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은 후에 “얼마나 아프세요?”라고 묻고 1~10점 척도로 통증을 평가하는 주관적 아날로그 평가 방식 대신 환자의 생체지표를 분석해 통증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개발됐다.
신항식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류가연 연구원, 최병문·최재문 마취통증의학과 교수팀은 이 병원에서 다양한 수술을 받은 24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혈압, 심박수, 광용적맥파 등으로 얻어진 통증 관련 수치들의 변화를 측정하고, 이 중 통증 예측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6개의 특징을 선별한 뒤 이를 머신러닝 모델에 입력하여 수술 중·수술 후 통증 발생 정도를 확인하는 기법을 개발했다고 6일 밝혔다.
그동안 통증 평가는 환자들의 주관적인 통증 호소를 바탕으로 이뤄져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에 새로운 기법이 개발됨으로써 통증 정도의 객관적 수치에 따른 환자맞춤형 통증 관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통증은 수술 중, 수술 후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증상이며, 통증을 정확히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은 수술 후 회복의 질과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수술 중의 통증 평가는 환자의 심박수 등 데이터를 조합한 통증 평가 모델이 제시된 적 있으나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렀다. 또 수술 후 통증 파악 방법은 환자마다 동일한 수술을 받고도 호소하는 통증의 강도가 달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웠고, 의식이 없는 환자나 마취 등으로 진정 상태에 있는 환자는 통증 표현이 어려웠다.
통증이 발생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돼 심박수가 빨라지고 말초혈관은 수축하는 등 자율신경계가 미세하게 변화한다. 미세혈관층의 혈액량 변화를 감지하는 광용적맥파로 이러한 특징을 파악해 새로운 머신러닝 모델에 적용하면 수술 중 및 수술 후 통증 발생 정도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연구의 요지다.
광용적맥파(photoplethysmography waveform)는 광학적 방법을 통해 맥박에 따른 혈액량 변화를 감지하는 신호로, 수술시 손가락 끝에 장착하는 맥박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신체 부착 센서를 이용해 측정할 수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머신러닝 모델의 수술 중 통증 평가 정확도는 81.9%(area under the receiver operating characteristics curve scores 기준)로 기존 상용화 통증평가 모델의 82.9%와 유사했다. 수술 후 통증 예측에서는 92.7%의 높은 성과를 기록해 기존의 평가 모델의 57.5%를 압도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광용적맥파의 면적 변화, 맥박 간격 변동성, 기저선 변동성 등이 중요한 통증 예측 인자로 확인됐다. 또 기존의 통증 파악 모델에서 고려하지 않던 수축기 상한선 변동성과 맥박 너비 또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의 통증 파악 방식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요소들이 실제로 통증 예측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항식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왼쪽부터), 류가연 연구원, 최병문·최재문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신항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통증평가 방법을 제공하는 중요한 연구로, 그동안 주관적인 경험에 의존해왔던 수술 후 통증 평가를 생체신호를 활용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 점이 큰 발전”이라고 말했다.
최병문 교수는 “이번 머신러닝 개발로 진정 상태에 있는 환자나 기관내 삽관을 받은 환자처럼 의식이 없는 경우에도 객관적으로 통증 정도를 평가할 수 있게 돼 환자맞춤형 통증관리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디지털 의학 기술 및 혁신적인 연구를 다루는 국제 학술지 ‘NPJ Digital Medicine’(피인용지수 15.357)’에 'Machine learning based quantitative pain assessment for the perioperative period'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지난 1월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