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글로벌 디지털치료제 시장 규모는 100억달러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24년 7월 발표한 '글로벌 보건산업 동향'을 통해 2028~2032년까지 연평균 16~31.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은 디지털 치료제 처방이 가장 활발한 국가다. 2019년 디지털 헬스케어법(DiGA(Digitale Gesundheitsanwendungen) 및 DiPA(digitale Projekte-App) 관련법, Digitale-Versorgung-Gesetz, DVG)을 제정해 승인 절차와 보험 체계를 마련했다. 임시(preliminary) 급여 적용 후 효과가 검증되면 영구(permanent) 등재 심사를 받아 정식 수가를 부여받게 된다. 2024년 10월말 현재 20개의 임시급여와 26개의 영구급여(정식 등재)가 완료됐다. 이를 통해 연간 60만 건 이상의 디지털 치료제가 처방되고 있다.
미국 주요 디지털 치료제
미국에서는 처방형 디지털치료제(Prescription Digital Therapeutics, PDT) 제도를 통해 급여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FDA 510(K) premarket notification(정식 시판 전 신고, 일종의 등록, 선행 의료기기와 실질적 동등성을 입증해야 함) 규정에 따라 25개, FDA enforcement or exempt(FDA법에 따른 규정준수, 즉 정식 허가나 승인심사 면제) 조항에 따라 12개 등 총 37개(2024년 10월말 기준)가 허가돼 있다. 외래 환자 투약 애플리케이션 9개를 포함하면 총 46개의 디지털 치료제가 허가돼 있다.
미국에서는 이와 별로도 FDA가 신생경로(De Novo pathway, 또는 De Novo classification)를 통해 긴급한 제품을 신속하게 허가해주는데 8개의 디지털치료제가 허가받았다. 1997년에 도입된 신생경로는 기존에 승인된 의료기기가 없거나 실질적인 동등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저위험 또는 중위험’ 의료기기에 대해 FDA 승인해주는 제도로 심사수수료가 낮으며 평가자료 제출 후 15일 이내에 심사를 마친다.
피어테라퓨틱스의 약물중독 치료제 ‘reSET’
세계 최초의 디지털치료제는 2017년 9월 미국에서 승인받은 피어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의 약물사용장애(약물중독) 인지행동 치료제인 ‘reSET’이다. 약물사용 일지를 기록하고 약물을 투여하게 하는 상황과 요인을 파악한 뒤 약물사용 충동을 절제하도록 대처방식을 안내하고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회사는 2018년과 2020년에 각각 오피오이드 중독 치료용 앱 ‘리셋-오’(reSET-O), 불면증 치료용 앱 ‘솜리스트(Somryst)’를 허가받았다. 그러나 2017년 이후 6년째 적자가 지속되면서 2023년 4월 파산보호 신청, 글로벌 업계에 충격을 줬다. 그만큼 디지털치료제가 미국 의료보험 시장에 진입하는 게 용이하지 않고, 이용자에게 유용성을 설득하는 게 녹록치 않다는 의미다.
실제 페어테라퓨틱스는 2023년 기준 미국 공보험 적용률은 9% 남짓이었고, 적용 범위 역시 미국 전체 50개 주 중 3개에 그쳤다. 이용자 친화적이지 않은 시스템도 걸림돌이 됐다.
아킬리인터랙티브의 ADHD 치료제 ‘인데버 알엑스’ 및 ‘인데버 OTC’
2020년 6월에는 어린이 ADHD를 치료할 수 있는 아킬리인터랙티브리(Akili Interactive)의 비디오게임 ‘인데버 알엑스’(EndeavorRx)가 FDA 승인을 받았다.
호버 보트를 타고 함정을 피하며 달리는 일종의 레이싱 게임인데 얼핏 보면 다른 게임과 다를 바 없는 화려한 그래픽과 재미 요소를 갖추고 있다. 다만 제품설명서가 게임이 아닌 약물 사용법을 적어놨다는 게 형식적으로 다른 정도다.
