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관심이 쏠린 나라 중 하나가 쿠바다. 여행 에세이나 인터넷에서는 쿠바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차 있고, 이색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대체 쿠바는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쿠바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영어로 된 안내 보드를 든 호객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탁시(택시)? 탁시?” 이제 막 아바나공항에 도착한 나에게 택시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와 어딜 가느냐며 질문을 쏟아부었다. 이 가운데 영어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기사를 따라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는 공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지나 한적한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처음 택시를 본 순간 ‘이게 택시라고?’하고 당황했다. 내 앞에는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 ‘올드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로 작동은 될까. 커다란 엔진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고 의자는 경운기라도 탄 듯 쉴 새 없이 떨렸다. 오로지 택시의 불빛만 의지한 채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를 달렸다. 쿠바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강렬했다.날이 밝아 일찍 거리로 나섰다. 맑은 하늘의 아바나는 따듯한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는 ‘딱 여행하기 좋은’ 날씨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본떠 만든 카피톨리오(Capitolio)를 지나 아바나의 중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오비스포 거리(Calle Obispo)로 들어섰다. 좁은 거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마다 쿠바 기념품을 사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기에 ‘인기 명소인가’ 하고 다가갔더니 다름 아닌 환전소다. 쿠바의 화폐는 내국인 전용인 쿱(CUP)과 외국인 전용인 쿡(CUC)으로 나뉘는데 시세가 무려 25배나 차이난다. 모양도 크게 다르지 않아 자칫하면 25배가 되는 금액을 지불할 수도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결국 40분 정도 기다린 끝에 환전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외국인은 무조건 CUC으로만 환전할 수 있어 CUP으로 다시 환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는데, 지금은 환전소에서 한 번에 환전할 수 있다.환전을 마치자마자 건너편 아이스크림 집으로 향했다. ‘Chocolate’(초콜릿)이라고 적혀 있는 메뉴 옆에 5라는 숫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다. CUP일까 CUC일까. 쿠바에서는 외국인들이 가는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CUC 단위로 적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길거리 간식들은 CUP으로 계산하면 된다. 5~10쿱내외(한화 약 250~500원)면 아이스크림은 물론 츄러스, 피자, 샌드위치 등 다양한 간식을 먹어볼 수 있다. 간식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천국같은 곳이다. 양손에 아이스크림과 츄러스를 든 채 오비스포 거리를 지나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에 도착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총독관저와 박물관이 둘러싸고 있고, 광장 안에는 쿠바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고(古)서적과 포스터를 판매하는 판매상들이 자리 잡고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 흰색의 강렬한 조합이 시선을 사로잡고, 낡은 고서적과 포스터들이 어딘지 ‘쿠바스러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항상 새로움과 ‘신상’을 추구하는 나에게 이같은 ‘앤티크함’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오비스포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대표적인 거리인 만큼 여행객을 붙잡는 상인들도 많은 곳이다. 거리를 다닐 때마다 곳곳에서 들리는 ‘치나’(중국인을 뜻하는 말로, 동양인을 통칭해서 부른다)와 ‘탁시’(택시를 타라는 호객 행위)는 아바나 여행을 피곤하게 만들어 오비스포 거리에 특별한 목적이 있는 않는 한 다른 골목을 이용해 이동하곤 했다.아바나대성당이 있는 대성당광장(Plaza de la Catedral)을 지나면 요새처럼 보이는 국왕군 성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 정복 시절부터 중심 역할을 해 온 국왕군 성은 총독 관저가 세워지기 전까지 총독이 거주했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국왕군 성의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모형과 바다에 가라 앉아 있던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종탑이 설치된 2층에서는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광장뿐만 아니라 아바나만 건너편에 있는 ‘모로요새’(Castillo de San Pedro de la Roca del Morro)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안가를 달리고 있는 색색의 올드카와 아바나의 파란 하늘. 쿠바로 오기 전에 감탄했던 사진 속 모습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아르마스 광장을 벗어나 신시가지로 이동하기 위해 오비스포 거리에 있는 여행자 센터를 찾아 아바나대학교로 가는 꼴렉티보 승강장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꼴렉티보’는 아바나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인데 모습은 택시와 같지만 버스처럼 정해진 경로로 이동한다. 가격은 1인당 10쿱으로 한 대당 3~4명의 승객이 동승한다. 여행자 센터에서 알려준 대로 카피톨리오 옆 골목길에 서서 꼴렉티보를 기다렸다. TAXI라고 크게 적혀 있는 차량 한 대가 앞에 멈춰 섰다. ‘유니버시다드 데 아바나?’ 목적지를 말하고 나서 운전자가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꼴렉티보에 탑승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함께 동승했던 사람들이 각자 목적지에서 하차하는데 탑승 장소의 위치만 명확히 알고 있다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쉽게 오갈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다.꼴렉티보에서 내리자 수많은 계단 위로 신전의 모습이 눈에 띈다. 아바나대 캠퍼스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1728년부터 지켜온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3개의 건물이 ‘ㄷ’자 형태를 만들고 있고, 가운데에는 잘 정돈된 정원이 마련돼 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계단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하는 학생들까지 여느 대학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바나대 앞에서 내려 뒤쪽 언덕길을 따라 내려갔다. 구시가지와는 다른 느낌의 높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대로를 따라 약 30분 정도 이동해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on)에 도착했다. 이 곳엔 멀리서도 보일 정도의 높게 솟은 혁명기념탑이 무려 109m에 달한다.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 아바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사 중인 관계로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혁명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 한다면 단연 체게바라의 조형물을 꼽을 것이다. 내무부 건물 벽에는 체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영원한 승리를 향해(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문구와 쿠바의 영웅 체게바라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해가 질 무렵 붉게 물들어가는 말레꽁(Malecon) 해변을 걸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싼다. 연인들은 방파제 위에 걸쳐 앉아 속삭이고 있고, 젊은 친구들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바다를 무대삼아 춤을 추고 있다.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어두워진 바다를 등지고 하나둘 자리를 떠난다.아바나의 밤은 유난히 어둡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중심가임에도, 가로등의 빛은 약하게 아른거리고 밝게 빛을 내는 상점 하나 없다. 화려한 네온사인보다 은은한 촛불이 어울리는 곳. 서툴지만 정이 있고, 투박하지만 오랜 손때가 매력적인 곳. 쿠바에는 그런 낭만이 있다.[TIP] 쿠바 바라데로에서 올인클루시브 호텔을 즐기자.아바나에서 차로 3시간 정도 이동하면 바라데로에 도착한다. 바라데로는 쿠바의 바다와 휴양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다. 멕시코 칸쿤의 호텔존처럼 긴 반도에 60여개의 호텔이 위치해 있다.바라데로가 유명한 것은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에서 가까이 위치해 있다는 점과 저렴한 가격으로 올인클루시브 호텔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의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하루 7만원 선이면 아름다운 바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행의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다.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2017-05-12 01:14:12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뜨거운 사막부터 꽁꽁 언 빙하까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먹거리가 풍부하고 무엇보다 와인의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어 부푼 기대를 안고 칠레의 중심 ‘산티아고’에 발을 내디뎠다.산티아고 도심 입구에 있는 모네다궁전(La Moneda Palace)과 헌법광장(Plaza de la Constitucion)에 도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모네다 궁전, 이를 둘러싼 높게 솟은 칠레 국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네다’는 스페인어로 화폐나 통화 등을 뜻한다. 본래 조폐국으로 사용되다가 칠레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모네다 궁전이라고 불린다. 궁전 앞 헌법광장을 중심으로 각 정부 부처가 밀집해 있다. 모네다궁전 주변에는 높은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서 있는데, 특히 칠레 증권거래소가 있는 ‘뉴에바요크’(Nueva York) 거리는 이름처럼 뉴욕 증권거래소가 있는 월스트리트와 닮았다. 모네다궁전을 지나 아르마스광장에 도착했다. 중남미 도시들을 여행하면 같은 이름의 아르마스광장들을 만날 수 있는데, 도시별로 특색을 살린 광장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광장을 중심으로 대성당과 시청, 국립역사박물관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광장 중심에는 분수대와 독립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광장은 열대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부터 여행객, 상인 등으로 북적북적하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지나가는 여행객의 발길을 잡고, 마술이나 노래 등 길거리 공연은 서로 경쟁하듯 실력을 뽐내고 있다. 아르마스광장 한쪽 편에 위치한 쇼핑가와 고급 레스토랑들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더한다. 광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와서 말을 건다. 내용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사용하지 않을 땐 가방에 넣고 다니라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화려한 모습에 남미에 왔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다시 경각심을 갖고 급히 소지품을 추슬렀다. 