 만들었다. 이 때 심겨진 포도는 스페인 품종인 비니페라(Vinifera)와 끄리오야 치카(Crriolla Chica)다. 1820년 스페인의 통치가 끝나고 아르헨티나가 독립하면서 유럽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왔다. 이들은 저마다의 포도 품종을 심어 와인을 만들어 내면서 아르헨티나의 와인산업을 일궜다. 아르헨티나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건조한 기후로 와인용 포도를 키우기에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풍부한 자원으로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덕에 와인산업도 빠르게 발전했다. 1853년에는 프랑스인이 농업학교를 설립해 포도재배 기술을 전파했으며, 1880년 수로가 개발돼 사막지역에도 포도원을 조성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1880년대 초 전설적인 양조가 티불시오 베네가스(Tiburcio Benegas) 등이 멘도사(Mendoza) 지역에 와이너리들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1885년 멘도사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사이에 철길이 놓아지면서 아르헨티나의 와인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1970~1980년대 거듭되는 경제침체와 장기 독재로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기반이 몰락하자 와인산업 역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와인의 생산량은 크게 줄지 않았으나 품질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둔 내수용 벌크 와인 위주로 생산이 이뤄졌다. 아르헨티나 와인이 다시 국제무대에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국내 경기가 안정된 이후다. 이웃 칠레의 발전을 모델 삼아 국제적인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품질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가 지원을 받아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양조가를 초빙하고,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를 도입한 것이 그 예다. 해외 자본에 의한 투자도 늘어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는 대형 와이너리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최초의 외국인 투자사인 ‘노통’(NORTON), 이탈리아 자본인 ‘크로타’(CROTTA), 로버트 몬다비사의 와인 메이커인 폴 홉스(Paul Hobbs)를 영입한 ‘파스쿠알 토소’(PASCUAL TOSO), 칠레의 콘차이토로가 투자한 ‘트리벤토’(TRIVENTO) 등이 있다. 이런 노력이 인정을 받아 최근 아르헨티나 와인은 최근 국제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의 70%는 내국민이 소화하고 30%만 수출하고 있지만, 수출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건조한 고산지대 기후로 폴리페놀 함량 높아 … 최근에는 말벡 외 토론테스 화이트와인도 인기 아르헨티나의 와인산업이 발달한 데는 포도를 키우기 좋은 천혜의 환경이 한 몫 한다. 바다에서 먼 고산지대(안데스산맥)에 위치해 세계에서 몇 안되는 대륙성 기후의 포도 재배지 중 하나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위도 상 남위 21.1도와 51.9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겨울에 잠시 비를 내리는 것 외에는 대체로 맑아 일년 내내 일조량이 풍부하다. 강수량은 연 250mm 내외로 건조해 당도 높은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여기에 안데스산맥 위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강은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농수를 제공한다. 땅이 척박한 점도 포도수확량 조절에 용이하다. 와이너리 대부분이 해발 300~3000m 사이 고지대 평원에 위치해 다양한 떼루아와 미세기후로 독특한 재배조건을 창출한다. 와인 산지가 고산지대에 있을수록 자외선을 많이 받아 폴리페놀의 함량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아르헨티나 레드와인 역시 폴리페놀 함량이 높은 편이다. 폴리페놀은 동맥경화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병충해가 적어 농약이 사용되지 않는 유기농 와인의 생산도 많은 편이다. 아르헨티나 와인의 대표 품종은 말벡(Malbec)이다. 전세계 말벡 와인 4개 중 3개가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될 만큼 절대 수를 차지한다. 단단한 껍질과 풍부한 탄닌이 특징으로 색이 짙고, 거칠고 강한 보디감에 강건한 구조감을 지녀 아르헨티나의 특산품인 그릴 소고기와 최고의 마리아주를 자랑한다. 말벡은 원래 남프랑스(보르도)의 토착 품종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Domingo Faustino Sarmiento) 전 대통령에 의해 1853년 처음으로 재배됐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말벡이 처음 심어진 4월 17일을 ‘말벡 월드 데이(Malbec World Day)’로 지정하고 기념할 정도로 국민적인 애정이 각별하다. 세계 4위의 와인기업이자 남미 제1의 와인기업 트라피체(Trapiche)의 트라피체 말벡은 말벡 품종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꼽힌다. 1883년 설립된 트라피체의 말벡은 프랑스 와인 못잖은 인기를 누려 국내서도 2만원대의 대중적인 가격으로 잘 팔려나가고 있다. ‘카테나(Catena) 말벡’도 말벡의 풍미가 잘 드러난 아르헨티나 와인이다. 2006년 5월 영국 와인잡지 디캔터에 의해 ‘세계 50대 레드 와인’에 선정,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국 와인 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는 100점 만점에 91점의 높은 평점을 줬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도 91점을 매겼다. ‘파스쿠알 토소 말벡’도 2009년 세계와인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수상해 주목받았다. 로버트 몬다비에서 영입된 폴 홉스가 몬다비사와 같은 방법으로 양조해 세련미를 더했다. 이밖에 시라(Syrah), 템프라니오(Tempranillo) 등 강건한 구조의 레드 와인 품종이 전통적으로 재배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이트와인 품종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를 재배하는 와인너리가 늘고 있다. 토론테스(Torrontes), 샤르도네(Chardonnay), 소비뇽블랑(Sauvignon Blanc) 등이 대표적인데, 특히 토착 품종인 토론테스의 인기가 높다. 짙은 꽃향기와 고급스러운 산미가 특징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크게 레드 55%, 화이트 20%, 로제 2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웃 칠레와 달리 단일 품종의 와인보다는 프랑스 보르도처럼 블렌딩한 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레드와인은 말벡을, 화이트와인은 토론테스나 샤르도네를 기본으로 블렌딩한 게 많다. 멘도사‧산후안‧살타‧라리오하‧리오네그로 등 5개 산지가 유명 아르헨티나는 크게 서쪽의 안데스산맥(건조한 분지와 포도로 가득한 구릉, 빙하산맥과 디스트릭트 호수), 동쪽의 비옥한 저지대(아열대 우림), 중앙 팜파스(다습하고 건조한 기후가 섞인 넓은 평원), 파타고니아(부에노스아이레스 이남의 목가적인 대초원과 빙하지역이 공존) 등 4개 구역으로 나뉜다. 또는 해발을 기준으로 6000~1만피트(1828~3048m)에 이르는 살타(SALTA), 1000~6000피트(348~1828m)의 쿠요(CUYO), 이보다 해발이 낮은 남미대륙 남동부의 삼각형 모양 평원 고원지대인 파타고니아 아틀란틱(Patagonia Atlantica)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와이너리의 90%는 남위 22~45도 사이인 아르헨티나 중간지역인 쿠요(Cuyo)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안데스의 멘도사(Mendoza)와 산 후안(San Juan), 이에 인접한 산 루이스(San Louis)가 쿠요에 속한다. 아르헨티나의 주요 와인 산지는 멘도사(Mendosa), 산 후안(San Juan), 살타(Salta), 라 리오하(La Rioja), 리오 네그로(Rio Negro) 등 5개 지역인데 이 중 전자의 3곳이 쿠요에 속한다. 멘도사는 칠레와 국경을 이루는 안데스산맥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로 지금도 아르헨티나 와인의 70%가 이곳에서 생산되다. 대륙성 기후로 여름에는 매우 따뜻하고 건조하며 고도 때문에 일교차가 크고, 겨울에는 매우 추워 강건한 구조감을 가진 와인이 만들어진다. 말벡 품종이 주로 재배되지만 화이트와 로제와인도 일부 생산된다. 산 후안은 멘도사의 바로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사토와 자갈이 많은 토양으로 인해 배수가 좋은 편이다. 재래품종인 끄리오야와 세레사(Cereza)의 생산량이 많다. 이밖에 아페리티프 와인(식전 와인)으로서 버머스(Vermouth), 뮈스카델(muscadel) , 쉐리(sherry) 등 달면서도 약간 씁쓸한 주정강화 와인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스페인 유래 품종들이 재배된다. 살타는 쿠요의 남쪽 지역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먼저 양조용 포도나무가 심어진 곳이다. 17세기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와이너리가 조성됐고 19세기 유럽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수많은 와이너리를 세웠다. 밤낮의 기온차가 커서 포도가 적당한 산도를 유지할 수 있다. 주요 품종은 토론테스다. 라 리오하는 스페인의 유명 와인 산지와 이름이 같은데, 스페인 이민자들이 미사용으로 포도를 심기 시작한 게 이 지역 와인산업의 시작이 됐다. 스페인에서 들여온 뮈스카 데 알렉산드리아(muscat de alexandria)와 토론테스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 주로 생산된다. 리오 네그로는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도 외에도 사과 등 과일이 풍부하게 생산된다. 다른 와인 산지에 비해 기후가 서늘해서 피노누아, 소비뇽블랑, 말벡 등이 주로 생산된다.
