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듯 친근한 경산 … 반곡지·계정숲·팔공산을 품다
2019-11-22 20:05:00
고분군은 압독국의 본거지임을 증명 … 난포고택은 3면이 산으로 싸인 명당터
경북 경산(慶山)은 하루하루 바삐 사는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고장이다. 하지만 여행 좀 한다하는 사람들에겐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고장이다. 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동구 수성구 달성군), 남쪽으로는 청도군, 북동쪽으로는 영천, 남동쪽으로는 경주에 연접해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바로 연결돼 교통편도 편리하다. 산천초목이 진갈색으로 탈바꿈한 2019년 초겨울, 가족과 함께 경산으로 떠나보자.
반곡지, 늦가을 저수지의 독특한 매력
경산 하면 먼저 떠오르는 반곡지(盤谷池·남산면 반곡리)는 사철 독특한 서정을 풍기는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지정하면서 사철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반곡지는 우리나라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저수지이지만 풍광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저수지 가로 둘러선 아름드리 왕버드나무들이 저수지 물빛과 너무나 잘 어울려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갈색 이파리는 자연 순환의 고귀함을 한껏 보여주니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이곳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강태공들이 붕어를 낚기 위해 심심찮게 찾는 낚시터로 더 유명했지만 경산 지역에 연고를 둔 사진작가들이 반곡지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반곡지를 보면 청송 주왕산 자락의 주산지(注山池)를 떠올리게 된다. 넓은 저수지에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주산지가 광활한 멋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면 반곡지는 작지만 동화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반곡지 둑에 일렬로 늘어선 왕버드나무는 수령이 300년을 훌쩍 넘었다. 두 아름이 족히 됨직한 나무둥치는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생업에 바빠 이곳에 처음 와본다는 경산의 한 주민도 감탄사를 터뜨렸다. 반곡지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버드나무 이파리가 돋아나는 4월 하순~5월 초순 경이지만 이파리가 난분분 떨어지는 이즈음도 그에 못지않다.
저수지에 비친 왕버드나무와 쪽빛 하늘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이따금 배경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볼 수 있는데 캔버스에 옮겨 담은 저수지의 모습이 꽤나 사실적이다. 왕버드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둑길에서는 수면에 비친 그림자와 저쪽 마을 풍경이 환상의 대비를 이뤄 원근감이 생생하다. 나름대로의 멋을 잡아내는 건 어디까지나 여행자들의 몫이다.
반곡지는 어느 때고 독특한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맞는다. 왕버드나무의 잎은 5월부터 제법 무성해지기 시작해 11월부터 점차 시들어간다. 녹색이 갈색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저수지를 향해 길게 팔을 뻗은 가지는 거울처럼 맑은 물에 닿을 듯 말듯한데 물에 비친 잎 그림자의 운치가 그럴 듯하다. 반곡지가 감춰 놓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저만큼 물오리 몇 마리가 동심원을 그리듯 자맥질을 하는 모습도 눈에 잡힌다. 둑길이 짧아 조금 아쉽지만 저수지 전경을 바라보며 걷기엔 안성맞춤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는 또 얼마나 청아한지 가족들과 소풍 삼아 한나절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가 아닌가 싶다.
한 가지 귀띔하면 시간이 허락할 경우 수면 위로 물안개가 어른거리는 이른 아침에 찾아보는 것도 좋다. 어둠이 물러가고 여명이 트면서 저수지는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때부터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신비로움을 드러내는데 자연의 반란이다. 경산에는 반곡지 말고도 자그마한 저수지가 몇 개 있는데 경산시청과 영남대 경산캠퍼스 사이의 남매지(男妹池)도 그 중의 하나다. 저수지를 따라 나무데크가 놓여 있어 산책 삼아 걷기에 좋다.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시들어가는 소설 (小雪) 절기다. 이번 주말 반곡지와 남매지를 찾아 아름다운 추억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가을 계정숲과 삼한시대 고분군
반곡지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 자인면 서부리(慈仁面 西部里)에는 계정숲(桂亭林)이 있다. 구릉지에 남아 있는 천연 숲으로 수령 200~300년 된 이팝나무를 비롯해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빼곡히 심어져 있어 생태관찰지로 아주 좋다. 이 숲은 계정(桂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국내서는 보기 드물게 평지에 펼쳐진 천연림이다.
