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6 12:13:49
포르투갈 에보라의 로마신전(디아나신전)
포르투갈 여행 8일차, 다음날이면 귀국하니 실질적으로 마지막 투어다. 에보라(Evora)라는 이름이 예쁘고 주로 서부 도시들만 돌았기에 남중부 알렌테주(Alentejo) 지방 도시로 가보기로 했다. 에보라는 리스본에서 남동쪽으로 약 11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5만7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도시는 과거 로마시대부터 리베랄리타스율리아(Liberalitas Julia)라는 중요한 군사기지로 위상을 가졌다. 이로 인해 로마신전(디아나신전) 등 고대 로마시대 유물이 남아있고, 8~12세기 무어인의 지배시에는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의 거점지였다. 에보라는 15세기 포르투갈 왕들이 거주하면서 황금기를 맞이했는데, 16~18세기의 건축물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브라질 건축에 영향을 줬다. 16세기에는 가톨릭의 대교구가 됐다. 15세기~18세기인 대항해시대에는 내륙지역인 탓으로 인구감소 등 활기를 잃었으나, 1755년 리스본 대지진에 리스본이 파괴된 이후로는 포르투갈의 전성시대를 반영한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인해 반사이익을 봤다. 1986년에 에보라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유롭게 조식을 즐기고 에보라로 가기 위해 자르딩 주로지쿠(Jardim zoologico) 전철역에 있는 셋트 히우스(Sete rios)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리스본에서 에보라에 갈 때 기차나 버스 모두 이용 가능하지만 기차는 하루 3~4번(편도 12.20유로), 버스는 1시간에 1대(편도 11.3유로)씩 운행하기 때문에 버스가 더 편리하다. 아침 9시반에 차를 타고 약 90분을 달리자 에보라에 도착했다. 아마도 리스본 관광객들이 에보라에는 그리 많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가 본 관광객은 일본인 모녀가 전부였고, 내국인도 대부분 종착역 전에 내렸다.
에보라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에보라 공동묘지(Cemiterio de Evora)를 지나면 역사지구를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성벽이 나온다. 성벽을 경계로 마치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기분이 든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고요한 성벽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지랄두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시계박물관(Museu do Relogio)인데, 안토니우 타바레스 달메이다(Antonio Tavares dAlmeida)가 1972년부터 구상해 1995년 400여개의 개인 시계 컬렉션으로 개관했다. 현재는 1630년대에 만들어진 시계부터 최신시계까지 약 2300여개가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시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들러볼 만하다.
지랄두광장(Praca do Giraldo)은 12세기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 당시 자국 병사의 희생 없이 1165년에 무어인을 몰아내고 에보라를 해방시킨 에보라의 영웅 지랄두 센파부르(Giraldo Sempavor)의 이름을 땄다. 에보라 관광의 중심지로 관광안내소와 노천카페 등이 있는데, 겨울 비수기라서 한적하다. 광장 중앙에는 1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분수가 있다. 에보라 수도교에서 물이 공급되는 지점으로, 분수 상단의 청동 장식은 광장으로 이어지는 8개의 거리를 상징한다. 분수 뒤에는 16세기 아름다운 건축미를 뽐내는 산투안타웅성당(Igreja de Santo Antao)이 서 있다. 광장 주변에는 고딕 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래된 건축물이 많은데 무어 양식의 아치형 야외 회랑과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져 예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 이름부터 오싹한 기분이 드는 상프란시스쿠성당(Igreja de Sao Francisco)과 뼈예배당(Capela dos Ossos, 입장료 2유로)으로 향했다. 1475년부터 1550년에 걸쳐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두 곳은 바로 붙어 있는데, 먼저 입장한 성당은 나무에 새긴 조각, 성경 구절을 그려 넣은 아줄레주, 플레미시(Flemish) 프레스코화로 꾸며져 있다.