2020-10-18 15:10:47
미국은 가장 중요한 와인 소비국이자 생산국이다. 신세계 와인 생산국 중 가장 많은 량을 생산하면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끊임없이 첨단 기술을 도입하며 와인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 전 지역에서 와인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주로 ‘퍼시픽 노스웨스트’(Pacific Northwest)로 불리는 태평양 해안을 따라 와인 산지가 모여 있다. 가장 남쪽으로는 캘리포니아주, 그 위로 오리건주, 가장 북쪽의 워싱턴주 등이다. 이 순서대로 미국이 3대 와인 생산지가 결정됐다. 해안가 산맥이 발달한 이 지역은 따뜻한 기후, 넉넉한 일조량, 해풍으로 조절되는 기온 등 수준높 은 와인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중 워싱턴주는 균일한 품질의 좋은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아 미국 내에서 인기가 높다. 워싱턴 와인은 주로 10~50달러에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생산되는 와인의 수준 차가 크고 상위 와인에 가격이 높은 캘리포니아나 오리건 와인에 비해 매일 마시기에 부담 없는 가격과 크게 실패하기 어려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므로 와인 초보가 도전해 보기에 좋다. 상업화 50년 만에 미국 2위 생산지역으로 성장 워싱턴주의 와인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이 곳에서 처음 와인용 포도를 재배한 이들은 1860~1870년대에 정착한 이탈리아와 독일계 이민자였다. 하지만 자연환경과 금주법 등 정치적인 문제로 당시 와인 생산은 가내 수공업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60년대 소규모로 와인을 양조하던 로이드 우드번(Lloyd Woodburne) 박사는 자신의 동료들과 와인양조업자 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와인을 생산하며 상업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1967년에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최초로 까베르네 소비뇽,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누아, 요하니스베르크 리슬링 등의 품종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1974년 워싱턴와인협회(Washington Wine Institute, WWI)가 발족하면서 워싱턴 와이너리에 대한 세부 규정이 생기고 품질을 관리했으며, 1980년대 메를로 품종의 인기 붐을 타고 메를로 와인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990년대에 북서부 지역인 오리곤·워싱턴·아이다호 주의 와인 수출을 지원하는 북서부와인연합(Northwest Wine Coalition)이 설립되고 해외 진출도 본격화되면서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드번 박사가 만든 양조연합은 이후 1984년에 콜럼비아와이너리로 재탄생, 지금의 워싱턴 와인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이 곳 와이너리들은 빠르게 발전해 1960년대 15군데에 불과하던 것이 1995년에는 88개소로 늘어났고 2000년에는 145개소에 이르렀다. 현재 워싱턴주 8곳에 산재한 와이너리는 850여개로 모두 합치면 대략 161㎢에 달한다. 오리건을 제치고 캘리포니아 다음 가는 생산량을 자랑한다. 비만 빼면 천혜의 환경 … 유럽과 달리 과학으로 자연환경 조절 워싱턴의 와인 역사를 알려면 이 지역 기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워싱턴의 가장 큰 도시인 시애틀은 일명 ‘비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습하고 강수량이 많다. 일년 내내 비가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워싱턴주 역시 습하고 비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시애틀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올림픽산맥, 서쪽에는 캐스케이드 산맥이 있다. 이들 산맥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습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비구름은 올림픽산맥에 막혀 한바탕 비를 뿌리고, 시애틀에서 다시 비를 내린 후 캐스케이드에서 마지막 습기를 털어낸 후 건조해져서 산맥을 넘어간다. 이 지역의 연간 강수량은 순서대로 340cm, 96cm, 213cm다. 이른바 ‘레인 섀도 이펙트(Rain Shadow Effect)’다. 이렇게 두 산맥과 도시 하나를 지나는 동안 습기를 탈탈 털어낸다. 캐스케이드 산맥 서쪽은 연 강수량이 30cm 이하일 정도로 비가 적은 사막기후를 형성하고 있다. 와인너리들은 이곳에 모여있다. 포도가 양조를 위한 충분한 당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조한 날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부 워싱턴주는 연중 약 300일 동안 구름이 끼지 않는 맑은 날씨다. 평균 17시간에 이르는 일조량까지 갖춰 적절한 당도를 유지하는 데 최적이다. 습도가 높으면 포도의 당도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각종 병에 쉽게 걸릴 수 있다. 이밖에도 보르도와 같은 위도로 따듯하지만 지나치게 덥지 않은 기온, 평균 10도 이상 차이나는 일교차는 적당한 산도를 가진 섬세한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는 데 안성맞춤의 환경을 조성한다. 문제는 지나치게 가물기 때문에 포도나무가 자라는 데 필요한 수분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 와인은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에 비해 상업적 발달이 늦었다. 이를 본격적으로 해결한 게 1970년대 들어서 첨단 관개(Irrigation) 농법이 발달하면서부터다. 동부 워싱턴주를 관통하는 콜럼비아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양을 물을 공급하면서 이 지역 와이너리가 빠르게 발전했다. 현재 이 지역의 포도밭에는 포도나무에 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드립 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필요한 만큼의 물만 주어지고 있다. 물을 주는 시간과 급수량을 과학적으로 계산해 포도나무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면서 포도의 숙성도를 높이는 게 특징이다. 밭이 가지는 고유의 환경인 ‘떼루아’를 중시하는 구세계 와인생산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이런 관개를 법률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주는 과감하게 과학으로 자연을 통제해 와인의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결단했다. 그 결과 포도의 당도가 높아져, 양조한 와인의 알코올 함량은 높은 편이다. 당분이 양조를 거쳐 알코올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레드와인의 알코올 함량은 14∼14.5도, 화이트와인은 13도로 오리건주에 비해 1~3도 높은 편이다. 과일향도 풍성하며 캘리포니아 와인처럼 보디감이 단단하면서도 오리건 와인처럼 섬세한 산도를 자랑한다. 유명 품종 위주, 렘베르거 등 실험적 품종도 재배 … 다양한 토양, 지역마다 개성 비교적 서늘해 섬세한 피노누아, 소비뇽블랑 등을 재배하는 남쪽 오리건주와 달리 따스한 워싱턴은 남쪽 캘리포니아처럼 다양한 포도 종류를 재배한다. 주요 생산 품종은 메를로, 까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리슬링 등 국내외에서 인기가 많은 유명 품종이다. 시라, 소비뇽블랑, 슈냉 블랑, 세미용 등 최근 인기가 높아지는 품종을 재배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아주 실험적이게도 매들린 앤저빈(Madeleine angevine, 주로 영국에서 재배되는 화이트 와인 품종)이나 렘베르거(Lemberger,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재배되는 스파이시한 레드와인 품종) 등 낯선 품종을 기르는 와이너리들도 있다. 이 중 세미용은 샤르도네와 블렌딩하거나 프랑스 소테른 방식의 귀부와인으로 생산돼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매들린 앤저비와 렘베르거 역시 마니아들에게 인기다. 와이너리가 모인 캐스케이드 산맥 서쪽은 1만5000여 년 전 빙하기 시대의 영향을 받은 협곡 지형이다. 모래와 바위로 이뤄진 충적토와 빙하기 때 유입된 해저토양(Seabed Soil) 혹은 화산토(Volcanic Soil) 등 다양한 토양이 모여 있다. 때문에 생산지마다 개성이 강한 와인을 맛 볼 수 있다. 워싱턴주의 주요 와인생산지는 크게 5곳이다. 콜럼비아계곡(Columbia Valley), 야키마계곡(Yakima Valley), 레드마운틴(Red Mountain), 왈라왈라(Walla Walla), 푸제 해협(Puget Sound) 인근 분지 등이다. 이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콜럼비아밸리는 북으로는 캐나다 오카나간밸리(Okanagan Valley)에서부터 남으로 오리건주, 동쪽으로는 스네이크강을 따라 아이다호주 경계선까지 아우른다. 주 전체 생산량의 60% 정도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야키마밸리는 일반적으로 워싱턴 와인 컨트리의 심장부로 평가받을 만큼 뛰어난 와인이 생산된다. 호그 셀러스(Hogue Cellars)와 코베이 런(Covey run) 같은 유명 와이너리들이 이곳에 밀집해 있다. 다른 지역의 와이너리들도 이곳의 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양조할 만큼 양질의 포도가 재배된다. 레드 마운틴은 레드 품종 재배에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있다. 2001년 단독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로 명명됐으며 헤지스 패밀리 에스테이트(Hedges Family Estate)와 클립선(Klipsun)을 포함한 워싱턴주의 몇몇 일류 와이너리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왈라왈라는 남쪽에 자리하며 주를 넘어 오리건주까지 이어져 있다.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특징을 반반씩 가지고 있는 곳으로, 규모는 매우 작지만 높은 평가를 받는 섬세한 와인들이 많이 생산된다. 까베르네 소비뇽, 피노누아, 메를로, 샤르도네, 소비뇽블랑 등 다양한 품종이 생산된다. 가장 작은 AVA인 푸제 사운드는 바다에 접하고 있는 해안가와 몇몇 섬으로 이뤄져 있다. 습한 기후로 와이너리도 소수에 불과하지만 실험적인 양조가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어 향후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다. 최근 서부 해안, 퍼시픽 노스웨스트에서 일어난 산불로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의 와인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9월 갓 수확한 포도로 양조에 들어가던 차에 산불이 나서 다행히 포도 수확에는 큰 피해가 없으나 산불로 인한 재와 이상 기온 등이 양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워싱턴주와인협회 등 미국 북서해안 전역의 와인 관련 단체들은 미국 의회에 구제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는 한편 재와 기온이 양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실험 중이다. 최종 테스트는 와인이 숙성된 후 18~24개월 후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2020-10-03 14:55:44
