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의약품이 글로벌 바이오산업의 주요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알파 방출 동위원소를 활용한 항암제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방사성의약품 67개다. 이 중 54개는 진단용, 나머지 13개는 치료용인데 거의 암 치료제다. 항암제 방사성의약품은 종양 세포의 DNA를 직접 파괴하는 기전을 통해 효과를 입증했다. 기존 치료제 대비 높은 안전성과 효능을 보여 국내외 제약사들이 이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의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허가 및 개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성의약품은 전 세계적으로 질병 진단과 치료에서 사용이 확대되며 주목받고 있다. 방사성의약품은 저분자화합물, 펩타이드, 항체 등 다양한 의약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한 형태로, 종양을 비롯한 여러 질환의 정밀한 진단과 치료에 활용된다. 특히 암 치료제와 진단제로서의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다.
특히 방사성의약품 요법(Radio Pharmaceutical Therapy, RPT)은 외부 방사선원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사선 요법(radiotherapy)과 차별화된다. RPT는 표적 세포에만 방사선을 작용해 비표적 세포에 대한 독성을 최소화하고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소량의 표적 벡터만으로도 세포 사멸을 유도할 만큼 충분한 방사선을 전달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안전한 치료법이으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술발전으로 병변에 약물이 축적된 것을 시각화하고 식별할 수 있게 해주어 임상의가 병변을 보면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고 맞춤형 치료를 달성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표적세포에 직접적으로 손상을 입히는 방사성의약품 치료는 현재의 치료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질환 치료제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놀라운 in vivo 성능이 입증돼가고 있다. 높은 종양흡수율, 연장된 머무름 시간, 임상 표준에 부합하는 유리한 약동학 특성이 수반된 결과다.
암 치료를 위한 라듐-223과 요오드-131이 개발된 이래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연구는 80년 이상 이어져왔다. 그 결과 67종의 방사성의약품이 각종 암, 신경퇴행성질환, 심혈관 질환의 진단 또는 치료제로 FDA 승인을 획득했다.
다만 방사성의약품의 효능과 안전성에 일부 한계가 있으며, 방사성의약품이 말기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골수손상·구강건조증·신장손상 등 전신 독성이 임상시험에서 관찰돼 부작용에서 완전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는 차세대 방사성의약품이 표적 벡터를 활용한 정밀 전달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차세대 방사성의약품은 표적 벡터를 사용해 방사성 핵종을 병변에 정확하게 전달하고 off-target 침착을 방지함으로써 종양 진단 및 치료의 효율성과 생물학적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FDA 승인 방사성의약품의 용도별 구분(위), 진단용(아래 좌측) 및 치료용(아래 우측) 방사성의약품의 표적 벡터별 분류
질병 진단에 사용되는 54개 승인된 방사성 의약품은 종양 영상용 25개(46.3%), 중추신경계 영상용 11개(20.4%), 심혈관 영상용 8개(14.8%)이며, 이외에 신장 영상용, 폐 영상용, 간 영상용, 뼈 영상용 등 7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표적 벡터에 따라 분류하면 △저분자화합물이 35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펩타이드 기반 약물이 9개 △항체 기반 약물이 4개 △단백질 및 혈청 알부민 기반 기타 약물이 6개로 나타났다.
진단에 사용되는 방사선 검출기 유형으로 구분하면 34개의 SPECT 방사성 의약품과 20개의 PET 방사성 의약품이 임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FDA 승인을 받은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13개가 모두 암 치료제로, 알파(α)선 또는 베타(β)선을 방출해 종양 세포의 DNA를 파괴함으로써 항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치료제용 방사성의약품의 표적 벡터는 △저분자화합물이 8개 △펩타이드 기반 약물이 2개 △항체 기반 약물이 3개로 분류된다.