성당 옆 뼈예배당은 길이 18.7m, 너비 11m로 3개의 작은 창문과 8개의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제외한 모든 벽면이 시멘트와 사람뼈와 두개골을 섞어 다닥다닥 붙여놓은 것으로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섬뜩하다.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인생의 덧없음을 되새기고자 뼈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약 5000구 시신의 유골이며, 역병이나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것이라는데 확실치 않다. 벽면에 건조돼 매달려 있는 시신은 원래 2개라는데 1개만 관찰할 수 있었다. 조금 오싹한 느낌에 사진을 그리 많이 찍지 않고 나왔는데, 출구쪽 천장 흰벽돌에는 죽음과 관련된 그림과 함께 ‘우리 뼈들은 이곳에서 그대의 뼈를 기다리고 있다.(Nos ossos que aqui estamos pelos vossos esperamo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현세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 죽으면 뼈만 남게 된다는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철학적인 교훈이 아닐까?
이곳을 나와 근처의 에보라대성당(Se Catedral de Evora)으로 향했다. 아뿔싸, 점심시간(12~14시)은 입장 불가란다. 뼈예배당과 대성당은 점심시간에 휴관이니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뼈예배당 앞에서 포르투갈 전통 엿과 과자를 사서 인근 공원(Jardim Publico de Evora)으로 향했다. 여느 공원과 다름없이 녹음이 우거진 숲에 호수에는 한가로이 거위 떼가 노닐고 있었다. 공원 입구의 동마뉴엘궁(Palacio de Dom Manuel)은 파괴된 곳이 많아 표지판이 없었다면 왕궁이었는지 몰랐을 것 같다. 예전 모습을 간직한 성벽에는 무어 양식과 마뉴엘 양식이 혼재돼 있다. 아마도 이 공공 공원은 예전에는 왕궁 정원이었나보다.
공원 안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14시 오픈 시간에 맞춰 에보라대성당 입구(입장료 3.5유로)로 향했다. 1186년에 지어졌으며 예수의 12사도들로 섬세하게 석상을 장식한 로마네스크 양식와 고딕 양식이 어우러진 성당 입구는 웅장하다. 리스본대성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내부도 화려하다. 2개의 통로가 있는 신랑과 18세기 제단, 16세기에 더해진 2개의 높은 탑은 위엄이 있다.
에보라대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포르투갈에서 유일하게 아이를 밴 마리아상이 있기 때문이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성모상을 보러 임신과 순산을 기원하는 부부들이 오래 전부터 성지 순례하듯이 대성당을 찾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미 지난해 6월 순산한 터라 직접 임신한 성모상을 보니 신성한 마음이 든다.
종탑에 오르기 위해 성당 안에 있는 별도의 입구로 들어갔다. 꼬불꼬불한 계단을 따라 시계탑을 오르니 성당 회랑과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에서 내려와 로마시대 유적지인 디아나신전(Templo Romano de Evora, Templo de Diana)을 보기 위해 아크로폴리스 언덕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에보라가 군대의 요충지로 전성을 누리고 있던 2세기말 로마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달, 사냥, 순결을 상징하는 고대 로마여신 디아나에게 헌정돼 디아나신전으로도 부른다.
14개의 코린시안 양식의 기둥이 잘 보존되어 있어 포르투갈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 건축물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콜로네이드(돌기둥)만 남아 있는데 몸통은 화강암, 기둥 받침은 대리석이다. 이후 처형장, 도살장으로 쓰였다고 추정된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서 에보라대성당을 포함하여 웬만한 시내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특히 주변으로 신전과 유사하게 생긴 건물들이 몇 개 있는데, 로마 신전 앞 레스토랑(Restaurante da pousada de Evora)을 포함해 에보라 역사만큼 유명한 식당이 많다고 하니 여유를 갖고 호사를 누려볼 만하다.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에보라대학교(Universidade de Evora)으로 향했다. 이곳은 역사지구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는데, 가는 길에 에스피리토산토성당(Igreja do Espirito Santo)을 지나쳤다. 에보라대학교는 플라톤이 제자를 가르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대왕을 가르치는 모습 등을 표현한 아줄레주로 꾸며진 교실이 인상적이다. 1559년 당시 추기경의 명으로 설립된 학교로 같은 해 교황 바오로 4세로부터 대학 칭호를 받았다. 이곳은 스페인 신학자 루이스 몰리나, 브리토(Brito, 기마랑이스의 작은 도시)의 성 주앙 등이 수학하며 포르투갈 최고의 대학으로 인정받으며 한때 코임브라대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예수회가 대학 교육을 맡고 있던 탓에 18세기 폼발 장군의 예수회 박해로 핍박을 받았고, 이후 대학교와 함께 에보라가 동반 쇠퇴하게 됐다. 1759년 예수회 박해로 에보라대 교수들은 사형 또는 추방당했고, 200여년이 지난 1973년 다시 문을 열었다.
