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과 POSTECH 연구팀은 최근 인간 ‘뇌혈관 장벽’(Blood-Brain Barrie, BBB)을 정교하게 모사한 3D 모델을 개발했다고 22일 발표했다. 이 모델은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2D 모델보다 더 정밀하게 뇌혈관 장벽을 재현하며, 신경퇴행성 질환의 연구와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뇌혈관 장벽은 뇌세포를 둘러싸면서 뇌혈관으로부터 유해물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며, 필요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에서는 뇌혈관 장벽이 손상되거나 염증이 발생해 질병이 악화된다. 이를 이해하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뇌혈관 장벽 모델이 필요했다.
BBB는 밀착 연접해 있는 뇌모세혈관 내피세포(Human Brain Microvascular Endothelial Cell, HBMEC)를 뇌혈관 주변세포(Human Brain Vascular Pericyte, HBVP)가 빈틈없이 에워싼 구조다.
뇌혈관 특이적 세포외기질 바이오잉크와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구현된 관형 구조에서 유도된 세포들이 자가 조립해 뇌혈관 장벽의 이중층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장진아 POSTECH 기계공학과·생명공학과·IT융합공학과·융합대학원 교수(한호현 박사과정) 연구팀은 CBVdECM(Cerebrovascular-Specific Extracellular Matrix)이라는 탈세포화 세포외기질을 활용해 뇌혈관 장벽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는 ‘3D 바이오잉크’를 개발했다. 이 바이오잉크는 돼지의 뇌와 혈관에서 유래한 세포외기질로, 뇌혈관 장벽의 특성을 잘 재현할 수 있다.
CBVdECM은 BdECM(Brain-derived Decellularized Extracellular Matrix)과 VdECM(Vessel-derived Decellularized Extracellular Matrix)을 혼합해 뇌혈관 조직의 구조와 기능을 모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BdECM은 뇌 조직에서 세포를 제거하고 남은 세포외 기질로, 뇌혈관 장벽의 기저막 형성과 세포 간 밀착 결합을 강화하는 생화학적 성분이다. VdECM은 혈관 조직에서 세포를 제거한 후 남은 세포외 기질이며, 혈관 내피세포의 신생과 새로운 혈관 형성을 유도하는 단백질을 포함한다.
연구팀은 이 바이오잉크를 사용해 3D 프린터로 사람의 뇌혈관장벽 구조를 만들었다. 관형 구조를 통해 세포들이 자가 조립해 이중층 구조를 형성하며, 실제 인간 뇌혈관장벽을 매우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뇌 미세혈관 내피세포와 뇌혈관 주위세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내피세포는 혈관 내벽을 형성하고, 주위세포는 이를 둘러싸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새롭게 개발된 3D BBB 모델을 이용해 뇌혈관 장벽이 염증물질(TNF-α, IL-1β)과 상호작용할 때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염증반응이 뇌혈관 장벽에 영향을 미쳐 신경퇴행성 질환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과정을 재현할 수 있었다. 염증물질이 BBB의 투과성을 증가시키고, 유해물질이 뇌로 침투하거나 염증반응이 악화되는 과정을 확인함으로써, 뇌혈관장벽이 신경염증과 질병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또 기존 2D 모델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던 밀착연결 단백질(VE-cadherin)의 배열과 조직화 과정을 3D 모델을 통해 명확히 재현할 수 있었다. VE-cadherin은 세포 간 연결을 돕고 뇌혈관 장벽의 내구성과 기능을 유지하는 중요한 단백질이다. 연구팀은 이 모델을 통해 VE-cadherin이 뇌혈관 장벽의 투과성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염증성 질환에서 BBB 기능의 변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백선하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3D BBB 모델은 기존의 2D 모델보다 더 정교하고 실제에 가까운 뇌혈관 장벽을 재현하고 있으며, 신경염증이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며 “이를 통해 신경퇴행성 질환의 기전과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진아 교수는 “향후 아교세포, 뉴런, 면역세포 등을 추가로 통합해 더 정밀한 염증반응 및 BBB 투과성 정량화 기술을 개발하고, 환자맞춤형 질환 모델을 확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국제 학술지인 ‘바이오머티리얼즈 리서치’(Biomaterials Research, IF=8.1) 최근호에 ‘Cerebrovascular-Specific Extracellular Matrix Bioink Promotes Blood–Brain Barrier Properties’라는 논문으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