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괴뢰메-오토가르에서 야간버스 올라 몸을 맡긴 지 꼬박 반나절이 지나서야 페티예에 도착했다. 700㎞ 이상의 긴 이동이다. 잦은 이동이지만, 장거리여행은 매번 여행자에게 큰 고통이다. 긴 이동에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는 여행자라면 ‘안탈리아’ 도시를 들르는 것도 좋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 피로한 여행자의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합하다. 나는 혼자만의 여행이기에, 아름다운 해변을 혼자서 걸어야 한다는 상념에 빠지기 싫어 곧장 페티예로 간다. 무엇보다 빨리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 욜루데니즈 : 중동 4대 천황 헥토르 아저씨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돌무쉬(미니버스)를 잡아탄다. 20여분을 달리니 해안도시 욜루데니즈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블루라곤이란 아름다운 해변에서 휴식하러 이곳을 방문한다. 해변을 배경으로 체험하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것도 큰 이유다. 사실 여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몇몇 여행자들 사이에서 이곳은 패러글라이딩 세계 3대 명소 중 하나라는 소문이 있다. 터키 서남부지역에서 통하는 특별한 진리가 하나 있다. ‘모든 것은 헥토르로 통한다’ . 헥토르는 사람 이름이자, 패러글라이딩과 숙박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명칭이다. 아시아 여행자들 사이에는 전설처럼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중동 4대천황이 있다. 첫 번째가 이집트의 ‘만도’다. 그는 파라오의 무덤을 여행하는 여행객의 편의를 챙겨주고, 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기에 유명하다. 그리고 요르단의 ‘지단’, 시리아의 ‘압둘라’가 있다. 마지막이 터키의 ‘헥토르’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서 온 여행객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유명한 이유는 앞서 방문한 여행객들의 추천 및 후기를 활용한 장사를 잘 하기 때문이다. 중동 4대 천황 모두 극진한 친절함으로 무장한 만큼 인터넷에서 평가가 대부분 좋다. 실제로 저자는 시리아(여행금지국가)를 제외한 3대 천황을 모두 만났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말 한마디에 그들의 친절함이 바로 묻어 나왔다. 욜루데니즈의 헥토르는 170㎝ 정도 키에 약간 배가 나온 통통한 체형으로 항상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다닌다. 뒤뚱뒤뚱 걷는 그의 모습은 친근감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하는 행동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액센트 하나 없는 발음으로 마치 국어책 읽듯 영어를 뱉는 그의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풍채는 대단하다. 내가 도착했을 당시에도 숙소에 대해 물어보니 ‘노 프러블럼’(No Problem) 이라는 대답과 함께 이리저리 몇 통의 전화를 걸어 싸고 괜찮은 방을 연결해 줬다. 덕분에 나는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괜찮은 숙소에서 묵을 수 있었다. 이곳에 머물던 며칠 동안 매일같이 그의 식당을 방문하여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와 친해졌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이면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주변 동네 여행과 맛집 탐방을 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낱 장사꾼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과 알면서도 당하는 친절함에 왜 그를 중동 4대 천황이라 부르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페티예에 방문해 어려움에 처했다면 그를 찾아보아라. 아마 ‘노 프러블럼’ 이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특히 시끄럽다는 중국인을 싫어하고 유독 한국인에게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그다. 아마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타국에서 만난 ‘No Problem’ 여행 중 만난 무슬림 국가(인도·이집트)의 현지인들이 즐겨쓰는 ‘노 프러블럼’ 은 헥토르의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책임회피 목적으로 사용한다. 내가 무슨 문제가 발생하든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실득만 챙기려는 대답으로 한다. 실례로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에 ‘당신이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따지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언제 그랬어?’ 가 대부분이었다. 무슬림 국가를 방문한다면 그들의 친절을 100% 믿지 말아라. #. 패러글라이딩 : 블루라곤 상공을 날다 해안에 누워 선탠하는 것을 제외하면 보트투어나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게 이곳의 전부다. 여행 전부터 이곳에 오면 패러글라이딩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미 네팔의 ‘포카라’에서 팬덤 패러글라이딩 경험이 있는 나는 고수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척, 한껏 여유로운 걸음으로 허세를 부리며 여행사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이미 그곳에는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인원 몇몇이 모여 있다. “어제는 날씨가 별로여서 산중턱인 1000m에서 점프했지만,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아 2000m 까지 올라갈 거에요.”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날씨가 좋다는 사실은 분명 행운이다. 출발한 지 20여분이 지났다. 꼬불꼬불 산길을 마구 올라간다. 산 정상에 도착하자 먼발치에 설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아름다운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아찔한 높이를 보아 진짜 2000m는 된 듯하다. 문득 포카라에서 함께 했던 파일럿의 말이 떠올랐다. ‘지중해의 도시 욜루데니즈가 패러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야’. 직접 와보니 실감이 난다. 파일럿 아저씨 한분이 옷을 챙겨준다. 칙칙한 색의 마치 우주복을 연상케 하는 그것을 주섬주섬 입고 있는 사이, 동행한 친구들은 어느 순간 출발해 하늘을 날고 있다. 안전장비를 파일럿의 장비와 연결시키자 ‘레디’(Ready) 라는 말이 들린다. 힘차게 달리며 이내 셋을 외치자 어느 순간 내 몸이 공중에 떠있다. 처음에는 바람이 강하여 많이 나가질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순항한다. 2000m 상공에서 바라본 빛에 반사된 욜루데니즈의 해변은 너무나 아름답다. 10여분 동안 해변 상공을 날다가 스파이럴(상공에서 빙빙도는 기술)을 몇 번 하고 해변가에 착륙한다. 땅에 도착하니 모두 상기된 얼굴이다. 죄다 눈부시게 밝고 푸른 해안의 모습에 감동한 듯하다. 기회가 된다면 팬덤 패러가 아닌 나만의 패러로 자유롭게 원 없이 이곳을 날아봤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 파묵칼레 : 로마황제처럼 파묵칼레는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을 데니즐리 혹은 셀축으로 가기 전 잠시 당일치기로 방문한다. 이곳의 마을 어귀에 있는 경이로운 석회층 온천이 매년 어마어마한 여행객들을 불러 모은다. 나는 시간에 쫓겨 이곳을 보는 게 싫어 큰맘 먹고 마을 내부 숙소의 도미토리 룸을 잡는다. 하지만 예상대로 숙소에는 단 한명의 숙박객도 없다. 넓은 방에 혼자 자야한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해질 무렵 파묵칼레의 모습은 꼭 보고 싶었다. ■목화의 성 파묵칼레의 의미는 목화의 성이다. 파묵은 목화를 뜻하고. 칼레는 성을 뜻한다. 석회를 품은 섭씨 35도의 온천수가 산비탈을 형성한 모습이 마치 하얀 목화로 만든 성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설산의 형상을 띄고 있는 파묵칼레는 흡사 계단식 논을 닮았다. 하얀 석회를 이룬 물이 흘러내리면서 층을 이루고, 각 층마다 푸른 물을 담고 있다. 푸른 물은 한낮의 하늘 빛을 온전히 담아 눈부시게 밝다. 하지만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태양의 붉음을 전수 받은 석회층 물은 매혹적이기 까지 하다. 현재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어 목욕이 금지된 상태다. 아쉽지만 예전처럼 파묵칼레 안에서의 온천욕을 즐기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영복을 챙겨가서 허락된 공간에서 잠시마나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것은 가능하다. 혹은 석회층에 걸터앉아 멍하니 사색에 잠겨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추천한다. 먼 옛날 로마 황제들에게 이곳은 최고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친근한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을 아주 사랑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마치 과거의 그들처럼, 잠시 이곳에서 즐기는 여유는 나에게 최고의 휴식일지도 모른다. ■히에라폴리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 언덕 위에 새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 때 처음 도시로 형성되어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전성기에는 인구가 10만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그리스어로 신성함을 뜻하는 ‘히에로스’의 명칭을 따서 예전부터 성스롭고 신성한 도시로 불렸다. 파묵칼레를 따라 오르다 보면 로마 시대의 잔유물을 볼 수 있다. 넓은 평지 곳곳에 원형극장과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의 흔적이 있다. 가이드북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을까 생각해본다. 왼편으로 로마욕탕이 보인다. 유물 훼손으로 현재 출입이 통제된 게 아쉬웠다. 길을 따라 쭉 걷다보니 ‘네크로폴리스’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띈다. 고대 도시와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 묘지를 뜻한다. 과거 대도시의 흔적이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곳까지 닿지 않아서 음산한 느낌마저 든다. 발길을 돌려 원형극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이 유적 천지다. 고대 도시의 입장을 알리는 ‘도미티아누스 문’을 지나 풀길을 따라 걷다보니 공사를 하고 있는 원형극장의 모습이 보인다. 무대부분 공사를 하고 있어 완벽한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아쉬웠지만 잠시 계단에 앉아 숨을 돌려본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로마인의 복장을 하고 눈앞에 펼쳐진 연극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을 해본다. 빗방울이 떨어짐을 느끼고, 이내 발길을 마을로 돌린다. 안녕. 고대도시여. TIP. 터키 추가 여행 도시 ■셀축 파묵칼레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거리의 터키 서부 이즈미르 주에 있는 도시다. 터키어로는 셀추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에페소스’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는 곳이지만, 도시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터키를 일주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원을 그리며 여행한다. 나도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여행을 시작, 셀축을 마지막 도시로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넘어갔다. 에페소스는 로마제국시대 아시아 최대 도시였다. 찬란했던 당시의 역사를 뒤로 한 채 현재는 건축물 잔재와 조각들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 당시 모습에 궁금증을 갖고 이곳을 방문한다. 특히 기독교 초기 역사에 중요한 도시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이밖에 1일 일정으로 방문할 수 있는 근교도시 ‘쿠사다시’와 ‘시린제 마을’ 등이 있다. 셀축에서는 또 스카이다이빙, 마이크로라이팅(초경량비행기)과 같은 레저도 즐길 수 있다. 비용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할 것이다. 스카이다이빙은 2013년 기준 약 20만원 수준이다. 단 6월 중순부터 시작해 여름 시즌에만 도전할 수 있다.