신세계 와인 시장 중 절대 강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이다. 엄청난 자본으로 빠른 양적 성장을 거둔 미국와인은 1976년 이른바 ‘파리의 심판’ 사건 이후 뛰어난 질마저 인정받고 있다. 미국와인은 나파밸리를 축으로 캘리포니아에서 90%가 생산되고 있지만, 최근 오리건주‧워싱턴주‧뉴욕주 등 다른 지역의 와이너리에서 저마다의 색깔이 강한 와인들을 생산해 내면서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중 오리건주는 카베르네소비뇽과 메를로를 주 종목으로 강건하고 묵직한 풀보디의 캘리포니아 와인과 달리 피노누아를 내세워 섬세하고 나긋한 레드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어 피노누아 마니아들이 주목하고 있다. 미국 서부 해안가 와인산지 ‘퍼시픽 노스웨스트’ 일부 … 서늘하고 습한 기후로 와인산업 늦어져 오리건주는 미국와인 최대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주와 두 번째 생산지인 워싱턴주 사이에 위치한다. 오리건과 워싱턴의 와인 산지를 이으면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 1900km가 북에서 남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이들을 묶어 ‘퍼시픽 노스웨스트(Pacific Northwest)’라고 일컫는다. 이 일대의 와인 생산량은 미국 전체 와인 생산량의 5%에 불과하지만 2010년 이후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등에서 90점 이상을 받은 와인의 약 30%가 이곳에서 생산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생산량 95% 이상이 내수로 소비돼 해외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다른 나라 와인 마니아의 애를 타게 만드는 요소다. 대부분의 유명한 와인 산지가 그렇지만 이 지역의 와인 품질은 기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위도가 높고 해안가 산맥을 따라 포도농장이 조성된 덕분에 일조량은 풍부하면서도 밤이면 산맥을 넘어오는 해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지나치게 올라가지 않아 도리어 섬세한 향과 산도를 머금은 포도를 만든다. 이 중에서 오리건은 가장 서늘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늘한 기후가 무조건 포도 재배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오리건주는 전체적으로 날씨가 습한데다가 봄과 가을에는 늦게까지 서리가 내린다. 이는 포도를 키우는데 매우 불리한 기후 조건이다. 지형상 와인농장이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물류 면에서 불리하다. 이런 이유로 오리건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와인산업이 늦게 발달했다. 하지만 봄 가을의 차가운 기후에도 불구하고 여름의 건조함은 포도가 향을 강건하게 머금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오리건에서 와인을 만드는 것은 도박과 같은 일면을 가진다. 매우 까다롭고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성공하면 매우 우아하고 뛰어난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서늘한 기후에 맞는 리슬링과 피노누아로 도전해 성공 … 브르고뉴 피노누아 생산량의 3분의 1 생산 오리건주에서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와인산업이 시작된 것은 1961년과 1966년에 캘리포니아대 농대 대학원생이었던 리차드 써머(Richard Sommer)와 데이비드 레트(David Lett)가 포도농장을 차리면서부터다. 이들은 오리건에 미국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까베르네소비뇽과 메를로 대신 섬세하고 추위에 더 유리한 품종을 심기로 했다. 써머는 리슬링을, 레트는 피노누아를 중점적으로 키웠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서늘하고 여름에 잠시 건조한 날씨는 피노누아와 리슬링의 섬세한 향을 유감없이 살려 질 좋은 와인을 만들어냈다. 이들 품종은 미국 다른 지역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상품성도 충분했다. 특히 피노누아는 포도송이가 상하기 쉽고 재배가 까다로워 당시로서는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 외에는 재배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리건주의 기후로 피노누아를 훌륭하게 키워낸 것이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이내 미국 각지에서 양조가들이 몰려들었다. 현재 오리건에는 약 300여 개의 와이너리가 들어서 있다. 대부분 피노누아를 재배하고 있다. 오리건주의 피노누아 생산량은 부르고뉴의 3분의 1 수준으로, 명실공히 부르고뉴 다음의 피노누아 산지라고 할 수 있다. 품질도 높아서 1979년 파리에서 개최된 피노누아 블라인드와인 테이스팅 대회에서 오리건주의 피노누아 와인이 2위를 차지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자랑하고 있다. 드루엥(Drouhin) 등 부르고뉴의 도멘 가문에서도 일부가 오리건에 진출해 피노누아를 기를 정도다. 오리건 피노누아 와인은 드라이하면서도 경쾌한 산미가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11~15도로 편차가 크고, 부르고뉴보다는 알코올 함량이 높은 편이다. 싱싱한 과일향과 단단한 구조감을 가지고 있지만 부르고뉴에 비해 향의 견고함은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다. 오리건의 품종별 생산 비율은 피노누아 58%, 피노그리 14%, 샤르도네 6%, 시라 4% 등이 있다. 리슬링 생산량도 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오리건주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시라, 카베르네소비뇽, 메를로를 재배하는 와이너리도 증가 추세다. 오리건의 라벨 관리는 미국 와인 생산지 중 가장 엄격하다. 주법에 따라 오리건 와인은 한 품종을 90% 이상 사용하면 라벨에 단일품종 와인으로 표기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까베르네소비뇽은 75% 이상이면 된다. 캘리포니아 등 다른 생산지는 75%만 사용하면 단일품종 와인으로 라벨에 표기할 수 있다. 오리건이라는 주명을 붙이려면 100% 주내에서 생산된 포도만 사용해야 하고, 빈티지를 표기하려면 95%이상 해당 연도의 포도를 사용해야 한다. 윌라메트밸리 등 16개 AVA … 주요 생산자는 도멘 드루엥‧아이리 빈야드‧도멘 세렌 등 오리건은 16개의 ‘미국 공식 인증 전문포도재배지역’(American Viticultural Area, AVA)으로 나눠져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AVA는 윌라메트 밸리(Willamette Valley)다. 오리건주 와인의 3분의 2 이상이 이곳에서 만들어지며, 가장 품질 좋은 와인들이 모여있다. 포틀랜드에서 남쪽으로 길게 펼쳐진 윌라메트강의 이름을 딴 지역으로, 동쪽에는 남북으로 캐스케이드 (Cascade)산맥이 등성이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 작은 코스트(Coast)산맥이 위치해 태평양과 내륙을 가른다. 와이너리들은 서리 피해를 막기 위해 계곡과 평지 사이의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잡거나 아예 고원에 자리를 잡고 있다. 풍적(風積)황토와 화산토 토질이 섞여 있는데 풍적황토에서 자란 피노누아는 탄닌감이 두드러지고 산미가 높으며 빨리 열린다. 화산토에서 재배된 피노누아는 단단하고 복잡한 구조감을 가지고 있으며 몇 년 숙성 후 마시는 게 좋다. 윌라메트밸리 정남향으로는 다른 두 개의 중요한 AVA인 ‘움쿠아밸리’(Umpqua Valley)와 ‘로그밸리’(Rogue Valley)가 있다. 윌라메트밸리보다 기후가 조금 더 따뜻하고 토양층이 다양해 와이너리마다 저마다의 개성이 다른 미세기후를 가진다. 따스한 기후 탓에 피노누아 외에도 카베르네소비뇽과 메를로 등이 함께 재배된다. 2005년 VAV로 인정받아 가장 최근 생산지가 된 ‘서던오리건’(Southern Oregon)은 해양성 퇴적물로 구성된 토질로 독특한 향을 자랑한다. 주로 피노누아가 재배되지만 시라‧까베르네소비뇽‧메를로의 재배도 늘어나는 중이다. 북동쪽으로 올라간 컬럼비아(Columbia)밸리와 왈라왈라(Walla Walla)밸리는 오리건에서 가장 작은 AVA로 워싱턴주와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 컬럼비아밸리는 컬럼비아강 동부와 서부의 기후가 충돌해 습하면서도 건조하고,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변덕스러운 기후가 특징이다. 샤르도네‧피노그리 등 다양한 화이트와인 품종 포도들이 이곳에서 재배된다. 왈라왈라는 고도가 낮고 구릉지가 많은 워싱턴주의 기후를 닮아 오리건주의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고 건조해서 까베르네소비뇽‧메를로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 오리건주의 대표적인 와인생산자로는 부르고뉴 3대 네고시앙 가문으로 오리건주에 건너온 ‘도멘 드루앵’(Domaine Drouhin), 피노누아를 처음 생산한 데이비드 레트가 세운 ‘아이리 빈야드’(Eyrie Vineyards), 2004년 ‘로마네 꽁띠’를 생산하는 부르고뉴 DRC의 11개 특급밭 와인과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겨뤄 상위권을 석권하며 화제를 일으킨 ‘도멘 세렌’(Domaine Sersne) 등이 있다.
2020-08-31 18:56:10
요즘 건강음주를 한다며 위스키(whisky) 소비량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 대체로 유흥업소에서 팔리는 저급 국산 양주의 소비가 룸사롱 등의 퇴조로 감소한 것일 뿐 17년산 이상 최고급 위스키는 여전히 한국에 세계 상위권의 소비량을 자랑한다. 2012년 정도만 하더라도 한국인들의 고급술에 대한 ‘지르기’는 대단해서 서구 양주업체로부터 특별손님으로 대접받았지만 이후엔 중국의 고급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그 자리를 내줬다는 게 주류 업계의 얘기다. 건강음주 트렌드에 국내서는 일반적인 39~40도 도수의 위스키 대신 35~36.5도의 ‘저도’ 국산 위스키를 내놓고 소비자를 기망하고 있다. 심지어 30도 짜리도 있다. ‘골든블루’나 ‘주피터’ 같은 브랜드가 그렇다. 알코올 함량을 5도가량 낮췄으니 원가가 그만큼 절약됐을 텐데 가격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높기도 하다. 해당 업체는 맛이 순하고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술은 원래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누구나 안다. 소량의 음주가 건강에 좋다는 말도 기실 건전음주가 불가능한 음주 생리의 특성과 조금의 알코올도 몸에 해롭다는 최신 연구에 비춰보면 다 거짓이다. 필자는 국산 양주는 ‘막양주’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찾아서 마시진 않는다. 국산 양주는 위스키 원액을 들여와 적당히 블렌딩해서 원가의 5배 이상의 가격을 붙인다. 광고비를 들여 널리 브랜드가 알려진 국산 양주는 명주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원액이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없고, 연산 표시가 불분명해 도대체 몇 년산 짜리를 집어넣는지도 확인할 길 없다. 위스키는 통상 최소 3년 이상 저장해 숙성시키며 알코올 도수는 30~40%의 술로 정의가 규정돼 불법은 아니지만 저도 양주와 무연산 표시 양주는 정통성에서 벗어나 있다. 게다가 유흥업소에서는 이마저도 돈을 아끼려고 기타제제주(其他再製酒, concoction, mixed liquor, 국산 럼주 등)나 알코올 주정을 타서 가짜 국산양주를 팔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필자는 어느 해 ‘지식인은 싱글몰트를 마신다’는 광고 카피에 반해 애호가가 됐다. 1990년대, 2000년대만 하더라도 1차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구워먹고, 2차에서 맥주로 호프집에서 입가심을 한 뒤 성에 차지 않으면 거금을 들여 룸사롱에서 가짜일 확률이 높은 ‘윈저’, ‘임페리얼’ 등 국산 양주를 마시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다 선배 애주가의 안내로 1차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셔보니 그 깊은 맛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고뇌에 찬 모습을 연출할 때 레드와인 또는 위스키를 들고 홈바나 주방에서 들이킨다. 왠지 위스키를 마시면 와인에 비해 더 고뇌가 깊고 부유스럽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위스키는 맥주를 증류해 참나무통(오크통) 속에 저장해 놓은 것이다. 12세기 이후 전해져온 스코틀랜드 지방의 토속주로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급진전으로 도시 인구가 불어나 알코올 수요가 늘고 양조기술도 발전하면서 서구사회에 대중화됐다. 