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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불평등’ 이슈 던진 5억원대 초고가 약 ‘킴리아’의 향배
  • 정종호 ·약학박사 기자
  • 등록 2021-03-24 21:35:00
  • 수정 2023-10-23 00: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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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바티스 ‘혁신에 부응하는 보상 받아야’ vs ‘목숨 값으로 혈액암 소아 환자에 고지서 내밀어’
온갖 항암제를 다 써봐도 안 듣는 재발성 또는 불응성(치료반응을 보이지 않는) 백혈병을 치료하는 세계 최초의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이자 5억원이 넘어가는 약제비로 세계적 논란을 일으킨 노바티스의 ‘킴리아주’(Kymriah 성분명 티사젠렉류셀, Tisagen lecleucel)가 드디어 지난 5일 국내 허가를 받았다.

2017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이후 4년 만에 국내에 상륙한 것은 그만큼 국내 수요는 적고 약가는 47만5000달러(약 5억원)에 달하는 초고가여서 마케팅할 실효성이 있는지 한국노바티스가 고심했음을 말해준다. 

노바티스는 2003년에도 당시로서는 초고가약인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이자  만성골수성백혈병(Chronic Myeloid Leukemia, CML) 전문 치료제인 ‘글리벡필름코팅정’(GLEEVEC, 성분명 이매티닙, Imatinib)  100㎎ 상한금액을 2만3045원으로 매겨 환자들의 인하 압력을 받았다. 이 약은 하루에 한번 4~6정을 복용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환자단체의 의견을 수용해 2009년 9월 약값을 종전보다 14% 인하해 1만9818원으로 고시했으나 이에 불복한 노바티스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해 무산됐다. 현재는 1만1031원이다. 

현재 미국 머크(MSD)의 PD-1 억제제인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의 국내 급여가는 병당 284만5449원이지만 그나마 평생 쓰는 게 아니고 몇 차례 치료로 끝나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되지 않고 있다. 

과거 로슈도 제시한 목표대로 약가 급여를 받지 못하자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주’(Fuzeon 성분명 엔푸버타이드, enfuvirtide)의 약품 공급을 거부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이 약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에 비춰보면 킴리아의 약값 수준은 차원이 다르다. 노바티스는 혁신을 선도하는 의약품은 당연히 응분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엄청난 연구개발 비용과 환자의 혈액 샘플을 냉동 보관해 해외(미국)로 보내 맞춤 생산 후 다시 국내로 들여와 투여해야 하는 복잡하고도 지난한 유통 및 치료과정을 감안할 때 5억원의 약값은 무리하게 책정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초고가 의약품의 급여 문제에 대해서 처리해보지 않은 우리 보건당국으로서는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논란이 예상된다. 또 앞으로 계속해서 등장할 초고가 의약품으로 야기될 ‘의료 불평등’을 우리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정리할지도 궁금하다. 

킴리아는 몇가지 표준 항암화학요법과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 후에도 회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재발성 또는 불응성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r/r DLBCL) 및 소아 B세포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pALL) 환자에서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DLBCL의 경우 항암제나 골수이식을 받아도 4~5년 후 재발할 확률이 90%에 가깝다. 재발성 또는 불응성이면 수 개월 만에 사망하게 된다. 킴리아는 치료 후 40.3개월차 전체치료반응률(ORR)을 53%대로 끌어올렸다. 39%는 완치의 개념인 완전관해(CR)를 보였다. 즉 생존율 10%를 53%로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에서는 환자의 82%가 3개월 이내에 완전관해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산층 이하에게 5억원의 약제비는 부담스럽다. 환자의 대부분이 성인이 아닌 소아 및 청소년이라 부모된 입장으로서 차마 포기할 수도 없다. 이에 따라 킴리아는 초고가 의약품 시대의 서막을 연 ‘희망 고문’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킴리아를 시작으로 조만간 수십억원대 치료제가 연이어 등장할 예정이어서, ‘의료 불평등 시대’의 문이 열린 셈이다. 

한국노바티스는 23일 킴리아의 허가를 기념해 여의도 IFC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난치병 환자를 살리는 ‘기적의 치료제’라는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초고가 의약품의 ‘접근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분위기가 엄중했다. 