2015-09-07 01:52:58
3백만년전 발생한 세월의 풍화작용이 터키의 한 지역을 불가사의하게 만들었다. 이후 고대 기독교 신자들은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피해 이곳까지 왔다. 그리고 이곳의 기이한 바위에 구멍을 뚫고 지하도시를 건설해 살았다. 과거의 아픈 흔적과 인내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다. 용암으로 형성된 암석들의 변모된 모습에 ‘마르코폴로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특색 있다. 유명한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될 만큼 낯선 풍경이며, ‘개구장이 스머프’를 완성 할 만큼 동화 속 같은 풍경이기도 하다. 터키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꼭 방문한다. 국내의 대표적 여행사는 짧은 일정의 여행상품에도 카피도키아를 빼놓지 않는다. 그만큼 상품화가 많이 된 도시다. 카파도키아의 특이함은 괴뢰메 마을을 중심으로 넓게 분포돼 있다. 카파도키아를 포함한 투어상품으로는 레드투어, 로즈벨리투어, 벌룬투어, 그린투어 등 다양하다. 평소 투어를 선호하지 않는 나는, 이 도시에서 나만의 여행법으로 투어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것들에 도전해보려 했다. 소심한 성격의 여행자라면 글을 읽고 한번쯤은 자유와 일탈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앙카라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려 동이 틀 무렵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뻐근함에 기지개를 피는 순간 눈앞의 장관에 정신이 번쩍 든다. 기괴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먼 발치에 벌룬 무리가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 레드투어 : ATV를 타고 새로운 지도를 그리다 대부분의 패키지 투어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차를 타고 이동하며 포인트를 구경하는 것이다. 관광명소에 도착하면 사진을 찍고 기념품 가게에 들르는 것이 정석이다. 개인적인 견해로 투어상품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마치 다 차려진 밥상에 앉아 입만 벌리고 있는 격이다. 직접 반찬을 만들고 요리하는 것이 좋다. 구속받고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도 하나의 이유다. 물론 가이드 투어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다닐 경우, 그만큼 많은 정보를 사전 공부해야만 한다. 가이드가 주는 알찬 정보들을 모두 무시할 순 없기 때문이다. 괴뢰메 마을에 머무르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2~3일 일정으로 투어를 나누어서 한다. 마을 자체는 크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면 금방 둘러볼 정도다. 이곳에 도착한 첫날 나는 나만의 여행법으로 레드투어 코스를 구상하려 했다. 레드투어는 데브란트(상상의 계곡)-파샤바계곡(스머프마을)-아바노스(도자기마을)-야외박물관-우치히사르(3개의 요새)-피존밸리(비둘기계곡)등을 들르는 하루짜리 코스다. 당초 계획은 스쿠터를 빌려 이곳을 탐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전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렌탈숍 주인은 당연히 대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안을 찾다 생각난 것이, ATV, 즉 4륜 오토바이이다. 가격적인 면으로 볼 때 스쿠터의 두 배 가격 (2013년 당시 3시간에 한화로 8만원 수준)이다. 가난한 백패커임을 연신 강조하며 6시간에 8만원이라는 가격으로 네고(협상)에 성공했다. 숙소에서 지도를 챙겨들고 출발한다. 마을을 빠져나와 2차선 도로를 질주한다. 묵직한 바퀴를 달고 강렬한 엔진음을 내는 그 놈의 간지(분위기나 감각을 뜻하는 일본어 속어)는 도로를 압도할 만하다. 손잡이 레버를 돌려 속도를 올릴수록 엔진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속도감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선택은 탁월했다. ATV는 산악지형에 적합하지만 일반 도로라고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아스팔트 도로를 질주하는 ATV의 낯선 동양인 모습이 신기한지, 맞은편에서 오는 운전자들이 자꾸 쳐다본다. 속도를 올려 강한 바람이 피부를 스쳐갈 때마다 묘한 쾌감은 배가된다. 카파도키아의 도로 사정은 아주 좋다. 심플한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관광지를 알리는 정갈한 갈색 표지판이 나온다. 그것을 따라 가면 그만이다. ‘피존밸리’에 도착했을 때, ATV의 진가가 드러났다. 많은 투어 관광객들은 사진 포인트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나와 동행한 친구는 동시에 눈빛 교환을 한다. 그 의미는 운명처럼 저 계곡 사이를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오프로드를 달리는 ATV는 이제야 제 옷을 입은 듯이 힘이 넘쳐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천 년 전 누군가 다녀간 이후 사람의 발자취가 끊긴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늪이 보일 정도로 우거진 숲속까지 들어왔다. 야생 날파리의 괴롭힘에 흥분감은 이내 불안감으로 바뀐다. 머리를 돌려 숲을 빠져나온다. 마치 우리 일행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마냥 어린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조금 전 기억을 되짚어 본다. 이런 식으로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닌다. 한적한 도로가 나오면 멈춰 여유도 즐겨보고 고함도 질러본다. 마치 이것과 함께라면 세상 어느 곳도 다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낙타형상 바위로 유명한 ‘데브란트’에 도착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장 높은 곳을 찾는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에 올라간다면 광활한 이 장관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상은 적중했다. 오프로드를 한참 달려 언덕길을 오르니 압도적인 장관이 눈앞에 보인다. 아래쪽 투어 관광객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에 우월감마저 든다. 아름다운 모습과 행복해 하는 지금 이 순간이 교차돼 기억장치의 최고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 벌룬투어 해가 채 뜨지 않은 새벽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투어를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나갈 준비하고 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맑다. 지난 며칠간 좋지 않은 날씨 탓에 벌룬 투어를 미뤄둔 여행자들의 표정도 밝아 보인다. 서둘러 옷을 입고 카메라를 챙겨 숙소 밖을 나온다. 대기하고 있던 여행사 버스에 올라탄다. 잠깐의 시간 동안 졸았나보다. 마을 외곽에 있는 여행사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투어를 한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해가 뜰 때까지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다 다시 차를 타고 외곽의 넓은 공터로 이동한다. 그곳엔 공기가 빠진 많은 벌룬이 널부러져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벌룬과 연결돼 있는 4개의 바구니 중 하나에 올라탄다. 모든 인원이 다 타자, 굉장한 광음으로 불을 붙인다. 조금씩 지상과 멀어진다. 하늘로 향할수록 다른 곳에서 들리는 관광객의 환호성은 커진다. 주행은 평균 45분에서 길게는 1시간을 한다. 주행 시간 중 절반은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고 나머지는 높은 고도에서 한다. 낮은 주행을 할 때는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들 사이를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여유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의 파일럿은 베테랑인가보다. 고도를 높여 갑자기 급상승한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저 멀리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모습이 50여개는 족히 되 보이는 형형색색 벌룬 모습과 조화되어 환상적이다. 감동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한참 셔터를 누르던 나는 잠시 그것을 내려놓는다. 이 아름다운 모습은 사진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나의 기억 속 감각세포들이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높게 치솟던 벌룬은 어느 새 지상으로 내려와 안전하게 착륙한다. 감격의 순간은 도착 후 샴페인을 마시고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지속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벌룬투어는 내가 추구하는 형태의 여행은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비용을 지불하고 가만히 경치구경만 하기 때문이다. 가격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2013년 기준으로 10만~15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장엄하면서 황홀하기까지 한 아름다운 풍경에 비한다면 전혀 아깝지 않다. #. 그린투어 : 현지인의 뜻하지 않은 초대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 외곽 지역을 돌아보는 투어다. 대표적인 코스가 데린쿠유 지하도시, 셀리메 수도원(스타워즈 촬영지), 파노라마 포인트, 으흘라라 협곡 등이 있다. 포인트 간의 거리는 차로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이 걸린다. 능동적으로 투어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 생각난 것이 렌터카다. 레드투어 코스를 ATV로 다녀온 것도 선택에 한몫했다. 렌터카 가격은 수동 90리라(한화 54,000원), 자동 150리라(90,000원-2013.04기준)다. 협상을 통해 130리라에 협의를 본다. i30을 닮은 흰색의 연식이 보이는 차량이 우리를 반기러 왔다. 비용 절감을 위해 숙소에서 1일 렌트 투어를 홍보해 2명의 여행자를 모집한 상태다. 터키 외곽지역 지도를 하나 챙겨들고 차에 탑승한다. 운전은 가장 경험이 많은 내가 하기로 한다. 운전대를 잡은 일일 여행가이드는 2명의 여행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여행의 목적은 자유입니다. 운전을 하다 어디든 끌리는 곳이 있으면 가자구요!’ 노래 볼륨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기분도 한층 올라간다. 큰 음악을 틀고 거리를 누비는 스포츠카마냥 우리의 음악소리도 시선을 유도하기에 충분하다. 정해지지 않은 오늘 우리의 미래가 너무나 흥분된다. 숙소 부근에서 사온 케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한 시간 정도 주행을 한다. 4차선 고속도로 양 옆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녹색 벌판에서 풍기는 내음의 향기가 차창 너머로 스며든다. 얼마나 달렸을까? 카파도키아에서 상당히 멀리 나온듯하다. 어느 투어 포인트를 가볼까 고민하던 우리의 눈에 띈 것은 오른편에 보이는 큰 호수다. 차의 핸들을 주저 없이 돌린다. 호숫가에 앉아 잠시 여유와 사색을 즐기는 생각을 한다. 호수는 굉장히 크고 웅장하다. 조금 더 들어가다 눈앞 광경에 깜짝 놀란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무리가 비포장도로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둘러 차에서 내린다. 이 모습을 본 양치기 할아버지가 멋쩍게 손을 흔들어 주신다. 우리도 덩달아 반가움에 손을 흔든다. 양의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본인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할아버지 집이 있다. 양들을 모두 집 앞 마당으로 몰아넣는다. 할아버님 권유로 양 무리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새끼 양을 안아보고, 뿔을 만져본다. 특별한 경험이다. 양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집안에서 할머님 한분이 나오셔셔 우리에게 차를 마시고 가라는 제스처를 하신다. 여행 중 현지인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는 것은 여행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지금까지 만난 터키인들의 친절함을 우리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방은 좁고 허름하다. 산골에 살고 있는 할머니댁 같은 느낌이다. 바닥에 앉자, 둥그런 접이식 식탁과 보를 꺼내온다. 음식을 흘리지 않기 위함이다. 식탁 위에는 볶음밥과 감자, 양파, 곁들여 먹는 소스, 아이란이 있다. 이외에도 살구를 넣은 조금은 달짝지근한 음료, 이제 막 밭에서 캔 듯 한 숙주나물, 그리고 이것들을 넣어 먹을 탈리와 비슷하게 생긴 넓고 얇은 빵이 준비돼 있다. 진수성찬이다. 모든 음식이 자연에서 직접 구해 만든 것 같다. 