오랜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술통에서 목재 특유의 탄닌 등 다양한 성분이 술 속으로 들어가 위스키의 향과 맛을 이루게 된다. 위스키는 크게 7가지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첫 맥아제조(Malting) 단계는 보리를 물에 불려 싹을 틔워 엿기름을 만드는 것이다. 말린 맥아는 물과 혼합해 당분을 우려내는 당화(Mashing), 효모를 넣어 발효(Fermentaion) 과정을 거치면 7~8도 수준의 알코올 성분을 함유한 걸쭉한 술 원료가 된다. 이를 증류기에 넣고 2~3회 증류(Distillation)하면 비로소 법적인 정식 술이 된다. 맥아를 바탕으로 호프를 넣지 않은 맥주로 발효시킨 다음 증류해 알코올 도수를 40도 안팎으로 올린다. 맥아를 건조할 때 과거에는 목재를 썼다. 비효율적이서 더 화력이 높은 피트(Peat, 토탄, 土炭, 이탄, 泥炭)을 썼다. 토탄은 스코틀랜드 광야에 자생하는 헤더(heather, 석남과의 작고 낮은 종 모양의 꽃. 밝은 청색기가 도는 연한 보라색의 꽃)라는 화본식물이 토양에 축적돼 석탄처럼 굳어진 것이다. 피트의 훈제향이 스코틀랜드 위스키(스카치 위스키)의 독특한 개성이 됐다. 여기까지가 4단계다. 이어 진정한 위스키로 탄생시키기 위한 숙성(Maturation)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거 영국(잉글랜드) 정부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산업을 세금 부과로 규제하자 스코틀랜드 양조업체는 밀주로 제조한 위스키를 그때그때 팔기 어렵게 되자 스페인에서 수입한 오크통에 저장하게 됐다. 이게 오크통 숙성의 시작이 됐다. 덕분에 무색무취하던 증류원주는 연갈 또는 황갈색의 향미 강한 위스키로 업그레이드됐다. 다년간 숙성된 여러 오크통의 원액은 다시 적정한 비율로 섞어 최상의 맛을 찾는다. 이를 조화 또는 결혼(Marrying)이라고 한다. 다음엔 이를 커다란 통에 넣고 3개월 정도 더 숙성시킨다. 마지막으로 알코올 도수가 40% 정도 되도록 물과 섞은 뒤 병에 넣으면(Bottling) 제품이 완성된다. 위스키는 제조 성분에 따라 몰트·그레인·블렌디드 위스키로 나뉜다. 몰트(malt)는 보리에 싹을 틔워 만든 맥아를 의미한다. 맥아 원료만을 사용한 위스키를 몰트 위스키라고 한다. 초기 위스키는 모두 몰트 위스키였다. 하지만 보리 맥아의 공급이 달려 대량생산이 불가능했다. 결국 밀·옥수수 등 곡류를 사용한 그레인 위스키가 등장하게 됐다. 순수한 알코올에 가까운 무덤덤한 맛이 특징이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만든 것이다. 20세기 전반에는 블렌디드 위스키가 주류를 이루면서 위스키의 동의어처럼 쓰였다. 발렌타인·조니워커·로얄살루트·시바스리갈 등 국내에 많이 알려진 위스키들은 대부분 블렌디드 위스키다.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는 것은 블렌딩(blending)이라 하며 혼합 비율과 추가되는 향료나 감미료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다. 블렌디드 위스키에 밀려 고사 상태였던 몰트 위스키가 회생한 것은 1960년대다. 스코틀랜드 주류업체 윌리엄 그랜트 앤드 선스가 하일랜드 지역에서 명맥만 이어가던 몰트 위스키 가운데 ‘글렌피딕’을 공식 제품화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독특한 맛과 3각 기둥 모양의 병 모양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이후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입맛이 고급스러워지자 몰트 위스키가 다시 위스키 시장의 한 축을 이루게 됐다. 몰트 위스키는 대부분 여러 오크통의 원액을 믹싱하는데 한 양조장의 원액만 섞으면 싱글 몰트, 여러 양조장의 원액을 섞으면 블렌디드 몰트라 부른다. 대표적인 싱글 몰트로는 글렌피딕·맥캘란·글렌리벳·글렌모렌지 등이 유명하다. 싱글몰트는 전세계 위스키의 5%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서는 3%에 못 미친다. 싱글몰트 중 한 오크통에 있던 위스키를 다른 것과 섞지 않고 병에 넣은 것을 싱글 캐스크(single cask)라 한다. 싱글 캐스크는 그리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비싸다. 어떤 오크통의 원액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이를 담당하는 각 양조장의 몰트 마스터들은 30~50년의 경력을 갖고 후각과 미각을 총동원해 해당 브랜드와 가장 적합한 향미를 조율한다. 같은 재료를 써서 같은 방식으로 제조하면 맛도 비슷할 것 같지만 싱글몰트는 증류소와 브랜드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가장 먼저 맛을 좌우하는 요소는 오크통이다. 투명한 위스키 원액이 호박빛으로 변하는 것은 오크통에서 참나무 진액과 섞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는 맨 처음 스페인의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 와인에 위스키 원주정을 섞은 15~22도의 고도 와인)인 셰리(Sherry)를 저장하던 셰리 오크통을 수입해 썼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셰리 와인 생산량이 줄면서 오크통까지 줄게 되자 대신 미국의 버번 오크통을 쓰게 됐다. 셰리 오크통에서는 꽃 향기와 과일향, 달콤한 맛이 풍겨나온다. 반면 버번 오크통에서는 매운 맛이 난다. 또 셰리오크는 붉은 빛을, 버번 오크통은 노란색을 위스키 원액에 더해준다. 와인의 빈티지가 포도가 생산된 해의 특징을 대표한다면, 몰트의 빈티지는 숙성시킨 기간을 의미한다. 위스키는 최소 3년 이상 숙성한 것을 의미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최소 3년 이상 숙성된 술에만 스카치 위스키 자격을 주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12년 이상 숙성시킨다. 17년산 위스키라는 것은 적어도 17년 이상 숙성했다는 의미다. 흔히 오래 숙성할수록 향미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지만 6년 이상이면 충분하고 10~12년이면 최적의 풍미를 우러낼 수 있는 기간이다. 10년 이상이면 고급에 속한다. 굳이 17년산, 30년산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사람도 너무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는 것처럼 연산이 과도하게 오래된 것은 향미가 풍부하지 않고 뒷맛이 쓸 수도 있다. 오크통의 특성이 과도하게 반영되다보면 오히려 풍미가 떨어지게 된다. 오랜 기간 숙성하면 위스키 가격이 올라간다. 숙성도가 높아져 향미가 향상되는데다가 매년 증발돼 사라지는 양을 가격에 전가하기 때문이다. 창고에서 더 오래 묵은 보관비도 반영됐을 것이다. 오크통에선 매년 2~3%씩 원액이 증발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오크통이 원액에 젖었다 마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를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 그러나 블렌디드 위스키나 저가 위스키는 연산 표시가 없다. 무연산(NAS, no age statement) 위스키 제조업체는 블렌딩 마스터들이 최고의 감각으로 원액의 연산에 구애받지 않고 풍미가 극대화된 위스키를 만든다고 홍보하지만 간결하고 깊은 싱글몰트에 비하면 덕지덕지 화장한 B급 제품일 뿐이다. 숙성 기간 오크통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며 맛과 향·색을 변화시킨다. 참나무통에서 위스키 원액은 화학적·물리적 변화를 거쳐 부드럽고 우아한 향미를 갖게 되고 아름답게 착색된다. 독성을 띠는 것은 자연분해돼 스러지고 혀끝에 당기는 맛으로 변신하게 된다. 사람도 중년을 넘기면 연륜이 쌓이고 기품이 갖춰지는 것처럼….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환경(일조량·습도·바람 등)에서 숙성했느냐에 따라 위스키의 향미는 다양해지게 된다. 증류 방식도 위스키 맛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양주 증류 방식에는 단식 증류(pot still)과 연속식 증류(continuous still)이 있다. 단식은 양파 모양의 구리 재질 솥단지에 술을 모으는 집주구가 하나다. 구리는 열전도가 높은 데다가 촉매로서 다양한 향기 성분의 도출을 돕는다. 단식 증류는 맛과 향의 파괴가 연속식 증류법에 비해 적다. 순수 에탄올 외에 알데히드, 에스테르, 푸젤유(fusel oil), 푸르푸랄(Furfural) 등 다양한 형태의 불순물이 같이 남아 숙취를 유발할 개연성이 있지만 독특한 향을 갖게 된다. 코냑,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몰트 위스키는 단식 증류법으로 증류돼야 한다. 증류소마다 각각 추구하는 향의 위스키를 얻기 위해 증류기의 모양과 설계가 달라진다. 위스키 맛의 다채로움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반면 연속식은 단을 여러개 쌓아 윗단에서 증류된 술이 아랫단으로 내려갈수록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고 불순물을 더 많이 제거할 수 있다. 보드카, 공업용 소주 주정처럼 무색 무취한 술을 만드는 데 좋다. 요즘엔 스팀 가열 방식으로 에너지·공간·시간 효율을 높였다. 이밖에 물맛, 원재료인 보리의 품질, 재료를 다루는 양조인의 솜씨 등이 위스키맛을 좌우할 것이다. 싱글몰트 브랜드를 숙지하려면 스코틀랜드 위스키 산지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크게 하일랜드(Highlands), 스페이사이드(Speyside), 로우랜드(Lowlands), 캠블타운(Campbeltown), 아일레이(Islay), 아일랜드(Islands) 등 6개 산지로 나뉜다. 스페이강에 인접한 스페이사이드는 하일랜드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이 곳엔 스코틀랜드 전체 120여개 증류소 중 60개 남짓이 밀집돼 있다. 맥캘란(Macallan), 달위니(Dalwhinnie), 글렌리벳(Glenlivet), 글렌피딕(Glenfiddich), 글렌그랜트(Glengrant 상당수는 블렌디드위스키), 발베니(Balvenie), 싱글턴(Singleton, Glendullan-Diageo) 등이 유명 브랜드다. 사과, 바닐라, 참나무, 맥아, 견과류, 건과 등 다양한 향미로 머리를 아찔하게 한다. 글렌리벳은 싱글몰트의 개척자다. 영국 정부가 음지에 숨었던 스코틀랜드 양조업자를 달래 양성화에 나섰는데 이 때 양조면허를 1번으로 받은 게 글렌리벳이다. 지금도 피트향이 상쾌하며 델리케이트한 맛을 낸다고 평가받고 있다. 글렌피딕은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이다. 맥캘란은 고급화에 성공한 깔끔한 싱글 몰트다. 발베니는 보리 재배부터 병입까지 전 과정을 직접 사람이 진행하는 ‘수제’ 위스키로 럭셔리함과 최고가를 지향한다. 하일랜드(Highland)는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으로 물이 좋고 피트가 풍부하다. 스페이사이드산 위스키에 비해 헤더향과 견과류, 프루트케이크(Fruit Cake, 설탕과 럼 따위의 술에 재운 과일을 잘게 썰어 넣고 서서히 구워 낸 케이크)의 향미가 더 강해 달콤하고 풍부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글렌모렌지(Glenmorangie)나 달모어(Dalmore)가 대표적이다. 하일랜드엔 25개 정도의 증류소가 있어 스페이사이드와 합치면 이들 두 지역의 위스키 생산은 스코틀랜드 전체의 85%가량을 차지한다. 스코틀랜드 싱글몰트에 유난히 많이 들어가는 글렌(glen)은 우리말로 계곡이다. 스코틀랜드의 특수한 지형상 경사가 다소 완만하며 좁고 길게 흐르는 강을 따라 형성된 계곡을 의미한다. 글렌피딕은 사슴계곡(스코틀랜드 고어(Scottish Gaelic)로 피딕은 사슴을 뜻함)에서 양조한 또는 보관한 위스키란 의미를 갖는다. 각 위스키 브랜드는 증류소 또는 지명인 경우가 많다. 하일랜드는 북쪽이라는 의미도 지니지만 고도가 높고 날이 써늘한 지역으로 위스키 숙성에 좋은 조건을 갖췄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다수 숙성창고는 고산지역의 동굴을 이용하며 고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글렌을 이룬다. 로우랜드는 스코틀랜드 남부 지역으로 스코틀랜드 최대 항구도시인 글래스고(Glasgow)를 중심으로 그레인 위스키를 주로 생산하며 몰트 위스키는 거의 나지 않는다. 글렌킨치(Glenkinchie), 오큰토션(Auchentoshan) 등이 대표적이다. 잔디밭, 인동덩굴(Honeysuckle), 생크림, 토피사탕(Toffee, 설탕·버터·물로 졸여 만듦), 계피(Cinnamon) 향미가 난다. 아일레이는 서남해안에 있는 작은 섬으로 피트향이 강한 몰트 위스키를 생산한다. 해초, 함수(Brine,소금물), 약산성의 석탄산 비누(Carbolic Soap), 훈제 및 염장한 말린 생선(Smoke and Kippers), 사과 등의 향미가 복합적으로 난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아드벡(Ardbeg), 라프로익(Laphroaig), 라가불린(Lagavulin) 등이 있다. 