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무로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두번 째로 다녀온 기자는 보건의료 관청과 몇 개의 제약사, 수십 개의 음식점과 다가구 주택, 신축 아파트 등으로 이뤄진 공장형 또는 베드타운형 오송단지의 풍경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적막감을 느꼈다.
미국 동부나 서부의 바이오단지를 다녀온 경험에 비춰보면 조용하고 한적하고 수풀이 우거져 연구나 행정업무에 집중하기에 최적지라고 느껴지는데 국내에선 그저 쓸쓸함만 묻어난다. 아마도 우리네 정서로는 대형마트, 문화시설, 병원, 괜찮은 학교, 경제적 수준에 맞는 다양한 음식점과 유흥업소, 번잡한 도심이 갖춰져야 인간다운 만족감을 느끼는데 그런 게 결여돼 있으니 ‘상대적 박탈감’이 대단할 것이다.
식약처에서는 2011년 11월과 12월 두 명의 공무원이 자살한 데 이어 올들어 지난 2일에도 또 한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세종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도 벌써 두명이 목숨을 끊었다. 자살의 연유야 개인적 우울증이나 가정사로 알려지지만 열심히 노력해 공무원이 되고 승진도 했는데 편의점도 변변치 않은 낙후된 지역에 살아야 하는 막막함 속에서 억울함이 쌓이고 불끈 화가 치밀어 삶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2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과 관련, 기자도 ‘원죄’가 있기에 이런 비보를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원죄란 당시 기자가 당시 새천년민주당을 출입할 때 충청권 수도이전 공약 정보를 공식 발표가 나온 2002년 9월 20일보다 약 한 달 정도 일찍 정보를 알고도 보도를 미뤘기 때문이다(정확한 기억은 없다). 정치부 기자로선 불과 4개월밖에 안된 시점에서 노무현 대선 캠프 관계자로부터 귀띔을 뜯고 상부에 보고했더니 ‘(초년병 기자라서) 설익은 정보에 흥분하는 것 같다. 더 알아봐라’, ‘무척 황당한 공약이다. 설령 그런 공약이 나와도 득표 전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식으로 안이하게 판단해 결국 특종은 묻혔다. 아니 어쩌면 노 후보에 대한 호감으로 특종을 자포자기한 것인지 자책해본다.
당시 한달 정도 일찍 보도됐더라면, 이로써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점이 부각됐더라면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고, 노 대통령 자살이나 세종시 공무원 자살 같은 비극도 벌어지지 않았을 지 모른다고 종종 상상해보곤 한다.
하지만 공약이 발표된 그해 9월 20일은 12월 19일 대선까지 석달이나 남은 긴 시간이었다. 당시 한나라당도 충청권 표심 때문에 대놓고 수도 이전을 반대하지도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에도 당시 정권과 실세이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세종시 이전은 저지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런 ‘원죄 의식’은 아예 무의미한 것이라고 자위해본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점을 한나라당이나 보수언론이 잘 활용했다면 수도권 유권자들이 부동산 가치 하락이나 정치·경제 권력의 위축을 들어 노무현 후보에게 더 많은 반대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보는데 결국 실기했다.
세종시, 오송단지, 지방혁신도시 등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공무원 자살 같은 극단적인 문제를 비롯해 수많은 공무원이 가족과의 생이별, 장거리 출퇴근 또는 공무차 상경으로 인한 심신의 과로를 겪어야 하고 경제·행정적 비효율이 극심할 게 뻔하다.
세종시 공무원들은 세종시를 추운 시베리아에 빗대어 ‘세베리아’라고 한다. 세종시 출범엔 음모론적 시각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갈수록 입법부의 권위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공무원들이 미워 ‘충청 표심’, ‘박심’ 운운하며 적극적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을 세종시로 ‘유배’ 보냈다는 것이다.
정작 세종시 이전을 밀어붙인 국회나 청와대는 세종시 행을 염두에조차 두지 않는다. 이에 상당수 세종시 공무원들은 뿔이 나서 지난해 지방선거에 야당 후보가 세종시장에 당선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종시로 이주한 공무원 가운데 40% 안팎이 가족을 두고 홀로 이주했다. 외국으로 유학 보낸 자녀 때문에 홀로 지내는 아빠를 ‘기러기아빠’라고 하는데,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공무원은 ‘괭이갈매기족’이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괭이갈매기 중에는 서울에 남아 근무하려고 엄청난 ‘빽’을 써서 근무하던 부처를 옮겼는데 그 부처 역시 세종시나 다른 지방도시로 옮겨가는 바람에 ‘본전도 못 찾고 욕만 얻어 먹는’ 얌체족도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감사원이나 서울지역 파견근무를 선호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기러기아빠나 괭이갈매기가 겪는 심신 건강의 훼손은 비슷하다. 심리적 외로움, 우울증으로 시작해 불규칙한 식사로 인한 영양결핍, 체력저하, 스트레스성 폭심·폭음·비만 등이 뒤따른다. 만성두통에 소화불량, 어지럼증도 나타난다. 생활리듬이 깨진 상태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생활습관병을 키우게 된다.
세종시나 오송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과 대화해보면 서울에 멀쩡한 집을 놔두고 타향살이 해야 하는 심정에 울먹울먹한다. 민간기업보다 낮은 처우에 직업적 긍지와 안정성으로 수행해온 공무원직인데 생계와 아름다운 은퇴를 위해 지금은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다. 고위 공무원들은 최대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보겠다는 오기만이 그들을 지탱시키는 듯하다.
괭이갈매기들에게 할 수 있는 치유는 주위 사람들의 위로와 공감밖에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세종시나 지방에서 장기간 근무하려면 가족이 모두 해당 근무지로 터를 옮겨야 한다. 설문에 따르면 세종시 정부부처 중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들이 세종시에 정착할 의향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처의 특성상 업무가 지방을 지향하기도 하고, 시골 출신이 많아 지방에 잘 적응하고 고향에 찾아가기도 편해서란 분석이다.
어디든 정들면 고향이 된다. 떠날 일이 아니면 뿌리를 박으려 애써야 한다. 정착하지 않은 채 하루 2시간 이상을 출퇴근에 소비하면 불행하다고 단언한 외국의 연구결과도 있다. 괭이갈매기들이 외로움을 술이나 외도로 달래면 돈 잃고, 건강 상하고, 명예마저 사라질 수 있다. 결국 세종시나 공공기관이전 지방도시에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데에는 시간밖에 필요한 게 또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