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경구용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 SERD) 신약후보물질인 기레데스트란트(giredestrant)의 에스트로겐 수용체(ER) 양성, 사람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HER2) 음성, 조기 유방암 환자를 위한 보조치료제로서 효능을 평가한 ‘lidERA’ 3상 임상시험의 상세 내용을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샌안토니오 유방암 심포지엄(SABCS 2025)에서 발표했다.
이를 통해 SERD가 이 유형의 유방암에서 표준 내분비요법(ET)을 넘어섬을 각인시켰다. 조기 유방암 환자의 수술 후 보조요법제 단독요법으로서 표준요법을 넘어선 것으로, 특히 아로마타제 억제제(AI)가 허가된 이후 이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로슈는 강조했다. 앞서 로슈는 지난 11월, 이 연구의 중간분석에서 1차 평가지표를 톱라인 안내 보도자료를 내고 “전례없는 결과가 도출됐다”며 애드벌룬을 띄운 바 있다.
lidERA 3상은 병리해부학적으로 1~2기인 ER+/HER2- 조기 유방암 환자로, 폐경 전ㆍ후에 상관없이 유방암 수술 후 12개월 이내인 환자 417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피험자들은 1대 1로 기레데스트란트 30mg을 1일 1회 투약하거나, 표준 내분비요법(타목시펜 또는 아로마타제 억제제)을 받도록 무작위 배정됐다.
연구의 1차 평가지표는 유방암 이와 2차 원발암을 제외한 침습적 무질병 생존율(invasive Disease-Free Survival, iDFS), 주요 2차 평가지표는 무질병 생존율(Disease-Free Survival, DFS), 원격 무재발 생존율(Distant Recurrence-Free Survival, DRFS), 유방암 이외 2차 침습적 원발암(흑색종 이외의 피부암 및 상피내암 제외)을 포함한 침습적 무질병 생존율, 국소 무재발 생존 기간(Locoregional Recurrence-Free Interval, LRRFI), 전체생존율(Overall Survival, OS), 안전성 등으로 정의했다.
연구에는 아시아인도 약 22%를 차지했으며, 폐경 전 여성이 약 40%, 고위험군이 약 70%, 이전에 항암화학요법 투약 이력이 있는 환자가 약 80%를 차지했다.
중앙 추적관찰 32.3개월 시점에 분석한 결과, 1차 평가변수인 침습적 무질병 생존율은 기레데스트란트군이 12, 24, 36개월 시점에 각각 97.7%, 94.8%, 92.4%로 표준 내분비요법군의 96.9%, 92.3%, 89.6%를 상회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간극이 벌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두 그룹 모두 침습적 무질병 생존기간이 중앙값에 이르지 않은 가운데, 기레데스트란트군의 침습적 질병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이 30% 더 낮았으며(HR=0.70, 95% CI 0.57-0.87, P=0.0014)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표준 내분비요법 중 타목시펜군 대비 침습적 질병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은 47%(HR=0.53, 95% CI 0.35-0.80), 아로마타제 억제제에 비해서는 27%(HR=0.73, 95% CI 0.58-0.92) 더 낮았다.
아로마타제 억제제인 아나스트로졸은 2000년 9월 1일 호르몬 수용체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2005년 9월 16일 조기유방암 보조치료제(정식승인 기준, 가속승인은 2002년 9월 5일)로 승인된 바 있다.
로슈는 ER+/HER2- 조기 유방암에서 표준 내분비요법(아로마타젝 억제제) 대비 유효성에서 우위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아로마타제 억제제 등장 이후 근 25년 만이다.
버제니오(성분명 아베마시클립, 릴리)와 키스칼리(성분명 리보시클립, 노바티스) 등 CDK4/6 억제제들도 조기 유방암 환자의 수술 후 보조요법제로 허가를 받았지만, 단독요법이 아닌 표준 내분비요법과의 병용요법이라는 점에서 기레데스트란트 단독요법이 돋보인다고 덧붙였다.