끈끈한 촉감을 주고 맛이 중후한데 초심자에겐 적합하지 않다. 다만 거친 맛과 피트향을 좋아한다면 마니아가 될 수 있다. 아일랜드 지역은 북서해안에 있는 여러 섬들이다. 각기 떨어져 있어 맛을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고 다채롭고 다이나믹하다. 유명한 브랜드로는 하일랜드파크(Highland Park), 탈리스커(Talisker), 쥬라(Jura) 등이 있다. 훈제, 함수, 후추, 꿀 등의 향미에 기름진 느낌이 든다. 캠블타운은 아일레이 섬 남쪽에 길게 뻗쳐 있는 반도로 피트향이 강하지만 아일레이보다는 부드러운 향미를 지닌다. 글렌가일(Glengyle), 스프링뱅크(Springbank), 글렌스코티아(Glen Scotia) 등이 있다. 스프링뱅크는 매우 강한 훈제향을 뿜는 반면 글렌스코티아는 잔디밭 풀냄새가 풍부한 가볍고 부드러운 성향을 보인다. 글렌가일의 10년 또는 15년 숙성 싱글 캐스크와 버번우드에 숙성한 51도 내지 53.5도 독주인 ‘킬커란’(KILKERRAN)은 애주가에게 사랑받는 독특한 브랜드다. 필자가 보기에 가성비는 글렌리벳, 단조롭되 깊은 맛은 맥캘란, 약간 부드럽되 너무 순하지 않는 것은 글렌모렌지 등을 추천할 수 있다. 국산 수입으로는 싱글턴만한 게 없다. 나머지 수입 양주는 거품이 끼어 가성비가 떨어진다. 양주의 감미는 와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가능하면 아래(bowl)가 넓고 목(lip)이 좁은 튜립 모양의 잔을 써서 마신다. 얼음을 넣어 마실 경우 밑이 평평한 게 좋고, 바닥과 거리를 띄울 수 있는 잔대(stem)가 짧게라도 달린 게 저온 유지에 바람직하다. 위스키를 따른 후 잔을 흔들어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향을 음미한다. 이때 술 방울이 잔을 타고 흘러내리는 속도가 느릴수록 몰트가 잘 숙성됐음을 의미한다. 첫 잔은 한 모금 입에 담아 음미하는 것으로 싱글몰트와의 여행을 떠난다. 필자는 가급적 물이나 얼음에 싱글몰트를 타서 마시지 않는다. 향미가 희석돼 고유의 강렬한 느낌을 잃기 때문이다. 잔술은 시키지 않고, 미니어처를 사서 찔끔찔끔 먹지도 않는다. 오로지 한 병을 통째로 지인들과 어울려 다 마신다. 위스키의 안주는 아무 거나 상관 없다. 식사 후 한참 지나 먹으려면 과일, 육포, 견과류, 치즈가 적당할 것이다. 물 또는 얼음과 함께 마시려면 술을 먼저 따르고 물을 붓는 게 순서다. 요즘 위스키 수요가 줄었다지만 그래도 싱글몰트 가격은 해마다 5~9% 오른다. 비싸게 팔아도 꼭 마시겠다는 마니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면세점에서는 굳이 유명 브랜드를 사지 않아도 된다. 웬만하면 다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부드러운 또는 거친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피트향을 선호하는지 정도만 따져보면 큰 문제가 없다. 찾아보기도 힘들겠지만 면세점에서 윈저나 임페리얼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2020-08-11 21:07:00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와인 생산국을 꼽자면 단연 칠레다. 2004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 본격 수입됐고 와인이 대중화를 선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스페인, 이탈리아 와인에 밀려 1위를 내어줬지만 한동안 물량 면에서 월등히 앞섰고 지금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주요 와인 교역국이다. 칠레 와인 중 '몬테스 알파'(Montes Alpha)는 국내에서 크게 사랑받아 별명이 '국민와인'이었을 정도다. 칠레 와인이 한국에서 사랑받는 것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 FTA로 인한 접근성 덕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메리트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아서다. 칠레는 과일과 오크통 향이 진하고, 묵직한 보디감을 자랑하는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하는데 양념이 강한 한국음식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기후‧일조량‧토양‧물 천혜의 조건 … 신세계 와인 중 가장 오래된 역사 산맥이 많은 칠레는 포도가 자라는 데 이상적인 자연환경을 갖췄다. 더욱이 저렴하고 뛰어난 노동력을 가져 와인 생산국으로 경쟁력이 강하다. 칠레 국토는 바다에 접해 안데스산맥을 따라 위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다. 산맥의 서쪽은 바다, 동쪽은 내륙을 바라보고 있다. 와인 생산지는 대부분 안데스 산맥의 동쪽 계곡과 평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의 동쪽 면이라서 일조량이 넉넉하고, 해발 6000m의 안데스산맥은 한류가 흐르는 태평양의 차가운 해풍을 막아주면서 적당히 선선한 바람을 내려 보낸다. 이와 함께 아타카마사막의 영향으로 건조한 날씨, 남쪽 화산지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구리 성분이 많은 토양, 안데스산맥 위 빙하에서 녹아내린 청정수, 큰 일교차 등 자연조건은 포도의 단맛과 아로마를 진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칠레는 미국‧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신세계와인 생산국으로 분류되지만 와인양조 역사는 500여년이 넘을 정도로 유서 깊다. 1554년 스페인에서 건너온 콩키스타도르(Conquistadõr, ‘정복자’라는 뜻으로 16세기에 중남미를 침입한 에스파냐인을 이르는 말) 프란시스코 드 아귀레(Francisco de Aguirre)가 선교사와 함께 포도나무를 처음 심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세계 와인생산국 중 가장 오랜 와인 역사다. 이후 1520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스페인의 포도나무를 가져와 페루에 포도밭을 만들고 이를 다시 칠레에 옮겨 심었다. 이 때 심어진 ‘파이스’(Pais) 품종은 지금도 칠레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고 있다. 지구 유일의 필록세라 청정 포도밭 … 1980년대 이후 주요 와인 생산국으로 성장 1860년 유럽의 포도밭 전역에 진드기의 일종인 필록세라(Phylloxera)가 창궐하자 유럽의 와인양조가들은 유럽을 벗어나 미국‧호주 등의 신대륙으로 시야를 넓혔다. 특히 산맥과 바다로 접근이 막혀있던 칠레의 포도밭은 필록세라로부터 안전해 양조가들을 흡족하게 했다. 지금까지 전세계 포도밭 중 유일하게 필록세라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칠레 포도밭이다. 이 말인즉슨 필록세라에 강한 개량된 포도나무가 아닌, 이전의 전통 유럽 포도나무가 칠레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 칠레 사업가 돈 실베스트르 오차가비아(Don Silvestre Ochagavia)는 필록세라로 직장을 잃은 프랑스인 양조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안데스산맥 중부 마이포밸리(Maipo Valley)에서 유럽에서 인기 있는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의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카르멘(Carmen),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 산타리타(Santa Rita) 등 와이너리들이 속속 이 지역에 설립되면서 칠레 와인산업의 뿌리가 형성됐다. 1980년대 후반 포도를 키우기 좋은 칠레의 천연환경과 와인 품질이 인정받게 되면서 신대륙에 새로운 포도밭을 개척하려는 사업가들이 몰려 왔다. 스페인의 토레스(Torres), 프랑스의 로췰드(Rothchild) 등을 비롯해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의 폴 퐁타이에(Paul Pontallier) , 샤토 코스데르투르넬(Château Cos d'Estournel)의 브뤼노 프라(Bruno Prats), 미국 나파밸리 프란시스칸(Franciscan)의 어거스틴 휴니우스(Augustin Huneeus) 등 뛰어난 양조가들이 뛰어들면서 칠레는 단숨에 주요 와인 생산국으로 성장하게 됐다. 현재 칠레는 세계 5위권의 와인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인기 품종은 모두 재배 … 고급와인 찾으려면 ‘돈’(Don) 혹은 ‘도나’(Dona) 확인 1990년대에 들어선 칠레 민주정부는 주요 수출품인 와인의 품질관리를 위해 1995년 프랑스의 원산지통제정책을 본따 DO(Denominacion de Oriden)란 원산지 명칭 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일정한 양조 형태와 품질을 가져야 생산지 명칭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까다롭지 않아 큰 의미는 없다. 또 스페인의 영향으로 스페인 와인처럼 숙성기간 표기를 한다. 그란비노(Gran Vino)는 6년 이상 숙성된 와인, 리제르바는 4년 이상 숙성된 와인, 리제르바 에스페시알은 2년 이상 숙성된 와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규제가 까다롭지 않아 저렴한 테이블 와인에도 ‘리제르바’가 표기되곤 한다. 칠레 전통 와인 중 고급와인을 찾는다면 ‘돈’(Don) 혹은 ‘도나’(Dona)가 표기된 와인을 골라볼 것을 권한다. 전통 있는 유명 와이너리에서 장기 숙성된 와인으로 프리미엄급을 뜻한다. 생산되는 포도 품종은 매우 다양하다. 포도 경작지의 50%는 파이스 포도를 재배하지만, 외국 자본의 투자로 생긴 유명 포도 농장은 프랑스 포도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 레드와인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말벡(Malbec), 메를로, 피노누아(Pinot Noir), 시라(Syrah) 종이 인기 있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리슬링(Riesling), 샤르도네(Chardonnay), 피노 블랑(Pinot Blanc), 트레비아노(Trebbian), 게부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등이 대표적이다. 그냥 인기있는 품종은 다 재배된다고 보면 된다. 여러 품종을 복합적으로 블렌딩하기보다 단일품종 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75% 이상 한 품종을 사용하면 단일품종 와인으로 표시할 수 있다. 마이포밸리‧콜차구아밸리‧카사블랑카 등이 주요 생산지 칠레의 포도재배 지역은 권역(Area), 지역(Region), 밸리(Valley)의 순서로 세분화 된다. 권역은 해안(Costa), 중부(Entre Cordilleras), 안데스(Andes) 등으로 나뉜다. 해안에 가까우면 해안 권역, 안데스산맥에 가까우면 안데스 권역, 그 중간이면 중간 권역으로 구분되는데, 아주 명확하게 나뉘진 않는다. 지역은 13개로 나뉘는데 대표적으로는 아타카마(Atacama), 코킴포(Coquimbo), 아콩카과(Aconcagua), 센트럴밸리(Central Valley), 남부(Southern) 등을 들 수 있다. 해외에 가장 잘 알려진 생산지는 센트럴밸리 지역에 속하는 마이포밸리다. 안데스산맥과 코스탈산맥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가장 먼저 유럽의 양조가들이 진출했다.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와 가까워 운반이 유리하고, 밤낮의 기온차가 심해 포도 재배에 적합하다. 운드라가(Undurraga), 쿠지노-마쿨(Cousino-Macul), 콘차 이 토로 등 유명와이너리가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역시 센트럴벨리 지역에 속하는 콜차구아 밸리(Colchgua Valley)는 국내 인기 와인 '몬테스 알파'을 생산하는 몬테스, '클로 아팔타'(Clos Apalta)로 유명한 라포스톨(Lapostolle) 등 칠레 프리미엄급 와이너리가 많이 위치해 있다. 이 중 아팔타(Apalta) 지역은 프랑스 그랑크뤼급, 미국의 나파밸리 와인과 견줄만한 최고의 레드와인이 만들어지는 지역이다. 지금까지도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아콩카과 지역의 카사블랑카(Casablanca)도 매우 중요한 생산지다. 기온이 높아 향이 풍성한 레드와인 품종이 주로 자라는 다른 생산지역과 달리 기후가 선선해 화이트와인 품종 재배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질 좋은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이 재배되며 고급 화이트와인 생산지로 각광받고 있다.
