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3 03:16:44
문재인케어의 실패는 대국적인 차원에서 정책 틀을 짜지 못하고 ‘진료비 감소’라는 지엽적인 성과에만 매달린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 낳은 참사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암담하다. 문재인정부가 ‘서민 의료비 부담 감소’를 목표로 야심차게 추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문재인케어’가 도입 2년 만에 의료쇼핑 증가, 건강보험 재정 고갈, 보험료 인상 악순환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가 공개한 표면상 성과는 그럴듯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3만6605명이 혜택을 받았으며 줄어든 의료비(환자 본인부담금)는 총 2조2654억원, 1인당 평균 308만원이다. 이 중 노인·아동 등 의료취약계층의 본인부담금은 약 8000억원 경감됐다. 아동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은 10~20%에서 5%로 낮아졌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복지는 없다. 진료비 부담이 대폭 줄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의 이면엔 건강보험 재정 적자라는 어두운 그늘이 져 있다.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초음파검사 등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자 환자들은 몸에 작은 이상만 느껴도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문케어의 상징인 MRI의 경우 과거엔 검사 후 질환이 확진될 때에만 보험이 적용됐지만 이젠 질환 여부와 상관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검사 건수가 급증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뇌 MRI에 보험이 적용된 지난해 10월을 기준으로 전후 6개월간 MRI 검사 건수를 비교한 결과 10월 이후 검사 건수는 149만건으로 이전 6개월의 73만건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총 진료비도 1995억원에서 4143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진료 및 검사 건수가 느는 만큼 소요되는 건보 재정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건강보험은 7년간의 연속 흑자 행진이 끝나고 지난해 177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7년까지 보장성 강화대책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추계한 결과 현재 20조5955억원인 누적적립금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에 11조5000억원으로 줄고, 2026년엔 모두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멍난 재정을 채우기 위해 건강보험료는 올해 3.49% 올랐고, 내년에도 3.25% 인상될 전망이다.
문케어의 핵심 과제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도 시작부터 꼬였다. 진료비 부담 감소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이 심화되자 1·2차 의료기관들이 급여 진료에 비급여 진료를 끼워넣는 등의 방식으로 살길을 모색하면서 되레 비급여 비중이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비급여 진료 증가는 실손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손해보험 업계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2017년 4분기 113.6%에서 2018년 122.7%, 올해 3분기 133.5%로 높아지고 있다. 문케어가 시행되면 비급여 감소로 실손보험료가 인하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결국 문케어는 도입 취지와 달리 건강보험료와 실손보험료 인상을 유발, 오히려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큰 병원에 환자를 뺏긴 1차 의원과 중소병원은 폐업 위기에 내몰렸고, 손해율 상승으로 인한 손보사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문케어 최후의 승자’라는 대학병원도 실상은 경증질환 환자만 몰려 의료자원 소모율 대비 수익률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실정이다. 상급종합병원 및 연구중심병원 지정에서 불리해지는 혹도 달았다.
결과적으로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 대국적인 차원에서 정책 틀을 짜지 못하고 ‘진료비 감소’라는 지엽적인 성과에만 매달린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 낳은 참사다.
물론 인구고령화와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급격한 비급여의 급여화는 국민, 의료계, 보험업계의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한 때 20조원 넘던 건강보험 적립금은 문케어의 여파로 6~7년 안에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적립금이 고갈되면 양심적으로 병원을 이용한 선량한 가입자에게 피해가 전가된다.
복지 확대도 좋지만 건강보험 재정 형편부터 살펴야 한다. 소아 환자, 암 등 중증질환 환자, 희귀난치성질환 환자 등이 선제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건보 보장성 강화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적절한 보장 범위에서 건보 재정을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비급여 과잉진료와 이에 동조하는 의료쇼핑은 강도 높은 규제 및 행정처분으로 뿌리뽑아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현실적인 수가 인상을 통해 정상 진료만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다만 본래 인간이 선하고 자율적이라는 성선설의 전제 아래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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