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국제백신연구소(IVI), 에스티팜, 서울대 등 국내 주요 연구기관들이 감염병혁신연합(CEPI)와 협력해 아시아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치명적인 진드기 매개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세계 최초의 AI 기반 mRNA 백신 개발에 나선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은 SFTS 바이러스(Dabie bandavirus)에 의해 발생한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등에서 보고되고 있다. 증상은 주로 감염된 진드기나 감염이 의심되는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 물린 뒤 나타나며 발열, 혈구 감소, 구토, 설사 등이 포함된다. 특히 고령층에서 중증으로 악화될 경우 다발성 장기부전이 진행돼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는 SFTS를 중대한 공중보건 위협으로 인식하고 SFTS 백신 개발을 국가적 우선과제로 삼고 있다.
CEPI는 IVI가 주도하는 이번 프로젝트에 최대 1600만달러(약 222억원)를 지원해 한국에서 건강한 성인 대상 전임상 및 1/2상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백신의 안전성과 면역반응 유도 효과를 평가할 예정이며, SFTS 백신 후보의 인체대상 시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을 매개하는 참진드기의 세부 종류(출처 질병관리청 홈페이지)
SFTS 바이러스는 페누이바이러스과(Phenuiviridae)의 대표 병원체다. SFTS 바이러스 백신 설계에 성공하면 동일 계열 페누이바이러스(모기 반추동물 낙타 인간이 숙주인 음성적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 얻은 지식, 데이터, 연구 자료는 향후 공중보건과 축산, 농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신종 페누이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을 보다 신속하게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SARS와 MERS 두 종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선행 연구를 통해 코로나19바이러스 백신과 관련된 핵심 과제들을 사전에 해결할 수 있었던 전례에 따라, 이번 연구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올릴 수 있기를 연구 참여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리처드 해쳇 CEPI 대표는 “다음 팬데믹이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SFTS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에서 커져가는 바이러스 위협에 대응하는 동시에, 다음 ‘미지의 감염병(Disease X)’에 대한 대응을 극적으로 가속화할 수 있는 지식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신종 페누이바이러스가 등장하더라도 처음부터 새롭게 백신을 설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팬데믹 초기 단계에서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며 “이번 CEPI와 한국의 연구기관 간 협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더욱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은 CEPI가 주도하고 한국을 포함한 G7·G20 회원국이 지지하는 글로벌 목표인 ‘100일 미션’의 핵심으로, 팬데믹 발생 후 100일 이내에 대응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VI가 주도하는 이번 임상시험의 백신 후보는 질병관리청과 서울대가 공동 설계하고 있으며, 1상 임상시험에서 검증된 에스티팜의 독자 기술인 ‘SMARTCAP’ 플랫폼을 활용한다. 이 플랫폼 기술은 mRNA 치료제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5‘캡핑 기술로 독자적인 RNA 제조 방식이다. mRNA 분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5’ 말단을 인위적으로 변형하여 안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치료제 개발 및 양산에 유용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또 미국 소재 CEPI 파트너 기관인 휴스턴 메소디스트 연구소(Houston Methodist Research Institute, HMRI)도 첨단 AI 기술로 백신 개발을 지원, 기존에 수주에서 수개월 걸리던 백신 구성요소 설계를 몇 시간 만에 완료할 방침이다. 안전하고 강력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백신 설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국제협력을 통한 SFTS mRNA 백신 개발로 신종감염병 대비 역량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우선 순위 병원체에 대한 백신 라이브러리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성무제 에스티팜 대표는 “SMARTCAP 및 STLNP 플랫폼과 글로벌 CDMO 역량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SFTS 백신 후보의 개발과 생산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연구개발 단계부터 전임상, 임상,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백신 제조 전 과정에 대한 전문성을 제공하고, 글로벌 수준의 GMP 기준과 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백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수진 서울대 RNA생물학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독자적으로 확보한 안정화 UTR(UnTranslated Region, 비번역 영역) 서열을 접목해 팬데믹 대비 플랫폼으로 활용 가능한,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하겠다”며 “ 이번 파트너십은 학계의 혁신이 전 세계 보건안보에 직접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UTR은 mRNA에서 단백질로 번역되지 않고 남는 부분의 DNA/RNA 염기 서열로, 유전자 발현 조절, mRNA 안정성, 번역 효율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5‘UTR과 3’UTR로 나뉘어 각각 단백질 합성 개시와 후기 조절에 관여하는 핵심 서열들을 포함하고 있다.
휴스턴 메소디스트 연구소 중개과학 총괄 겸 항체 발굴 및 가속 단백질 치료제 프로그램(ADAPT) 책임자 지미 골리하(Jimmy Gollihar)는 “연구소는 고도화된 AI와 계산면역학을 활용해 바이러스 유전체 정보에 기반한 백신 후보의 도출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며 “이번 SFTS ‘프로토타입’ 백신 개발에서 한국 및 CEPI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안전하면서도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백신 구성요소를 설계하고, 이를 다른 페누이바이러스에도 신속히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협력은 실험 현장에서 ‘100일 미션’을 구현하는 과정으로, 미지의 질병(Disease-X)이 등장했을 때 세계가 속도와 규모 면에서 신속히 대응하는 데 필요한 도구‧데이터‧노하우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CEPI와 국내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CEPI의 공정 접근 정책(Equitable Access policy)에 따라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도출되는 백신 성과에 대해 공평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CEPI는 1/2상 임상시험 이후 추가 개발을 지원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감염병 발병 시 임상시험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임상시험용 백신 비축 물량을 확보하기로 했다. 백신 후보가 임상시험에서 유효성을 입증할 경우, 파트너들은 저ž중소득 국가도 접근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백신 생산 역량을 사전에 확보해 백신 개발 성공 시 신속한 제조ž공급을 가능하게 하고, SFTS 영향권 내 아시아 저ž중소득 국가의 현지 제조사에 기술을 이전해 현지 생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되는 임상시험 데이터는 공중보건 및 연구 공동체를 위해 오픈 액세스로 공개될 예정이다.
정부는 2020년부터 CEPI와 협력해 왔으며, 최근 CEPI의 목표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