글로벌 제약사의 방사성 항암제 투자 확대
지난해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은 방사성의약품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에 나섰다. 특히 알파 방출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25(Ac-225)는 기존의 베타 방출 동위원소(Lu-177)를 대체할 차세대 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Ac-225는 짧은 거리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해 기존 치료법 대비 표적 선택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노바티스는 2024년 5월초, 마리아나온콜로지(Mariana Oncology)를 10억달러에 인수하며 악티늄 기반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 개발에 착수했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도 24억달러를 투자해 퓨전파마슈티컬(Fusion Pharmaceuticals)을 인수하며, 알파 방출 동위원소를 활용한 혁신신약 개발 플랫폼을 구축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역시 2023년 12월 레이즈바이오(RayzeBio)를 41억달러(약 55000억원)에 인수하며, Ac-225 기반 기술과 생산 인프라를 확보해 방사성의약품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방사성의약품이 높은 정밀성과 정상 조직에 미치는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특성 덕분에 이 분야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의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89억400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2024년 101억9000만달러에서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CAGR) 19.4%를 기록하며 2032년에는 420억3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초기 방사성의약품 개발은 여러 난항을 겪었다. 아이덱(IDEC)이 방사선 면역치료제 ‘제발린’(ZEVALIN·In-111)을 출시하며 방사성 리간드 약물을 시장에 도입했지만, 결국 판매 중지로 이어졌다.
이후 2013년, 바이엘(Bayer)은 알게타(Algeta)를 29억달러에 인수하며 전립선암 치료제 ‘조피고’(XOFIGO·Ra-223)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조피고는 2017년 4억8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상업적 가능성을 입증하는 듯 보였으나 매출은 점차 감소세를 보였다.
노바티스는 방사성의약품 분야에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7년, 노바티스는 어드밴스드액셀러레이터애플리케이션(Advanced Accelerator Applications)을 39억달러에 인수하며 ‘루타세라’(LUTATHERA·Lu-177)를 확보했다. 루타세라는 신경내분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제로, 2024년 1~3분기에만 5억34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상업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2018년에는 엔도사이트(Endocyte)를 21억달러에 인수하며 ‘플루빅토’(PLUVICTO·Lu-PSMA-617)를 개발했다. 플루빅토는 전립선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제로 자리잡았다. 2024년 1~3분기에만 10억4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 중 가장 성공적인 상업적 성과를 거두었다.
플루빅토는 기존 치료 옵션이 효과를 보이지 않는 말기 환자들에게 평균 4개월의 생존기간 연장과 사망위험 38% 감소를 입증하며 중요한 임상적 성과를 보여줬다. 방사성의약품이 복잡한 제조와 유통 과정으로 인해 제네릭 의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와의 경쟁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사노피, 아스트라제네카, 릴리 등 빅파마가 후발 진입 업체로 꼽힌다. 사노피는 2024년 9월, 방사성의약품 개발사 라디오메딕스(RadioMedix) 및 오라노메드(Orano Med)와 독점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사노피는 양사에 1억1000만달러 규모의 계약금을 지불해 소마토스타틴 수용체(Somatostatin Receptor) 타깃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adioligand Therapy·RLT) '알파메딕스'(AlphaMedix)를 확보했다.
알파메딕스는 생체 내에서 알파 입자를 생성하는 역할을 하는 납-212(212Pb)로 방사성 표지된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표적 펩타이드 복합체로 구성된 알파핵종 표적 치료(TAT) 약물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24년 3월, 캐나다 방사성의약품 개발사 퓨전파마슈티컬스(Fusion Pharmaceuticals)를 24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를 계기로 아스트라제네카의 방사성의약품 파이프라인이 확장됐다.
퓨전파마슈티컬스는 차세대 방사성 약물을 개발하고 있으며, 특정 암세포를 더욱 정밀하게 표적화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다양한 방사성 리간드와 약물전달 시스템을 활용해 고형암 치료제를 개발할 방침이다.
릴리는 2023년 10월 방사성의약품 개발사 포인트바이오파마(POINT Biopharma)를 14억달러에 인수했다. 포인트바이오파마는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을 표적화한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를 개발해 왔다.
국내 제약사도 방사성 원소 악티늄에 집중
국내에서도 방사성의약품 연구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SK바이오팜은 Ac-225를 활용한 RPT 개발에 착수할 계획을 밝히며 3년 내 글로벌 수준의 RPT 기업으로 성장해 ‘빅 바이오텍’(Big Biotech)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동아에스티 계열사 앱티스는 셀비온과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위암과 췌장암을 타깃으로 한 항체-방사성 동위원소 접합체(ARC) 신약을 개발 중이다. 특히 양사는 계약에서 Ac-255를 활용할 계획을 밝혔다. 양사는 앱티스의 링커 플랫폼 기술 ‘앱클릭’과 셀비온의 방사성의약품 기술을 결합해 상용화 가능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