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고액 의료비가 드는 희귀·중증난치질환을 대상으로 의료비 부담을 더 낮추고, 치료제는 더 빠르게, 공급은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 전반을 손질한다. 그동안 산정특례와 개별 지원사업 중심으로 운영돼 온 희귀질환 정책을 환자 체감 중심의 구조적 지원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등은 5일 ‘희귀·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대책은 △고액 의료비 부담 완화 △치료제 접근성 제고 △의료·복지 연계 강화 등 세 축으로 구성됐다.
산정특례 10%에서 추가로 더 낮춰 의료비 부담 완화 …희귀질환 70개 추가
현재 희귀·중증난치질환자는 산정특례를 통해 건강보험 본인부담률 10%를 적용받고 있지만,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특성상 10% 역시 상당한 부담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희귀·중증난치질환의 고액 진료비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10%보다 더 낮추는 추가 인하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해 상반기 중 구체안을 마련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하반기 시행하는 것이 목표다. 
산정특례 적용 범위도 확대된다. 올해 1월부터 선천성 기능성 단장증후군 등을 포함한 희귀질환 70개가 산정특례 대상에 추가돼, 적용 대상 희귀질환은 1387개로 늘어난다. 아울러 환자 부담으로 지적돼 온 산정특례 재등록 절차도 환자 중심으로 개편된다. 완치가 어려운 질환 특성을 고려해 재등록 시 요구되던 불필요한 검사 절차를 단계적으로 삭제하고, 임상진단과 치료 이력 중심으로 간소화한다. 우선 ‘샤르코-마리-투스 질환’, 구리대사장애 관련 3개 질환, 베체트병 관련 5개 질환 등 총 9개 질환에 대해 올해 1월부터 검사를 삭제했으며, 향후 전체 질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저소득 희귀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비 지원도 넓어진다. 복지부는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사업’에서 적용해 온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환자 본인의 소득·재산이 아닌 가족 기준 때문에 지원에서 배제되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식이조절이 필요한 환자를 위한 특수조제분유, 저단백식품 등 질환별 맞춤형 특수식 지원도 수요 조사 결과를 반영해 확대할 방침이다.
희귀약 최대 240일 → 100일로 등재기간 단축 … 환자 ‘해외직구 약’도 정부가 도입 공급
치료제 접근성 개선에서는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어 임상 근거 축적이 어렵고, 그 결과 허가 이후 급여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복지부는 현재 평균 240일이 소요되는 급여 등재 기간을 2026년부터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절차 간소화를 추진한다. 허가, 급여 적정성 평가, 약가 협상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희귀질환 치료제의 신속 등재를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긴급도입과 주문제조를 확대해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 수요가 적어 민간에서 공급이 중단되거나 중단 우려가 있는 치료제에 대해 정부가 직접 해외에서 구매해 공급하는 긴급도입 제도를 확대하고, 환자가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 오던 자가치료용 의약품도 매년 10개 품목 이상 긴급도입 품목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긴급도입 품목을 41개 이상으로 늘리고, 이 가운데 과거 급여 대상이었던 약제는 보험약가 신청도 병행한다.
아울러 정부가 제약사에 제조를 요청해 전량 구매·공급하는 주문제조 방식도 확대된다. 현재 7개 품목인 주문제조 대상은 매년 2개씩 늘려 2030년까지 17개 품목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긴급도입·주문제조 모두에서 희귀질환 치료제를 우선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대상자 발굴–진단–치료–돌봄까지 끊김 없이 의료-복지 연계 체계 구축
희귀질환 의심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검사 등 진단 지원 규모를 2025년 810건에서 2026년 1150건으로 확대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늘린다. 전문기관이 없는 광주·울산·경북·충남 권역에는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추가 지정해 지역 내에서 진단부터 치료, 관리까지 이어지는 지역완결형 진료 체계를 구축한다. 희귀질환 등록사업 역시 상급종합병원, 나아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해 환자 발생과 임상정보를 체계적으로 축적·활용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의료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간병, 돌봄, 재활, 정신건강 등 복지 수요까지 포괄하는 의료-복지 연계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희귀질환 실태조사를 분석해 환자 특성을 유형화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연계 지원 방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관계부처와 환자단체, 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희귀질환 지원 정책협의체도 본격 운영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희귀·중증난치질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를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올해부터 시행 가능한 과제는 조속히 이행하고, 추가로 필요한 과제도 지속 발굴해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