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입지 좁히는 무더기 법안 발의에 반발로 일관하는 의료계 … 전략적 소통에 나서야
2020-11-12 18:17:25
국민 눈높에 맞는 논리 갖추고 겸손하게 대응해야 고립 피해 … 정치권, 정부당국, 언론과의 소통 부족도 문제
“대한의사회가 또 반발했다” 기자실 대화나 편집회의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이 문장에서의 방점은 ‘의협’도 ‘반발’도 아닌 ‘또’에 찍혀있다.
최근 5개월간 의협의 반대 성명은 1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 이상 나온다. 지난 6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으로 갈등이 깊어졌을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의협 혹은 산하 의사단체에서 숨 가쁘게 성명서들을 쏟아냈다.
9월 갈등 봉합으로 다소간 줄어드는 듯 했으나 여당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시작되자 다시 의협의 ‘반발’ 성명이 급증했다.
의협을 코너로 모는, 의사들에겐 의업의 업권이 침해당할 소지가 있는 입법이나 규제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은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의협을 자극하는 입법을 연이어 발의 중이다.
문신사를 양성화하는 ‘문신사법’, 병원에 CCTV를 강제하는 ‘CCTV법’, 실손보험 청구자료를 병원이 제출토록 하는 ‘실손보험법’, 자세한 질환 설명을 의무화한 ‘친절한 의사법’, 강력 범죄자의 의사면허 재발급 자격을 제한하는 ‘투스트라이크 아웃법’ 등이 그것이다.
이보다 앞서 의협이 지난 7월 4대 악법으로 규정한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원격진료 도입’, ‘한반첩약 급여화’는 해결되지도 않았고 언제고 다시 수면 위에 재부상할 포인트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의료계로서는 신경이 반짝 날카로워질 만하다. 의협 입장에서 쉼없이 반대를 소리 높일 수밖에 없다.
이들 법안 중 상당수는 이미 18대, 19대, 20대 국회에서부터 줄곧 발의되던 법안으로 딱히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막혀 계류됐다가 매번 무산된 법안들이 올 하반기 들어 몇 달 새 우수수 발의된다는 점은 분명 구조적인, 내재화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료계 안팎에서 “의료계에 대한 괘씸죄를 묻겠다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의료계를 리드해온 전임자들의 잘못도 크겠지만 이를 풀어나가려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한 현 집행부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소통에서 화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청자인데 화자의 반복되는 말과 주장은 가치를 줄이기 마련이다. 또 강도가 높아지며 거칠어지는 어투는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반발이 잦아지면 희소가치가 줄어 굳이 자세히 살펴보거나 들어보지 않게 되는 게 일반이다. 의협의 반복적인 ‘반발’은 의료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만 나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의료계 파업으로 의료계는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저지할 수 있는 시간은 벌었을지 모르나 여론만 보자면 완벽하게 진 싸움이었다. 직전까지 전염병 상황 속에 이타적 영웅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그려졌던 의사들이 한순간 ‘제 밥그릇 때문에 환자들을 볼모로 잡은’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쳐졌다.
의사들은 파업의 명분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야 했다. 도리어 반발하는 국민들에 대해 치기어리고 오만한 워딩이 튀어나갔다. ‘전교1등’ ‘개돼지’ 같은 말들이 분을 참지 못한 몇몇 의사의 실수로 노출됐다가 허겁지겁 철회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의협 등 의사단체의 폐쇄성이 큰 역할을 했다. 내부의 결속다지기가 우선이라(최대집 회장은 임기 중 3번째 탄핵됨) 국민과의 소통은 차순위로 밀려 미처 민심을 살필 여력가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과 상식과 정서에 맞게 의협이라는 이익단체의 논리를 풀어나가야 한다.
의료계가 국민과 소통이 부족한 것이 이상으로 어쩌면 갈등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정부와 소통하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충분히 정부 당국자와 정치권을 만나 설득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한 때는 ‘덕분에’ 캠페인까지 만들며 의사를 영웅이라 칭하던 게 정부 측이었다.
언론인들과의 소통도 원활했는지 의문이다. 의협이 상대하는 언론이라는 게 의사들의 말을 웬만큼 알아듣는 보건의료계 전문지 위주다. 공중파 또는 종편 방송이나 종합일간지, 무수한 비 보건의료계 매체들과 스킨십을 하며 자기들의 고충을 호소해봤는지 궁금하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억울할 것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과거보다 투쟁 강도가 떨어졌다고 하고, 민심과 언론은 투쟁 일변도로 도대체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고 낙인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협 등 의료계는 시선을 외부로 확장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보다 겸손하게 소통하고, 정치권이나 정부에게는 공유할 가치를 찾아 은유와 상징으로 갈등을 해결할 길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의사들은 국민이 의사집단을 보는 심리를 헤아려, 의사들을 밀어붙이는 작금의 정책들이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어떤 불이익을 줄 것인지 논리를 세우고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도 문제가 있다. 모든 변화에는 속도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문 대통령 임기, 4년 국회의원 임기의 전반기 안에 뭐든 빨리 입법을 진행시켜 가시화된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의사를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있음을 인지하고 속도를 조절하면서 대화로 푸는 게 옳다.
김지예 기자 jiye200@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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