킴리아가 가진 적응증을 가진 환자들은 60~65%가 1차 항암제 치료에서 효과를 본다. 만약에 재발 또는 진행하면 2차 항암제를 투여하게 된다. 그럼에도 효과가 없으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게 일반적이지만 절반가량에만 효과가 있다. 킴리아는 1차 항암제 치료 실패 후 어느 단계에서나 적용할 수 있다. 이들 적응증 환자는 기대여명이 6개월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지만 킴리아 투여로 절반이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  

킴리아는 가능하면 빨리 투여할수록 효과가 좋다. DLBCL에서 3개월째에 완전관해에 도달한 환자는 36.2개월 차 분석 시점에서 생존율이 90%인 반면 이를 포함한 전체 환자는 40%에 그쳤다. 

김원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컨디션이 좋은 환자를 선별해 진행한 임상연구뿐 아니라 실제 진료환경에서 확인한 리얼월드 데이터(Real World Data)에서도 2년 이상 생존한 DLBCL 환자가 50%에 가까웠다”면서 “0%였던 생존율이 50%로 상승한 획기적인 효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슈의 초점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절실하지만, 건강보험재정의 효율적 분배를 저해할 수 있는 초고가 약제에 대한 급여 산정이다. 급여 책정이 늦춰질수록 그 사이 많은 환자들이 운명을 달리할 수 있다. 

현재 승인받은 적응증으로 킴리아 투여 대상 환자를 산정하면 약 600~10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환자 당 5억원으로 계산하면 3000억~5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5억원의 치료비를 직접 지불할 능력을 갖춘 환자가 과연 한국에서 몇 명이나 될까. 더욱이 2세대 CAR-T 치료제인 킴리아를 넘어 3세대, 4세대 CAR-T가 등장하면 훨씬 비싼 초고가와 직면해야 한다. 

이와 관련, 김원석 교수는 현재 본인부담금 5%로 설정되어 있는 획일적인 항암제 급여정책을 유연성 있게 고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항암제의 본인부담금을 5%로 묶어놓은 게 환자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면서 “5억원이라 하면 환자가 부담하는 게 2500만원이고 나머지는 세금이 들어가는 것으로, 건강보험료 가입자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본인부담금 비율을 조금 높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견해로 해석된다.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혈액종양내과 분과 교수는 “성인 환자는 (5억원을 지불할지 삶을 포기할지) 선택이 가능하지만, 소아암 환자의 경우 부모가 큰 비용을 부담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5억원을 들여 50%만 살리는 것도 고민이 생기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위험분담계약제(Risk-Sharing Agreement, RSA) 같은 약가인하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이 제도는 암이나 희귀난치질환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고가의 급여를 책정해주는 대신에 매년 매출액 대비 일정 비율의 금액을 제약사가 건보공단에 납부함으로써 다시금 보험재정을 늘리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는 연간 수백만원~수천만원이 드는 고가 항암제에나 타당한 것이어서 억대를 넘어가는 초고가 약에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노바티스가 이를 수용할지도 의문이지만 그 폭이 얼마나 될지도 관건이다. 강 교수는 킴리아 약값의 후불 할부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교수는 “킴리아의 등장이 반갑기는 하지만, 5억원을 지불할 국민은 전체의 1%도 안 되기 때문에 고비용이라는 큰 숙제를 안겨줬다”면서 “생명을 담보로 하는 비싼 약, 무서운 약이 등장했고 향후 초고가 약들이 표준요법으로 올라설 것이기 때문에 약가 규제를 고민해야 하는 공론화의 장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는 “킴리아의 한국내 임상시험 실시를 노바티스에 요청했으나 무산됐고 일본에서는 이뤄졌다”며 “초고가약을 지불하고 사용할 환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임상시험 참여를 통해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고, 치료비용이 우리나라에 재투자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기공명영상(MRI)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검사장비는 물론 로봇수술 등 수술장비나 고가약 등은 대부분 다국적기업의 제품이어서 대학병원은 돈을 잘 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재주를 부리는 곰’일 뿐 실속은 다국적사들이 다 가져간다”고 꼬집었다.