2020-07-20 17:35:32
미국은 세계 최대의 와인 소비시장이자 높은 수준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생산지이기도 하다. 현재 신세계 와인 생산국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바로 미국 와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는 캘리포니아주 중에서도 나파 카운티(Napa County)다. 이른바 나파밸리는 미국 와인을 지금의 위상으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획일적이고 과하다’는 평가의 초기 미국 와인 미국 와인 생산의 90%는 캘리포니아에서 이뤄진다. 그 중 나파밸리는 가장 핵심적인 지역으로 수준 높은 유명 와이너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며 총면적은 약 480km², 남북으로 40km, 동서로 12km에 이르는 지역을 아우른다. 캘리포니아는 태평양 연안에 자리 잡은 해양성 기후 덕분에 온화하고 따뜻하다. 일조량도 매우 많아 과일이 단맛을 머금기에 유리하다. 나파밸리는 일조량이 풍부하면서도 다른 지역처럼 볕이 너무 뜨겁지 않아 포도가 빠르게 익지 않고 적당한 단맛과 산미를 아우르고 있어 고급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를 재배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보르도와 유사한 기후여서 와인 스타일도 보르도와 비슷하다 까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를 블렌딩한 레드와인이 주로 생산되는데 풍부한 과일향과 오크향, 강하고 탄탄한 보디감으로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 못지않은 고급 장기 숙성형 와인을 생산해 내고 있다. 처음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의 가장 선봉에 섰던 것은 나파밸리 서쪽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위치한 소노마밸리(Sonoma Vally)였다. 1848년 골드러시로 각처에서 몰려든 이민자들 중에 헝가리 출신들이 소노마 밸리에서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 유럽산 양조용 포도)를 가꾼 게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의 시초다. 이윽고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와인 산업에 뛰어들면서 미국의 와인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은 포도가 빠르게 자라고 당분을 만드는데 매우 유리했다. 유럽보다 넓고 비옥한 땅은 많은 양의 포도를 한꺼번에 재배하고 수확해 양조하면서 와인산업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경쟁력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 와이너리는 일괄적인 품질로 양산이 가능한 기업형으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1919년 금주법이 실시됐다. 1933년까지 14년간 이어진 미국의 금주법은 막 자리를 잡아가던 미국 와인산업을 뿌리째 흔들었다. 700여개를 넘어가던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는 금주법이 끝날 무렵에는 불과 140여개 정도만 남았다. 금주법이 사라지고 술에 대한 수요가 무섭게 늘어나면서 캘리포니아 와인산업은 다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지만, 국제무대에서 미국 와인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았다. 미국인들도 자국 와인에 대해 지나치게 맛이 획일적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미국 와인에 대한 평가는 “오크통 맛이 지나치게 강하고, 포도즙을 너무 많이 추출하며, 기후 특성상 너무 익은 포도로 양조해 알코올 도수가 높은, 과하게 진한 촌스러운 와인”이었다. 이에 미국 와인 회사들은 획일화에서 탈피해 고급화를 꾀했다. 프랑스의 유명 와이너리와 협업을 하거나 유럽의 실력있는 양조가들을 적극 모셔오면서 와인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너무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햇살에 포도가 지나치게 빨리 익어버린다는 난제를 극복하긴 어려웠다. 후숙된 포도로는 와인의 섬세한 맛과 향을 내기 어렵다. 이 때 떠오른 지역이 소노마밸리보다 동북쪽으로 떨어진 나파밸리였다. 고도가 높은 나파밸리는 소노마밸리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다른 와인 생산지보다 기온이 낮고 일조량도 적당해 포도가 익는 속도가 느렸다. 나파밸리의 특성을 발견한 양조가들은 이 곳에서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1976년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와인, 나파밸리에 무릎꿇어 ‘와인 국치일’ 조용히 실력을 키워가던 나파밸리의 와인이 국제 사회에 모습을 들어낸 결정적 계기는 1976년 5월 24일에 벌어진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 사건이었다. 당시 와인 바이어인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와 미국인 파트리샤 갤라허(Patricia Gallagher)가 미국 와인을 유럽에 본격 소개하고자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개최했다. 총 11명의 유명 와인 평론가가 모여 브랜드를 지운 각기 10종의 화이트와인(캘리포니아 와인 6종, 프랑스와인 4종)과 레드와인(캘리포니아 와인 4종, 프랑스 와인 6종)을 평가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의 패배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회를 개최한 스퍼리어조차도 캘리포니아 와인이 조금만 선전해 줘도 좋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모두 나파밸리의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화이트와인에서 브르고뉴 ‘뫼르소 샤름’을 이기고 나파밸리 와인인 ‘샤또 몽텔레나’가 우승했으며, 레드와인은 나파밸리의‘스태그스 립 와인 셀러’가 보르도의 ‘샤또 무똥 로췰드’를 눌렀다. 프랑스 와인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일부 심사위원은 자신의 평가서를 스티븐에게서 빼앗으려 달려드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프랑스 와인의 우승이 당연할 것이라 생각한 대부분의 매체는 기자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거의 유일하게 자리를 지켰던 미국 타임지의 기자가 이를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특히 나파밸리의 와인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됐다. 프랑스인들은 이날을 ‘와인 국치일’로 여길 정도다.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던 프랑스 측의 요청으로 비슷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몇 번 더 진행됐으나 나파밸리의 와인은 언제나 높은 성적을 유지하며 프랑스 와인을 눌렀다. 소량·고품질의 ‘컬트와인’ 바람 … ‘스트리밍이글’ ‘할란’ 등이 대표적 1990년대 초반 들어 나파밸리의 양조가들은 소량·고품질을 앞세운 ‘컬트 와인’을 생산하면서 이미지를 고급화했다. 컬트와인은 한해 생산량이 1만~2만병이 채 되지 않는 고품질의 극소량 생산 와인으로 프랑스의 그랑크뤼 와인들과 비견된다. 하지만 100여 년이 넘도록 경직된 방식을 고수하는 프랑스와 달리 실험적이고 선진화된 양조방식을 받아들인 나파밸리는 정상급 컬트와인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컬트와인의 대성공에 호주·뉴질랜드·칠레 등 다른 신대륙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 양조가들도 가세해 붐을 이어나갔다. 일부 나파밸리의 와인은 보르도의 1등급 그랑크뤼 와인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 비싼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WS)와 로버트파커 점수(Robert M. Parker Point. RP) 최고점은 항상 유럽이 아닌 나파밸리 와인의 차지였다. 이를 통해 나파밸리의 와인은 와인 트렌드를 이끄는 거대한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유명한 나파밸리의 컬트와인으로는 1세대인 ‘그레이스 패밀리 카버네 소비뇽’을 꼽을 수 있다. 1981년 첫선을 보였으며 ‘높은 품질, 넘치는 수요, 한정된 생산’이라는 컬트와인의 3대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카베르네소비뇽 100%로 만드는데 블랙커런트와 자두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블랙커런트(blackcurrant, CASSIS)와 감초 등 아로마가 겹겹히 밀려든다. 연간 생산량은 200 상자에 못 미치지만 대기자는 4000명이 넘는다. 전문가들은 10년 이상 숙성한 후 마실 것을 권장한다. 최근 가장 유명한 컬트와인으로 꼽히는 ‘스크리밍 이글’은 ‘나파밸리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와인메이커 하이디 바렛(Heidi Barrett)의 작품이다. 1992년에 첫 빈티지를 생산해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에게서 99점을 받았으며, 1997년 빈티지는 100점을 받았다. 까베르네소비뇽을 기본으로 메를로와 카베르네프랑을 블렌딩했는데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한 블랙커런트 향이다. 이와 함께 단단한 농축미,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한다. 연간 약 8000병을 생산해 사전 예약해도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다. 로버트 파커로부터 5번이나 100점 만점을 받은 ‘할란’ 역시 대표적인 컬트와인으로 손색이 없다. 할란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는 1985년 설립됐지만 12년이 지난 1996년에 와서야 첫 번째 와인을 생산했다. 로버트 파커는 “할란 이스테이트는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깊은 맛의 레드와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카베르네소비뇽 외 메를로와 커베르네프랑을 블렌딩 포도로 사용한다. 풀보디 와인으로, 짙고 탄탄한 근육질의 느낌이 큰 특징이다. 매년 1만8000병의 와인을 생산하는데 한국에 공급되는 물량은 120여병에 불과하다. 높은 평가를 받은 나파밸리 컬트와인 중에는 한국의 입김이 닿은 와인도 있다.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이 소유한 ‘다나 에스테이터’에서 생산된 ‘로터스 빈야드’는 2007년 빈티지와 2010년 빈티지가 로버트파커로부터 100점 평가를 받아냈다. 오크통 숙성 과정에서 와인의 품질이 변할까봐 바닥에만 오크통을 보관하고 오크통을 2중으로 쌓는 것을 금지하는 등 양조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연간 생산량이 겨우 3000여병 남짓이지만 품질에서는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2020-06-28 23:43:38
호주와 뉴질랜드는 남태평양 가운데 오세아니아 지역을 양분하는 국가다. 영국의 자치령(Dominion)이었으며, 독립한 뒤에도 1973년 ‘Trans-Tasman travel agreement’ 법안을 발의해 자유롭게 상호 왕래하며 두 국가의 국민들 사이에는 거주·노동·학업의 제한을 두지 않는 등 형제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와인의 역사에도 비슷한 점이 많다. 영국의 식민지를 지내며 같은 사람에 의해 첫 와인 생산이 시작된 점, 일조량이 풍부한 천혜의 환경으로 과일향이 풍부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 뒤늦게 세계 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또 하나 더 찾자면 화이트와인에 대한 사랑을 들 수 있다. 뉴질랜드 생산 와인의 80%, 호주 와인의 60%가 화이트 와인이다. 하지만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 비교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첨단 양조기술 받아들여 2000년대 이후 와인 강국으로 도약한 호주 한국에서 신세계(유럽 외 와인생산국) 와인하면 미국이나 칠레 와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같이 공산세력과 싸운 혈맹이고, 칠레는 2004년 우리나라가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 와인 대중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신세계 와인 생산국 중 가장 많은 와인을 수출하는 나라는 호주다. 호주의 와인 생산량은 세계 7위, 수출량은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다음인 4위다.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와인 강국이다. 현재 호주에는 2000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드라이한 스틸와인부터 스위트·스파클링·주정강화와인까지 거의 모든 유형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재배되는 포도품종도 100여개가 넘는다. 땅이 넓은 만큼 기후도 다양해 그에 맞는 포도품종과 와인스타일도 여럿이다. 