케밥을 제법 먹어본 나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을 알고 있다. 볶음밥은 우리나라의 밥과 비슷한 느낌이고, 감자는 양파와 함께 특제소스를 발라 먹으니 달콤하다. 아이란은 지금까지 도심 음식점에서 사먹었던 맛과는 사뭇 다르다. 평소 느꼈던 밍밍함이 전혀 없이 상큼할 정도로 맛있다. 살구를 넣은 물도 초딩 입맛인 나에게 딱이다. 모든 음식들이 지금까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꿀맛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 와서 기분 좋은 초대를 받은 것에 대하여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드리고 싶어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손님은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듯 강한 행동을 보이신다. 식사가 끝난 후 차이 한잔을 내주신다. 이쯤 되면 거절할 수 없다. 좁은 방에서 한 시간여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어와 터키어로 완벽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문맥상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눈치껏 알 수 있다. 교감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한층 가까워진 것 같다. 호의에 감사함을 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한다. 소정의 돈을 주면 분명 거절할 게 분명하다. 그들과의 추억이 담긴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얇은 종이 박스에 주소를 적어달라고 한다. 아들이 주소를 적는 동안, 할아버님은 무엇인가를 가져온다. 우리와 같은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무심코 방문했다가 사진을 남겨준 것이다. 사진 속에서 동양인은 없다. 우리가 처음이다. 이곳에 도착한지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아쉽지만 헤어져야 한다. 나가서 단체사진을 찍자고 제안 하자 할머님은 머리에 두르는 터빈을 새것으로 가신다. 귀여운 면도 있으시다. 사진을 찍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미련이 남아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투어를 했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한 뜻 깊은 시간이었다. 아쉬운 맘을 달래러 그린투어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보았지만, 오랫동안 가족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2015-08-18 09:40:17
# Intro 터키 : 짝사랑은 그만 월드컵 덕분에 온 나라가 한층 뜨거웠던 2002년. 대한민국은 4강에서 터키를 만났다. 유럽 근방의 낯선 나라였지만, 경기가 끝난 후 우리에게 ‘형제의 나라’로 각인됐다. 하지만 터키의 한국 짝사랑은 여기서 멈췄다. 터키는 다수의 국가와 인접해 있으며,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명의 중심지였다. 터키의 짝사랑을 이해하려면 지루하지만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으로 부르는 것처럼 터키도 자신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한다. 과거 고구려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던 ‘돌궐’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두 국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로 불렀다. 돌궐이 멸망한 이후, 남은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터키를 중심으로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건설했다. 터키는 투르크제국을 건설한 그들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 어린 학생들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린 시기부터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 돌궐이라는 나라는 단지 몇 줄 언급돼 있을 뿐이다. 이같은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터키인들에게만 우리는 ‘형제’였다. 과할 만큼 한국 사람에게 친절한 그들의 모습에 과연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 그들의 역사를 훑어본 이후 역사에 무지한 우리가 괜시리 미안해진다. # 입성 필자는 2013년 4월 인도·네팔·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9시간의 긴 비행을 거쳐 터키 최대의 도시 ‘이스탄불’ 에 입성했다. 동남아의 덥고 습한 날씨를 아직 잊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장기여행자의 세계에 입문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인도산 ‘모바지’를 입고 있다. 공항 안내센터에서 이스탄불 지도 하나를 챙겨든다. 지도를 보자 낯선 곳이라는 새로운 두려움과 설렘에 마음이 요동친다. 이곳의 대중교통도 우리나라 지하철과 별반 차이가 없다. ‘카르트’로 불리는 교통카드를 구매하고 충전해 트램을 탄다. 낙후된 아시아에 머물다 와서 일까? 창밖으로 비춰지는 도시의 첫 느낌은 화려하며 세련돼 보인다. 한번 환승한 뒤 ‘술탄아흐멧 역’에 하차한다. 그곳에 도착하니 차가운 바람이 불청객을 맞이한다. 약간 더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기대와 달리 4월이지만 추위가 매섭다. 광장 주변에 몰려 있는 관광객들은 두꺼운 패딩과 목도리를 할 정도로 마치 초겨울을 맞이하는 행색을 하고 있다. 혼자서 한 여름 복장을 하고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쌀쌀하고 궂은 날씨 때문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히말라야 등반 때 최악의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칭호를 안겨준 패딩을 꺼내야 했다. 적응하기 힘든 날씨지만 많은 이들이 추천한 여행지로 기대감이 높다. 훗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고 싶은 1순위 나라, 터키를 소개한다. # 매일 저녁의 스페셜 요리 : ‘고등어케밥’ 여행 중 어떤 도시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이스탄불을 빠뜨리지 않는다. 무엇이 좋았을까? 아시아의 소박함과 유럽의 화려함이 공존해서? 아니면 과거의 멋스러운 건축물과 현재의 세련됨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음식이 좋거나,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저렴해서? 이스탄불은 이들 이유를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관광지를 둘러본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2차선 도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트램에 올라탄다. 관광지를 요리저리 빠져나가는 트램에서 바라보는 창 밖의 모습은 매번 비슷해도 이방인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진다. 조명이 적절하게 분위기를 잡아주면 나는 밤거리의 악사가 된 것 같다. 항구의 모퉁이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과 귀에 집중해본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삼아 출발하는 선박의 뱃고동소리와 트램의 진동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끔씩 구슬프게 우는 갈매기 소리는 한층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준다. 지나가는 많은 현지인 사이에서 느끼는 감각의 향연은 영화 속 주인공 부럽지 않다. 이스탄불에 10일 동안 머물면서 해가 진 후 매일 똑같은 코스를 걸었다. 숙소를 나와 아야소피아(소피아성당)가 보이는 광장을 지나서, 트램 철로를 따라 ‘갈라타다리’ 까지 걷는다. 다리 위 매일 같은 위치에서 낚시를 하는 현지인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다리 아래 어시장으로 향한다. 내가 숙소에서 40분여를 걸어 이곳까지 오는 이유는 야경에 취하고, 고등어케밥을 먹기 위함이다. [TIP] 케밥은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 생선 등을 구워 밥·빵·채소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유목민족의 음식문화를 전수 받아 만들어진 요리로 우리나라의 밥처럼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음식이다. 이스탄불에서 고등어케밥과 홍합밥으로 유명한 곳은 ‘보스포러스해협’의 ‘에미뇌뉘 선착장’이다. 어시장 뒤편으로 가면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 최고의 저녁을 선사해 줄 요리사 한 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에밀’.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그는 어시장의 고유명사가 된지 오래다. 그의 가판대 앞을 가면 한국어로 적힌 글귀를 쉽게 볼 수 있다. 배 나온 후덕한 동네 아저씨 느낌의 그는 화려한 한국어 언변으로 인기를 얻지 않았을까 의심했지만, 한 번 먹어보면 오직 맛으로 승부하는 대박집이 분명하다고 믿게 된다. 그에게 5리라(2013년 기준 한화 약 3000원)을 내고 고등어 케밥을 주문하면 팔뚝만한 크기의 식빵 사이에 양파와 토마토, 상추 등의 각종 야채를 듬뿍 넣고 자리에서 바로 구운 고등어와 소스를 곁들여서 넣어준다. 맛뿐만 아니라 양도 훌륭하다. 고등어가 섞여 비린 맛이 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일반 햄버거를 먹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항상 먹을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비린내가 나지 않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에게 이 훌륭한 저녁식사를 받아 항구의 낡은 계단에 앉는다. 눈앞에 보이는 야경의 모습을 안주 삼아 배를 채우기에 더 없이 행복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에밀 아저씨의 케밥을 먹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한다. 그는 하루 중 오후의 특별한 시간에만 나타나고,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쉬고 싶을 때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잘 나가는’ 프리랜서인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 분명하다. 이스탄불에 머문 10일 중 총 7일 동안 매일 저녁 그곳을 방문했다. 낮에는 이곳저곳을 가더라도 결국은 그에게서 고등어 케밥을 사서 야경을 보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일주일 동안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항상 같은 생각을 했다. ‘오늘 그를 만나지 못한다면, 나의 운은 다 된 거야. 이제 이스탄불을 떠날 때가 된 거지’ 다행히도 나는 상당 기간 매일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최고의 식사와 함께 거리 곳곳을 누볐다. 이것은 내가 이스탄불을 생애 최고의 도시로 손꼽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는 꼭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서 그 자리에 서 있을 날을 기대해본다. # 이스탄불 볼거리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아시아 지역, 서쪽은 유럽지역으로 나뉜다. 여행지와 볼거리가 풍성한 유럽지역은 ‘갈라타다리’를 기준으로 남쪽지역인 구시가지와 북쪽지역인 신시가지로 나뉜다. 대표적인 유럽지역의 볼거리 몇 가지를 추천한다. 단, 현지인들의 냄새가 그립다면 아시아 지역을 추천한다. △ 아야소피아 혹자는 아야소피아를 보면 이스탄불을 다 보았다고 말 할 정도로 이스탄불에 오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하는 곳이다. 아야소피아는 360년 비잔틴 콘스타티누스 2세 때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다. 화려한 내부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가진 그곳은,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이후 1453년 오스만 투르크족에 의해 비잔틴 제국이 멸망되기 전까지 약 1000년 동안 성당으로 이용됐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성당 내부에 남아있던 비잔틴 모자이크와 벽화들을 석회로 덧칠해 건물을 모스크로 개조해 이슬람 사원으로 썼다. 이후 터키공화국이 복구 사업을 펼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비잔틴 시대의 기독교 사상과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된 독특한 박물관의 모습이 매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1층 본당을 들어서면 많은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이 아름답게 관광객을 맞이한다. 대성당 벽에는 코란 문자가 적혀 있는 큰 원반이 이슬람 문화를 상징하며,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 벽화는 독특하기 그지없다. 