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림감 등 차이날 뿐 사실은 다 같은 ‘모이스처라이저’ … 에센스·세럼은 성분 농축시킨 ‘집중강화’ 제품군
화장품업체 폴라초이스의 최고경영자(CEO)이자 미국 뷰티칼럼니스트 폴라 비가운은 “제발 화장품 업계가 퍼뜨리는 잘못된 정보로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말라”며 “화장품 회사의 속임수를 간파해야 건강한 피부를 되찾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 여성의 기초 화장품 진열대는 항상 차고 넘쳐난다. 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은 기본이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모닝부스터, 나이트크림, 세럼, 아이크림 등 발라야 할 게 너무도 많다.
지난해 3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 개수를 묻는 질문’에 여성의 경우 ‘30~50개’라는 응답이 27%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기초화장품 사용 개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23.6%가 11개 이상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반면 유럽 여성은 평균 2~3개, 일본 여성은 평균 5개 정도의 기초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여성은 ‘월드 클래스’ 급으로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이 많은 화장품들을 쓴다고 해서 백옥처럼 맑은 꿈의 피부로 만들어줄까.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화장품 전문가들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 제품은 점성과 탄성 등에 차이가 있을뿐 내용물과 기능은 똑같다.
기초화장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스킨, 로션, 에멀전, 세럼, 젤, 밤, 에센스, 수분크림, 아이크림 등은 유·수분 비율만 다를 뿐, 피부에 보습을 주기 위한 모이스처라이저다. 이들 중 피부에 맞는 것 한가지만 써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뷰티 전문가 중에는 ‘화장품 다이어트’를 외치는 사람이 적잖다. 자신의 피부에 맞는 제품 하나만 골라 쓰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선호하는 브랜드에서 ‘같은 라인’의 화장품을 세트로 구비하느라 꽤 많은 돈을 투자했던 사람은 억울한 이야기다.
‘스킨-로션-에센스-크림’으로 통하는 기초 4종을 순서대로 발라야 한다는 인식은 결국 화장품 회사가 만들어낸 ‘마케팅의 산물’이다. 지금도 화장품 회사의 대부분은 ‘신상’을 빙자한 똑같은 모이스처라이저를 출시하며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강윤주 화장품 칼럼니스트는 “흔히 말하는 기초 4단계는 화장품의 점성, 탄성에 따라 혼합되는 성분의 농도 차이만 있을 뿐”이라며 “화장품 광고에 속아 비슷한 성분이 함유된 화장품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트러블이 올라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들 기초화장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자.
우선 기초화장의 시작 ‘스킨’은 피부탄력을 높이고 세포간 지질 사이에 공급해준 수분이 효과적으로 흡수될 수 있도록 돕는다. 비슷한 액상 타입의 ‘토너’도 있다. 둘 중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 둘은 같은 ‘액상’ 미용액이다.
이들 제품은 ‘어떻게 바르느냐’에 따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토너는 보통 유럽이나 미주 등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닦아내기’에 초점을 맞춘 반면 스킨은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는 데 중점을 뒀다. 화장솜보다는 손으로 톡톡 두드려 흡수시킨다.
토너에는 주로 아스트린젠트 성분이 많이 들어간다. 알코올 함량이 높은 편이라 여드름 피부나 지성피부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알코올이 피부를 자극하고 더 건조하게 만들어 역효과를 내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코올이 함유된 전통 방식의 토너도 나오고 있고, 천연 성분 위주의 토너가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로션은 피부의 적절한 유·수분 균형을 유지시키는 대표적인 모이스처라이저다. 화장수(스킨 및 토너)와 크림의 중간적 점성으로 가볍게 피부를 관리할 목적으로 사용한다. 만약 가벼운 발림감을 선호하면 크림보다 로션을 바르는 게 낫다. 크림은 좀더 되직한 듯 리치한 질감을 준다.
크림은 수분을 공급하는 동시에 피부 위에 보호막을 형성해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로션보다 유분 함량과 점도가 높아 흐르지 않고 사용감이 부드럽고 풍부하다. 이 때문에 보습력이 강화됐다고 느끼게 된다. 과거에 크림은 무조건 유분기가 높은 제품이 주로 출시됐으나 최근에는 수분크림 등 수분이 강화된 제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브랜드별 필수 아이템을 차지하고 있다.
크림 가운데 ‘밤(balm) 타입’은 단단해 손톱으로 긁힐 정도다. 손에서 녹아 부드럽게 발리며 얼굴에 코팅되듯 깔끔한 발림성을 보인다. 젤 타입은 기존 크림보다 몰캉몰캉한 수분 덩어리 같은 재질이다. 촉촉하게 발려 매끈하게 얼굴에 착 붙어 땀이나 피지분비가 많은 여름철에 선호된다.
에센스는 피지조절, 미백, 탄력, 주름개선 등 자신의 피부 개선 목적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 로션·크림 등이 수분공급에 그친다면 에센스는 이보다 심화돼 피부트러블을 ‘집중공격’하는 행동대원으로 간주하면 된다. 농도나 점성으로 봤을 때 스킨 타입, 로션 타입, 밤 타입, 젤 타입 등 다양한 종류의 에센스가 존재할 수 있다. 대부분 화장품 회사는 에센스를 출시할 때 ‘기능성’을 강조한다. 세럼은 에센스와 같은 역할을 하며, 단순히 이름 차이다. 이들 제품은 얼굴 전체는 물론 눈가 피부 등 특정 부위에 사용하는 용도로 출시된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에센스를 바른다고 해도 드라마틱한 피부개선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의약품이 아닌 화장품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병당 10만~3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에센스를 아껴쓰기보다는 자기에게 잘맞는 중저가 보습제품을 충분히 바르면서 피부과 시술을 월 1~2회 받는 게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
건강한 피부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각질의 생성 및 탈락을 반복하면서 유·수분 밸런스를 조절한다. 피부가 스스로 이같은 기능을 수행해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 굳이 농도 차이가 있는 화장품을 여러 단계에 걸쳐 바를 필요는 없다. 중복된 기능의 화장품을 많이 바르거나 계속해서 덧발라봤자 피부에 흡수되는 양은 한계가 있으므로 자신의 피부 상태에 맞는 제품으로 골라서 1~2가지만 바르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