호주에 와인용 포도나무가 처음 심겨진 것은 18세기다. 당시 호주로 넘어온 영국인들이 호주처럼 더운 남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묘목을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옮겨 심고 재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지역의 높은 온도와 습도를 이기지 못한 포도나무는 모두 죽어버렸고 그 후 한동안 호주 지역에서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후 1824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정치인 제임스 버스비(James Busby)가 프랑스 론 지방에서 공수한 시라(Syrah)를 재배하면서 처음으로 와인이 양조되기 시작했다. 이후 1850년대 금을 찾아 사람들이 호주로 몰려드는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호주의 와인산업은 주정강화와인인 포트와인·셰리와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1900년 초반 골드러시가 끝나자 호주 와인은 침체기를 맞았다. 호주 와인산업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유럽의 와이너리를 휩쓴 포도 흑사병인 ‘필록세라’(Phylloxera)를 피해 모험적인 양조가들이 남아프리카·칠레·호주·아르헨티나·미국 등 신세계로 퍼져나갔다. 골드러시로 어느 정도 생산기반을 갖춰 놓았던 호주는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와인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1970년대부터는 제법 고급와인을 국제 시장에 내놓으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호주 와인이 어느 정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자 호주 정부는 와인 산업을 지원하며 기술 개발을 장려했다. 정부의 도움 아래 호주 와이너리는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와인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양조과정 자동화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호주 와인의 생산량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향이 풍성한 샤르도네·꿀같은 질감의 세미용 인기 … ‘선별’과 ‘블렌딩’으로 품질 향상 한국에서 주로 선호되는 호주와인은 시라 품종의 레드와인이다. 자두를 연상시키는 짙은 색에 후추와 정향을 떠올리게 하는 강한 향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음식과 궁합이 좋아 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인기가 좋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그 이상으로 샤르도네(Chardonnay)와 세미용(Semillon) 화이트와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호주의 샤르도네는 프랑스 론 지방에서 옮겨왔다. 하지만 조약돌 같이 구조가 강건하고 미네랄이 느껴지는 론의 샤르도네와 달리 호주의 샤르도네는 열대 와인의 향이 풍성하게 감도는 화려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옮겨온 세미용도 호주에서 한층 더 달고 진해졌다. 마치 꿀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하고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호주 화이트와인을 꼽자면 '르윈 에스테이트 아트 시리즈'(Leeuwin Estate Art Series Chardonnay), '펜폴즈 야타나'(Penfolds Yattarna), '로즈마운트 에스테이트의 록스버그'(Rosemount Estate Roxburgh) 등이 있다. 유명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버케이트'(The Wine Advocate)에서 꾸준히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으며 국제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호주 와인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선별’과 ‘블렌딩’이다. 유럽의 양조가는 포도밭의 ‘떼루아’에 집중한다. 와인의 스타일이 떼루아에서 결정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대한 밭에서 대량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호주에서는 섬세하게 떼루아를 관리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밭은 너무 넓고 인력은 부족했기 때문. 결국 호주 양조가들은 수확된 포도 중 가장 좋은 것을 선별해 양조한 후 다시 블렌딩해서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예컨대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레드와인 ‘펜폴즈 그랜지’(Penfolds Grange)는 양조장 반경 483km 안의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 우선 4만 상자의 와인을 만들고 그 중 가장 뛰어난 품질의 술을 골라 다시 블렌딩해서 연 7000 상자의 와인으로 압축한다. 물론 블렌딩에 사용되지 못한 와인은 저렴한 가격의 와인으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호주의 와인 생산지는 동남쪽 끝에 있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빅토리아’(Victoria) 세 주에 밀집해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는 ‘애들레이드힐스’(Adelaide Hills), ‘바로사밸리’(Barossa Valley), ‘에덴밸리’(Eden Valley), ‘클레어밸리’(Clare Valley), ‘쿠나와라’(Coonawarra), ‘패서웨이’(Padthaway), ‘맥라렌베일’(McLaren Vale) 등을 포괄하고 있는 호주 최대의 와인 생산지로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쉬라즈, 샤르도네, 리슬링, 세미용 등 재배되는 포도 품종도 다양하다. 사우스웨일즈는 ‘헌터밸리’(Hunter valley), ‘머지’(Mudgee), ‘리베리나’(Riverina)가 속한다. 헌터밸리는 샤르도네와 세미용으로 만든 고급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헌터 밸리보다 더 따뜻하고 고도가 높은 머지는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가장 남쪽에 있는 빅토리아주는 호주 본토 와인 생산지 중 규모가 가장 작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야라밸리’(YARRA VALLEY)와 ‘질롱’(Geelong) 지역은 질 좋은 샤르도네와 피노누아 와인을 생산하고, 루더글렌(Rutherglen)에서는 뮈스카(Muscat)와 토카이(Tokaj) 품종으로 만든 진한 화이트 와인이 생산된다. 동남쪽 와이너리 밀집지와는 크게 떨어져 있지만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도 뻬놓을 수 없는 주요 생산지다. ‘마가렛리버’(Margaret River), ‘스완밸리’(Swan Valley)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메를로·세미용·소비뇽 블랑 등 프랑스 보르도 지역과 유사한 품종의 포도를 재배한다. 1980년대 이후 갑작스럽게 존재감을 들어낸 신데렐라,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기다란 남섬과 북섬, 그리고 연안의 수많은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다. 뉴질랜드의 포도밭은 지구상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날짜 변경선과 가까워 가장 먼저 해를 만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세계 와인 생산국 중 가장 늦게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세계 11위의 와인 수출국으로 주목받은 대표 신흥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와인용 포도가 재배된 것은 1819년으로 영국 성공회 선교사가 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한 해는 그로부터 20년 이후인 1839년이다. 호주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생산했던 제임스 버스비가 뉴질랜드에서도 와인 생산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호주와 달리 병충해와 기술 부족 등으로 생산량은 미미했다. 20세기 전후로 뉴질랜드에서 대대적인 금주운동이 일어나고 금주법이 만들어지자 뉴질랜드 와인산업은 더욱 고전하게 됐다. 뉴질랜드의 와인산업은 금주령이 해제된 19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양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국내에서 대부분 소비됐다. 국제시장에서 뉴질랜드 와인의 품질 평가는 높지 않아 존재감이 흐릿했다. 이런 뉴질랜드 와인의 위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에서 자란 소비뇽블랑(Sauvignon Blanc)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여러 국제대회에 입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뉴질랜드의 와인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해, 1988년 100여개에 불과하던 와이너리는 1998년에 300여개 가까이 늘어났고 포도밭도 40%나 면적이 증가했다. 정부 주도 아래 품종 개량과 재배·양조 기술 향상이 이뤄져 지금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품질의 와인이 넉넉하게 생산되고 있다. 풀냄새 소비뇽블랑·향긋한 샤르도네 … 선선한 해양성 기후가 만든 산뜻하고 섬세한 아로마 연평균 온도가 독일과 비슷한 뉴질랜드는 초기에는 뮐러투르가우(Muller-Thurgau), 리슬링, 피노그리, 게부르츠트라미너 등과 같이 독일에서 키우는 청포도를 들여와 화이트와인을 주로 생산했다. 이후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청포도 품종인 소비뇽 블랑·샤르도네(Chardonnay), 적포도 품종인 피노누아(Pinor Noir) 등이 들어왔다. 이들 품종은 독일에서 들여온 청포도보다 뉴질랜드의 기후에 잘 맞아 곧 이 나라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성장했다. 소비뇽블랑·샤르도네·피노누아 순으로 많이 재배되는데 화이트 와인이 전체 와인 생산량의 80%를 넘는다. 최근에는 피노누아로 만든 레드와인의 생산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다. 뉴질랜드의 소비뇽블랑은 오크통이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양조되어 청명하고 날카로운 산도가 돋보인다. 다른 지역의 소비뇽블랑과 달리 과일향이 풍부하고 향이 풍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선한 라임·구즈베리·열대과일의 뉘앙스와 어우러진 짙은 풀향기가 특징이다. 샤르도네도 산뜻하고 이국적인 풍미가 뛰어나다. 피노누아는 매우 섬세한 아로마를 가지고 있다. 이런 뉴질랜드 와인의 특성은 서늘한 해양성 기후에 기인한다. 뉴질랜드는 신세계 와인 생산지역 중 가장 서늘한 연평균 온도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기다란 섬 지형 탓에 바다에서 129km 이상 떨어진 포도밭이 없다. 선선한 바닷바람 덕에 여름에도 온도가 높이 올라가지 않고 일교차도 완만하다. 서늘하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해양성 기후 속에 뉴질랜드의 포도는 천천히 성장하며 충분한 풍미와 산뜻한 산미를 가지게 된다. 대표적인 와인으로는 뉴질랜드 쇼비뇽블랑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클라우드베이 소비뇽블랑'(Cloudy Bay Sauvignon Blanc),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크게 사랑받고 있는 '킴 크로포트 소비뇽블랑'(Kim Crawford Sauvignon Blanc)와 빌라 마리아 소비뇽블랑 (Villa Maria Sauvignon Blanc) 등이 있다. 뉴질랜드의 주요 와인 생산지역은 과거에는 북섬의 ‘혹스베이’(Hawkes Bay)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남섬의 ‘말보로’(Marlborough) 지역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말보로 지역에 와이너리가 대거 들어서면서 현재 뉴질랜드 전체 포도밭의 42%, 와이너리의 3분의 1이 말보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북섬의 최남단에 있는 ‘마틴버러’(Martinborough) 지역은 피노누아 품종을 주력으로하는 레드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중부의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는 리슬링 등을 이용한 독일 스타일의 화이트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프랑스 원산지 호칭 통제제도(Appellation d’Origin Control’ee, AOC)처럼 엄격한 원산지 명칭 규제가 없다. 대신 라벨 규정이 존재한다. 라벨에 품종을 표기할 때는 해당 품종의 비중이 75% 이상이 돼야 한다. 블렌딩 된 품종 중 어느 것도 75%를 넘지 못할 경우에는 비중이 높은 품종 순으로 기재해야 한다.