곳곳을 둘러보면 아야소피아 박물관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 장소인 동시에, 이슬람교의 성지순례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톱카프 궁전 이스탄불에 대한 극찬 아닌 극찬을 했지만 이 곳도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많은 관광객’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멋진 풍경과 화려한 건축물을 사랑하지만, 수많은 인파로 아수라장이 된 탓에 흠결이 된다. 혹자는 ‘유명한 관광지에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지, 그 정도는 감내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득 찬 사람들로 나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뚜렷하지 못한다면 만족도는 높을 수 없다. 나는 광활한 영토를 소유한 오스만 제국 지배자들의 삶이 궁금해 이곳을 방문했다. 어떤 이는 이곳이 이슬람 문화를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가장 넓다는 제1정원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제3정원의 보물관에는 술탄의 왕좌, 무기, 보석이 장식돼 있다. 하지만 그곳 역시 사람에 떠밀려 주의 깊게 전시물을 관찰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2정원에 자리잡고 있는 하렘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하렘은 술탄의 사적인 거주 공간이자, 수백 명에 달하는 궁정 여인들이 함께 머물렀던 공간이라고 한다. 극소수의 외부인만 출입이 가능했기에 더욱 미스터리한 이 공간은 나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 갈라타 타워 나는 야경을 좋아한다. 특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좋아한다. 그래서 새로운 도시를 방문 할 때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을 먼저 찾는다. 해가 질 무렵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대부분 매력적이다. 도시의 색깔을 가장 함축적으로 집중해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현지 숙소를 방문 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야경을 보기 위해서 가봐야 할 곳이 어디일까요?”다. 이스탄불에도 적합한 장소가 몇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갈라타 타워다. 신시가지의 이스티크랄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높이 솟아 있는 타워를 볼 수 있다. 높이는 70m로 그리 높지 않다. 화려하거나 근사하지 않아 허름한 등대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 타워는 이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바라보는 전경은 기대 이상으로 좋다. 탁 트인 전망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추천한다. 물론 낮에 바라보는 시가지의 풍경도 아름답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바람과 풍경을 벗 삼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는 충분하다. △ 이스티크랄 거리 : 물담배 탁심광장(Taksim역)에서 갈라타타워 까지 연결되는 거리로 흡사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됐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곳에는 쇼핑거리와 레스토랑이 밀집돼 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활기차고 번화한 거리다. 특히 보행자 전용 거리로 차량 통행이 제한돼 있다. 이곳에는 ‘노스탤지어’라 불리는 명물 트램이 있는데, 복잡한 이스티크랄 거리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트램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가히 매력적이다. 이스탄불에서 종종 트램을 타고 거리를 바라보았다. 쇼핑센터에서 옷 구경을 하거나 근사한 음식점 앞을 기웃거리며 배고픔에 호소해 보기도 했다. 현지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 로컬음식을 먹고, 구석길 골목 어귀의 카페에서 물담배를 즐겼다.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카페에서 건전하게 물담배를 피며 조금은 유치해보일 수 있는 보드게임을 즐긴다. ‘나르길래’ 라고 불리는 물담배는 사과, 딸기, 커피 등 원하는 향을 고를 수 있다. 터키식 차이(홍차잎을 스트레이트로 진하게 내려서 뜨거운 물을 좀더 붓고 설탕을 넣어 마시는 차)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중독성 강한 물담배와 차이를 접해보지 못했다면, 한국의 이태원 등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니코틴이 없어서 카페에는 현지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건강에는 담배보다 훨씬 좋지 않다고 하니 체험 정도로만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입안에서 맴도는 향료의 향기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카페에서 현지 게임을 하면서 멋진 포즈를 잡고 물담배를 즐겨보는 것도 이스탄불에서 꼭 해야 할 것 중 하나다. # 과도한 친절 터키 사람들은 유난히 친절하다. 버스에서 지도를 보고 있으면, 오지랖 넓은 현지인이 먼저 다가와 손발을 다 써가면서 알려준다. 상점이나 관광지를 방문하더라도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그들에게 친절은 몸에 배어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어리둥절할 정도로 지나친 친절은 한번쯤 의심해볼만 하다. 예컨대 맥주를 함께 마시자고 한 뒤, 약을 타서 정신을 잃게 한 다음 금품을 훔치거나 유흥주점으로 데려가 터무니없이 비싼 술값을 강제로 내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는 여성 여행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벌이기도 한다. 이스탄불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곳은 관광객이 많이 몰려있는 탁심광장이나 아야소피아 앞의 광장이다. 나도 아야소피아 광장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면서 먼저 다가온 남성일행이 있었다. 카메라를 건네자 무리 중 한명이 술을 먹자고 제안했다. 순간 친절한 그들의 인상에 혹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 거절했다. 며칠 후 나와 비슷한 유사 사례들이 포털사이트의 카페에 떠도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멀리서 그들의 얼굴을 망원렌즈로 촬영한 사진을 카페에 올려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통쾌한 복수였다. 여행객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면 누구라도 조심해야만 한다.
2015-07-27 01:01:30
2015년 4월 25일 발생한 네팔 지진으로 인한 8600여명 사망자와 집을 잃은 50만채 가옥의 네팔리(네팔인)들을 추모한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마음속으로 나누면서 글을 써내려간다. #. 트레킹 2~3일차 :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 푼힐 전망대 코스: 울레리 (1960m) ~ 고래빠니 (2750m) ~ 푼힐 (3210m) 산속에서의 할 일은 많지 않다. 해가 지면 더욱 그렇다. 암흑의 고요함이 활기찬 경쾌함으로 바뀌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산 속의 새소리에 기분 좋게 눈을 뜬다. 하지만 온 몸이 뻐근하다. 어제 무리한 바도 없지 않지만, 몸에 적응시간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오늘의 목적지 고래빠니(2750m)는 4시간 거리다. 어제에 비하면 계단도 많이 없는 트레킹 코스다.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걸으며 오늘의 목적지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에 빠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녹음이 우거진 숲 속의 돌길을 걷고 있으면 먼 옛날 한양 찾아가던 선비가 된 것 같다. 걷다가 힘들면 잠시 앉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쉬면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은 여유가 더해 멋스러운 향내마저 난다. 뜨거운 태양으로 이마에 땀이 흥건해질 쯤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이제 막 지난 이른 시간이다. 마을의 초입에서 ‘POLICE CHECKING’ 이라는 큰 의미 없는 절차를 통과한 후 숙소에 짐을 푼다. 어제 선크림을 많이 바르지 않아서 인지, 목 부근에 화상을 입었나보다. 마찰되면 조금씩 통증이 느껴진다. 태양빛이 무섭다. 내일부터는 화이트 팩 수준으로 발라야겠다. 세르파인 밀바두가 나에게 경고한다. “4000미터가 넘어가면 선그라스는 꼭 써야 돼. 눈에 반사되는 태양 빛에 실명이 될 수도 있어” 강혁 군은 체력이 남나 보다. 내일 새벽에 갈 곳인 ‘푼힐 전망대’를 사전답사 하겠다고 한다. 푼힐 전망대는 해발 3210m로 이곳과 약 500m 차이가 난다. 난 고산병이 걱정되어 강혁군을 말려보지만, 체력 하나는 군대에서도 최고라면서 걱정 말라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준다. TIP. 고산병 고산병은 고도가 낮은 곳에서 급격하게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 몸이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신체 부적응으로 보통 고도 3000m가 넘으면 두통을 호소하거나 체력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증세를 느낀다. 누구나 다 걸릴 수 있는 병으로 천천히 올라간다면 예방이 가능하다. 고산증 예방에 좋다는 음식으로는 마늘수프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이 보통 권하는 하루 상승 고도는 300m이다. 성질 급한 대한민국 사람의 ‘빨리빨리’ 문화를 접목시키다가는 어느 순간 헬기에 실려 있을지도 모른다. 고산병으로 헬기를 부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비용은 상상에 맡긴다. 새벽 5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다. 약간의 설레임이 나의 신경을 압박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저녁 밀바두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했다. “강혁 군이 미리 다녀와서 길을 아니까 우리끼리만 다녀올게요. 너무 걱정마세요.” 옷을 두툼하게 챙겨입고 숙소를 나선다. 강혁 군이 길을 안내하지만 적막한 산속의 어둠이 두려움으로 엄습해온다. 마을 옆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니, 해드 랜턴 불빛이 우리의 뒤를 따라온다. 1시간여를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를 정도로 어둠 속에서 앞선 사람의 랜턴 불빛만 보고 오른다. 고도가 높아지자 숨이 조금씩 차오른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어둠이 사라지는 모습에 지평선 아래에서 해가 힘차게 걸음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저 멀리 전망대가 보인다. 쌀쌀한 날씨에 전망대 식료품점에서 핫초코를 한잔 산 후 그 따듯함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물이 과한 그 맛은 달콤한 기대조차 깨버릴 정도로 형편없다. 복선이었을까. 아니면 아주 멋들어지게 해가 뜨길 기대한 나의 과한 기대였을까. 해는 구름 뒤에 숨어 옅은 붉은 빛만 드러낸다. 아쉽지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기에 쿨하게 받아들인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안나푸르나를 향해 다시 출발이다.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며. TIP. 포터가 꼭 필요한가? 포터와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고 트레킹을 하는 경우는 유럽 백패커들 사이에서 흔한 경우다.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측면은 있다.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이 처음이라면 권할 사항은 아니다. 히말라야는 지리산과 설악산과 같은 곳이 아니다. 트레킹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아니기에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경험 많은 현지 포터에게 의존한다고 수치스러운 것이 절대 아님을 명시해야 한다. #. 트레킹 4~6일차 : 설산에 다가가는 길 코스 : 데우랄리 (2983m) ~ 시누와 (2300m) ~ 히말라야 (2900m) 트레킹 4일차다. 푼힐(3210m)을 내려온 이후 시누와(2300m) 까지는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가파른 경사를 계속 오르는 코스는 없지만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면서 안나푸르나 설산에 한층 다가간다. 