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을 끊기 어려워 절망하는 이들에게 전자담배는 비교적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은 대안으로 인식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실제 의학적 근거와는 거리가 있다. 조유선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전자담배의 숨겨진 해악을 소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전통적인 궐련 흡연율은 감소세에 있으나 전자담배 사용자는 1억명을 넘어섰다. 담배 회사에서는 ‘위해 감축’이라는 논리로 전자담배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의학적 지표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담배 냄새는 싫지만 니코틴은 끊기 힘든 이들에게 전자담배는 달콤한 유혹이다. ‘일반 담배보다 해로운 성분이 90%나 적다’는 세계적인 담배회사 광고는 전자담배가 마치 '안전한 대안'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전 세계 니코틴 중독 인구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으며 우리 몸이 받는 타격은 방식만 바뀌었을 뿐 여전하다. 전자담배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짚어보도록 하자.
용어부터 바로 알자: 수증기가 아니라 ‘에어로졸’
전자담배에서 나오는 하얀 기체를 단순한 수증기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니코틴, 중금속, 발암물질이 혼합된 에어로졸(aerosol)로, 인체에 생물학적 영향을 미치는 활성 물질이다. 겉으로는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인체에 유해한 입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연초와 다르지 않다.
연초(궐련)는 담뱃잎을 직접 태워 연기를 흡입하는 전통적인 담배다. 궐련형 전자담배(가열담배)는 담뱃잎 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해 흡입하는 방식(아이코스, 릴 등)이다. 액상형 전자담배: 니코틴 액상을 전기로 가열해 에어로졸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유해 성분이 적으면 인체에도 덜 해롭지 않을까?
흔히 유해 성분 ‘수치’의 감소를 곧바로 위해성 감소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는 의학적으로 매우 단순화된 해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분석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의 타르 함량은 일반 담배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높게 측정되기도 한다. 전자담배 에어로졸에서는 연초에는 없던 80여 종 이상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확인되기도 했다. 가열 코일에서 용출되는 미세 금속입자는 폐포 깊숙이 침투해 만성 염증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즉 특정 성분의 수치가 낮다고 해서 신체가 받는 전체 독성 부담이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다.
전자담배는 연기가 없으니 심장과 폐에는 괜찮지 않을까?
전자담배가 심혈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최근 담배 관련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전자담배 사용자는 비사용자에 비해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1.53배 높았다. 특히 과거 흡연력이 있는 전자담배 사용자의 경우 심근경색 위험은 2.52배, 뇌졸중 위험은 1.73배까지 상승했다. 이는 니코틴이 혈압과 심박수를 증가시키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뿐 아니라 에어로졸 속 미세입자가 혈관 내피세포 기능을 저하해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폐 건강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자담배 사용자의 1초간 강제호기량(FEV₁)은 평균 3.0L로, 비사용자(3.5L)에 비해 약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코호트 분석에서는 전자담배 사용이 기존 흡연 여부와는 독립적으로 만성폐쇄성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COPD) 신규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연초와 전자담배를 병행하는 이중 사용자는 비사용자 대비 COPD 위험이 약 3.9배 증가했다.
담배를 줄이기 위한 전자담배 병행, 효과가 있을까?
임상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흡연 형태는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를 함께 사용하는 이중 사용이다.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80% 이상이 이에 해당하며 이 경우 체내 독성물질에 대한 노출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두 제품을 병행할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이 36%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는 모두 니코틴을 포함하고 있다. 니코틴은 헤로인이나 코카인에 버금가는 강한 중독성을 지닌 물질로, 흡연 욕구와 금단 증상을 유발하고 혈압과 심박수를 증가시켜 심혈관계 부담을 높이는 직접적인 작용을 한다.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는 전체 담배 사용률이 감소하지 않은 채로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지 않고 제품만 바꾸는 ‘이동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전자담배가 금연으로 이어지기보다 흡연을 지속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자담배는 그동안 금연 보조 수단으로 홍보되어 왔으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식 금연보조기기 승인받지 못했다. 실제 연구에서도 전자담배로 금연을 시도한 다수는 완전한 금연에 성공하지 못하고 이중 사용자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질병관리청 역시 전자담배 사용이 오히려 일반 담배의 흡연 빈도와 강도를 높일 수 있음을 보고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로의 입문 경로가 될 위험도 있다. 영국에서 수행된 장기 연구에 따르면 전자담배를 사용하지 않은 청소년의 흡연율은 1.4%였던 반면, 전자담배를 사용한 청소년의 흡연율은 33%로 상당히 높은 비율을 보였다. 단순 체험만으로도 흡연 가능성은 12.7%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초음파 전자담배나 합성 니코틴은 안전할까?
기술 발전이 곧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열 코일을 제거한 초음파 전자담배 역시 기존 기기와 유사한 수준의 독성 알데히드를 생성하고 세포 독성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는 2025년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담배사업법 개정안 통과로 ‘법적 담배’로 편입됐다. 이에 따라 모든 액상형 전자담배에 경고 그림·문구 의무화, 온라인·무인 판매 제한, 미성년자 판매 시 연초 동일 처벌이 적용될 예정이다.
전자담배는 ‘연초보다 덜 해로운 대안’이 아니다. 단지 형태만 달라진 또 하나의 담배일 뿐이다. 연초와 전자담배를 번갈아 사용하는 이중 사용은 오히려 건강 위험을 증폭시킨다.
진정으로 건강을 지키고자 한다면 “어떤 담배가 덜 해로운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니코틴으로부터 벗어나는 완전한 금연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하고 과학적인 방법이다.
조유선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니코틴 의존도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7점 이상이면 니코틴 의존도가 높은 편이므로 의사와 금연에 대해 상의한다. 4점 이하는 약물의 도움 없이 금연 성공이 가능하다.
1. 아침에 기상 후 얼마 만에 첫 담배를 피우십니까?
가. 60분 이상 지나서 (0점)
나. 31~60분 (1점)
다. 6~30분 (2점)
라. 5분 이내 (3점)
2. 금연구역에서 흡연욕구를 참기가 어렵습니까?
가. 아니오 (0점)
나. 예 (1점)
3. 하루 중 어느 때의 금연이 가장 참기 어렵습니까?
가. 기상 후 처음 피울 때 (1점)
나. 다른 상황일 때 (0점)
4. 하루에 담배를 몇 개비나 피우십니까?
가. 10개비 이하 (0점)
나. 11~20개비 (1점)
다. 21~30개비 (2점)
라. 31개비이상 (3점)
5. 기상 후 몇 시간 동안이 하루 중 나머지 시간보다 더 자주 담배를 피우십니까?
가. 아니오 (0점)
나. 예 (1점)
6. 아파서 하루 대부분을 누워있을 때에도 담배를 피우십니까?
가. 아니오 (0점)
나. 예 (1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