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의 포도당 의존형 인슐린 친화성 폴리펩타이드(GIP)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이중 작용제인 Zepbound(젭바운드, 성분명 티어제파타이드)와 노보노디스크의 GLP-1 작용제인 Wegovy(위고비,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대표하는 비만치료제가 글로벌 사회, 경제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이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는 장에서 생성된 호르몬을 모방하여 식욕을 억제하고 혈당을 조절하여 제2형 당뇨병과 비만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비만은 주요 사망 원인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위험 요소로, 신약개발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되고 있다.
GLP-1 작용제 비만약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오른쪽)와 GIP 및 GLP-1 이중 작용제인 릴리의 ‘마운자로’
젭바운드와 위고비의 한 달 약가는 미국에서 1079달러에서 1349달러 사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노보노디스크를 비롯한 제약사 17곳에 서한을 보내 미국에서 약값 인하 조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런 압박에 대한 반응으로 노보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 당뇨병 주사제인 ‘오젬픽’D,;한달 치 약가를 기존 1000달러 선에서 그 절반인 499달러로 인하한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주 1회 맞는 주사제인 오젬픽은 노보노디스크의 대히트작으로, 당뇨 치료가 주목적이지만 체중 감량 효과도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앞서 지난 3월 체중 감량제 ‘위고비’의 가격 역시 499달러로 낮췄다.
미국의사협회가 발행하는 의학저널 ‘자마 헬스 포럼’(Jama Health Forum)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메디케어의 GLP-1 약제에 대한 보장은 향후 10년 동안 계속 증가해 퇴직자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따른 순 지출만 이 기간에 477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비만 관련 질병은 근무 시간을 손실시키고 조기 사망, 비공식 돌봄 등 의료 시스템과 사회 전반의 생산성에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사회적 비용 부담은 어쩌면 당연하고 경미하다 할 수 있을 정도다.
약가 할인을 해도 높은 수익이 여전히 보장되는 이런 GLP-1 약제의 특성 덕분에 덴마크에서는 위고비 제조업체인 노보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이 2024년 4월 6013억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덴마크의 2024년 전체 GDP인 4294억6000만달러를 넘어서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체중 감량 의약품 산업은 당분간 덴마크 경제에 높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경기 활성화는 물론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펀더멘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비만치료제 개발에 국내외 기업들이 달려들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한미약품, 일동제약 등이 이에 속한다. 비만치료제는 심장대사질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개발에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 MedExpress의 의약사업 부분 수석인 소피 딕스(Sophie Dix)는 ”퍼스트 인 클래스(세계 최초의 혁신 신약)가 최고인 경우는 드물다”며 “후속 약물은 더 강력하고 선택적이며 부작용을 완화하거나 병용요법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유효성, 내약성, 투여 편의성의 개선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비만치료제가 식습관 변화에 미치는 영향
2024년 미국 코넬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GLP-1 사용자가 한 명 이상인 가구는 약물 시작 후 6개월 이내에 식료품 구매 지출을 5.3% 줄였으며, 고소득 가구에서는 구매 지출 감소 비율이 8.2%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5년 8월 현재, 업데이트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6~12개월 동안 약물을 복용한 사람들은 차츰 쿠키, 베이커리류와 같은 가공식품 지출 속도를 줄이는 한편 약물을 중단한 사람들은 다시 복용 전 지출 수준으로 돌아갔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식품의 질을 올리고 비만치료제 복용에 따른 체중 감소 및 근육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최근 고단백 식단, 소량 섭취, 근육 유지를 촉진하는 식품 등의 출시가 늘어나고 있다.
술, 옷, 레스토랑, 여행 등에도 광범위한 영향
코넬대 초기 연구에 따르면 중독 치료에 GLP-1이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음식을 넘어 알코올 오남용, 약물 의존, 도박까지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부자는 날씬, 서민은 뚱뚱? 비만약 열풍이 양극화 부른다
비만치료제는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으로 양극화 사회(two-tier society)를 심화시킬 전망이다. 소피 딕스는 ”우리는 건강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결정 요인이 있고 저소득 지역에서 비만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삶을 변화시키는 이러한 약물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양극화 사회의 위험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비만 치료제 사용자가 3000만명에 이를 경우 생산성 향상과 의료 비용 절감으로 GLP-1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0.4% 증가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비만이 있는 사람은 일할 가능성이 낮고 일할 때 생산성이 떨어지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비만을 개선한다면 상당한 경제적 비용이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경제대학의 알조샤 얀센은 “부유한 사람들이 마른 체형으로 만드는 의약품을 사용한다면 이미 소득 및 교육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체중 측면에서 이미 명백한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정책 입안자들이 사회경제적 분열을 악화할 수 있는 이러한 측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