마을을 지나갈 때면 그곳의 어린 아이들에게 밝은 미소를 건내본다.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눈동자로부터 내 모습이 비춰진다. 오늘은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다. 오후 2시부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근처 롯지로 피신했다. 변덕이 심한 높은 고지대의 날씨 때문에 일정이 틀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는데 산속의 어둠은 급격하게 찾아오고, 기온도 뚝 떨어졌다. 갑작스런 폭우에 산골 마을의 전기도 끊겼다. 암흑 세상에서 조용히 하루를 정리해본다. 날이 밝았음이 어제보다 더 명랑한 새의 알람 소리를 듣고 알았다. 언제 폭우가 왔었느냐는 듯이 화창하다. 창문을 열자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가 굿모닝을 외친다. 산 정상에서 막 퍼온 듯 한 차가운 냉수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며 오늘도 파이팅을 다짐한다. 아름다운 경치와 무거운 발걸음이 이제는 무뎌질 즈음이다. 어제부터 고산증을 호소한 강혁 군의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뒤쳐진다. 푼힐을 두 번이나 급격하게 오르고 내리면서 하루 동안 겪은 고도 차이를 몸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과한 욕심이 화를 가져온 결과다. 별 수 없이 나의 친절한 천성은 호의를 베풀어야만 했다. 강혁 군의 가방을 들어 맨다. 트레킹 전용 가방이라 허리와 어께에 전해지는 무리함은 나의 것에 비해 덜 한다. 그래도 10㎏이 넘는 가방이라 그 무게를 무시하기에는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지쳐간다. 트레킹 6일차. 밤부(2400m)를 지나 히말라야(2900m) 까지는 가파른 산행이다. 오늘은 ABC 캠프에 올라가기 위한 문턱인 히말라야 롯지까지 가야 한다. 오늘도 강혁 군의 가방은 나의 몫이다. ‘이런 젠장! 무리하지 않기 위해 포터 아저씨를 고용한 것인데, 내가 강혁군의 포터가 되다니.’ 가방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기는 하지만, 일주일 간의 트레킹으로 산길을 평화롭게 걷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산속의 롯지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자. #. 트레킹 7일차 : 안나푸르나 설원 위의 주인공. 코스 : 히말라야 (2900m) ~ MBC (3703m) ~ ABC (4130m) 안나푸르나를 향하여 오르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 하루를 위해 지금까지 힘겹게 올라온 것이다. 이른 새벽 분주히 짐을 챙긴다. 오늘의 코스는 MBC를 거쳐 ABC까지다. (MBC는 문화방송이 아니라 Machha puchre Base Camp의 약어다) 워밍업을 하듯 한 시간 정도 평지를 걷더니 이내 오르막의 시작이다. 도반을 지나 어느 롯지에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초콜릿을 하나 산다. 가격은 150루피, 한화로 약 3000원이다. 초코바 가격치고는 상당히 나가는 금액이지만, 그러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당의 힘으로 다시 힘차게 발길을 내딛는다.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깊은 계곡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간다. 커다란 협곡 사이를 거닐수록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지형들을 조심히 건너며 끝이 보이지 않은 오르막을 오른다. 8시에 출발한 트레킹은 어느덧 4시간이 지났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내딛는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신의 허락을 받기가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특히 고산증을 호소하던 강혁 군은 계속 뒤쳐진다. 그 옆에서 밀바두는 계속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눈앞의 가시거리가 갈수록 줄어든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수증기 입자들로 공기는 가득 차 있다. 강혁 군이 차고 있는 시계 겸용 고도계를 흠칫 쳐다본다. 해발 3700m 까지 왔다. MBC에서 꿀맛같은 점심을 먹는다. 그곳 롯지에는 와이파이가 된다는 놀라운 표시가 있다. 하늘과 닿을 듯 한 이곳에서 와이파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장비가 고장 나서 작동하지 않았다. 하루 빨리 부모님과 사랑하는 애인에게 풍경과 나의 건장함을 알리고 싶었는데, 아쉽다. 롯지 앞에 나와 저 멀리 ABC를 쳐다본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레임이 가득하다. 다시금 ABC 표시판을 따라 걷는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 덕분에 패딩과 바람막이 등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총 동원한다. 이런 추위가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밀바두는 빨리 가자는 말로 나를 재촉한다. 모 브랜드의 말아서 접을 수 있는 패딩위에 싸구려 바람막이를 입고, 노란색 등산모자와 검은색 선그라스를 끼고 있다. 나는 등산복 패션 테러리스트다. 롯지를 벗어나 산길을 오를수록 길의 구분이 힘들다. 앞의 포터 아저씨만 보고 숨을 조절 하면서 천천히 한발씩 내 딛는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꿈속에서 해매는 장면 같다. 온통 하얀 배경에 누군가에게 홀린 듯 쫓아갈 뿐이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오후 3시가 넘어서자 ABC가 한 시간 남았다는 문구가 보인다. 희망에 차서 힘을 내보지만, 높아지는 고도에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눈길 사이로 저 멀리 비닐 포에 쌓여져 있는 무엇인가가 보인다. 궁금하여 밀바두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잊어버려진 사람의 시체라 한다. 실제로 히말라야에서는 매년 실종자가 종종 발생되고, 그들의 시체를 고국까지 이송하지 못할 형편이 되면 저렇게 방치한다고 한다. 다시금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할 것 같다. 고도계의 높이가 4000m를 찍자 저 멀리 희미하게 롯지가 보이는 것 같다. 분명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착시현상을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숨소리는 거칠어지지만 마음은 들떠 있다. 드디어 해발 4130m 고지의 ABC 깃발을 발견,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밀바두와 강혁 군과 함께 얼싸 안고 기쁜 마음에 큰 소리로 외쳐본다. “와! 드디어 해냈다!!!” 4000m 산속의 새벽 날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춥다. 이 지역의 평균 기온은 지상보다 10~15도 정도 내려간다. 핫팩도 소용없다. 강혁 군의 기침소리가 더욱 심각해져서 나의 신경을 자극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6시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롯지 뒤편으로 향한다. 벌써부터 일출의 모습을 기다리는 트레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구름과 안개가 완전히 걷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모습은 가히 환상이다. 롯지를 중심으로 360도 어느 방면으로 보아도 예술이 아닌 곳이 없다.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기만 했던 설산 봉우리가 눈앞에 바로 멈춰서 있는 것 아닌가! Annapurna South(7219m), Annapurna I(8091m), Machha puchhre(6993m), Hiuchuli(6441m) 등 걸출한 산들이 360파노라마로 내 주위를 온통 감싸고 있고 그 하얀 설원 위에 내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노트와 펜을 꺼내 소중한 이 순간을 기억해본다. 영원히 잊지 못할 도전. 신이 허락한 자가 되기 위한 힘든 사투 결과 그 끝에서 맛본 환상적인 풍경. 겸허함과 감사함이 사뭇 교차 된다. 지난 일주일간 오직 이 한순간만을 위해 세상과 소통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 가치는 빛난다. #. 포카라 즐길거리 트레킹을 마친 여행객들은 포카라에서 트레킹의 여훈을 푼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좋지만 포카라에는 즐길만한 액티비티도 상당하다. 한적한 아침, 페와 호수를 배경으로 자전거, 혹은 스쿠터를 타거나 산책로를 걸으면서 호수에 비친 마차푸차레의 절경과 함께 여유와 평화를 느낄 수 있다. 페와 호수는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 내려만든 물로 포카라를 상징한다. 오후에는 설산과 호수를 무대삼아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해가 지면 라이브 밴드가 있는 펍(PUB)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면 완벽하다. 포카라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즐기는 패러글라이딩은 한화로 8만~10만원 정도 된다. 여행사나 숙소에서 쉽게 예약을 할 수 있으며, 차를 타고 포카라에서 30분 거리 산으로 올라간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전문가와 함께 하는 팬덤 패러를 즐기는데, 전문가와 함께 하기에 충분히 안전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한 사람이라면 약 20분여 간 환상적인 풍경에 “좋다” 라는 말을 연신 입에 달고 있을 것이다. #. 포터 아저씨 : 밀바두 에게 남기는 편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10일간 나와 강혁 군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주었던 포터 아저씨. 그의 이름은 밀바두. 비록 수많은 관광객중 하나뿐인 나이지만 언젠간 기억해줄지도 모르는 그에게 줄 사진을 인화하고 고마움의 편지를 남겨본다. 메일 주소를 남겼지만 여태 메일 한번 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메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거 같다. “포터”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그들은 속칭 짐꾼 이다. 1인 1짐을 들고 가이드 역할을 할 때도 있고, 많게는 1인당 2명의 짐을 짊어지고 올라간다. 그 가방의 무게는 아무리 가벼워도 대략 20kg 이상은 된다. 이런 행위는 그들의 직업이다. 산이라는 특수한 생활조건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산으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1만5000원 정도의 돈을 받고 그들은 산을 오른다. 좋든, 좋지 않든 그렇게 그와 나는 만났다. 나이는 34살. 슈퍼 노안. 이유인 즉슨 산쟁이라서 그런가 보다. 산쟁이를 비하해서가 아니라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듯하다. 귀여운 딸이 있다고 가끔 자랑하던 밀바두. 그는 한국말을, 아니 영어조차도 전혀 할 줄 모르는 토종 네팔인이다. 간혹 포터중에서는 관광객을 오랫동안 상대하여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들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돈에 능숙하다. 그 많큼 노련하게 관광객을 다를 줄 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항상 우리 앞에, 혹은 우리 옆에 그가 있었다. 포터가 할 일은 짐을 들어주는 것 말고 참 많다. 짐 주인의 컨디션을 파악하여, 일정을 짜는 것. 또는 그들의 사진기사가 되어주는 것. 매사를 맞춰줘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짐이 무겁지 않느냐? 혹은 내가 들어줄까? 물 한모금 마실래요? 힘들면 우리 조금 쉬면서 올라가죠?” 하면서 먼저 물어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정도면 그에게 나는 최고의 짐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는 놀라울 정도로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는다. 우리의 짐은 10kg 정도였다. 그 정도는 껌이라는 듯이 아주 펄펄 날아다녔다. 문득, 그립다. 시간이 꽤나 지났구나 벌써. 아마 오늘 이 시간에도 그는 이번 나의 주인은 누가 될지? 성격은 좋을지? 아니면 40kg 폭탄 짐을 들고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등산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면서 그에게 줄 사진을 몇 장 인화하고 사진 뒤쪽에 편지를 썼다. 편지와 사진을 조심히 담아 다음날 숙소로 찾아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그는 또 다른 한국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람로! 이것은 기분 좋을 때 내는 네팔 언어이다. 다니밧 ! 이것은 감사하다는 뜻의 네팔 언어이다. 그와 소통하기 위해 그에게 배운 언어다. 그에게 배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건낸다. “다음번엔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와서 너를 꼭 찾을게” 잊지마.