특히 아르마스광장에는 소매치기가 많은 편이니 소지품에 유의해야 한다.산티아고 북쪽에 있는 산 크리스토발 언덕으로 향했다. 마푸초강을 지나 ‘산티아고의 홍대’로 볼 수 있는 벨라비스타거리(Barrio Bellavista)에는 세련된 식당과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직접 손으로 만든 공예품이 즐비하고, 고급 레스토랑엔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로 가득하다. 젊음의 거리를 지나 조금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산 크리스토발 언덕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 탑승장이 나온다. 평일 이른 시간이지만 산티아고를 찾은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코스여서 사람들이 줄지어 탑승 순서를 기다린다. 푸니쿨라는 가파른 언덕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데, 많은 사람이 탑승할 수 있도록 계단식으로 층이 나눠져 있다. 탑승장을 떠난 푸니쿨라는 천천히 이동해 전망대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끝에 눈 덮인 안데스산맥이 보이고, 그 아래 빽빽하게 서 있는 빌딩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 꼭대기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산티아고를 굽어 살펴보고 있다. 꼭대기 벤치에 앉아 잠깐 쉬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식혜처럼 흰 쌀로 가득 찬 음료를 마시고 있다. 이 음료는 ‘모떼 콘 우에시오’(Mote con Huesillo)라는 칠레 전통음료다. 복숭아와 설탕, 계피를 함께 넣고 끓여 차갑게 식힌 물에 밀쌀을 넣어 만들었다. 한잔 마셔보니 진한 복숭아 향과 달달함이 목 끝까지 전해진다. 칠레 산티아고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앉아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인 후 언덕을 내려왔다.칠레하면 빠질 수 없는 ‘와인’을 만나기 위해 와이너리 투어를 예약했다. 산티아고 인근에 있는 마이푸 밸리에는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칠레 대표 와이너리인 ‘콘차이토로’를 방문하기로 했다. 콘차이토로 와이너리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와이너리 TOP 10’에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콘차이토로 입구에 도착하니, 견고해 보이는 베이지색 정문과 근사한 저택이 눈에 띈다. 입구에서 받은 스티커를 옷에 부착한 뒤 잠시 기다리니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스티커는 투어에 참석하는 그룹을 식별하기 위해 배부된다. 이를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이너리에 방문하는지 알 수 있다. 투어는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으로 나눠지는데, 온라인으로 신청할 때 해당 언어를 선택할 수 있다.와이너리 투어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콘차이토로 가문의 저택을 시작으로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만날 수 있는 와이너리와 숙성고를 들르고 콘차이토로 브랜드 와인을 시음하게 된다. 우거진 나무 사이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콘차이토로 가문의 저택과 정원을 만날 수 있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세워진 저택은 꼭 언덕 위에 지어진 신전을 보는 것 같다. 저택을 등지고 정원을 바라보면,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정원을 가볍게 산책한 후 옆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이동했다. 콘차이토로 와이너리의 모습은 상상한 그대로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야에 가지런히 정렬된 포도나무와 싱그러운 포도향. 가까이 있는 말벡 품종으로 다가갔다. “한번 먹어봐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으니 가이드는 웃으며 먹을 수 있지만 아직 익지 않았고, 우리가 먹는 포도의 맛과는 달라 바로 뱉을 거라며 겁을 준다. 맛이 궁금했지만 곧 있을 와인 시음을 위해 입안을 깨끗이 해두기로 했다.와인 숙성고는 은은한 조명에 고전적인 실내 장식이 고급스런 분위기를 내고 있다. 일렬로 누워있는 오크통 끝에 뿔이 달린 그림자가 보인다. 저게 뭐지? 하는 순간 불이 꺼지고 사방의 벽에서 애니메이션과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악마의 와인, ‘디아블로’의 스토리를 입힌 것이다. 조용한 숙성고를 재밌는 장소로 바꾼 콘텐츠 창조력에 감탄했다. 하이라이트인 시음에 나섰다. 정돈된 테이블 위에 콘차이토로 와인과 깨끗하게 닦인 와인 잔들이 늠름하게 놓여 있었다. 가이드의 간단한 와인 설명과 함께 시음이 시작됐다. 콘차이토로에서 유명한 돈 멜초와 프리미엄 와인인 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가 보였다.돈 멜초 와인은 설립자의 이름에서 유래한 와인으로 와인 스펙테이터 TOP100에 무려 8번이나 선정돼 국내에서도 명성이 높다. 코로 와인의 향을 음미한 다음 한 모금 삼켰다. 레드와인 특유의 깊은 묵직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와인의 부드러움은 입 안 가득 맴돌았고, 긴 여운과 함께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투어가 끝나고 돌아오는 내내 입맛을 다시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숙소 앞에 있는 마켓을 들렀다. 한 쪽 진열장을 가득 채운 와인들 중 하나를 집어 담고, 함께 먹을 체리와 치즈를 구입했다. 과실의 싱그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화이트와인과 고소한 치즈, 입 안을 상큼하게 만들어주는 달달한 체리까지.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이만한 게 또 있을까.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2017-05-11 11:18:14
멕시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인 ‘과나후아토’(Guanajuato)로 향했다. 출발 전부터 익히 전해들은 과나후아토의 명성 덕분인지 여정의 시작부터 설렌다. 멕시코시티나 과달라하라에서 출발했다면 4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지만, 서쪽 끝인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출발한 탓에 9시간의 긴 여정이 됐다.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간식거리를 잔뜩 구입한 뒤 간이 이불과 침낭 등을 두툼히 챙겨 야간버스에 올랐다. 멕시코 버스의 편안함 덕분에 금방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과나후아토는 1548년 은광이 발견되면서 건설돼 18세기에는 세계 최대 은 생산지로 성장했다. 당시 전세계 은 생산의 60%를 점유할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풍부한 은 덕분에 멕시코의 부자 동네로 거듭난 과나후아토는 축적된 부를 활용, 화려한 저택과 성당을 도시 곳곳에 지었다.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다양한 예술 활동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현재는 폐광됐지만 옛 명성에 걸맞은 건축물과 도심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버스 커튼 사이로 새어나온 햇살이 단잠을 깨웠다. 창밖엔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잠시 후 도착 안내가 나오고, 펼쳐 둔 짐을 추슬러 버스에서 내렸다. 오는 동안 움츠렸던 몸을 한껏 펴고 실어뒀던 짐을 찾았다. 생각보다 차가운 과나후아토의 새벽 공기가 몸을 감싼다.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따스함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기온차가 크게 느껴진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터미널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시켜 잠깐 몸을 녹였다. 과나후아토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이름만 들어도 오싹함이 감도는 ‘미라박물관’(Museo de las Momias)이다. 흔히 볼 수 없는 ‘미라’라는 기이한 소재로 이뤄진 박물관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박물관은 과나후아토 센트로와는 조금 떨어진 산언덕에 위치해 있어 좁은 언덕길을 따라 약 1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곳곳에 적힌 ‘momias’ 표지판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입장료는 성인 1명에 56페소(한화 약 3360원)지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선 사진비 21페소(한화 약 1260원)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입장료와 사진비를 더해도 5000원이 안 되는 저렴한 금액이다. 멕시코의 물가는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박물관은 갓난아기부터 어른까지 총 110여개의 미라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작은 미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나후아토의 건조한 기후와 토양의 특성으로 매장된 시체들은 썩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라가 되는데,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미라 대부분은 묘지 관리비를 내지 못해 이전된 것이다. 유리벽 속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는 미라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손을 모은 채 편안한 표정의 미라부터 아이를 품에 품고 있는 미라,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절규하는 미라까지.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메인 거리를 따라 과나후아토의 센트로로 향했다. 걷는 동안 알록달록한 골목이 눈을 즐겁게 만들고, 거리의 악사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골목을 지나 과나후아토 중심의 라파즈광장(Plaza de La Paz)에 도착했다. 푸른 잔디 사이로 난 길은 잘 정돈된 공원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라파즈 광장 뒤에는 강렬한 노란색이 인상적인 과나후아토 성당이 우두커니 서 있다. 아기자기한 도시의 모습과 상반되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성당이 돋보인다.센트로를 돌아보고 우니온정원(Jardin de la Union)의 벤치에 잠깐 앉았다. 거대한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여행 중 지친 피로를 녹여주는 쉼터다. 정원을 둘러싼 카페에서 달달한 모카 한잔을 시켜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입 안 가득 맴도는 모카의 달콤함은 매섭게 스치던 바람조차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과나후아토의 전경을 보기 위해 삐삘라전망대(Monumento al Pipila)로 향했다.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걷기보다는 ‘푸니쿨라’를 이용하기로 했다. 푸니쿨라 승강장은 우니온 정원과 가까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승강장 1층에서 편도 티켓을 구입하고 승하차장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높은 언덕은 푸니쿨라에게도 힘들어 보인다. 경사진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는 푸니쿨라가 걱정되긴 했지만,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과나후아토의 모습에 불안감은 금세 사라진다. 푸니쿨라에서 내리면 역동적인 모습의 ‘삐삘라 동상’이 기다리고 있다. 광부였던 삐삘라는 독립전쟁 때 횃불을 들고 정부군에 돌격한 독립투사다. 멕시코 독립사에 나오는 영웅 중 한 명인 그는 마치 과나후아토의 수호신처럼 도시를 살피고 있다. 삐삘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과나후아토의 모습은 듣던 대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도시를 둘러싼 산맥과 그 안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파스텔 톤의 집, 시선을 빼앗는 근사한 건축물은 마치 한 폭의 명화를 보는 듯하다. 때마침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는 아련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해질녘 붉게 물든 하늘과 과나후아토의 모습을 수차례 카메라에 담은 뒤에야 삐삘라 전망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어두워진 과나후아토의 밤엔 낭만이 넘친다. 