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준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팀(이건주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은 급성 뇌경색(허혈성 뇌졸중) 발병 후 심박수가 높은 환자에게 베타차단제를 꾸준히 투여할 경우 장기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1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심박수가 높은 뇌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베타차단제를 장기 복용할 시 장기 생존율이 얼마나 개선되는지 분석하기 위해 전국 20개 병원이 참여한 다기관 뇌졸중 코호트(CRCS-K-NIH)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연계, 2011~2018년에 등록된 50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뇌경색 발병 후 3~7일에 최대 심박수가 분당 100회 이상이었다. 연구팀은 뇌베타차단제 복용 여부에 따라 ‘지속 복용군’, ‘중단군’, ‘비복용군’으로 분류하고 최대 10년 장기 예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베타차단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한 고심박수 뇌경색 환자는 비복용군보다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발병 후 1년 시점에서는 복용 그룹의 사망률이 약 18% 낮다가 30개월 시점에는 그 차이가 31%까지 벌어졌다. 이런 사망률 감소 효과는 △75세 미만 △심방세동 및 관상동맥질환 환자 △평균 심박수가 높은 환자에서 두드러졌다.
또 베타차단제를 복용하다가 발병 1개월 내에 중단한 환자는 전혀 복용하지 않았던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17% 더 높았다. 이는 발병 이전부터 베타차단제를 복용하고 있었다면 뇌경색이 나타나더라도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재 국내외 진료표준지침에서 뇌경색 환자에 대한 베타차단제 사용이 제한적이다. 베타차단제는 교감신경의 베타 수용체를 차단해 심장박동수와 심근 수축력을 감소시킨다. 혈압을 낮추고 심장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심부전, 심근경색, 부정맥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하지만 뇌경색에는 수축기 혈압의 변동성 증가, 뇌졸중 증상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 다양한 부작용(어지럼증, 피곤, 졸음, 서맥, 저혈당, 천식악화, 시야몽롱, 발기부전, 중성지방 상승 등)으로 인한 기존 치료 중단, 요로감염·폐렴 등 감염 가능성 증가 등의 요인으로 베타차단제가 권고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심박수가 높은 고위험 환자에게는 생존율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며 새로운 표준치료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뇌경색은 뇌에 산소 및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이 갑자기 막혀 뇌세포가 죽는 질환으로,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 혈전용해제 혹은 스텐트 삽입술 등을 통해 혈관을 재개통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반신마비, 언어장애, 삼킴장애 등 후유증을 남길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급성 뇌경색은 발병 당시의 치료만큼이나 장기적인 예후 관리가 중요한데, 특히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측정되는 활력 징후 중 하나인 심박수는 예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성인의 안정 시 심박수는 분당 60~100회지만, 일부 뇌경색 환자들은 발병 초기 분당 100회 이상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고(高)심박수 상태를 보인다. 심장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것은 뇌 손상으로 인한 자율신경계 불균형, 전신 염증반응, 또는 숨겨진 심장질환(심방세동, 관상동맥질환 등)의 존재를 시사한다. 고심박수 뇌경색 환자는 심박수가 정상인 환자보다 사망률이 최대 두 배 가량 높다.
문제는 아직까지 고심박수 뇌경색 환자에 대한 명확한 치료전략이 없다는 점이다. 심박수를 낮추는 기전으로 베타차단제의 활용 가능성이 제시됐으나 득보다 실이 크다는 몇몇 연구결과와 뇌졸중 환자에 대한 장기연구가 부족해 표준적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배희준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배 교수는 “이번 연구는 뇌경색 환자 중에서도 고심박수라는 명확한 고위험군에 대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향후 무작위 대조연구(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를 통해 뇌졸중 후 베타차단제의 효과를 추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단(PACEN)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세계적 권위의 미국심장협회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Heart Association’(IF=5.0)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