2015-06-29 01:47:21
한 달간의 짧은 인도 생활을 마치고 네팔로 향했다. 단 하나의 이유로 모든 여행자들은 그곳을 향한다. 신만이 허락한 산을 오르기 위해. 산악인 고 박영석 대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히말라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몇 가닥 뿐이다. 신이 우리에게 허락해주는 순간만 자연은 그 속살을 보인다”. 당장 마음 먹으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인간의 넘치는 욕망도 절제되는 곳, 신의 허락만이 있어야 가능한 곳이 바로 히말라야다. 네팔로 가는 길은 강행군이다. 인도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은 크게 항로와 육로, 두가지다.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네팔의 수도)를 거쳐 포카라(안나푸르나 히말라야 트레킹 시작 도시)로 이동하면 된다. 또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국경을 넘게 된다. 한국에서 네팔로 바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일주일에 2회 편성, 운항되고 있다. 나는 인도 바라나시에서 건장한 청년 ‘강혁’군을 만났다. 그는 해병대를 전역한지 얼마되지 않은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서로 일정이 비슷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하기로 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일정이 맞는 여행자와 동행하기도 하는데 낯선 곳에서 한국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응급상황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를 대비한다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2013년 3월 24일 필자는 바라나시에서 포카라로 출발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나의 내면과 타협하는 적절한 장소가 이곳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젊은 백패커들은 이동수단으로 현지 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한다. 특히 현지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행위는 아주 매력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분단국가에 종속되어 있어서일까? 국경을 넘는 것은 묘한 쾌감마저 든다. 야간기차를 타고 국경도시 고락푸르(Gorakpur)까지 밤새 달렸다. 해가 뜨자 역 앞에서 네팔 국경도시 소나울리(Sonauli) 까지 가는 로컬버스를 탔다. 버스는 동네 곳곳과 비포장도로를 달려 한낮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내 정신은 밤샘 이동에 비몽사몽이다. 차에서 내려 먼지 가득한 도로를 걷다보면 ‘Welcome Nepal’ 간판이 보인다.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왔다는 증거다. 국경사무소에서 비자 비용 25달러(15일치)를 지불하니 여권에 도장이 나온다. 걸어서 나라 전역을 이동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네팔로 들어왔으니 적응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인도 루피와 네팔 루피의 현금 단위가 헷갈린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 보며 지프 기사와 재협상을 벌인다.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어느덧 출발한지 16시간이 지났다. 힘들게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포카라행 티켓을 끊는다. 하지만 여기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험준한 산이 많은 특성상, 위험천만한 길을 곡예운전하듯 6시간 이상 가야 한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린 여행자가 되어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할 뿐이다. 버스는 1980년대식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오라이’를 외치는 승무보조원에게 모든 짐을 맡긴 채 버스에 올라탄다. 올드한 느낌의 보잉 선글라스를 낀 채 몸집보다 큰 무파워 핸들을 거침없이 돌리며 왕복2차로 도로를 질주하는 운전수를 보고 있으면 ‘내 목숨을 담보로 얻는 대가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터무니없이 좁은 자리에서도 직각 자세로 잠을 잘 수 있다는 생존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드디어 24시간 만에 도착했다. 체력적인 소모가 많아 아주 건장한 젊은 여행자가 아니라면 네팔 국경 근교 도시에서 1박할 것을 추천한다. #. 트레킹의 시작, 포카라 해발 820m 고지에 위치한 포카라는 히말라야를 등반하기 위해 전세계 수많은 트레커들이 모이는 곳이다. 트레킹 이후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는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일대 모든 트레킹의 출발지이며 종착지인 셈이다. 지난 강행군에 시체처럼 잤다. 눈을 뜨면 항상 듣던 인도에서의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히말라야의 찬 공기가 창문 너머 스며들어 방의 정적을 깬다. 창문을 활짝 열어본다. 화창한 날씨와 고요한 봄내음에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른다. ‘힘들게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 포카라 레이크사이드, 지상낙원에 왔음을 멀리보이는 설산이 두 팔 벌려 격렬히 환영하는 것 같다. 오후가 되자 트레킹을 위한 준비물품을 사러 레이크사이드 거리에 나왔다. 즐비한 장비점에서 쉽게 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 나는 등산용 바지를, 강혁군은 침낭과 등산복 세트를 빌렸다. 유명 브랜드 ‘북쪽얼굴’의 짝퉁이지만, 트레킹을 하기에 큰 무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 산에 적응한 티를 내듯 몸에 잘 어울려 있는 것만 같다. 등산용품을 대여하고 마트에 들려 초콜릿과 과자 등 비상식량도 빠지지 않고 챙긴다. 자신과의 위대한 싸움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다. TIP. 트레킹 준비물품 일반적으로 트레커들이 준비해야 할 물품으로는 챙이 넓은 모자와 활동성이 좋은 등산용 바지, 비와 바람에도 든든한 등산 자켓, 방한복, 등산화, 갈아입기 편한 상하의, 침낭, 선글라스, 자외선차단제, 입술연고, 비상약, 초콜릿 등이다. 하지만 트레킹 도중 간혹 삼선슬리퍼나 쪼리를 신고 트레킹을 즐기는 유럽 백패커들을 보면 오색빛깔 화려한 등산복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단지 중요한 준비물품은 마음가짐이 아닐까? TIP.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트레킹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이 즐기기에 적당하다. 10일의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트레킹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포카라를 찾는다. 물론 쿰부·랑탕 등 다른 지역에도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안나푸르나를 중심으로 하는 3개의 주요 트레킹 코스로 △좀솜 트레킹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ABC라고 부름) △안나푸르나 어라운드 트레킹이 있다. 좀솜 트레킹과 ABC 트레킹은 푼힐 전망대를 본다는 가정 하에 7~10일이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간혹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여행자들은 3일 일정의 좀솜 트레킹과 푼힐 트레킹을 즐기기도 한다. 필자는 푼힐 전망대와 ABC 전망대를 오를 계획으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8박 9일 루트를 소화했다. 이 코스를 돌면 다올라기리,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산의 풍경과 그곳 촌락에서 생활하는 네팔리(네팔인)의 삶을 볼 수 있다. #. 트레킹 1일차 : 언플러그드 여행의 시작 코스: 나야풀 (1070m) ~ 울레리 (1960m) 소요시간: 약 6시간 출발 전 8박 9일 동안 트레킹을 도와 줄 포터 아저씨 ‘밀바두’ 를 만났다. 톰 아저씨를 닮은 선한 인상의 그는 짐꾼이라 보기에는 힘겨울 정도의 왜소한 체구다. 키는 160㎝, 몸무게는 50㎏이 조금 넘을 듯하고, 상당한 노안의 외모다. 트레킹 후반에 친해지고 나이를 물어보니 30대 초반이란다. 깜짝 놀랐기에 노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숙소 사장님은 나의 걱정스런 눈빛을 읽었는지, 염려말라고 안심시켜준다. 든든할 정도로 잘 챙겨 줄 것이라는 눈빛과 함께. 여행 전 어느 책에서 본 글귀다. ‘포터 고용은 인권윤리 침해다. 하지만 그들은 원한다. 그들은 종종 말한다. 단지 직업의 하나뿐이며, 어느 곳에서든 많이 와주었으면 하는 바림뿐이라고. 그들에게 포터는 하나의 생존 방식이다.’ 포터 아저씨 ‘밀바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다뤄보겠다. 가방 때문에 택시의 공간이 비좁다. 창문 너무 희미하게 설산의 봉우리가 스쳐 지나간다. “내가 도전할 곳이 저곳인가?”하며 다시 힐끔 뒤돌아본다. 한참을 달려 나야폴(1070m) 트레킹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많은 트레커들이 신발을 단단히 동여매고, 가방을 다시 챙긴다. 나도 택시에서 내려 가방끈을 조여 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시작이구나. 아자! 파이팅’ 시계를 흠칫 쳐다보니 이제 오전 9시다. 차갑지만 상쾌한 산속 공기를 힘껏 들여 마시며 발걸음을 떼 본다. 트레킹은 1시간 정도를 걷고 앉아서 조금의 휴식을 취하는 방식을 반복한다. 언덕을 오를 경우 시간적 제약은 없다. 힘들면 쉬면 그만이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트레킹의 첫 번째 철칙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경치의 아름다움에 비례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도 넘친다. 걷기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리 힘들지 않은 언덕 덕분에 아직까지는 나의 체력에 대한 자만감으로 가득 찼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포터가 하루 일정을 고려해 롯지(트레킹 코스 중간에 있는 식당 겸 숙소)를 선택한다. 우리는 ‘힐레(1430m)’라는 마을에 닿았다. 든든한 아침을 먹고 중간 휴식 시 초코바를 먹어서 인지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다. 하지만 무조건 시켜야만 한다. 내가 지불하는 음식 값에 포터 아저씨의 밥값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먹어야 그도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식사는 생각보다 좋았다. 운동한 뒤 마시는 맥주의 상쾌함처럼, 땀 흘린 뒤 먹는 밥도 제법이다. ‘힐레(1430m)’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 ‘울레리’(1960m)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고달프다. 일반 길이 아닌 계단길이다. 끝없이 오르는 경사진 계단길에 관절 마디가 상당한 통증을 호소한다. 힘을 낼 수 있는 뭔가를 먹어야만 한다. 중간의 쉼터에서 환타를 사 먹는다. 트레킹 중 탄산음료는 최고의 활력제다. 단 가격이 무려 180 네팔루피(한화 약 2200원)임은 감안해야 한다. 모든 트레커들이 가파른 언덕의 계단길에 힘겨워하고 있다. 하지만 포터들은 본인의 몸뚱이 보다 훨씬 큰 짐과 바구니를 짊어지거나, 머리에 매고 간다.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말이다. 이 산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고, 이 일이 그들의 주 생계임을 감안하면, 내가 태어난 곳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3시가 다 되어간다. 울레리 마을에 들어오니 ‘히말라야 여행동호회’라는 큰 한글 팸플릿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오늘의 숙소를 잡는다. 오늘 총 6시간의 트레킹을 했다. 오후 3시면 다소 이른 시간일지도 모르나, 산속이라 해가 일찍 지기에 위험하다고 한다. 한껏 여유롭게 쉬며 산속 경치를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언젠가는 새로운 여행 트렌트가 될지도 모를 언플러그드 여행. 통신과 전기가 없는 곳으로의 여행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끌어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여행일지 모른다는 설렘으로 첫날을 마무리지어 본다. TIP.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최적 시기 히말라야 트레킹을 최고의 조건에서 즐기려면 날씨를 고려해야 한다. 네팔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구분된다. 우기는 대개 5월 하순~9월 하순이고, 10월~5월 중순까지는 건기다. 트레킹하기 좋은 계절은 당연히 건기다. 우기가 끝나는 10월은 트레킹 최적기다. 청명하고 짙은 잉크빛 하늘을 바라보며 트레킹을 할 수 있기에 10월이면 네팔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가장 많다. 마치 우리나라 단풍철에 설악산을 가는 것처럼. 하지만 10월이 아닌 건기에도 추위에 단단히 대비한다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과 눈덮인 설산의 조화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2015-04-17 10:01:57