우니온정원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은 음악과 풍류를 즐기고, 낮에 봤던 파스텔 톤의 집들은 잔잔한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또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다. 매일이 축제라고 할 만큼 풍류를 즐기는 과나후아토는 단연 멕시코의 최고 여행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TIP] 과나후아토를 닮은 예술 도시, 산미겔 데 아옌데과나후아토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산미겔 데 아옌데라는 이름의 작은 소도시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1위’로 선정되었을 만큼 빼어난 장관을 자랑한다. 과나후아토가 은광으로 성장했다면 산미겔 데 아옌데는 은 수송로의 주요 거점이 되면서 상업의 중심지로 거듭난 곳이다. 도심 광장을 중심으로 곳곳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과나후아토 못잖게 화려하고 근사하다. 도시가 가장 번창했던 18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멕시코에서 가장 피렌체와 흡사한 도시’라는 평을 듣고 있다.또 골목골목에서 진귀한 예술작품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예술 교육기관들이 산미겔 데 아옌데에 설립되면서 멕시코 예술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 어디서든 다양한 유형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회화나 공예 등을 배울 수 있다.산미겔 데 아옌데는 도심의 문화적 기반, 저렴한 물가, 고산지대의 쾌적한 기후로 인해 북아메리카 은퇴자들의 안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과나후아토에서 멕시코시티로, 혹은 멕시코시티에서 과나후아토로 이동할 계획이라면 중간에 산미겔 데 아옌데를 들러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담아 가는 것을 추천한다.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2017-05-08 17:27:03
여행 중 당초 계획보다 더 오랫동안 과달라하라에서 머물렀다. 배우고 싶었던 스페인어도 공부하고, 한동안 소홀했던 운동도 다니면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몸소 실천했다. 장기여행 중에 겪는 평범한 일상은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멕시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푸에르토 바야르타’는 서부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과달라하라에서 차로 약 3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는 푸에르토 바야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해변이라 불리는 ‘히든비치’(Hidden Beach)로 유명하다. 히든비치는 본래 무인도였다. 멕시코 정부는 이 곳에서 폭파실험을 진행하곤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동굴의 천장이 열려 숨겨져 있던 해변이 오직 하늘에서만 보이는 아름답고 독특한 구조를 갖게 됐다.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장소’로 손꼽히며,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열대기후가 온몸을 감싼다. 높은 습도에 연중 최저기온이 21도라니,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었음에도 이내 땀범벅이 된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펼쳐진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다. 거리 곳곳에서는 익살스러운 모습의 동제 조각들이 눈에 띈다. 일그러진 표정들은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뜨거운 날씨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이곳의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아침저녁으로 운치 있는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부푼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절벽이나 다름없는 높은 언덕뿐이다. 푹푹 찌는 날씨에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니 겁부터 난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낡고 오래된 에어컨에서 나오는 약한 바람조차 소중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매서운 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몸을 감싼다. 노을진 바다를 바라보며 말레꽁(Malecon) 해변을 따라 걷는데 중앙광장인 ‘아르마스’(Plaza Principal de las Armas)에 가까워지니 화려한 불빛들과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하다. 바다 가까이 즐비하게 늘어선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건너편 야시장에서는 먹음직스러운 간식들이 달콤한 향으로 코끝을 유혹했다. 아르마스광장에 위치한 ‘아르코스원형극장’(Los Arcos)에서는 끊임없는 박수와 갈채가 새어나온다. 은은한 조명과 숨죽인 관객들 사이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래 ‘Thinking out Loud’, 바다를 배경으로 한 무대는 한 편의 로맨스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나도 모르게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밤에 녹아들었다. 아침 일찍 마리에타섬으로 향하는 배편을 예약하기 위해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로스 무에르토스 해변(Los Muertos Beach)을 중심으로 리조트와 여행 센터가 가득하다. 마리에타 섬 투어는 선상 점심과 오픈 바(bar), 액티비티를 포함한 1일 투어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었다. 투어 일정에 히든비치도 포함되어 있는지 물어봤지만 안타깝게도 히든비치에 입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히든비치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하루 입장 가능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서다. 결국 마리에타섬 투어만 예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여기까지 와서 히든비치를 못보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괜히 서운했다. 발걸음을 돌려 마리에타섬으로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약 20분 정도 이동해야 하므로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했다. 행선지의 이름을 크게 외치자 맞다는 듯 웃으며 끄덕거리는 운전기사의 모습을 보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지나 대로를 달린 후 인적이 드문 길에 멈춰 섰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운전기사와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여기서 내리라고 알려준다. 언제 봐도 정겨운 멕시코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배에는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오픈 바(Bar)와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무대, 액티비티 장비 등이 알차게 구비돼 있었다. 2층에 올라 따듯한 햇살과 탁 트인 바다를 만끽한다. 포근하게 몸을 감싸는 바닷바람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선착장을 떠난 배는 약 2시간 정도 항해한 뒤 마리에타섬 인근에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작은 보트로 이동해야 한다. 보트는 마리에타섬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구석구석 보여줬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마리에타섬은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동굴처럼 신비롭다. 잠시 후 보트는 히든비치의 입구에서 멈춰 섰다. 입구라지만 두 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동굴만 보일 뿐이다. 안전헬멧을 착용한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작은 동굴로 헤엄쳐 들어가고 있다. ‘저 곳이 히든비치구나.’ 작은 입구를 통해 보이는 히든비치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매혹적이다. 사방을 둘러싼 바위는 마치 성벽처럼 단단하고, 해변은 강렬한 햇살 덕분에 어느 해변보다도 눈부시게 빛났다. 새하얀 모래 위에 누운 사람들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마리에타 섬은 아름다운 바다색과 다양한 산호 등 바다를 즐기기에 매력적인 곳이다. 자유롭게 바다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난생 처음 스노쿨링에 도전했다. 오리발을 착용하고 구명조끼를 단단히 몸에 묶었다. 스노쿨링 마스크를 받아들고 안내자를 따라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고글을 통해 처음 만나본 바다 속은 무서운 한편 아름답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화려한 물고기떼는 허우적대는 나를 놀리듯 스쳐지나간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 같아 몇 번 시도해봤지만 한껏 바닷물을 마신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열심히 바다를 휘저은 탓에 허기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선상에서는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한다. 섬을 배경으로 맛있는 바비큐와 신선한 야채, 칵테일까지 완벽한 선상 파티였다. 함께한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운 사이, 마리에타섬을 떠난 배는 어느새 푸에르토 바야르타 선착장에 도착했다.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배에서 내렸다. 하루 동안 함께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헤어짐은 아쉽고 여운이 남는다. 선착장에 남아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본다. 보일 것 같았던 마리에타섬은 붉은 노을 뒤로 숨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한적한 선착장에서 되새겨본 하루는 마치 달콤한 꿈처럼 아른거린다. 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2017-02-13 15:30:03
1주일간 머물렀던 멕시코시티에서 과달라하라로 떠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 나라에서 처음 방문해보는 버스터미널은 예상외로 크고 깔끔했다. 멕시코에는 넓은 땅만큼이나 다양한 노선과 버스 회사들이 있다. 특히 ‘ETN’과 ‘프리메라 플러스’는 좋은 서비스와 시설 덕분에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고급버스 회사로 꼽힌다. 멕시코시티에서 과달라하라까지 700페소(한화로 약 4만2000원)나 되는 교통비가 부담스럽지만 7시간 장시간 이동인만큼 체력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 버스에 탑승하기 전에는 수화물 검사가 이뤄진다. 공항에서 볼 법한 검색대를 통과한 뒤 꽤 삼엄한 경비 속에 배낭에 있는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받았다. 친절하면서도 깐깐한 모습에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생긴다. 검사 후 나눠주는 간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음료, 빵, 몇 가지 스낵 등 소박하지만 알차게 구성돼 있다. 멕시코의 버스는 듣던 대로 최신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버스 내 무선 인터넷부터 160도로 눕혀지는 의자, 개인 모니터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런 버스라면 7시간은 물론 10시간도 거뜬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버스에 설치돼 있는 모니터로 영화를 보다 잠깐 잠든 사이에 과달라하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다. 터미널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는 택시 중 한 대를 타고 곧장 숙소로 향했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시티를 기준으로 서쪽의 할리스코주에 위치해 있다. 한국인에겐 생소하지만 멕시코 제2의 도시이자 교통의 중심지로 멕시코 서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로 꼽힌다. 