숲 안에는 조선시대의 관아(慈仁縣廳)와 왜적을 물리친 한장군의 묘와 사당이 남아 있다. 한장군(韓將軍)은 자인 지역의 단오놀이에 등장하는 여원무(女圓舞)의 주인공으로, 옛날 여자로 변장해 왜적을 유인, 크게 무찔렀다고 전한다. 계정숲이 끊어지는 곳에는 삼정지(三亭池·새못)가 있으며, 그 가운데 한장군의 말 무덤이라 불리는 봉분이 남아 있다. 삼정지는 세 그루의 정자나무와 세 개의 저수지가 있어 붙은 이름으로 두 그루는 고사하고 현재 한 나무만 살아 있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경산에는 고분군도 널려 있다. 금호강 남쪽(남천)과 오목천 사이의 들판으로 주로 동서로 뻗은 구릉 지대다. 임당동 고분군, 조영동 고분군, 부적리 고분군, 신상리 고분군이 그것들이다. 이들 고분군은 과거 경산이 정치 경제적으로 중심을 이뤘음을 의미한다.
그 중 임당동 고분군(사적 제300호)은 경산 지역에서 발굴된 것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1987년 발굴 당시 금동관, 금귀고리, 금동신발 장신구, 은허리띠 등 5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 영남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경부고속도로 경산 휴게소 뒤편에 있는 신상리 고분군은 이 지역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압독국(압량국)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고분공원으로 단장된 이곳에는 유물전시관을 비롯해 미니고분광장, 산책로, 야생화정원 등이 꾸며져 있어 휴게소 이용객들에게 역사·문화 체험의 장소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대구가톨릭대 교정에는 일명 ‘산소바위침대’로 불리는 기이한 암석이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고 하는 이 암석은 원시 미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남조류)의 생명 활동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흔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원시 지구의 단세포 생물로 수심 2~3m의 얕은 바다에서 산소를 만들면서 스스로 유기물층과 무기물층을 생성시킨다. 이 유기물층과 무기물층이 교대로 퇴적돼 나이테 모양의 줄무늬 암석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스트로마톨라이트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는 이 바위를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팔공산 갓바위의 정기와 난포고택의 품격
경산 여행에서 팔공산(八公山) 갓바위 산행은 필수 코스다. 팔공산은 후삼국시대에 견훤의 충복 신숭겸 등 8장군이 견훤의 공격에 밀려 이 곳에서 전사하자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인 비로봉(1193m, 경북 군위군)을 중심으로 서봉(삼성봉 1150m, 대구시 동구)와 동봉(미타봉 1155m 경북 영천시)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웅을 겨루는 형상이다. 경산시에는 갓바위가 유명하고 칠곡군도 팔공산의 한자락을 차지한다. 1980년 5월 13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대구시 동구 도학동)를 비롯한 수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다
갓바위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경산 쪽 선본사(禪本寺)에서 올라가면 힘도 덜 들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선본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20~30분 정도 올라가면 커다란 불상이 있는 갓바위(관봉) 정상에 닿는다. 갓바위 부처(보물 제431호)는 머리에 1.5m(500㎏) 정도의 평평한 돌을 갓처럼 쓰고 있어 그렇게 부른다. 높이가 5.48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으로 자연 암반 위에 올라앉아 있어 웅장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갓바위 주자창-갓바위-신령재-염불봉-동봉-비로봉-서봉-수태골 휴게소 코스를 타면 6시간 반(13㎞)이 걸린다. 갓바위-노적봉-능성재-삿갓봉-바른재-동화사로 내려오는 짧은 코스도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 사대부가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난포고택(蘭圃古宅, 용성면 곡란리, 현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최해근 가옥으로도 불린다)을 보러 간다. 이 집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최철견(崔鐵堅 1548~1618) 선생을 기리는 집으로 명종 1년(1546년)에 지어졌다. 그는 난포(蘭圃)·몽은(夢隱)·수은(睡隱) 등의 호를 가졌다.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의 전형을 보여준다. 원래는 정침(正寢), 안채, 큰사랑채, 중사랑채, 아랫사랑채, 방아실채, 고방채, 마루, 사당, 행랑채(대문채) 등으로 이뤄져 있었지만 지금은 정침과 안채, 큰사랑채, 사당, 행랑채만 남아 있다. 뒤뜰에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 놓여 있어 이채롭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안마당을 마주한 안채와 큰 사랑채가 편안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난포고택은 1809년과 1816년 상량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두 차례 중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동쪽으로 수동산이 우뚝하고 서쪽은 용산인데 남쪽에는 청도 운문산의 줄기인 곱돌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특히 용산(해발 435m) 8부 능선에 걸쳐있는 용산산성(둘레 약 1.6km, 신라시대)은 경사가 완만한 동쪽과 남쪽은 돌로 성을 쌓았고, 경사가 급한 북쪽과 서쪽은 흙으로 성벽을 쌓았다.
김초록 여행작가 rimpyung7458@naver.com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