인도에 도착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낯설다. 눈을 뜨면 창문 밖 경적소리가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숙소를 나오면 쾌쾌한 매연이 신경을 더욱 자극한다. 마치 군대에 처음 입대한 신병처럼 주변 환경에 긴장하게 된다. 이런 스트레스가 뇌세포들에 계엄령을 내린다. #. 게으름: 이보다 더 행복한 낭비가 세상에 있을까 날카로움이 극에 달할 시기에 라자스탄주(인도 북서부로 파키스탄과 접경) ‘우다이푸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인도에서 가장 세련되고 로맨틱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는 이 도시는 큰 호수를 끼고 있어 휴양지 느낌마저 난다. 중심가에는 차량이 들어올 수 없어 경적소리와 매연이 없다. 이곳에서의 일상도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늦은 아침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어슬렁거린다. 한낮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조금은 심심해보이는 야외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루프탑(차양이 드리워진 좌석) 그늘진 자리에 눕는다. 밀크티 한잔을 시키고 최고급 스페셜 요리를 주문한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눈앞의 호수를 바라보며 책을 읽다 졸리면 자면 된다. 이것이 전부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돈’이라는 자본주의적인 단어는 무용지물이다. 더 큰 사치는 해질 무렵 뒷산에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다. 전망대에 올라 환상적인 일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만큼 행복한 낭비가 세상에 또 있을까. 아직도 30년 동안 몸에 밴 부지런한 한국인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시간을 쪼개서 더 많은 관광지를 구경하러 일정을 짜고 부산을 떤다. 이런 것들을 성취하는 데 열중하지만 관광명소를 한두 곳 더 본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게 바로 인도스러움이다. 루프탑에서 ‘만수르’보다 멋지게 누워 있는 한 여행객이 한 말이 인상 깊다. “백(필자의 애칭), 잘 들어봐. 여행도 일상의 연속이야. 나는 5일 동안 새로운 것을 보고 이틀 동안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충분한 휴식을 가져.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누가 상을 줘? 때론 천천히 여유를 가져봐.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거야“ 분명 너무 빠른 것이 답은 아니다. 하지만 습관을 버리기는 힘들다. 이런 대립된 개념 속에서 자기만의 정해진 약속을 깬 후 만들어진 여유는 인생의 큰 사치가 아닐 것이다. 주문처럼 외쳐본다.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멀리” 여행도, 때로는 인생도. 호수를 바라보며, 때로는 공원에 누워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은 어떤 관광지 구경보다 값지다. #. 감사함: 아직까지는 살만한 세상이야 시계의 초침과 분침은 새벽 5시다. 좁고 더러운 야간기차의 어느 구석에 누워 있다. 누가 나의 짐을 훔쳐갈지도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렘으로 허둥대고 있다. 목적지인 자이푸르(라자스탄주의 주도로 상공업 중심지)에 도착하면 서둘러 20㎏의 무거운 가방을 매고 내려야 한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잠을 쫓아내기에는 그만이다. 역사 밖으로 나오면 수많은 호객들의 집중 대상이 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하다 싶을 정도다. “어느 숙소까지 가요? 없으면 내가 아는데 데려다 줄게요. 싸요. 싸.” 지겨운 놈들. 10여명의 호객꾼들이 금세 나를 둘러싼다. 대꾸할 힘조차 없다. 조용히 구석으로 향해, 그들에게 잠시 휴정(休廷)을 요청한다.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 나가는 이가 늘어난다. 모두를 뿌리치고 나서야 역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로 걸어갈 것을 마음먹는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리 없다. 그냥 한참을 걷는다. 어렵게 도착한 숙소는 이미 방이 꽉 차 있다.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온 내 잘못이다. 피곤하지만 또다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에는 항상 혼자만의 책임이 따른다. 숙소의 주인이 나의 깊은 한숨을 눈치챘나보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가 전화기를 들고 동네의 모든 숙소에 문의한다. 다행히도 얼마 후 다른 숙소로 안내받았다. 하지만 아직 체크아웃 시간이 되지 않았다. 숙소 주인은 흔쾌히 본인의 방을 나에게 제공하고, 담요와 먹을거리를 준다.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었어.’ 지금까지 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내 눈에는 모두가 사기꾼으로만 보였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나에게 베푼 호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절박했기에 감사함은 몇 배가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살만한 세상이다. #. 눈물의 의미: 성숙 시간이 흐르자 여행이 곧 일상이 되었다. 늦은 아침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을 시작으로 대표 관광지 구경과 사람 냄새 찾으며 여유부리기에 익숙해졌다. 변화된 또다른 일상에 충실한 하루하루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며 하루를 정리해 본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저 사람이 과연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 맞는 걸까?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검게 타버린 피부와 추한 나의 몰골에 가슴은 무너진다. 이윽고 내면에서 흐르던 눈물이 넘쳐 하염없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단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지?’ 오늘따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더욱 서글프다. 오늘 점심 때 벌어진 사건이다. 레스토랑에서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달랬다. 식사를 마친 후, 종업원으로부터 레몬이 장식되어 있는 물이 담긴 컵을 받았다. 한식당에 가면 후식으로 나오는 수정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자 갑자기 일을 하는 젊은 종업원이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영어가 서툴러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마지막 단어만큼은 확실하게 귀에 들어왔다. “Don’t Drink” ‘아차! 이것은 손을 씻을 때 사용되는 물이구나.’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그들의 문화로 보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먹는 물은 모두 돈 주고 사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어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내 부주의가 참사를 낳았다. 오염된 물을 먹은 탓일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한다. 침대 속에 들어가 이불을 꽁꽁 싸맨 채, 내 몸의 바이러스와 싸운다. ‘펑펑’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울면서.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함에 벌써 지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워 진걸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받아들인 지금 이 현실을 부정하기만은 싫었을 지도 모른다. 내면의 나를 찾아 말을 걸어본다. ‘무엇이 문제야? 너의 선택이야. 책임은 오로지 너란 말이지’ 여행의 시간이 점차 길어질수록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추구했던 성숙된 나를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 나는 배워가고 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 필자의 인도여행 루트 인도의 면적은 대한민국(남한)의 약 33배에 달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로 4시간 반이 걸린다는 가정 하에, 단순히 계산해 보면 인도의 북에서 남까지는 약 150시간, 6일이 걸린다. 그만큼 인도의 땅은 넓다. 남인도는 관광지가 많이 없어, 처음 인도를 여행한다면 북인도가 더 적합하다. 남인도와 북인도를 모두 돌아볼 경우 최소 두 달 이상이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여행자라도 북인도를 기준으로 볼 경우 최소 2주 이상, 넉넉히 한 달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막상 이곳을 가보면 한두 달의 시간은 인도를 느끼기에 턱없이 짧고 부족하다. 그래서 6개월 이상의 장기여행자들이 많은 편이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리는 곳은 뉴델리, 바라나시, 아그라, 자이살메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행 일정 짤 때 북인도를 여행한다면 네팔을, 남인도를 간다면 몰디브를 들르는 일정을 고려해보자. 한국에서 따로 가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은 곳들이다. 도시 간 이동시간은 인도 철도청 사이트(http://www.indianrail.gov.in/between_Imp_Stations.html)에서 확인 가능하다. #. Must To Do 1. ‘미’의 정점: 타지마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은 인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아그라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무려 22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로 무굴제국의 황제인 샤자한이 자신의 부인을 기리기 위해 지은 무덤이다. 타지마할이 아름다운 이유는 출입구부터 묘궁까지 중앙 연못을 중심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그 안정감과 정교함, 웅장함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특이한 점은 개관 시간이 일출 시간이다. 해가 뜨기 시작하여 자욱한 안개 속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은 ‘미’의 정점을 향하는 것만 같다. 너무 아름다워 경건하기까지 한 그곳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단, 타지마할은 금요일에 휴관이다. 일정상 여유가 된다면, 타지마할 뒤편 야무나강에서 100루피(한화 2000원)를 내고 배에서 관람하는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한 일몰도 환상이니 꼭 권하고 싶다. 2.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인도의 각 전역에서 연간 100만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인도인들은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전생과 현생에 쌓은 업을 씻어 내려가기를 기도한다. 강변을 따라 4㎞ 정도에 걸쳐 ‘가트(Ghat)’라는 계단상의 목욕장 시설이 마련돼 있다. 어느 한쪽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화장하고 있고, 그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는 화장터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그들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죽은 다음의 생애가 있다고 믿는 그들에게는 가장 경건한 순간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 앉아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덧없음이 느껴진다. 가트의 계단에 앉아 삶에 대한 무수한 생각을 하면서 그 모습을 보던 그 때가 그립다. 3. 자이살메르에서 낙타 사파리 체험하기 인도에도 사막이 있다. 중동의 사막지대에서만 낙타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키스탄과 국경 지역에 인접한 인도의 서부 도시 ‘자이살메르’에 가면 사파리가 가능하다. 보통 1박 2일의 일정으로 사막에서 야영을 한다. 물론 이집트와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 체험과 비교해 본다면 턱없이 부족하고 아쉽다. 하지만, 그렇게 먼 곳까지 갈 여유가 없다면 인도에서 낙타를 타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단, 고려해야 할 점은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고, 중간 중간 가이드가 해준 모래가 씹히는 식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물이 귀해서 모래로 그릇을 세척한다.) 하지만 사막에 누워 바라보는 별의 모습은 이런 힘든 점도 잊게 해주기 충분하다. 인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 집 떠나 개고생: Best 3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도는 ‘Amazing India’ 라고 불린다. 힘들고 지쳐도 놀랍고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 한다는 말은 명불허전이다. 1. 