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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진정한 ‘예인’(藝人) … 정치권 말싸움보다 더 설득력
  • 정종호 ·약학박사 기자
  • 등록 2020-11-09 11:41:16
  • 수정 2020-11-09 11: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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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은 본래 ‘현실비판적’ ‘체제저항적’ … 정치인, 말 무겁게 하고 의정으로 강한 메시지 남겨야
 ‘나훈아 신드롬’을 일으킨 지난 9월 30일 KBS2 방송의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 방송 캡처
지난 9월 30일 추석 연휴 KBS가 내보낸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 일명 ‘2020 나훈아 콘서트’의 인기와 정치적 후폭풍이 만만찮다. 나훈아의 ‘테스형’ 뮤직비디오는 8일 현재 976만2000건이 넘었다.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만 따지면 207만회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를 제쳤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이란 가사가 자본주의 경쟁과 코로나19로 지친 서민과 중산층을 깊게 위로한다.
 
이보다는 대중가요의 ‘가황(歌皇)’이라는 나훈아가 남긴 정치적 소신 발언을 두고 여야가 야단이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나 하면, 바로 여러분이 이 나라를 지켰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 “KBS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알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등의 발언이 상당수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나훈아 반응’과 관련 추석 민심을 전하며 “추석 전날 가수 나훈아 씨가 우리 마음을 속시원하게 대변해줬다”(주호영), “옳고 그름마저도 니편 내편 따지는 문재인 정권에 신물이 난다”(장제원), “힘도 나고 신이 났지만 한편으론 자괴감도 들었다. 20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지만, 이 예인(藝人)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다”(원희룡), “두고 보세요. KBS, 거듭날 겁니다”(조수진) 등의 멘트를 날렸다.
 
이에 대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나훈아 발언을 오독하지 말라”며 “나훈아의 발언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현대사 100년 동안 민주주의의 적(국민의힘 등)이었던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16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테스형’ 노래 가사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절절한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이 있다. 장관도 듣고 국민의 마음을 읽어 달라”며 자신의 질의시간에 음악을 재생해 김현미 장관을 빵 터지게 했다.
 
예인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 기예를 닦아 남에게 보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배우, 만담가, 곡마사와 같은 사람”이다.
 
이문열의 중편소설 ‘금시조’(金翅鳥, 198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에는 서예에 천부적 소질을 지닌 고죽(古竹)과 그의 스승 석담(石潭) 사이의 서로 다른 예술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격조 높게 풀어놨다.
 
소설 내용보다는 오히려 1983년 KBS에서 방영한 TV 문학관 68화의 ‘금시조’가 더 인상적이다. 스승 석담으로 분한 신구는 제자 고죽으로 분한 김흥기에게 “내 일찍이 네놈의 천골(賤骨)을 알아보았더니라. 가거라! 넌 진작부터 저잣거리에 나앉았어야 할 놈이었다. 용케 천골을 숨기고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이제 나가면 글씨 한 자에 쌀 됫박은 후히 받을게다”라며 호통친다.
 
기량이 좋지만 천기(賤技)가 흐르는 작품을 스승 몰래 내다 팔아 용돈도 챙기고 기생집도 다니는 제자를 꾸짖는 신구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석담은 서예나 문인화를 ‘도(道)’라고 봤다. 예술(藝術, 서구의 art)은 기예와 학술의 합성어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기술(技術, skill)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일부 서예가들은 서예가 아닌 서도가 맞다며 정신적인 숭고함과 순수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연예인은 배우, 가수, 코미디언(개그맨), 모델 등 주로 공연과 관련한 예인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기자의 3년 서예 스승인 백하 김완영 선생님은 이런 것에 묻는 질문에 “서예가 맞지, 서예에는 道의 측면도 있고 技의 측면도 있지”며 “극단적으로 하나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소모적 논쟁”이라고 말씀하셨다. 스승은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제자들에게 김완용의 글씨가 기술로야 뛰어나지만 안중근 의사의 글씨를 높이 사는 것은 바로 서예에 깃든 정신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백남준은 예술은 ‘고등 사기’라고 했다. 눈을 속이든 마음을 속이든 감동과 위안, 인상적인 충격을 주면 그걸로 역할을 다했다는 그의 가치관이 담긴 말이다.
 
예인하면 남사당(男寺黨)이나 집시(Gipsy)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남사당의 연원에 관한 연구는 부족하지만 나라의 기강이 망가진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 집단을 사당패라고 했다. 남자들만 다닌다 하여 남사당패라고 했다지만 실제는 재주를 잘 부리고 언변이 매끄럽고 곱상한 남자 놀이꾼과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여자 놀이꾼이 뒤따르며 무리를 일궜다고 한다.
 
흉년과 기근, 위정자들의 부정부패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사당패는 날로 늘어 마치 메뚜기떼처럼 불어났다고 전해진다. 남사당패만 지나가면 멀쩡하던 선남선녀가 사당패의 행렬을 따라가 잠적해버려 부모들의 마음이 썩었다.
 