고풍스러운 흔적과 함께 멕시코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독립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마리아치, 타피티오댄스 등 멕시코 문화의 본고장으로 가장 ‘멕시코스러움’을 품고 있는 도시여서 꼭 들러야겠다고 계획했다. 다음날 아침 새벽엔 비가 내린 덕분에 거리는 촉촉하고 공기는 상쾌했다.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유독 음식점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른 시간에도 인기 있는 음식점들은 벌써 대기해 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에 다섯번 식사를 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이해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서 멕시코식 오믈렛과 대중 음료인 ‘오르차타’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과달라하라의 센트로(구시가지)로 향했다. 센트로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에 도착했다. 이 곳은 푸른 잔디와 나무, 벤치가 센트로를 찾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광장이라기보단 하나의 큰 공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아르마스 광장을 기준으로 정면에는 돔 지붕과 두 개의 높게 솟은 팔각뿔이 인상적인 과달라하라 대성당(Guadalajara Cathedral)이 마주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과달라하라 주정부청사(Palacio de Gobierno)가 성벽처럼 웅장하게 서 있다. 주정부청사에 들어가기 위해 갖고 온 가방을 검사받은 뒤 방명록에 이름과 동행자 수, 연락처를 기입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던 것처럼 내부도 반듯한 사각형의 성벽처럼 높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청사 내부 곳곳에는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흰 머리에 신부복을 입고 칼을 휘두르고 있는 ‘미겔 이달고 신부’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멕시코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오늘날까지도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멕시코 독립기념일인 9월 16일은 독립을 쟁치한 날이 아니라 이달고 신부가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린 날이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주정부청사 뒤편으로 이동하면서 자유광장(Liberation square)을 지나 데고야도극장(Theatro Degollado)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외부 모습은 마치 그리스신전을 연상케 하지만 내부는 극장에 걸맞게 크고 화려하다. 현존 세계적인 수준의 다양한 공연이 진행돼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데고야도극장을 둘러보고 센트로과달라하라의 끝에 위치한 카바냐스문화원(Instituto Cultural Cabanas)까지 단숨에 이동했다. 이 곳은 19세기 초 고아, 노인, 장애인 등을 돌보기 위해 세워진 복합단지로 규모가 대단하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멕시코 최고의 벽화가인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e Clemente Orozco)의 작품이 예배당을 장식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싼 벽화는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인 색채로 표현돼 잠깐 서 있는데도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예배당 내부에 마련된 의자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누운 채 천장의 벽화를 감상하고 있다. [TIP] 과달라하라의 문화의 날, 화요일을 즐기자 매주 화요일이면 카바냐스문화원을 포함해 과달라하라박물관, 데고야도극장 등 문화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데고야도극장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문화시설들이 센트로 과달라하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하루 동안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센트로과달라하라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세련된 차풀테펙(Chapultepec) 거리를 만날 수 있다. 4차선의 넓은 도로를 중심으로 카페와 레스토랑, 오픈 바(Bar) 등이 즐비해 있다. 주말에 방문한 차풀테펙 거리에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거리 중심에는 형형색색의 장식품과 조각품들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시선을 붙잡고, 곳곳에서 진행하는 마임·마술쇼 등 길거리 공연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잠시 후 거리 한 가운데를 폭스바겐의 비틀이 가득 채운다. 같은 모델이지만 자신만의 특색을 살려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차량의 모습은 예술에 가까울 정도다. 멕시코에는 ‘폭스바겐 비틀의 날’이 있는데, 멕시코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20여개의 폭스바겐 비틀 동호회가 참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단종돼 모습을 찾기 어려운 차량이지만, 멕시코에서는 2003년까지 생산됐으며 현재까지도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눈길이 가는 차량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비틀의 매력을 만끽했다. 밤이 되니 거리 가운데 위치한 분수대에서는 다양한 색의 조명으로 수놓은 분수쇼가 진행되고, 즐비한 바·카페·레스토랑들은 과달라하라의 밤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차풀테펙 거리는 화려하고 흥겨웠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 1만원도 채 안 되는 3ℓ의 넉넉한 맥주까지. 밤을 즐기기 위해 이만한 게 또 어디 있을까. [TIP] 교육의 도시, 과달라하라에서 스페인어를 배우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바로 스페인어다. 특히 중·남미를 여행하기 위해선 초보적인 스페인어가 필수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쪽으로 이동할 계획이라면 멕시코 초입인 과달라하라에서부터 스페인어 배우기를 시작하라고 추천한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만큼이나 체계적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차풀테펙 거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페인어 학원들이 위치해 있다. 한 달에 약 2000페소(한화 약 12만원) 정도의 저렴한 금액으로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이나 스페인어 유학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과달라하라를 찾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2017-02-13 15:09:14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멕시코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평소 같았으면 새로운 나라를 방문한다는 생각에 들떠 즐거웠겠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고, 치안이 불안정한지라 괜히 긴장됐다. 그럼에도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힌다는 ‘평판’에 이끌려 멕시코공항에 안착했다. 대기 중인 택시를 불러 만국 공통어인 ‘보디 랭귀지’로 흥정한 뒤 숙소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바라본 낯선 풍경들이 멕시코에 도착했음을 실감나게 한다. 좁은 골목에 택시가 멈췄다. 짐을 꺼낸 후 골목을 둘러보는데 아무리 봐도 숙소의 입구처럼 보이는 문이 없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골목길 건너편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알려준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문에 숙소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라시아스!’ 미리 외워 둔 스페인어로 감사를 표하고 숙소로 들어섰다. 기대보다 호의적인 반응에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 멕시코시티의 중심지, 소깔로광장(Playa de Zocalo) 숙소에 짐을 풀고 카메라와 지도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정돈된 거리와 눈에 익숙한 프랜차이즈들이 여느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과 흡사하다. 소깔로광장으로 향하는 후아레즈거리(Av. Juarez)에 위치한 아라메다공원을 잠깐 들러본다. 대각선과 직선이 일정하게 분산되는 산책로가 공원을 더 멋지게 만들어준다. 10월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날씨에, 분수대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공원 곳곳에 ‘Wi-Fi’(와이파이) 표시를 볼 수 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연결해 본다. 공원 전체에서 무료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놀랍고 한편으로 반가웠다. 잠깐 벤치에 앉아 인터넷을 즐겼다. 공원 옆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한 천사 조각상과 노란색부터 붉은색까지 그라데이션 돼 있는 고풍스러운 예술궁전이 눈에 띈다. 이 곳을 거쳐 약 10분 정도 상점거리를 지나 드디어 소깔로광장과 마주했다. 소깔로광장은 여행자들의 집결지이자 오랜 세월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도심지다. 대단한 규모의 광장을 중심으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대통령궁 등 멕시코시티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 북쪽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240여 년의 오랜 건축 기간으로 고딕·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한데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메트로폴리탄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소깔로광장 동편에는 반듯한 사각형의 대통령궁이 위치해 있는데,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대기해있는 모습이 보인다. 잠깐 들어가 볼까 고민하던 차에 신분증만 있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며 기다리고 있던 멕시코 사람들이 관람을 독려한다. 동양인이 멕시코를 방문하며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제법 신기한 모양이다. 깐깐한 짐 검사를 거친 후 내부로 들어갔다. 소깔로광장보다 더 넓은 규모로 박물관부터 멕시코의 역사가 그려진 벽화, 다양한 조각과 분수로 채워진 정원 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테마로 구성돼 있다. 대통령궁을 둘러보고 다시 광장의 상점 거리로 갔다. 공항에서부터 소깔로광장까지 거침없이 이동한 탓에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향긋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고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기다리고 있는 소위 ‘맛집’으로 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멈췄다. 메뉴판에는 모든 메뉴가 6페소라고 적혀 있고, 사람들은 종류별로 하나씩 주문하고 있었다. 고민하다가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음식을 하나를 주문했다. 작은 그릇에 노릇한 타코를 건네받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양파와 고수, 양배추 샐러드가 수북이 쌓여 있고 갖가지 소스가 마련돼 있었다. 타코 안에 양파와 양배추 샐러드를 먹고 싶은 만큼 넣고 괜찮아 보이는 소스 하나를 뿌려 한 입 먹었다. 숯불에 막 구운 듯한 고기에 찰진 또띠아, 신선한 야채가 어울린다. 무엇보다 음식 하나의 가격은 단돈 ‘400원’이다. 여행자들이 멕시코를 찬양하는 이유를 조금씩 알 것 같다. #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0㎞ 정도 떨어진 곳에는 ‘테오티우아칸’이라는 고대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테오티우아칸은 ‘신들이 머문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 곳에 정착한 아즈텍 사람들은 이곳을 ‘신이 지은 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1시간 정도 이동하니 테오티우아칸 입구다. 