이 게임은 7년간의 임상시험 결과 1주일에 5일, 하루에 25분씩 게임을 한 어린이의 3분의 1에서 4주 뒤 주의력 결핍이 기저시점보다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다만 인데버 알엑스는 약물 등 다른 유형의 치료와 병행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인데버 알엑스는 휴대전화나 태블릿을 좌우로 기울이면서 동시에 엄지로 화면 하단 모서리를 눌러야 하는 등 한 번에 수행하기 힘든 작업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작업 환경은 사람의 두뇌로 쉽게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주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게 아킬리 측의 설명이었다. 뇌의 특정 신경 시스템을 활성화해 저하된 인지기능을 치료하는 기술이라지만 약리적으로 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킬리인터랙티브는 성인용 ADHD 디지털치료제인 ‘인데버 OTC’(EndeavorOTC)를 개발해 2024년 6월 추가로 승인받았다. 이 제품은 일반의약품(OTC)으로 허가돼 의사 처방이 필요 없고 약국 등에서 구입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앱을 깔면 된다.
그러나 아킬리인터랙티브는 이보다 한 달 전인 2024년 5월말 버추얼테라퓨틱스에 불과 3400만달러에 인수됐다. 역시 인데버알엑스의 상업적 실패가 원인이었다. 이 회사는 2023년 1월 인력의 30%를 감축하고 자폐스펙트럼장애(ASD), 다발성경화증(MS), 주요우울장애(MDD) 등 주요 파이프라인 개발을 중단하는 등 자구책에 나섰으나 결국 적자가 누적돼 인수를 당했다.
베터테라퓨틱스의 당뇨병 치료제 ‘AspyreRx’
2023년 7월 10일에는 베터테라퓨틱스(Better Therapeutics)가 개발한 당뇨병 디지털치료제 ‘AspyreRx’(개발코드명 BT-001)가 FDA 허가를 얻었다. 18세 이상의 성인 2형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기반 디지털치료제이다. FDA 사상 최초의 디지털 당뇨병 치료제로서, ‘신생경로’를 통해 허가를 획득했다.
클릭테라퓨틱스의 우울증 치료제 ‘리조인’
2024년 4월 1일에는 일본 오츠카파마슈티컬스와 미국 뉴욕의 치료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클릭테라퓨틱스(Click Therapeutics)가 주요우울장애(MDD)를 치료하는 미국 최초의 처방용 디지털치료제 ‘리조인’(Rejoyn, 개발코드명 CT-152)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리조인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22세 이상 성인 주요 우울장애 외래환자들을 위한 보조요법제로 허가받았다. MMD 동반 증상들을 감소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리조인은 임상적으로 검증된 뇌인지 정서 훈련(training exercises)과 짧은 치료교육(therapeutic lessons)으로 구성된 6주 치료 프로그램이다. 기존 모바일 웰니스 앱과 달리 리조인은 의료인들이 처방하는 의료기기로 FDA 허가를 얻었다. 같은 해 8월 미국에서 출시됐다.
리조인은 MMD 진단을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 중인 22~64세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착수시점에 비해 우울증 증상의 중증도가 개선된 것으로 입증됐다. ‘몽고메리-오스베리 우울증 평가척도’(MADRS), ‘환자 건강 설문조사 9개 문항 우울증 척도’(PHQ-9), ‘전반적 임상 인상척도-증상 중증도’(CGI-S) 등이 평가 척도로 활용됐다.
6주에 걸친 치료 프로그램을 마친 후 1개월 차 시점에서 리조인을 사용한 치료군은 지속적인 증상 개선이 나타났다.
리조인은 우울증의 영향을 받는 신경망을 표적으로 작용하도록 설계됐다. 뇌내 신경가소성을 이용해 연결성에 변화를 주고, 이를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상 감소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가설에 근거를 뒀다. 이는 기존 항우울제들이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의 고갈에 맞춰 이를 활성화하는 것과는 기전에서 차별화된다.
클릭테라퓨틱스의 데이비드 벤슈프 클라인(David Benshoof Klein) 대표는 “우울증을 진단받고 항우울제를 1차 약제로 복용한 환자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이 성공적으로 증상을 치료하고 있다”며 “리조인의 등장으로 의사들의 치료방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영국에서 20개(정식승인 1개, 조건부승인 19개), 일본 3개, 호주 2개, 스코틀랜드 2개, 캐나다·브라질·아랍에미리트연합 각 1개씩 디지털치료제가 승인돼 있다(2024년 10월말 기준). 디지털치료제 개념을 수용한 나라가 아직은 턱없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