사당패 놀음이나 양반을 조소하는 탈춤놀이로 민초들은 빈곤과 한을 달랬다. 그 사이 양반들은 부정한 재물을 쌓고 권력을 남용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당패나 탈춤놀이가 자기들을 비웃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억눌렀다간 정말 큰 일이 날 것을 알고 모른 체했다. 그러다 조선은 망국을 맞았다.
 
남사당은 서커스단의 삐에로처럼, 지금은 아무도 서커스를 찾지 않는데 슬픈 마음을 감추며 관객을 웃기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런 뒷모습이 서늘한 우울함을 남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연예인을 포함한 문화예술인을 차별적으로 지원했다고 해서 모두 구속됐다가 박 전 대통령만 현재 영어 중이다. 문화예술로 시대를 표현하는 행위를 정책으로 일일이 막아선 게 잘못이었다. 조선시대 양반처럼 모른 체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책을 집행하고 그에 따라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집권세력의 권한이자 재량인데 사법당국이 편향성을 갖고 구속한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집권세력의 의지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게 정치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억울한 누구누구가 감방에 갈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의 집권세력이 아량을 갖고 언론보도나 문화예술계에 좌우를 통합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TBS의 김어준 씨 등의 방송 발언은 공정 중립성이 무너진 처참한 모습이다. 박근혜 시대의 ‘국뽕’ 영화 ‘국제시장’도 너무나 작위적이어서 아무런 감동이 없었는데 이데올로기가 인위적으로 개입한 것은 생명력을 잃기 마련이다.
 
예전에 박규채, 신구, 이덕화, 유동근, 정찬호 등이 우파 연예인으로 분류돼 캐스팅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거꾸로 김명곤, 김제동, 김미화, 문성근, 명계남, 김민선 등 좌파 연예인도 보수정권에서 특별관리를 받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주고받는 특정 진영의 불이익과 배척, 그에 대비되는 세력의 특별우대와 득세는 번갈아 이뤄졌다.
 
문화예술은 세상을 아름답게만 품는 게 아니다. 서러움과 슬픔, 세상비판을 은유와 상징, 극적인 콘트라스트를 통해 표현하는 게 기본이다. 어쩌면 본질적으로 현실비판적이고 체제저항적인 게 문화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예술인은 모두 반체제(좌파) 성향을 띠게 마련이다. 유사 이래 태평성대가 과연 있었던가. 따라서 나훈아의 소신 발언을 갖고 아전인수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정치가 과연 민심을 따르고 있는지 자성해야 한다.
 
특정 연예인이 소신을 갖고 정치발언을 할 때는 그 후폭풍도 감수해야 한다. 나훈아 씨는 감당할 능력이 되니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나 집권자가 과도하게 장기적으로 시시콜콜히 해당 연예인의 앞길을 막는 것은 문화적 소통과 언로를 탄압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예인이란 것을 생각해본다. 나훈아는 노래도 잘 하지만 무대를 이끄는 언변과 파워, 거기에 정치적 메시지까지 던질 줄 아는 배짱과 센스까지 통째로 예인임에 분명하다.
 
반면 요즘 연예인 양성은 너무 체계적이다 못해 기계적이어서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로봇처럼 언행이나 제스처나 필링이 어디서 조종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나훈아 가수 때문에 몇 편의 1970~1980년대 방송 유튜브를 시청해보니 당시엔 비록 세련되지 못했어도 기가 팔팔하다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막강하던 방송국이나 정권의 힘에 휘둘려 이런저런 행사에 동원되는 비자발성도 엿보여 아련하다.
 
예인의 자리는 바람처럼 자기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 이를 가둬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정치인의 말은 좀 무거워졌으면 한다. 인터넷, SNS, 유튜브 시대를 맞아 불가피하게 정치인들의 말이 많아졌다. 입심이 세야 주목을 받다보니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자꾸 하게 되고, 자극적이고 상처주는 말로 인기를 얻는다. 정치인의 말값이 점점 내려가고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회의원은 예인 나훈아보다 드라마틱하고 파워풀한 메시지를 전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 공방으로 시대를 허송할 게 아니라 과도한 세금, 허튼 데 쓰이는 세출, 불필요한 정부사업, 정권의 권력남용에 대한 매서운 지적을 해서 나훈아를 넘어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2020년 국정감사를 리뷰해보면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야당의 매서운 칼끝은 보이지 않고, 여당 의원은 온통 청와대 감싸기에 여념이 없고 거의 1970년대, 80년대로 회귀한 그런 느낌이다. 오죽하면 지금 야당이 전두환 정권 당시 신한민주당보다도 무력하다는 지적이 나올까.
 
유랑하는 사당패 무리를 불린 조선후기의 집권세력이나 정처 없는 서민이나 중산층이 테스형과 나훈아를 찾게 하는 지금 집권세력이나 민심을 읽지 못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지난 70년간 국운 육성을 위해 피와 땀을 쏟아 엄동설한에 꽃을 피운 대한민국은 좀 먹고살 만하니 정치가 길을 잃어 추분을 넘어 동지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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