정면에는 구름과 맞닿아 있는 듯 높게 솟은 ‘태양의 피라미드’가 기다리고 있다. 도시 중심으로 이동하니 널찍한 길이 나온다. ‘죽음의 길’이라고 불리는, 제물이 다니는 신성한 길이다. 그 길의 왼쪽 끝에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달의 피라미드’가 있다. 도시를 떠받드는 이들 두 피라미드가 모두 신을 위해 지어졌다니, 가히 ‘신들의 도시’라고 불릴 만하다. 테오티우아칸의 전경을 보기 위해 태양의 피라미드로 오르는 대기열에 합류했다. 가까이서 바라본 피라미드 계단은 꽤 높고 가파르다. 약 20분 동안 오르기와 숨 고르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섰다. 아래에 있을 땐 몰랐던 테오티우아칸 전체의 모습이 서서히 윤곽을 나타낸다. 이 광활한 도시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있었다니,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이 피라미드 위에서 신께 무엇을 바랐을까? 왜 그들은 도시의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졌을까? 피라미드 끝에 걸쳐 앉아 잠시 그들과 도시의 모습을 그려본다. 여행을 마치고 오후 6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숙소 앞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방문했는데 역시 의사소통이 문제다. 햄버거 하나 주문했을 뿐인데 종업원의 질문이 더 많다. 알아듣지 못하자 메뉴판에 있는 그림을 활용하여 설명해준다. 끝까지 웃으며 열심히 설명해준 노력이 고마워 소소한 팁을 건넸다. 적은 금액이지만 반기는 모습에 왠지 뿌듯하다. 저녁을 해결하고 해가 저물어가는 멕시코시티의 모습을 보기 위해 혁명기념탑 전망대에 올랐다. 네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모습의 기념탑에는 멕시코 혁명 영웅인 네 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고 각각의 기둥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 멕시코시티의 모습을 둘러본다. 넓은 도로 사이로 비치는 붉은 해질녘이 나름 운치 있다. 전망대에 있는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어두워지길 기다린다. 화려한 불빛은 아니지만 은은하면서도 옅게 퍼지는 가로등 조명이 멕시코시티의 야경을 아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2016-11-28 19:34:57
#. 파란나라를 보았니? : 쉐프샤우엔 부르노 바르베(Bruno Barbey)’의 사진집 ‘마이 모로코’(My morocco)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하얀색 페인트로 덧칠한 벽과 푸른색으로 물든 바닥을 가진 골목길 속, 아이의 손을 잡고 쫓기듯 황급히 도망치는 여인의 사진이다. 여인의 상황을 추측하다 문득 배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모로코의 많은 도시들이 메디나(성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형성된 시장과 마을)의 역동적인 이미지로 대표된다. 하지만 이곳 쉐프샤우엔은 여유로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페스(모로코어 Fes, 영어 Fez 페즈)에서 CTM 버스로 3시간을 이동하면 리프산맥 봉우리에 걸쳐 있는 조그만 마을에 도착한다. 해발 600m 고지에 있는 이곳은 시장이 아닌, 사람들이 생활하는 거주지다. 집의 색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지대에 있고 좁은 골목길이 마을의 상징이라는 부분이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유사하다. 메디나 중심까지 약 20여분을 걷는다. 주변 건물은 짙은 인디고 블루 색상과 하얀색으로 도배돼 있다. 심지어 집 대문과 상점 앞 진열된 바구니조차 파란색이다. 마치 바다 속을 헤엄치는 기분마저 든다. 과거 스페인 그라나다 지방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후 그들의 영적인 색상으로 마을을 물들였다고 한다. 골목길 어딘가에는 스머프들이 뛰어 놀 것만 같다. 이튿날 숙소 부근 상점에서 ‘질레바’(모로코 전통 민속의상으로 긴 외투 모양의 끝에 모자가 달려 있다)를 구매한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감촉과 가벼움에 맞춤옷 같다. 현지인으로 빙의한 채 골목길을 거닌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아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골목길을 걷다 하늘을 쳐다본다. 맑은 하늘의 푸른색과 듬성듬성 떠 있는 구름의 흰색이 마을과 절묘할 정도로 어울린다. 이런 모습에 어떤 관광책자는 이곳을 모로코의 ‘산토리니’라 표현했다. 마을이 유명해지자 이곳은 연중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관광객이 많은 오후 시간대를 피해 다시 골목길을 목적 없이 걷는다. 그래도 길을 잃어버릴 확률은 낮다. 내리막으로 향하다 보면 쉽게 광장을 마주한다. 그곳은 마을의 시작점이다. 머문 며칠 동안 연중 비가 왔다. 비가 오는 아침에도 의식 없이 숙소를 나온다. 건물의 파란 색상이 빗물에 녹은 듯 더욱 찐하다. 깊은 심해로 들어온 것 같다. 은은한 블루색의 편안함은 적시는 빗방울 덕에 진한 공허함으로 변한다.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는 건 항상 같은 곳을 지키는 고양이 뿐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마을이다. 하지만 여유롭게 사색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힐링된다. 잠시 시간을 잊은 채 이곳에서의 휴식은 다음 여정을 위한 마음의 보충이다. [TIP 1] 쉐프샤우엔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Bouzaafer’로 불리는 언덕이 있다. 마을 동쪽 ‘밥 엘 안사르’(Bab el-Ansar) 문으로 나가 계곡과 빨래터를 지나 30분 정도 오르면 된다. 그곳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의 전경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단 이곳을 오를 때 따라오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얼굴은 해골 형상을 하고 이가 상당히 빠진 자라면 100% ‘해쉬쉬’를 권한다. 모로코는 마리화나의 최대 생산지로 해쉬쉬가 바로 마리화나이다. [TIP 2] 모로코 현지인들은 사진을 찍히면 영혼을 뺐긴다고 여긴다. 특히 도심보다 시골 동네에서 이같은 경향이 짙다. 장사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관광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사진을 찍을 일이 있다면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맛집] 이 곳의 맛집으로는 ‘카사 알라딘’(Casa Aladin)을 꼽을 수 있다. 론리 플래닛에 나온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광장 중심에 위치해 있다. 야경을 보기에도 훌륭하고, 음식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포근한 느낌의 내부는 여행자들이 분위기를 내기에 적합하다. 타진, 쿠스쿠스 등 기본 음식도 팔지만 치킨을 볶아 잘게 자른 후 파이를 얻어 양념을 낸 파스텔라(Pastella) 음식도 권할 만하다. 현지 음식점을 찾을 때는 가이드북을 주로 참고한다. 하지만 뻔한 음식에 싫증이 나거나 진정한 ‘로컬음식’에 도전하고 싶을 때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로 북적인 곳으로 들어간다. 관광객 하나 없는 현지인 틈에 있으면 마치 그곳의 거주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느 책자에도 나오지 않은 내가 발견한 로컬 음식점을 하나 소개한다. 메디나 서쪽 외곽을 둘러싼 길(길 이름도 식당이름과 동일하다)에 위치하고 있는 ‘몰레이 알리 벤 라시드’(Moulay Ali Ben Rachid) 레스토랑 이다. 이곳은 생선튀김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허름한 간판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해산물이 잔뜩 진열돼 있다. 오징어링, 새우튀김, 튀긴 생선, 감자튀김, 샐러드, 밥 등 배불리 시키고 먹어도 50디르함(한화 약 8000원 수준)이다. 단 메뉴판은 사진 없는 현지어와 스페인어로 되어 있기에 번역앱을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미로 도시 : 페스 ‘세계 최대의 미로 도시’, 과거 천년전 모로코의 수도 페스를 부르는 말이다. 야간버스 이동에 체력은 이미 바닥이다. 친절한 택시 기사 덕분에 블루게이트까지 무난히 도착했다. 하지만 숙소까지 찾아가는 방법이 문제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켠다. 졸린 눈을 비비고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도무지 사방팔방 가지로 갈라져 있는 길 때문에 위치감각이 사라진지 오래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을 매고 주변을 몇 바퀴나 돌고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한다. 긴 거리를 매번 이동하는 것도 힘들지만, 도착 후 숙소까지 무사히 가는 것도 꽤나 여행자를 지치게 만든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메디나 안에는 약 9000개의 골목이 있다. 메디나는 크게 2구역으로 구분된다. 초입 부분에는 상점과 가죽을 염색하는 테너리가 있고, 그 뒤로 현지인들이 사는 생활 터전이 있다. 블루게이트를 지나 입구로 들어간다. 골목에는 생활용품, 수공예품, 전통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뿐만 아니라 목수, 대장장이 등 다양한 사람들도 눈에 띈다. 골목의 벽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빛바랜 모양은 시간을 중세로 되돌린 듯 착각마저 든다. 골목은 그리 넓지 않다. 마치 인도의 바라나시처럼 비좁다. 하지만 그곳처럼 지저분하지 않다. 또 골목에 소가 다니지 않는다. 가끔 가죽을 싣고 다니는 당나귀만 보일 뿐이다. 1시간 정도 골목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슬슬 역겨운 냄새가 올라온다. 악취는 테너리 부근에 왔음을 말한다. 지나가는 꼬마에게 장소를 물어본다. 가죽제품이 진열된 상점 3층으로 올라가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게 주인이 민트 잎을 건넨다. 그리고 코에 대고 있으라는 시늉을 한다. 테너리는 가죽을 염색하는 작업장이다. 수백년간 이어져 온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죽을 염색한다. 흰색의 통에서 가죽을 세척하고 각양각색 염료 통에서 염색한다. 염료는 화약약품을 쓰지 않고 비둘기똥, 소 오줌, 동물 지방 등을 사용한다. 염료의 지독한 냄새에 본능적으로 잎사귀를 코에 가져간다. 주인에게 약간의 팁을 주고 좋은 자리를 선점한다. 염료통에 발을 담그고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는 이들 몇몇이 보인다. 하지만 오후 3시가 넘어 작업자들이 많지는 않다. 작업은 보통 오전 이른 시간에 시작해 오후 3시 이전에 대부분 끝난다고 한다. 여행 계획을 가진 사람들은 꼭 참고할 사항이다. 이곳에서 염색 작업이 끝난 가죽들은 건물 곳곳에 걸려 있는 긴 줄에 빨래처럼 널린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입었던 가죽 옷과 가방 등을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새삼 복잡하고 힘들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곳을 빠져 나와 미로 같은 골목을 거닐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진다. 시간의 흐름조차 필요 없는 공간에서의 하루는 더 없이 빨리 간다. 페스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유럽 여행을 위해 스페인으로 향한다. [TIP] 때론 여행이란 호객꾼과의 전쟁이다. 모로코의 관광도시 페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접근하는 사람도 호객꾼일 가능성이 99%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들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복잡한 페스의 메디나를 여행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나의 공간적인 능력을 믿고 홀로 다니는 방법, 현지 꼬마 아이(또는 호객꾼)를 이용하는 방법, 숙소와 연계돼 있는 가이드를 이용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나는 첫 번째 방법을 선호하지만, 가끔 두 번째 방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기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연계돼 있는 도자기 상점, 가죽 상점을 자주 들르고 무리한 팁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잖아 유의해야 한다. 이런 경우 일단 골목길을 서성이는 꼬마아이를 따라간다. 너무 멀리까지 가지 말고, 악취가 나면 잽싸게 옆길로 빠지거나 다른 일행을 만나기로 했다는 등의 핑계를 댄다. 물론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큰 나의 덩치와 지저분한 인상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들의 심리를 이용한 방법으로 다소 얍삽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호객꾼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객꾼을 호객으로 만드는 나만의 전술이다.
