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주식투자 견제 장치 부재” … 처벌 ‘제로’, 쓴소리에 겨우 개정안만 뜯어고친 식약처
2020-10-06 18:13:07
최근 감사 후 모든 의료제품 업무 공무원으로 주식거래 금지 확대 … 다산의 律己와 6조 생각해야
공무원은 다른 말로 공복(公僕)이라고도 불린다. 국가와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헌법 7조 1항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명명하면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 감사 결과 2018년 소속 공무원 32명이 업무 관련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 공무원 행동강령 12조에 따르면 직무수행 중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유가증권, 부동산 등과 관련된 재산상 거래 또는 투자가 금지돼 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서갑, 보건복지위)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7월 1일~12월 31일 식약처 업무 관련 주식보유·거래한 공무원이 32명에 달했지만 부당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감사를 종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식약처 A 직원은 제약회사 2곳의 주식을 두 달 새 1억3000만 원가량을 매수했다가 감사가 시작된 시점에 전량 매도했고, 또 다른 B 직원은 제약회사 주식 6000여만원 어치를 샀다가 인허가 담당 부서로 옮긴 뒤 감사가 시작되자 전량 매도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남긴 직원은 없었다며, 이해 충돌 소지는 있을 수 있지만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이유로 32명 중 징계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표면상으로는 부당이익을 취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공무수행 중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주식을 매입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행 제도에서는 식약처 공무원이 자진 신고한 내역을 토대로 주식거래 시기와 민원처리 내역을 비교해 직무 연관성을 따지기 때문에 자진신고 하지 않으면 파악할 방법이 전무하다. 반면 금융위원회의 경우, 자기 명의의 계좌를 등록한 다음 매매명세를 분기별로 신고하게 돼 있어 차이를 보인다.
강선우 의원은 “의약품의 인허가를 담당하는 식약처 공무원이 제약사 주식을 거래했다는 사실은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았을 때 이해하기 어렵다”며 “인허가를 담당하는 식약처 공무원이 관련 제약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장의 혼선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식약처는 지난달 23일 관련 업무 담당 공무원은 아예 주식거래를 하지 못하게 못을 박는 ‘식약처 공무원 행동강령 일부개정훈령안’을 공포했다. 새 행동강령에 따라 의료제품(의약품 및 의료기기) 외의 부서로 발령받아 주식거래 제한 대상자에서 빠졌을 때도 전보일로부터 6개월 동안은 해당 주식을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
기존 행동강령은 대민 관련 인허가, 승인 업무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만 적용됐으나, 이번 개정으로 의료제품 분야의 모든 공무원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우리 헌법이 공직자를 봉사자로 지칭한 점은 타 직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을수록 국민의 행복도도 높아질 수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로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을 꼽았다. 다산은 율기의 방법으로 6조(六條)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칙궁’(飭躬, 단정한 몸가짐), 청심(淸心, 깨끗한 마음가짐), 제가(濟家, 집안을 잘 다스림), 병객(屛客, 잡객(청탁)을 멀리함), 절용(節用, 물건의 절약), 낙시(樂施, 즐거이 베풂)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율기’를 갖췄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뇌물수수 및 비리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공정과 정의를 내세워 정권을 잡은 현 정부는 왠지 이를 적발하고 경우가 적어졌다. 오히려 최재형 감사원장의 독립적인 행정부 감시 노력을 방해하는 쪽으로 율기를 흩뜨리고 있다.
식약처는 행동강령 일부개정훈령안을 통해 주식투자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진작에 처벌 또는 징계 조항이 마련돼 실행되고 있어야 마땅했다. 셀트리온을 시작으로 일어난 K-바이오 바람에 제약·바이오 기업 주가가 루머와 정보로 춤을 추며 급등락한 지가 5년도 훨씬 넘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박수현 기자 soohyun89@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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