배낭여행자들에게 돈을 아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숙소다. 그러다 보니 저렴한 숙소를 찾아다닐 경우가 많다. 나는 100루피~500루피(한화 2000~1만원) 사이의 숙소를 선택했는데 저렴한 곳은 숙소의 상태가 좋지 않은 곳도 많다. 축축한 시트와 베개,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침대 상태에서 가져간 침낭은 큰 도움이 된다. 자칫 잘못해 빈대에 쏘이거나, 피부병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침낭은 필수 용품이다.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4평도 되지 않은 조그만 공간에서 멍하니 누워 있으면, 집 떠나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2.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흥정이다. 택시를 탈 때도, 숙소를 정할 때도 그렇다. 정가라는 것은 없다. 여행자라고 해서 덤터기(덤탱이)를 씌우기도 일쑤다. 택시나 툭툭(미니 삼륜차)을 탈 때도, 적정 가격을 알고 타야 한다. 협상이 잘 되지 않으면 다른 기사를 접촉해야 한다. 숙소는 더욱 심해 유럽처럼 유명 사이트(hotels.com, hostelworld.com)에서 사전예약하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15㎏의 가방을 어깨에 맨 채 숙소를 찾아 발품을 파는 것은 개고생의 절정이다. 특히 야간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 숙소를 찾는 것은 조금 더 나이를 먹는다면 절대 못 할 짓이다. 3. 인도의 개고생 마지막은 ‘No Problem’이다. 그들은 항상 ‘Yes’를 외친다. 문화의 차이임은 분명하지만, 도가 지나칠 정도다. 문제의 상황에 직면하거나, 어려운 순간에도 그들은 항상 나에게 ‘No Problem’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고? 그들의 ‘문제 없음’은 결과를 미리 생각하지 않고 현실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무 문제 없어. 나만 믿어’라는 말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만, 막상 결과가 좋지 못하면 모든 책임을 나에게 떠민다. 심지어는 ‘내가 언제 그랬어?’라는 말로 대변하기도 한다. 당장 현실의 돈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만 믿고 있다가는 후에 크게 변을 당할 수도 있다. ‘No Problem’이 당신의 지갑을 몽땅 털 수도 있다. #. 음식과 맛집 인도의 음식은 우리나라 음식과는 사뭇 다르다. 향신료가 가득하여 자극적이고. 빵과 밥을 주식으로 삼아 나머지 부재료들을 곁들일 뿐이다. 인도에 가봤으면 꼭 먹어야 되는 것들이 있다. 1. 라씨 라씨는 인도식 요거트다. 여기에 물, 소금, 향신료 등을 섞어 거품이 생기게 만든 게 바라나시의 유명한 인도 전통음료다. 무더운 이곳의 날씨 특성상, 시원한 요거트는 목을 축이기에 최고다. 바라나시에선 많은 의식이 행해지는데, 우유와 버터를 정제해서 만든 기름이 의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예물이다. 때문에 과거부터 많은 유제품이 발달했고, 몇 백년간 대를 잇는 라씨집이 많다. 대표적인 맛집은 ‘블루라씨’와 ‘시원라씨’다. 워낙 미로처럼 얽혀 있는 바라나시의 골목길이기에 그곳을 찾아가는 방법은 지도로 설명하기에도 쉽지 않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라, 골목에서 만난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쉽게 가르쳐 준다. 2. 탄두리 치킨 탄두리 치킨은 인도 전역에서 즐겨먹는 대표적인 요리로, 향신료와 요구르트로 양념해 탄두르(인도식 화덕)에 구워낸 닭요리다. 한국에서 먹는 치킨과는 사뭇 다른 고소함이 느껴지는 요리로, 대부분의 식당에서 파는 메뉴이다. 인도에 머물면서 많은 탄두리 치킨을 먹었지만, 우다이푸르의 ‘암브라이(Ambrai)’가 최고의 레스토랑(주소 Amet Haveli Hotel, Outside Chandpole, Udaipur 313001, India)이었다. 중상층을 위한 레스토랑으로 가격대는 일반 음식점에 비해 조금 비쌌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삼아 한껏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이다. 2인 기준 한화 2만~3만원에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예약도 가능한 놀라운 레스토랑이다.
2015-03-24 10:07:30
인천국제공항 ‘Gate No 47’ 표시에 가까이 갈수록 한국인은 눈에 띄게 줄었다. 벌써부터 혼자라는 사실에 지독할 만큼 외롭다. ‘과연 내가 인도에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얻음이라는 게 꼭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한가, 한국을 뜨기 전에도 수없이 되묻고 있다. 여행은 완생으로 향하는 자격조건임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행 자체는 지나친 자기합리화로 종결되고 말 것이다. ‘서른을 맞이하여 나에게 주는 뜻 깊은 선물’이란 아주 멋진 이름으로 포장되는 데 그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평범한 미생으로 살아왔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만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일상에 묻혀서 지냈다. 항상 똑같은 표정과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의 만지작거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전쟁터에서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내일을 위해 충전용 배터리를 꽂아야만 하는 삶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성식 차장은 “우리 모두는 미생이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버텨라,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일이 있다”고 뇌까렸다. 이 대사는 사실에 직면케 한다. 경우에 따라 버티는 게 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버팀에 대한 기회비용 가치가 과연 내 젊음을 희생할 만큼 가치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미래의 삶을 고민하게 한다. 반복적인 일상은 고민의 답에 다가가려는 속도를 부추긴다. ‘고민의 끝은 어떨까?’에 대한 대답은 있다.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미생에서 완생으로 향하는 방법을 삶에 대처하는 깨달음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자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했다. “부럽네. 근데 회사 그만두고 여행 다녀와서 어떻게 할려고?” 내심 날 부러워하면서도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처지가 상충한 듯하다. “지긋지긋한 일상이 싫었어. 단지, 용기를 냈을 뿐이야. 미래 시제는 현재가 되는 순간에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완전체가 되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 위해’라고 거창하게 말하긴 싫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제로다. 내 삶을 리셋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잠시 일상과 작별인사를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 성숙해져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속으로 힘차게 외쳐본다. ‘화이팅! 아자! 아자!’ 처음이 기억되는 이유 도착시간은 2013년 2월 22일, 새벽2시. 인도 뉴델리공항에 막 내렸다. 아직까지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바깥 공기는 한국과 다르다. 공기의 텁텁함이 목을 조인다. 컴컴한 어둠은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내가 상상한 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행자여 안녕?’하며 환하게 맞이주기는커녕 아무도 나를 알아주거나 반가운 체 하지 않는다. 집을 나설 때의 당당함은 어디로 가고 단 몇 시간 만에 겁쟁이로 변해버렸다. 나는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로 ‘인도’를 골랐다. 이곳을 흔히 떠올리는한 대부분의 선입견은-아직까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이들 위주의 생각이겠지만-‘위험함과 더러움’이다. 일부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좁은 길에는 다양한 운송수단, 예를 들면 자동차·버스·릭샤(사진)·자전거,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섞여 있다. 아니 그보다는 혼돈 그 자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심지어 소들이 거리를 제 집 마냥 활보하고 있고, 그들의 배설물을 하루에 한번이라도 밟지 않는다면 그날은 천운이 따른 것이다. 매연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관광객을 등쳐먹는 것을 업으로 아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만명 이상의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인도의 어떤 점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 대부분은 처음 일주일간 욕을 한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생각 이상으로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나면 ‘아예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강한 끌림의 이유는 기왕 도전하는 것이라면 더욱더 과감해지고 싶은 속내일지 모른다. 흔히 유럽여행을 쉽게 보듯 나도 그랬다. 내 젊음, 자만, 오만이 유럽행을 허락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자신감으로 가득 부푼 채 인도에 도착했다. 나의 첫 선택은 공항 노숙이다. 3개의 의자를 침대 삼아 웅크리고 눕는다. 가방을 감싸 안은 채 그렇게 여행의 첫날밤을 보낸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지 이틀이 지났지만 길거리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여전히 낯설다. 돈 많은 아시아 여행자, ‘호구’로 비춰질 나는 어깨를 당당히 피고 걷는다. 마치 ‘나는 인도가 처음이 아니에요. 난 잘 당신들을 너무나 잘 알아요’ 라고 허세를 떨듯이. 그럼에도 릭샤왈라(인력거꾼)는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쫓아온다. “오~마이프렌드. 어디가요? 싸게 해줄게요” ‘내가 언제 너를 봤다고 친구야?’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상을 쓴다. 조금은 까칠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릭샤왈라는 오늘 나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와이프에게 줄 용돈과 그의 오늘 저녁의 술값이 결정되지도 모르기에. 나의 목적은 최대한 요리당하지 않는 것이다. 적당한 가격에 흥정하고 릭샤를 탄다. 처음 타보는 이 요물이 마냥 신기하다. 묘하게 생긴 것이 달린다. 속도도 상당하다. 눈은 주변의 새로운 것을 익히느라 바쁘다. 하지만 머릿속은 다르다. 눈이 설렘을 인지한다면 머리가 위험함을 인지하는 것일까. ‘행여 나를 이상한 곳에 데려다 놓고 돈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마음은 그러지 않길 바랄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최악은 아니지만 최악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이 펼쳐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다. 다들 그렇지 않다면, 나만은 그렇다. 고됨과 힘든 상황을 스스로 즐기는 스타일, 아 피곤한 삶이다. 다행히도 나는 첫 흥정과 첫 릭샤 탑승을 무사히 마쳤다. 마치 첫 노숙 이후 앞으로는 어디에서든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 것처럼 그들과의 거리감이 차츰 사라진다.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것에 대한 설렘과 흥분이 가득하다. 이것이 인도여행에서 처음 기억되는 인상이다. 되새김질하기 충분하니까. 필자가 제안하는 인도에서 살아남고 여행의 맛을 더 하는 방법 1) 한국에서 하지 않는 것은 하지 말기 -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않기 -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 먹지 않기 -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2) 적당히 흥정하고 적당히 속아주기 - 한국 사람들은 항상 ‘너무 비싸요’ 라는 말을 버릇처럼 한다. 인도에서 바가지를 써도 한화로는 고작 몇 천원 차이다. 적당히 속아주면 그것 또한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3) 갑인 척하지 말고, 그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즐겨라 - 로컬음식을 사먹고, 길거리의 친구를 사귀고 먼저 다가가서 마음의 문을 열어라.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릭샤는 동남아의 흔한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개량한 사이클릭샤와 소형 엔진을 장착한 3륜차인 오토릭샤가 있다. 인도에서는 릭샤를 끄는 사람을 릭샤왈라라고 부른다. 오토릭샤 내부에는 계산 미터기가 달려있는 경우도 있으나, 99.9%는 승차 전 흥정해 결정한다. ※ 인도의 지배적인 종교인 힌두교 중심 사상에 따라 암소에는 3억 3천만의 신이 깃들여 있으며, 암소를 그들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믿는다. 이에 인도 재래종 소만 하더라도 2억마리가 넘는다.
2015-03-11 16: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