2015-12-15 11:43:34
여성들에게 ‘모로코’의 이미지는 고급 모로칸 오일이나 품질 좋은 가죽원단 등의 생산지로 남아 있다. 이 조차도 관심 없는 남성에겐 모로코는 국가대표 친선 축구 경기 때나 들어봤을 법하다. 다소 생소한 곳으로 모나코와 얼핏 헷갈려 하는 이도 적잖다. 아프리카에 있지만 유럽에 속한 나라처럼 느껴지는는 지리적, 정서적으로 아리송한 경계에 있는 모로코 왕국으로 향한다. 이집트를 떠나 5시간의 비행으로 모로코에 도착했다. 이곳을 선택한 것은 중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각 도시의 메디나(이슬람의 제2 성도)를 거닐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모로코 남부 사하라 사막에 누워 밤새 무수한 별을 세어보고 싶었다. 거추장스러운 이유를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에도 다음 예정지인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결국 나는 또 이슬람 국가를 방문해야 했다. 도착 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금세 사라졌다. 카사블랑카공항에서 마라케시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차창 밖 풍경에 넋을 잃자 2등석 기차 의자 특유의 딱딱함은 얼마 되지 않아 무뎌진다. 아프리카의 허름함이 없다. 기차는 세련된 건물들을 지나 녹음이 짙은 평원을 배경으로 달린다. 청명함을 대변하는 푸른 하늘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포근함마저 느낀다. #. 마라케시의 고동치는 심장 : 엘프나 광장 마라케시의 중심으로 종일 인파로 북적이는 곳이 ‘자마 엘프나 광장(Place Jamaa al-Fna)’이다.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모여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다. 뱀으로 기교를 부리는 사람, 현지 무용을 추는 사람, 곡예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 사이로 마차와 말·사람·수레 등이 쉴 새 없이 다닌다. 이런 모습을 구경하는 관광객이 더해져 항상 역동적이며 활기차다. 광장 한 쪽으로는 포장마차처럼 생긴 노점이 많다. 목마름에 문을 연 오렌지주스 노점으로 향한다. 주먹보다 큰 크기의 오렌지를 현장에서 바로 갈아준다. 시원함이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그만이다. 광장이 가장 잘 보일 것 같은 높은 건물을 찾는다. 한 건물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허름한 건물의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한다. 광장의 전경을 보기에 적합한 곳이라 이미 많은 이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곳에도 자릿세를 받는 이들이 있다. 입장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음료수를 사야만 한다. ‘이런 사기꾼들!’ 환타 하나를 고른다. 난간 테라스 앉는다. 위에서 바라보니 광장은 또 다른 느낌이다. 해가 광장 끝의 ‘쿠투비아 모스크탑’ 너머로 오늘 하루의 종막을 알린다. 이 곳은 마라케시의 상징이라 불리는 건물로 길잡이의 중심이 된다. 어둠이 찾아오자 노점들이 하나씩 불을 켜기 시작한다. 광장의 화려함은 극대화된다. 노점은 슬슬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먹을거리 장사가 열린다. 현지인의 음식을 맛보기에 이만한 곳은 없다. 즉석에서 불판요리를 하는 노점에 자리를 잡았다. 옆 테이블을 슬쩍 쳐다보고 그와 똑같은 음식을 주문한다. 해가 떨어진지 한참 지났지만 광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마치 대학 축제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광장의 분위기에 상기돼 있다. 광장의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이 도시 현재의 모습이 보인다. 모로코 전통 민속의상으로 긴 외투 모양의 끝에 모자가 달린 ‘질레바’에 히잡을 쓴 엄마 옆에 반바지를 입은 딸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는 마치 해리포터의 고깔모자가 달린 넓게 떨어진 옷을 입은 것 같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메디나의 고동치는 심장, 엘프나 광장은 역동의 모로코 현실을 가장 보여주는 곳이다. [TIP 1] △마조렐 정원 : 프랑스 장식 미술가가 설계한 식물원으로 마라케시 도심에 있다. 대나무 숲과 선인장, 연꽃잎으로 가득한 연못 등이 역동의 마라케시와는 상반된 분위기를 낸다. 또 정원 내의 저택은 다양한 식물들 속의 아름다운 공간미를 창조한다. 현재 명품 브랜드인 이브 생 로랑의 소유지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먹을거리 : 모로코의 전통음식으로는 쿠스쿠스와 타진이 대표적이다. 쿠스쿠스는 삶은 호박과 양배추, 당근 등의 채소와 부드러운 고기를 넣어 찐 음식으로 재료들이 어우러지며 만드는 쫀득함과 풍요로움이 일품이다. 타진은 도자기 그릇에 닭, 양, 쇠고기, 생선 등과 각종 채소를 넣고 뚜껑을 덮어 고아 만든 요리다. 양고기에 거부감이 없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 사하라에서 전하는 메시지 모래언덕에 묻혀 노란 세상을 보고 있으면 잡념이 온전히 사라진다. 극도의 단순함에서 오는 절대적 미는 생각을 집중하기에 좋다. 나는 다시 한 번 사막으로 떠났다. 사하라는 사막이라는 뜻의 아랍어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으로 사막의 종점이라 할 수 있다. 하루 반나절을 꼬박 달리는 힘든 여정이다. 어느덧 알제리 국경부근 사막에 도착한다. 이집트 ‘바흐리야’ 마을에서 구매한 바둑판무늬의 숄을 꺼낸다. 그것을 어깨와 머리에 둘러매고 베르베르족 유목민처럼 한껏 멋을 낸다. 낙타를 타고 조금 이동하니 사막 한가운데 도착한다. 어린아이가 기쁨에 겨워 짐을 팽개치고 언덕으로 달린다. 밟으면 움푹 들어가는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낀다. 하지만 정상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욕심을 부리는 나에게 지시하듯 속도를 낼수록 나의 발은 점차 깊게 빠진다. 몸은 땀에 흠뻑 젖었지만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나의 입 꼬리는 올라간다.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듯 지그재그 형태로 오른다. 드디어 모래 언덕 정상에 도착한다. 때마침 넘어가는 해가 사막의 모래 빛을 묽게 만들어 황홀함 마저 든다. 가까워진 다국적 친구들과 잠시 이 순간을 기억한다. 다시 깊은 상념에 빠진다. 인도에서 시작한 나의 여정은 어느덧 이곳까지 왔다. 여러 문화를 체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행 중 나의 환경은 항상 바뀌었다. 그러기에 매 순간은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 있었다면 몇 달 동안 발생할 일들이 하루에 모두 일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선택에는 항상 책임이 따랐다. 그것은 나의 여정(미래)과 직결되고 내가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과도 맞물린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또 다른 대안에 직면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매 순간 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레 신중한 선택을 하게 됐고 결과에 대한 당연한 책임을 가지게 됐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혹자는 이같은 이유에서 여행을 ‘인생의 압축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여행 중 만난 주변사람을 떠올린다. 생각보다 세계 곳곳에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은 드물었다. 간혹 만난 장기 여행자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사직자였다. 반면 외국인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휴가를 길게 얻어 다녔다. 특히 부활절 같은 시즌에는 일주일씩 시간을 내는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젊은 사람들이 다 내려놓고 여행을 떠난다? 한국에서는 사회구조와 조직체계의 특수성 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앞서 솔직히 보수적인 우리나라의 조직사회가 싫었다. 하지만 막상 타국의 삶과 문화 수준을 보니 우리나라가 그만큼 편하고 살기 좋다는 것도 느꼈다. 서서히 바뀌고 있다지만 여전히 일을 목적으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삶의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자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모님과 주변의 친구들 덕분에 그 만큼의 혜택을 얻고 사는 것이다.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막상 많은 나라의 삶을 보니 나의 불평과 불만은 배부른 소리였다. 나의 주변사람들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가방의 노트와 펜을 꺼내 조심스레 적어본다. ‘그대들이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대한민국 청년들 파이팅!’ 다시 돌아가면, 그들과 때론 경쟁하고, 때론 웃으며 동지가 되어 즐겁게 삶을 사는 게 나의 역할인 것 같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다 있다’라는 이상한 결론에 허탈한 웃음마저 나온다. [TIP 2] △서사하라 사막투어 : 마라케시 광장에서 큰 도로로 이어지는 메인 거리에는 많은 사파리 투어 회사가 있다. 이 중 ‘사하라 익스피디션’(Sahara Expedition)이 가장 유명하다. 거리에는 많은 삐끼가 있고, 이들은 소규모 사파리 회사로 여행자를 유인해 커미션(수수료)을 받으니 유의해야 한다. 투어는 마라케시에서 400㎞ 정도 떨어진 장거리를 이동한다. 힘든 여정이지만 아틀라스 산맥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은 지루함을 없애주기에 충분하다. 다국적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점도 좋다. 투어가 끝나면 차량으로 복귀하거나 현지에서 타 지역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라마단 : 이슬람 국가의 라마단 기간은 이슬람력으로 9월의 한 달이다. 이 기간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고 매일 기도를 드린다. 물론 여행자는 제외다. 하지만 라마단 기간 동안에는 많은 볼거리와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제한된다. 모로코 여행을 고려한다면 라마단 기간을 피하는 게 좋다. 지역과 교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16년 라마단은 6월 6일~7월 5일까지다.
