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6 09:11:29
캐나다 여행 준비를 할 때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가 ‘로키산맥’이다. 캐나다 여행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로키산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명소’, ‘세계 10대 절경’ 등 다양한 수식어로 표현된다. 북아메리카 서부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로키산맥은 총 길이가 자그마치 약 4500㎞에 이른다. 이 엄청난 산맥을 어떻게 둘러봐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로키산맥은 밴쿠버가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와 앨버타주에 걸쳐 있다. 밴쿠버에서 로키산맥까지는 버스로 약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보통 남부에 해당하는 밴프(Banff)에서 북부의 재스퍼(Jasper)로 이동하거나, 그 반대로 여행하는 게 통상적인 루트다. 버스를 타고 꽤 오랜 시간을 가야하지만 로키산맥을 다녀올 기회가 또 날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새벽 일찍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몇 시간 지난 뒤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과 코앞까지 내려온 안개로 혹시나 로키의 절경을 놓칠까 걱정됐다. 하지만 로키산맥을 잘 아는 일행은 ‘이 또한 로키의 매력’이라고 말해줬다. 그는 여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을 느끼고, 맑음부터 흐림까지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만나볼 수 있는 게 로키라고 설명했다. 이 곳의 신비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새 로키산맥에 들어가 있었다.
# 음악 선율로 표현된 아름다운 호수,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
오랜 시간을 이동한 끝에 드디어 세계 10대 절경의 하나를 만났다. 구름과 하나된 듯 장대하게 펼쳐진 빙하를 배경으로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오랜 시간을 달려온 데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
잠시 넋 놓고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호수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잔잔하게 움직이는 에메랄드 빛깔의 물결이 신비롭다. 호수 한쪽에는 레이크 루이스 인기 코스인 카누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 호수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문득 호수의 이름과 같은 ‘Lake Louise’(레이크 루이스)라는 피아노곡이 머리를 스쳐간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꼽고,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을 재생한다.
그는 이 호수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음악의 선율을 들으며 호숫가를 따라 마련된 산책로를 걸어본다. 잔잔하면서도 웅장하고, 깊은 여운이 남아있는 게 묘하게 닮아 있다. 자연과 사람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만든 명작을 감상하며 레이크 루이스의 절경을 기억 속에 한껏 담아 본다.
# 청록색 물감으로 칠한 듯한 ‘페이토(Peyto) 호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속도로라고 불리는 캐나다 93번 국도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창밖의 멋진 경관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밴프에서 한 시간 정도 이동하니 페이토 호수에 도착했다.
함께한 일행이 추천한 덕분에 잠깐 들리기로 했다. 작은 숲 속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니 호수가 한 눈에 다 보이는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 올라선 순간 작은 탄성이 새어 나온다. 93번 국도를 타고 이동하면서 에메랄드 빛깔의 다양한 호수들을 봐왔지만 페이토 호수는 뭔가 특별하다. 움직임 하나 없이 고요한 호수는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맑고 선명한 청록색은 방금 물감을 끼얹은 것 같다.
1900년대 초 로키지역의 가이드로 활동하던 페이토가 이 호수를 처음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호수에 붙였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에 마치 곰 발자국 모양으로 생겨 ‘곰 발바닥’ 호수로도 불린다. 문득 이런 멋진 호수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사람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전망대 앞 페이토 호수 안내판에는 1885년에 촬영한 당시의 흑백사진이 눈에 띈다. 사진 속 페이토 호수와 지금 보이는 모습이 다른 걸 확인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층이 점점 녹아내리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페이토 호수는 빙하가 녹으면서 호수로 형성된 까닭에 계절에 따라 녹아내리는 빙하의 양이 달라지면서 호수 빛깔도 달라진다. 울창한 숲과 호수의 색이 내는 조화는 계절마다 다른 경관을 보여줘 유명하다.
# 아사바스카 빙하(Athabasca Glacier)에 발자국을 남기다
로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아사바스카 빙하로 출발했다. 영어 발음으로 인해 ‘애서배스카’ 또는 ‘아타바스카’ 등으로도 불린다. 한국에선 구경도 할 수 없는 빙하를 직접 밟아보고 만져볼 수 있다니, 도착하기 전부터 긴장되고 설렌다. 매표소에서 빙하로 올라가는 설상차 탑승 티켓을 끊었다. 빙원을 올라가기 위해서 특별 제작된 설상차는 어마어마한 무게와 크기를 자랑한다. 설상차에 오르니 빙하의 경사가 너무도 가팔라 속도가 느린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20분 정도 이동하니 멀리서 반짝이던 빙하가 점점 눈에 들어온다. 한 여름이지만 세찬 바람에 여행객들은 준비해 온 두꺼운 옷들을 꺼내 입었다. 마침내 필자도 먼저 온 관광객들과 뒤섞여 아사바스카 빙하에 발자국을 남겼다. 숱한 사람들이 오고간 길이지만,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것처럼 뿌듯하다.
직접 밟아본 빙하는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았다. 얼음으로 뒤덮인 스케이트장 같은 모습인데 신기하게도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다. 빙원의 끝은 하늘과 맞닿아있다. 최대한 빙원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니,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하다. 그 아래로 흐르는 빙하수를 받아 한 모금 마셔본다.시원하게 넘어가는 느낌이 상쾌하다. 한 번 마실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속설에 괜히 기분이 좋다.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웅대한 아사바스카 빙하를 돌아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에 내려가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다.
며칠 동안 로키산맥을 둘러보고 다시 밴쿠버로 발을 돌렸다. 먼 이동거리에 둘러보기만 해도 시간은 빨리 흘렀고, 여행의 감동은 오래 남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웅장함에 숙연해진다.
노윤수 여행칼럼니스트 roh_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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