김원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왼쪽)와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혈액종양 분과 교수

국내에서 킴리아 치료센터 1호는 삼성서울병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이미 자비로라도 치료받겠다는 환자가 한 명 치료 대기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에 순차적으로 생길 전망이다. 센터로 지정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노바티스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각 병원은 킴리아 도입을 위한 팀을 구성하고 교육과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르면 5월부터 국내 투여가 가능할 전망이다.

한편 김 교수는 큐로셀과 DLBCL 환자를 위한 CAR-T 치료제 임상 1/2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18일 OVIS™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CRC01’의 임상시험 승인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획득했다. 이는 CD19를 표적으로 하는 CAR-T 치료제로, 킴리아나 길리어드사이언스의 CAR-T 치료제 ‘예스카타’(Yescarta 성분명 액시캅타진 실로루셀, Axicabtagene ciloleucel) 등 경쟁약물이 갖고 있는 내성을 줄이기 위해 면역관문 분자인 PD-1, TIGIT 발현을 줄였다. 하나의 벡터로 CAR와 shRNA를 전달해 생산 공정상에도 차별성을 뒀다.

킴리아의 복잡한 유통 및 치료과정도 난제다. 킴리아는 병원에서 환자의 혈액 샘플(T세포)을 채취, 동결 과정을 거쳐 해외 제조소로 항공 운송하게 된다. 현재 노바티스는 미국 뉴저지주 모리스플레인(Morris Plains)을 비롯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위스, 프랑스, 일본, 중국 둥 4개 대륙에 7곳의 CAR-T 제조소를 확보했다. 이곳에서는 유전자 조작과 세포배양을 진행해 개인 맞춤형 세포를 제조하고, 다시 국내로 들여와 림프구를 고갈시키는 항암화학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투여한다. 

킴리아는 환자 한 명에게만 적용 가능한 맞춤형 단회 치료제여서 의료진과 제약사 간 협력이 긴밀해야 하며 규제 당국에서 요구하는 검사항목들도 깐깐하다. 약값만 5억원이고 약제비를 제외한 진료, 검사, 치료행위에 대한 비용은 별도다. 따라서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 책정이 어떻게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게다가 혈액 샘플 채취 후 치료제 맞춤 생산까지 4~5주가 소요되는 만큼, 그 사이에 환자가 투약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에 각 병원과 한국노바티스 법무팀이 머리를 맞대며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고 노바티스 관계자는 소개했다. 투약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환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고 노바티스가 이를 감수하겠다는 의향도 비쳤다. 

노바티스는 가급적 이른 시기에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제출했으며, 급여 이전까지 환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형진 교수는 “의료비용과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환자들의 임상연구 참여 기회를 확대할 수 있도록 연구 허들을 낮추고 국산화를 유도해야 한다”며 “까다롭고 불필요한 검사가 너무 많아 자본력이 없는 병원이나 연구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와 검사가 많을수록 연구개발 비용은 올라가고 개발 속도도 더디어진다”며 “예컨대 병원성 외래물질 검사 같은 고식적인 형태는 생략하고 PCR 검사로 대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엄청난 논란이 예상되는 킴리아주 초고가 약제 급여는 노바티스의 적정한 약가 책정, 국민적 합의, 첨단의약품 국산화를 주도하려는 제약사와 보건당국의 합심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당뇨병,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치료제 개발보다는 돈이 되는 희귀난치병 신약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환자 수가 적어도 높은 약가를 책정해 본전을 뺄 수 있다는 심산에서다. 소수에게 ‘목숨 값’으로 초고액을 요구하는 ‘겁박’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이 전략은 먹혀들었고 다국적 제약시장은 희귀질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또는 사들이려 수십억 내지 수백억달러를 지르는 ‘투기판’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이나 유럽 제약사에 비해 자본력이 떨어지는 다케다제약과 같은 일본 회사도 뒤늦게 투기판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자본력이 부족하고 그나마 내세울 것은 우수한 인재 밖에 없다는 한국이 초고가 의약품 개발이나 마케팅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미래의 먹거리로 떠오르는 첨단바이오 산업의 향배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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