2015-11-25 11:33:21
#. 여행자의 무덤 : 다합 이집트 다합에서의 생활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지구의 75%는 물로 구성돼 있고, 물 속 세상은 물 밖의 세상과 또 다른 곳이었다. 더 늦기 전 이런 세상을 알게 해 준 다합과 나의 도전에 감히 박수를 보낸다.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출입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 몇 걸음만 걸으면 문이 활짝 열린다. 다른 다이빙 명소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굳이 보트를 타고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해안이 남태평양의 어느 환상적인 섬에 와 있는 것 같다. 출입문을 조심스레 열면 알록달록 산호초와 가지각색 물고기의 향연이 앞에 펼쳐진다. 잠시 그것들을 쳐다보며 멍하니 정신이 팔린다. 이윽고 세상 밖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극도의 고요함이 마치 우주에 홀로 있는 것 같다. 나는 다합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인적 없는 해안에서 스노클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물 속 세상의 주인공들이 아침잠에서 미처 깨지 않았다. 내가 내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럽다. 시간이 지나자 깨어나는 그들이 나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응답하듯 환하게 웃으며 오늘 하루도 이곳에서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다합은 이집트 동부지역 시나위 반도 휴양도시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에게는 휴양지로 알려졌다. 칙칙함을 상징하는 나라의 색과는 전혀 다르다. 결코 이집트 같지 않다. 버스로 이동할 경우 카이로에서 8시간이 넘도록 야간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이동 중에는 최소 두세 차례 이상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로부터 소지품 검사를 받는다.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비행기를 이용하는 게 좋다. 다합에서 택시로 1시간 거리에 샴웰세이크(공항명 SHH) 공항이 있다. 다합은 힘들게 도착한 여행자에게 그만큼 보상을 한다. 지상은 낙원이 따로 없고, 물속 세상도 화려하다. 주변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하다. 연중 날씨도 좋은 편이라 시기에 상관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장기여행자들이 여행 중반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문한다. 나도 유럽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잠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곳에는 해안을 따라 다이빙숍과 숙소가 늘어서 있다. 육지에도 사막에서 볼 수 있는 모래언덕이 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축제라는 알코올을 마신 듯 행복해 보이고, 해안가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이들은 여유가 넘쳐난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많은 아카데미가 저렴한 가격에 숙소를 제공한다. 보통 5일 일정으로 오픈워터와 어드벤스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 이후 나이트록스 과정과 마스터과정을 지원할 수 있으나 시간이 꽤 소모된다. 자격증 시험은 이론과 실기 시험이 병행된다. 물 속 세상은 밖의 것과는 전혀 다르기에 많은 이론이 필수다. 기본 자격증을 획득하는 5일 동안 일과시간에는 수중에서 하루 3회 기본 기술을 배우고, 저녁에는 이론 수업을 병행한다. 만만찮은 일정이다. 보통 점심은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거나 다이빙 직후 해안 노천 식당에서 해결한다. 저녁은 자격증 과정을 이수하는 수강생들끼리 돌아가면서 요리를 해먹는다. 이후에는 담소를 나누거나 기타를 치는 등 음주가무를 즐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캐년, 블루홀(다이빙 포인트 명칭) 등 총 11회의 다이빙 실습과 이론 시험을 통과해 어드벤스 자격증을 발급받았다. 이후 며칠간 쉬면서 해안에서 선탠하거나, 스노클링에 나서며 여유롭게 보냈다. 이후 다른 이들과 함께 펀 다이빙(배움이 아닌 즐기는 의미의 다이빙)에 도전했다. 다이빙 기록지의 페이지가 채워질수록 수중에서 여유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진다. 물 속 세상의 매력에 흠뻑 취한다.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난파선을 볼 수 있는 ‘띠슬곰 투어’와 밤 바다의 고요함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나이트 다이빙’을 꼽을 수 있다. 다합에는 최소 몇 주 이상 지내는 것을 추천한다. 많은 이들이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찢어 버리기도 하는 여행자의 무덤 다합, 언젠가는 꼭 다시 갈 것이다. [TIP 1] 유의사항 1일 3회 이상 다이빙은 피해야 한다. 체력 소모가 큰 해양스포츠다. 비행 하루 전에는 다이빙을 금지하고, 전날 과한 음주는 물 속 세상을 느끼기에 위험하다. 기본 기술을 익혔더라도 다이빙 시 꼭 파트너와 동행해야 한다. 물 속은 기압의 변화가 커서 수심 20m 이상 다이빙할 때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나도 어느 정도 숙달되기 전까지 항상 이퀄라이징 실패로 고생했다. 매번 날숨을 과하게 쉬어 콧속 미세혈관이 자주 터져 물 밖으로 나오면 코피가 줄줄 흘렀다. 특히 산호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다이버 최소의 매너다. 10년에 1㎝밖에 자라지 않는 산호를 파괴하는 행동은 금해야 한다. [TIP 2] 다이빙 자격증 획득 비용 (시기와 샵 마다 차이가 있음. 2013년 기준) - 오픈워터 + 어드벤스 = 440달러, 나이트록스 = 100달러 - Fun Diving : 30달러/1회 - Trip Diving : 100~150달러/1일 #. 북아프리카의 유럽 : 알렉산드리아 애초에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할 생각은 없었다. 다합 숙소에서 우연히 한 여행자를 만나기 전에는 솔직히 그런 도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숨어 있는 지중해의 진주로 유럽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어.’ 그의 호평에 이집트를 떠나기 전 여정에도 없던 이곳으로 향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제2의 도시로 혹자는 중동지역에서 여름이 가장 멋진 곳이다. 이곳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거점이었다. 이집트 점령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따 이곳을 수도로 새로 건설했고 이후 그리스·로마시대 이집트 문화의 중심지였다. 카이로 람세스역에서 19파운드(한화 3000원)을 내고 2등석 기차에 올라탄다. 어설프게나마 바다가 보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호텔 방을 1박에 60파운드(한화 9000원)로 잡는다. 짐을 침대에 던지고 이 도시의 찬사에 대한 궁금증에 서둘러 거리로 나선다. 도시는 해안을 따라 형성돼 있다. 중심지에는 트램이 다니고 건물 느낌은 유럽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자세히 쳐다보면 지저분하고 낡아 있다. 역시 이곳은 이집트다. 해안을 따라 놓인 길을 걷는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나의 뺨을 스친다. ‘오늘도 낯선 곳에서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다니.’ 감사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의식처럼 중얼거린다. 해가 질 무렵 해안가 어느 커피숍에 들어간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 야외 테라스에 앉는다. 초라한 외관을 만회하려는 듯 멋지게 다리를 꼬고 지나가는 차와 사람을 구경한다. 이집트에 온 후 여행자를 만나지 못해 혼자만의 시간이 유독 늘었다. 다시 한 번 이번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떠올려본다. 미생이라 자초한 이번 여행의 선택이 과연 최선인가, 합리적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다. 다음날 도시 몇 곳을 더 둘러본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카이트베이 요새 등 주요 관광지를 의미 없이 훑어본다. 장난감 성곽처럼 생긴 요새의 외부를 천천히 걷는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가슴 속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현지 관광객도 많다. 검은 히잡을 쓴 현지인들도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빼꼼히 눈만 내민 채 카메라 셧터를 누르는 모습이 어느 여성과 다르지 않다. 성곽 모퉁이에 걸터앉아 멍하니 낚시하는 이들을 바라본다. 나의 남은 여정에 대한 고민과 정해지지 않은 본질적인 답만을 추궁해본다. [TIP 3] 알렉산드리아 명소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 2300년 전 시대에 지어진 도서관으로 지중해 지역 지식의 원천이자 과학자들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했다. 현재 리모델링 후 일반인도 운영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 카이트베이 요새 :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던 자리다. 현재 이슬람 사원과 해군 박물관이 남아 있다. 이곳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데 최적의 장소다. 이밖에 콤 엘 데카, 스탠리 대교, 국제회의센터 등 볼거리가 있다. 근교의 킹 마리우트, 아부 미나 등 휴양도시도 다녀볼 만하다.
