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석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유전체R&D센터장), 이성호 흉부외과 교수와 진씨커(대표 예성혁)가 국내 최정상 의과학자들(허준호 한양대 의대, 김진수 서울시 보라매병원, 김명신‧김용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김송철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교수)과 공동연구를 수행하여, 혈액 속 극소량의 암 변이 신호(ctDNA)를 정밀하게 잡아내는 액체생검 원천기술 ‘MUTE-Seq’을 개발했다.
액체생검이란 혈액 등 체액에서 암 관련 유전정보를 분석하는 비침습적 검사다. 기존 방식은 극히 낮은 비율(초저빈도)의 변이를 찾기 위해 초고심도 시퀀싱·특수 바코딩(UMI) 등이 필요해 비용과 시간 부담이 컸고, 정상 DNA 신호에 묻혀 극소량의 암 변이 ctDNA를 놓치거나 위양성 관리가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이 개발한 ‘MUTE-Seq’은 전처리 과정에서 단일 염기의 불일치도 구별하는 높은 정밀도의 유전자가위 ‘FnCas9-AF2’를 처리해 검사 전에 정상 DNA를 선별적으로 제거해 암 변이 신호인 ctDNA만 남겨 또렷하게 만드는 게 차별점이다. 그 뒤 변이만 농축된 시료를 대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에 비해 초저빈도 암 변이 신호의 검출률이 훨씬 높고 정확하다.
정밀도와 더불어 검사 경제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방식은 아주 작은 말소리(ctDNA)를 듣기 위해 고가의 고출력 스피커(고가 시퀀싱 장비)로 볼륨을 최대로 올려서 듣는 방식인데 높은 시퀀싱 비용과 정상 DNA의 크기 동반 증량으로 인한 분별력 제고의 한계성이 존재하는 게 문제였다.
이에 반해 ‘MUTE-Seq’은 혁신적인 ‘노이즈 캔슬링’ 방식이다. 초정밀 유전자가위가 주변소음(정상DNA)만을 정확하게 줄여주는 덕분에, 스피커의 성능과 상관 없이(모든 종류의 시퀀싱 장비 가능) 적은 출력으로도(낮은 시퀀싱 비용) 우리가 원하는 말소리(ctDNA)만 더 크고 또렷하게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즉, 불필요한 정상DNA 신호를 미리 최대한 제거한 뒤 시퀀싱을 하게 되면 시퀀싱 양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암 변이 ctDNA의 신호는 수십배 증폭하는 효과가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기존 방식 대비 정밀도는 20배 향상하면서도 검사 비용은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실제 환자 혈액에 적용해 성능을 확인했다. 암조직-혈액 돌연변이 일치도를 탐색했다. 폐암 환자에서는 91%의 민감도와 95%의 특이도를 보였다. 췌장암 환자에서는 민감도 83%, 특이도는 100%를 보였다.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는 치료 후 재발 모니터링 검사에서 극소량의 암 변이 DNA의 검출이 가능했으며, 미세잔존암 여부를 100% 민감도와 100% 특이도로 진단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주로 초기 암 (1, 2기) 및 미세잔존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결과로, 혈액만으로 조기에 암을 진단하고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영상장비보다 빠르게 재발을 확인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허준석 교수는 “암은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치료 뒤 얼마나 촘촘히 살피느냐가 생존율을 좌우한다”며 “혈액 한 번으로 아주 적은 암 신호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더 이르게 발견하고 치료 후 재발 징후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검사 부담이 줄면 지역·고령·취약계층까지 문턱이 낮아져 의료 형평성에도 도움이 되어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건강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번 연구는 ‘MUTE-Seq: An Ultrasensitive Method for Detecting Low-Frequency Mutations in cfDNA With Engineered Advanced-Fidelity FnCas9’라는 제목으로 올해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구연 발표됐다. 이어 재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Advanced Materials’에 표지논문으로도 선정 및 게재됐다.
아울러 진씨커를 통해 상용화 단계까지 이끌었다. 백혈병 환자의 미세잔존암 모니터링은 서울성모병원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암 위험도 다중암 조기 검사(남성9종, 여성11종)인 암세포탐색검사(온코딥스캔)는 고려대 안암병원을 비롯한 다수의 대학병원과 병의원 건강검진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
허준석 교수는 “AI가 어느 순간 우리 옆으로 성큼 다가왔듯이, 암 분야에서 혈액생검이 그러하다”며 “기술적 혁신 덕분에 혈액생검이 암 조기검진과 재발모니터링에 있어 중요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장암, 폐암, 췌장암, 유방암, 위암, 난소암 등 고형암 환자의 미세잔존암 모니터링에 혈액생검을 도입하기 위해 고려대 안암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 등 유수의 병원들과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혁신의료기술 등의 제도를 활용해 빠른 시일 내에 암으로 고통 받는 많은 분들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고려대학교 의료원이 제시한 ‘미래의학 10대 선도기술’ 가운데 암 정밀 진단·치료, 유전자가위, 체액생검의 세 분야와 직접 맞닿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