침습적 무질병 생존율에 있어 기레데스트란트의 이득은 내분비요법의 종류뿐 아니라 연령, 인종, 폐경 여부, 병기, 위험도, 항암화학요법 이력 등에 상관없이 사전에 지정한 주요 하위그룹 전반에 걸쳐 일관된 양상을 보였다.
2차 평가지표 중 원격 무재발 생존율도 기레데스트란트군이 12, 24, 36개월 시점에 각각 98.5%, 96.1%, 94.4%로 표준 내분비요법군의 97.7%, 94.2%, 92.1%를 웃돌아 원격 재발 또는 사망의 위험이 31% 더 낮았다(HR=0.69, 95% CI 0.54-0.89).
12, 24, 36개월 시점의 전체생존율은 기레데스트란트군이 99.5%, 98.2%, 97.0%, 표준 내분비요법군이 99.4%, 97.5%, 95.9%로 두 그룹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HR=0.56-1.12, P=0.1863), 데이터가 미성숙한 상황임에도 기레데스트란트군에 긍정적인 양상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안전성에서 치료 관련한 3~4급 이상반응은 기레데스트란트군이 19.8%, 표준 내분비요법군이 17.9%로 유사했으며, 심각한 이상반응도 10.8%와 10.1%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치료로 인한 일시적 투약 중단은 기레데스트란트군이 12.7%로 표준 내분비요법군의 6.6%보다 빈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반응으로 인한 치료 중단은 기레데스트란트군이 5.3%로 오히려 표준 내분비요법군의 8.2%보다 적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 결과가 기레데스트란트를 HR+/HER2- 조기 유방암 환자를 위한 새로운 표준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레데스트란트는 올해 2건의 3상 임상시험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줬다. 2025년 9월 22일, 2025 유럽종양학회(ESMO) 학술회의에서 ER 양성, HER2 음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evERA’ 연구의 긍정적인 데이터가 발표가 나온 바 있다. 이 임상시험에서 기레데스트란트와 에베롤리무스 병용요법은 이전에 CDK4/6 억제제 치료 후 질병이 진행된 진행성 또는 전이성 ER 양성, HER2 음성 유방암 환자에서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유의미하게 개선했다. 또 다른 1건은 이번 3상 lidERA 임상시험 결과다.
로슈는 2022년 4월, 기레데스트란트의 2상 ‘acelERA’ 시험에서 1차 평가지표 충족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시험 조건은 이전에 치료받은 적이 있는 호르몬 수용체(HR) 양성,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HER2) 음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수술 전 보조요법’이었다. 기레데스트란트 단독요법이 의료진이 선택해준 표준 내분비요법(풀베스트란트 또는 아로마타제 억제제) 대비 무진행 생존 기간(PFS)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개선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슈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활성 의존도가 높은 환자나 ESR1 변이(ESR1m)가 있는 환자 하위 그룹에서는 더 뚜렷한 효과 가능성이 관찰됐다며 후속 임상을 진행해왔다.
로슈는 2상 acelERA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비슷한 조건으로 기레데스트란트의 수술전 보조요법(신보조요법)을 평가한 2상 ‘coopERA’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ER 수용체 양성, HER2 음성 조기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악성세포 분열 감소(항증식 효과) 측면에서 아로마타제 억제제(아나스트로졸)보다 우월함을 입증한 바 있다.
coopERA 임상은 연구 시작 시점부터 치료 2주 차까지 Ki67 점수(암세포 증식 지표)의 변화를 측정했다. 기레데스트란트 치료는 Ki67의 기하평균 상대적 감소율(-75%)이 아나스트로졸(-67%)에 비해이 더 높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p=0.043). 또 기레데스트란트 투여군에서 아나스트로졸 투여군에 비해 완전한 세포주기 정지를 보인 종양이 더 많았다(25.0% 대 5.1%).
이 임상에서 기레데스트란트를 사용했을 때 Ki67 발현 감소 효과가 종양 병기, 림프절 전이 상태, 조직학적 아형 등 다양한 환자 및 종양 특성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유지됐다.
기레데스트란트가 임상시험 조건을 달리함으로써 초기의 임상 실패를 딛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