2015-11-16 11:27:27
찬란한 과거 유산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유혈사태와 국경지대 내전으로 이집트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매년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여정에서 이집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 대한 관심, 이집트 서부 사하라 사막 체험, 여행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세계 3대 블루홀 포인트 ‘다합’ 탐사 등을 위해서다. 낙후된 시설과 칙칙한 사막 모래가 전부가 아닌 오색빛깔 모습을 지닌 이집트로 떠났다. #. 의심병 : 도착 공항은 시내 중심에서 20㎞ 이상 떨어져 있다. 하지만 공항까지 연결되는 지하철은 없다. 현재 지하철 3호선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그들의 성격상 언제 완공될 지는 미지수다. 별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아니면 터무니없이 비싼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방문한 2013년 6월 무렵, 이곳은 혁명 이후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공항에서 나와 터미널1에 정차중인 버스에 올라 타흐릴광장(Tahrir Square)으로 향하는지 물어봤다. 운전자는 정색하며 내리라고 손짓한다. 지난밤 알아본 바로는 분명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 중 하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버스에서 내리자 낯선 아저씨 한 명이 다가온다. 다짜고짜 나를 부근 매점으로 끌고 가 그 곳의 TV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킨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이 ‘LIVE’의 문구와 함께 내 눈에 들어온다. 순간 후진국에서만 생기는 의심병이 생긴다. ‘이것들이 TV 채널까지 가짜로 만들어서 나를 속이려고 그러나?’ 일단 예약한 숙소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이곳으로 나를 데리고 왔던 낯선 이에게 휴대폰을 빌렸다. 잠깐 통화가 끝난 후, 모든 게 사실이란 게 밝혀졌다. 실제 매주 금요일 타흐릴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그곳을 경유하는 버스와 지하철은 전면 중단된다. 별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 심각한 나의 모습을 감지한 그는 갑자기 밝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한다. 그렇다. 그는 택시기사였다. 휴대폰까지 빌려 사용한 이상 어쩔 수 없다. 최선의 네고(negotiation의 앞부분 발음을 따온 말, 협상이라는 뜻)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가야만 한다. 어렵사리 지하철 전동차에 올라탔다. 아프리카의 지하철은 어떤 모습일까 평소 궁금했다. 객차 안에는 낡은 봉이 있고 의자들이 양 옆으로 마주보고 배치돼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지하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낡은 창문과 창문 사이에 비치된 먼지 가득한 선풍기의 모습은 가히 명물이다. 몇 정거장을 이동해야 하는지 지도를 한참 보고 있는데 유독 주변에서 나를 쳐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객차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간혹 남성이 1~2명 보였지만, 무관심한 듯 눈길을 주지 않는다. ‘카이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인가 봐’ 전동차가 지하철역을 통과할수록 매번 여성들만 타고 내린다. 그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목적지인 ‘엘 마디’(El Maadi)역에 내린다. 객차에서 내리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표시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내가 탄 칸은 여성전용이었다. 실제로 카이로 지하철의 맨 앞 두 칸은 여성전용으로 우대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에서만 가능한 시스템이다. 흥미진진한 도착이다. 택시 기사와 TV 화면까지 의심하고 여성전용 칸에서 뻔뻔하게 원숭이가 될 줄이야. #. 혼돈의 카이로 : 검정 카이로의 도로엔 차선이 필요 없다. 또한 도로의 차들은 각자 브랜드를 뽐내듯 경적소리를 연신 힘차게 울린다. 내리쬐는 태양의 온기가 더해진 모습은 마치 인도에 다시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외국인 여행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내의 모습에 과연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다. 낯선 아랍어가 눈앞에 즐비할 뿐, 영어 간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배낭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는 최악이다. 최소한 유명한 관광지 안내 표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길거리 현지인의 사정이 좋은 편도 아니다. 기대 이하의 낮은 문화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현지인들은 거의 없다. 처음 몇 번은 버스를 타기 위해 그들에게 물어봤지만, 이내 실망하고 지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심지어 게으르기까지하다. 이른 아침부터 길거리에 자리잡고 앉아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하얀 피부를 가진 동양인을 마치 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본다. 거리 곳곳에 보이는 흙색 건물들은 모두 낡아 강도 1.0의 약한 지진에도 허무하게 무너질 것만 같다. 힘든 여행지를 경험한 적이 많지만, 이곳은 손꼽히는 도시다. 혼돈 그 자체다. 상황을 파악한 여행자는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거대한 땅덩어리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곳을 무조건 경유해야 한다. 지리적 특성상 모든 대중교통은 카이로를 경유해서 다른 도시로 가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여행자들은 이곳을 몇 차례 들를 수밖에 없다. 나도 이곳이 처음에는 싫었다. 건조함에 손발이 트고, 매연과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다음 도시로의 이동을 위해 몇 차례 이곳에 더 머물다 보니 어느새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돈의 도시를 누비다보니 기대 이상으로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지고 있는 게 아닌가. 카이로는 마치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도시다. 여행하기 힘든 혼돈의 도시에서 발견한 묘한 매력이 대체 뭘까. 아마도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가는 맛이 아닐까 싶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 보물을 소개한다. - 고고학 박물관 고고학박물관은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 잔뜩 전시된 곳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람세스 2세 동상, 파라오 미라 등 25만점이 넘는 유물과 보물이 100개가 넘는 홀에 보관돼 있다. 위치는 타흐릴광장(Tahrir square)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찾기 쉽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교차점인 사다트(Sadat)역에서 내려 고고학박물관 표시를 보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입장을 하면 ‘고대 유물이 이렇게 흔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박물관 바닥에 내 팽겨져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큰 홀을 거닐면서 천천히 고대 이집트의 유물과, 벽화, 조각상들을 바라본다. 비록 현지 가이드는 동행하지 않았지만, 작품들을 최대한 마음으로 읽어본다. 박물관 2층 양쪽엔 ‘로얄 멈’(Royal Mum)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입장료를 조금 지불하면 고대 이집트 왕들의 미라를 볼 수 있다. 람세스 3세, 6세, 7세 등 역사책에서나 들어봤을 왕과 왕비들의 미라가 유리관 안에 죽 전시돼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 상세히 볼 수 있다. 머리카락이 남아있는 모습, 돌로 만들어져 있는 인공눈, 공손히 양손을 가슴에 올려놓은 모습 등을 관찰한다. 입장료 60파운드(한화 1만2000원)를 아끼기 위해 입장하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 피라미드 카이로 기자지역에 있는 ‘대 피라미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장면 중 주인공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장면은 아주 인상 깊었다. 결국 꼭 방문해야 하는 내 인생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집트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사정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 관광 명소에 있는 현지인들의 호객행위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투어를 이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방문할 경우 벌 때처럼 달려드는 호객꾼들에게 정신이 팔려 버릴지도 모른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나는 조금 더 그들의 역사를 알고 싶어 사전에 투어를 신청했다. 이실직고 하자면 나를 오늘의 제물로 생각할 호객꾼들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투어 당일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현지인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오늘의 일정을 유창한 한국어로 설명한다. ‘눈앞에 보이는 저 거대한 형체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기원전 2560년에 세워지기까지 약 20년이 시간이 걸렸어요.’ 그의 유창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에 오늘의 투자가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옆을 거닐다 보니 나의 존재가 새삼 초라하다. 피라미드를 완공시키는데 사용된 230만개의 돌 중 하나의 크기가 압도할 만큼 크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바로 옆에는 그의 아들과 손자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있다.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파노라마 포인트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이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모두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조금 더 이동하니 스핑크스가 보인다. 사자의 몸과 왕의 얼굴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가 피라미드를 어엿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다. 투어는 이집트 최초 계단식 피라미드를 지나, 굴절 피라미드 ‘다슈르’로 향한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보니 찐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자극 할 뿐이다. 빡빡한 투어 일정의 마지막은 카이로 남부의 ‘멤피스’로 향한다. 이곳은 인류 역사 상 최초의 제국도시로 이집트 왕국의 최초 수도다. 이집트 전성기 시절의 람세스 2세도 이곳을 수도로 삼아 부흥시켰다고 하나, 현재는 초라한 신전만이 있다. 거대한 홍수로 도시가 사라지고, 후손들이 주거지 건축을 위해 석재 자료로 사용하면서 농촌으로 퇴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람세스 2세의 거상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TIP] 그 밖의 카이로의 보물로는 중세의 성벽 요새인 시타델과 순례자들이 찾는 모카탐 동굴교회, 모함메드 알리 모스크가 있다. 카이로의 전경과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높은 건물인 카이로타워도 좋다. 유적에 관심이 많지 않다면 해질녘 나일강을 거닐면서 걷거나 나일강의 크루즈 투어를 하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 사막여우와의 하룻밤 : 노랑 바흐리야(bahreya)는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350㎞ 정도 떨어져 있다. 약 5시간 이상 소요된다. 버스는 고속도로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의 차선조차 없는 사막도로를 질주한다. 쾨쾨하고 더러운 이집트 버스는 새삼 한국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막 중간에 덩그러니 있는 낡은 휴게소에 잠시 멈추더니 이내 다시 출발한다. 한참을 황토색 모래 지형을 달리던 차량의 창문 밖으로 사막의 석양이 비춰진다. 힘든 여정에 대한 보상의 선물을 주는 것 같다. 혹시 이곳을 가는 여행자라면 오른쪽 좌석에 앉기를 추천한다. 그 모습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떻게 알고 동네 호객꾼들이 달려든다. 사전에 사막 투어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그들과의 타협이 필요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파리를 제공하는 한국 숙소가 두 곳이 있다. 한국 여성이 현지인과 결혼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숙소를 운영하는 이모님들의 이름을 따서 ‘영선네’,‘경미네’ 라고 부른다. 인터넷 포털 카페를 통해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나는 ‘하마다 경미네’를 예약했다. 외국 친구와 함께 1박2일을 보내고 그곳에서 추가적으로 며칠을 더 머무는 일정을 잡았다. 와이파이조차 없는 그곳에서의 생활은 나를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푼다. 사파리를 원하는 다른 일행이 있다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차량 비용을 N분의 1로 나눌 수 있어서다. 지프 한 대당 보통 800파운드(한화 12만원)로 계산하면 된다.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이곳에 막 도착한 베트남 친구가 나의 유일한 사파리 파트너다.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옷을 최대한 편하게 입고 필요 물품만 챙긴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할 운전기사 겸 가이드는 하마다의 사촌동생이다. 이곳은 백사막과 흑사막, 크리스탈사막 등이 유명하다. 바흐리야사막 사파리는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다. 황금 빛깔의 모래가 펼쳐져 있는 사막이 아니기 때문에 낙타를 타지 않는다. 지프가 힘차게 달린다. 한참을 달리던 지프는 검은색의 돌로 덮여 있는 흑사막을 오른다. 오프로드(Off-Road)! 이것은 사막 사파리 최대 장점이다. 너무 신나서 환호성이 절로 난다. 그렇게 지프는 한참을 멋진 곳을 가로 지르며 달려 이번에는 백사막 지역에 도착한다. 신기한 모양의 백색 돌로 구성되어 있는 일대를 신나게 달린다. 처음 보는 풍경들에 감탄사만 나온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백사막의 어느 지점에 지프가 멈춘다. 캠핑 준비를 한다. 적막하지만 외롭지 않은 그곳에서 사막여우와 함께 먹는 바비큐의 맛은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눈앞에 가득 채워져 있는 무수한 별들은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사막 사파리는 다음날 샌드보딩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숙소로 다시 돌아온 이후 마을 근방에 있는 유황온천에 가서 몸을 담그면서 피로를 푼다. 사막지역이라 물이 부족하다보니 자연온천에서 목욕하는 현지인이 쉽게 눈에 띈다. 사막 사파리는 보통 1박2일 일정이다, 길게는 14박15일 이상의 일정도 있다.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긴 일정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 또는 지프를 직접 빌려 사막 이곳저곳을 누벼보는 꿈을 가져본다.
2015-10-26 19:2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