성당과 대학교는 방학인 데다 연말 공연 준비로 잠겨 있었다. 열려있는 대학교 후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제재를 당해 대학교 내부를 직접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정(中庭)이 아름다운데 끝내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타러 성벽을 따라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표를 할인받으러 왕복으로 끊었는데, 대학교가 있던 성곽에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상당히 먼 거리였다. 게다가 방향을 잘못 들어서 에스피리토산토종합병원(Hospital Espirito Santo E.P.E)까지 가는 바람에 버스터미널까지 약 25분을 뛰어야 했다. 겨우 3분 앞두고 버스를 타긴 했지만, 하마터면 1시간이나 기다려서 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고초를 겪을 뻔했다.
에보라에서 리스본으로 들어오는 길에 건너는 바스쿠 다 가마 다리(Ponte Vasco da Gama) 주변 풍경이 멋진 노을에 비쳐져 아름답다. 리스본 동쪽 타구스강을 횡단하는 이 다리는 17.2㎞로 유럽에서 가장 길다. 그 다음으로 긴 유럽의 다리가 덴마크(코펜하겐)와 스웨덴(말뫼)을 잇는 외레순다리(7845m)로 1, 2위 격차가 엄청나다. 1998년 3월 열린 리스본엑스포와 같은 시기에 완성된 이 다리는 지도의 곡률을 고려해 설계했으며 10억달러라는 막대한 자금과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투입됐다.
리스본 시내로 돌아와 포르투갈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로 했다. 에보라에서 버스를 놓칠까봐 조바심친 탓에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이대로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레스토랑을 돌아보며 쫀쫀하게 가고 싶은 곳을 낙점했다. 리스본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평일엔 오후 7시에 오픈하니 일찍 가봐야 기다리기 십상이다.
선택한 식당은 상카를로스국립극장(National Theatre of Sao Carlos)의 오른쪽에 위치한 포르투갈 대표 셰프 주제 아비에즈가 운영하는 칸티뇨 두 아비에즈(Cantinho do Avillez)였다. 아비에즈는 최연소 미슐랭 셰프로 리스본 시아두에 4곳의 식당을 갖고 있다. 인근에 있는 아비에즈의 최고급 레스토랑인 벨칸토(Belcanto)보다 훨씬 저렴하고, 정통 포르투갈 요리가 먹고 싶어 이곳을 선택했는데 탁월한 판단이었다. 현지인들도 미리 예약해서 오는지 오픈한 지 30분이 지나자 만석이다.
우리는 별도 예약 없이 자리에 앉았으니 운이 좋은 셈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라는 빵가루를 뿌려 구운 대구요리(17.25유로)와 양고기를 웨이터 추천 와인과 시켰는데 대구요리가 훨씬 맛있었다. 식사량의 개인차는 있겠지만 포르투갈 요리의 양은 가격만큼 많지 않으니, 부족할 듯 싶으면 쿠베르트(Cuvert, 빵, 올리브 등이 나오는 에피타이저) 등과 곁들여 먹는 게 좋다. 저녁을 즐겁게 먹고 숙소로 향하는 버스를 타니 포르투갈의 마지막 밤이 진한 아쉬움 속에 깊어만 간다.
황영기 여행칼럼니스트 zerotwo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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