2020-06-12 19:16:38
날씨가 더워지면 청량한 화이트와인에 끌린다. 생산국마다 개성 넘치는 화이트와인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도 첫 손에 꼽히는 화이트와인의 강국은 독일이다. 포도재배 북방 한계점에 위치한 독일은 청량한 화이트와인과 달콤한 아이스와인으로 이름을 높다. 독일 화이트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낮고 맛이 신선해 여름철에 마시기 그만이다. 아이스와인은 식후에 디저트로 즐기기에 알맞다. 8세기 프랑스와 쌍벽을 이루던 와인강국, 세계대전 후 쇠퇴 … 1980년대 이후 양질화 선회 독일의 와인 역사는 기원전으로 올라간다. 이 지역의 원주민인 켈트족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담아 마셨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와인 양조가 시작된 것은 기원후 1세기 로마인의 정벌이 시작되면서 부터다. 카이사르의 군대를 통해 전파된 와인은 이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독일의 와인 문화가 시작됐다. 8세기 들어 카를 대제(Karl der Große)는 와인 수출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프랑스와 경쟁하기 위해 와인사업을 적극 장려했다. 당시 주요 와인 생산자인 수도자들을 모아 와인을 만들기 좋은 토양과 포도품종 와인양조법 등을 활발히 연구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품질을 끌어올렸다. 라인강과 모젤강을 운송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정비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독일은 프랑스에 버금가는 와인 생산국으로 성장했다. 당시 10만헥타르(3억250만평)였던 포도밭도 30만헥타르(9억750만평)로 커졌다. 하지만 1618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종교 갈등으로 30년 전쟁이라는 내전이 일어났다. 가톨릭교도인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의 왕위에 오른 후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려 하자 보헤미아와 오스트리아의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덴마크‧스웨덴‧프랑스‧에스파냐 등이 개입해 엎치락뒤치락 긴 전쟁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독일 내 포도밭과 양조장 등은 파괴되고 적대국가의 과세장벽으로 무역도 어려워지면서 독일의 와인산업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18세기 들어 독일의 내정이 안정되자 와인산업은 다시 중흥기를 맞이해 독일의 화이트와인과 아이스와인은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초 세계1‧2차 대전이 벌어지면서 독일의 와인산업은 크게 후퇴했다. 포도밭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은 기계화를 도입하고 경제 기적을 열었다. 이 때 독인의 와인 사업에도 기계화가 도입됐다. 하지만 무분별한 경작지 확대, 비료 사용, 생산량에만 집중한 품종 개량, 단순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등급기준 등으로 독일 와인의 품질은 크게 떨어지고, 독일 와인에 대한 평가도 바닥을 치게 된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독일 정부와 생산자들은 이전의 대량 생산 기조를 버리고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고급화 전략으로 선회했다. 또 지역별 특성이 강조된 와인을 생산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세계인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독일 와인을 마시고 있다. 지역적 열세를 활용, 화이트와인과 아이스와인으로 승부 독일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품종은 청포도인 리슬링(Riesling)과 뮐러 트루카우(Mueller Thurgau)다. 독일은 7:3 비율로 화이트와인 생산이 많으며 한 때는 화이트와인의 생산량이 9:1에 이르기도 했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묵직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분이 풍부한 포도가 재배돼야 한다. 이를 위한 조건으로는 풍부한 일조량, 조금 부족한 강수량(연간 400~700mm), 따뜻하고 온화한 봄‧가을 기온(10~25도) 등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독일은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국가는 아니다.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 비해 북쪽에 위치한 독일은 간신히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추운 기온에, 눈과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묵직한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당도 높은 과실이 재배되기 어렵다. 그래서 독일 양조가들은 여느 국가 양조가들과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향이 풍부한 레드와인 대신 청량하고 신선한 화이트와인을 주력 상품으로 선택한 것이다. 청포도는 적포도에 비해 일조량이 적어도 잘 자라며 당분이 부족한 대신 천천히 익으면서 상큼한 산미를 가지게 된다. 독일 양조가들은 지리적인 특성을 이용해 알코올 함량이 적고(8~10%) 가볍고 청량한 느낌의 화이트와인을 양조해 유럽 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남들보다 추운 기후적 특성을 이용해 특별한 발명품도 만들어냈다. 바로 아이스와인(Ice wine)이다. 아이스와인은 얼린 포도를 이용해 양조한 농도 짙고 달콤한 맛의 화이트와인이다. 포도를 얼리면 수분이 얼음으로 빠져나가 남은 과실의 당분 함량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를 와인으로 만들면 당도와 산도가 둘 다 높은 아이스와인이 된다. 독일의 한 양조장에서 수확을 미뤘다가 얼어버린 포도로 와인을 만든 것에서 유래됐다. 지금은 캐나다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20세기까지는 오직 독일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고급 디저트와인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대표적인 아이스와인으로는 라인헤센(Rheinhessen)주의 닥터젠젠(Dr. zenzen)과 캔더만 (kendermann)이 있다. 지역에 따라 1번, 당도에 따라 또 1번 … 복잡한 등급제 독일은 독특한 등급체계를 가지고 있어 초보자를 헷갈리게 한다. 독일 정부의 와인령에 따른 등급은 프랑스처럼 포도밭의 떼루아로만 등급을 정하지 않고, 수확할 때 포도의 성숙도(당도)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이 기준은 지역과 품종에 따라 약간 달라진다. 가장 낮은 등급인 ‘타펠바인’(Tafelwein)은 유럽연합(EU) 내에서 재배된 어떤 포도 품종을 사용해도 된다. 이 중 독일산 포도를 사용한 와인은 ‘도이취 타펠바인’(Deutscher Tafelwein)이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발효 전에 설탕과 사과농축액을 첨가해서 단맛과 알코올함량을 높이는 게 허용된다. 프랑스 뱅 드 패이(Vin-de-Pays, 가격을 지불할 만한) 등급과 유사한 ‘란트바인’(Landwein)는 타벨바인보다 높은 등급으로 포도 품종과 생산 지역이 표기된다. 발효 전에 설탕을 첨가할 수 있지만 농축과즙은 첨가하지 못한다. 도수는 타펠바인보다 0.5% 높다. 2009년에 개정된 와인령 2호에 따르면 26개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만이 란트바인이 될 수 있다. 이보다 높은 퀄리티와인은 ‘크발리테트스바인’(Qualitätswein)이라 불린다. 해외에서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등급은 ‘크발리테트스바인 베슈팀터 안바우게비테’(Qualitätswein bestimmter Anbaugebiete, QbA)이다. '특정 생산지역의 퀄리티 와인'이란 뜻이다. 독일의 13개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만 명칭을 붙일 수 있다. QbA는 가격‧포도상태‧당도에 따라 △당도 73오슬레(Oechsle) 이상의 ‘카비네트’(Kabinett) △당도 85오슬레 이상, 늦수확한 포도로 양조한 ‘슈페트레제’(Spätlese) △선별한 포도로 만든 최소 당도 95오슬레의 아우스레제 (Auslese) △선별한 포도알로 만든 최소 당도 125오슬레, 베렌아우스레제 (Beerenauslese) △ 언 포도알로 만든 아이스바인(Eiswein) △150오슬레 이상인 귀부와인(貴腐wine, 보트리티스 곰팡이가 낀 포도로 양조한 와인),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등 6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QbA 와인 중 특정 밭의 이름을 슬 수 있는 와인은 ‘프레디카츠바인’ (Prädikatswein)으로 따로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단일 포도밭 특급와인 등급(크뤼)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녹색병의 모젤와인과 갈색병의 라인와인 … 비슷한 듯 개성있는 지역 특성 독일 내 와인생산지역 중 프레디카츠바인 등급을 붙일 수 있는 곳은 모젤 자르 루버(Mosel-Saar-Ruwer),나에(Nahe), 바덴(Baden), 프랑켄(Franken),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 아르(Ahr), 미텔라인(Mittelrhein), 헤시쉐 베르크슈트라세(Hessische Bergstrasse), 자알레 운스트루트(Saale-Unstrut), 작센(Sachsen) 등 총 13곳이다. 이중 가장 유명한 곳은 ‘모젤 자르 루버’(Mosel-Saar-Ruwer)다. 독일 와인의 15%를 생산하고 있으며, 가볍고 신선한 맛이 특징이다. 보통 모젤와인이라고 부르며, 목이 긴 녹색 병을 사용한다. 라인가우(Rheingau)는 모젤 지역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모젤 와인보다 알코올 함량이 높고 원숙한 맛이 특징이다. 줄여서 라인와인이라고 부르며, 목이 긴 갈색 병을 사용한다. 라인헤센(Rheinhessen)은 라인강을 기준으로 서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독일에서 가장 넓은 포도 재배지역을 가지고 있다. 생산하는 와인 종류가 다양해서 화이트와인 외에도 레드와인도 생산된다. 라인팔츠(Rheinpfalz)는 줄여서 흔히 팔츠(Pfalz)라고 불린다. 프랑스 알자스와 인접해 비슷한 양조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화이트와인 대 레드와인 생산비율이 6대4 정도로 레드와인 생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온후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으로 독일 와인답지 않은 풍부한 향과 묵직한 보디감을 자랑한다.
2020-05-29 17:5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