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굴한 시간은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시간 …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최선을 다한 시간
어렸을 때에는 그리 더디 가던 시간이 나이 쉰이 넘어가니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주마간산은 대충 훑어본다는 뜻도 있지만 창밖 너머로 말을 달리던 사람이 어느 새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세월이 덧없이 흐른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하물며 지금은 말보다 수십 배 빠른 KTX 탓에 창밖 풍경은 ‘아스라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다.
나이가 갈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게 느껴지는 것은 여러 가지 과학논리로 설명된다. 노화에 따라 생체시계가 느려지는 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점, 뇌의 작동 속도가 느려지는 점, 도파민 분비량이 줄어드는 점 등이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생체시계가 느려지면 느끼는 시간은 이제 겨우 오후인데 물리적 시간은 이미 저녁때가 다 돼 시간이 빨리 갔다고 느끼게 된다. 어리고 젊었을 때에는 별의별 사소한 기억과 즐거움과 충격들이 수많은 이미지로 저장돼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반면 나이 들면 기억의 강도나 밀도가 낮아져 시간 가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미국 듀크대 애드리안 베얀(Adrian Bejan) 기계공학 교수는 2019년 3월 18일 ‘유러피안 리뷰’(European Review)에 게재한 소논문에서 나이가 들수록 뇌의 이미지 습득 및 처리 속도가 느려져 감지한 이미지와 정보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는 안구도 빨리 움직이고 뇌내 회로와 정보량이 얼마 되지 않아 빠르게 많은 것이 저장되지만 나이 들수록 그 반대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세월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도파민 이론에 따르면 쾌감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분비량이 나이들수록 줄어들어 뇌의 신경회로 자극 정도가 감소해 기억의 강도가 약해지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또 수리생물학에 따르면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되므로 같은 1년이라도 10살짜리 아이에게는 10%가 되지만 40살 중년에게는 40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나이가 들수록 시간감각이 무뎌지면서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젊었을 때의 경험과 학습이 더욱 소중하고 값어치가 있다는 역설도 될 것이다.
미당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고 썼다. 필자도 소시 적에 이런 시를 읽고 마음이 먹먹했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상위 몇%를 제외하면 대다수 소시민과 중산층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다만 하나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책이었다”고 말할 만큼 필자는 주로 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간접경험을 했었다. 사회에 나와 오로지 읽은 것이라곤 책을 대체하는 요약된 신문기사와 보도자료와 논문 초록 정도였으니 이 때 나를 키운 것은 아마도 “실전경험”이 아니었을까. 화려한 것, 구린 것, 비겁한 것, 명분을 내세우다 망가지는 것 등을 지켜보면서 경험만이 세상의 지혜를 형성한다고 믿었던 게 30~40대의 일이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보니 가장 위대한 스승은 ‘시간’ ‘세월’ ‘나이’다. 젊었을 때에는 65살 넘으면 국회의원 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도 가졌었는데 어느덧 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점점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면서 뭔가 이뤄놓은 게 없는 삶이 헛헛하고 부끄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매일 아침 늦둥이를 유치원에 바래다주면서 몇 초나마 이별의 아픔을 느낀다. 그리곤 회사로 들어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는 나이 들고 아이들이 커가는 데 안도한다.
요즘 시간에 대한 콘텐츠로 최경선 작가의 ‘시간의 재발견’이란 책에 나오는 시(詩) 같은 한 대목이 대중에 회자되고 있다. 읽을수록 공감하고 마음을 저미는 글귀다. 저주스러웠던 코로나19의 2020년이 가고, 일상의 정상화를 염원하는 신축년의 새해 첫 달의 3분의 2가 훌쩍 떠나버렸다. 이 글귀를 읽고 가난하든 부자든, 권력이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지금이라도 후회를 줄이며 쓸 수 있도록 지혜와 실천력을 모아보길 바란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 - 최경선
살면서 가장 낭비하는 시간은 방황하는 시간이다.
가장 교만한 시간은 남을 깔보는 시간이고,
가장 자유로운 시간은 규칙적인 시간이고,
가장 통쾌한 시간은 승리하는 시간이며,
가장 지루한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다.
가장 서운한 시간은 이별하는 시간이고,
가장 겸손한 시간은 자기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시간이며,
가장 비굴한 시간은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시간이고,
가장 불쌍한 시간은 구걸하는 시간이다.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최선을 다한 시간이고,
가장 현명한 시간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시간이며,
가장 분한 시간은 모욕을 당한 순간이다.
가장 뿌듯한 시간은 성공한 시간이다.
가장 달콤한 시간은 일한 뒤의 휴식 시간이고,
가장 즐거운 시간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며,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