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 충복 토사구팽하지 말고 어려울수록 뭉쳐서 난관 극복해내야
현정석 기자(조세일보 헬스오 제약부장)
최근 제약업계에 ‘리베이트’ 망령이 되살아나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하위제약사들만의 문제라면 파장이 덜하겠지만 D사, C사, I사, A사 등 상위제약사들까지 용의선상에 올랐거나 혐의가 확정돼 암울한 연말 분위기다.
국내 대형 제약사의 한 영업 간부는 “제네릭에 대한 회사의 마케팅 방침을 명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해 영업사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리베이트 제공으로 인한 후폭풍이 강해 윗선에서 전면금지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는 윗선에서 리베이트 지급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으로 들린다. 실상 리베이트의 흐름이 있었다면 그걸 윗선에서 몰랐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회삿돈을 쓰는데 윗선이 몰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에 적발된 D제약사의 리베이트 적발에 대한 처벌은 과징금과 마케팅 담당임원의 불구속 기소에 그쳤다. 지시는 위에서 했는데 실무자만 처벌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불경기 시대에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윗선은 리더여야 한다. 빠른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으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냥 주식배당금이나 받고 물러나 있어야 하는게 제대로 된 리더일 듯 싶다.
정부는 원칙을 세웠으면 원칙대로 해야 한다. 엄연히 대표이사가 존재하고, 대표가 리베이트 수수를 조장 또는 방조한 혐의가 명백한 데도 ‘모르쇠’를 자처하며 몸통이 아닌 꼬리를 처벌하는 방식은 나중에 다른 실무자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총알받이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발본색원하고 싶으면 머리를 쳐야지 꼬리를 쳐봐야 미봉책일 뿐이다. 사정 당국은 최근 리베이트 외에도 비자금을 조성한 제약업체를 포착, 내사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정황을 파악했지만 아직은 첩보 수준이어서 실질적인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리베이트로 적발된 D제약사의 경우 검찰에 제공된 자료가 최소한 영업본부장이나 마케팅 담당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이어서 하급 관리자가 아닌 상급 관리자가 제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회사는 갑작스럽게 사장이 경질된 바 있어 제보의 발원지가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회사를 그만 둔 직원들이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을 때 회사로부터 아무런 조언이나 도움을 받지 못해 홧김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정보를 모두 제공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제약회사들도 최근 디테일(의약품의 개요와 임상사용법) 교육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새발의 피’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가져올 때 최대한 유수 다국적제약사의 교육시스템까지 가져와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동아제약의 경우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으로부터 제품 교육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변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런 바람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업체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조아제약의 경우 일선 약사들에게 판매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오리지널 제품만 팔아서는 외자사의 도매상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나중에 판권이 회수될 경우 추락하는 매출액을 벌충하지 못해 회사가 휘청거리기 십상이다. 최근 대형 국내제약사들이 블록버스터급의 제품 판권을 서로 가져가겠다고 싸우다 일선 도매상만도 못한 마진율을 받아들인 사례가 발생했다.
회사는 먼저 영업사원들에게 하나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또 리베이트라는 무기를 줄 수 없다면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다른 무기를 줘야 한다. 쉽게 가는 길도 좋지만 정도를 가야 한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걸 명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