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7 01:52:58
터키 괴뢰메-오토가르에서 야간버스 올라 몸을 맡긴 지 꼬박 반나절이 지나서야 페티예에 도착했다. 700㎞ 이상의 긴 이동이다. 잦은 이동이지만, 장거리여행은 매번 여행자에게 큰 고통이다. 긴 이동에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는 여행자라면 ‘안탈리아’ 도시를 들르는 것도 좋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 피로한 여행자의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합하다. 나는 혼자만의 여행이기에, 아름다운 해변을 혼자서 걸어야 한다는 상념에 빠지기 싫어 곧장 페티예로 간다. 무엇보다 빨리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 욜루데니즈 : 중동 4대 천황 헥토르 아저씨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돌무쉬(미니버스)를 잡아탄다. 20여분을 달리니 해안도시 욜루데니즈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블루라곤이란 아름다운 해변에서 휴식하러 이곳을 방문한다. 해변을 배경으로 체험하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것도 큰 이유다. 사실 여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몇몇 여행자들 사이에서 이곳은 패러글라이딩 세계 3대 명소 중 하나라는 소문이 있다.
터키 서남부지역에서 통하는 특별한 진리가 하나 있다. ‘모든 것은 헥토르로 통한다’ . 헥토르는 사람 이름이자, 패러글라이딩과 숙박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명칭이다.
아시아 여행자들 사이에는 전설처럼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중동 4대천황이 있다. 첫 번째가 이집트의 ‘만도’다. 그는 파라오의 무덤을 여행하는 여행객의 편의를 챙겨주고, 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기에 유명하다. 그리고 요르단의 ‘지단’, 시리아의 ‘압둘라’가 있다. 마지막이 터키의 ‘헥토르’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서 온 여행객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유명한 이유는 앞서 방문한 여행객들의 추천 및 후기를 활용한 장사를 잘 하기 때문이다. 중동 4대 천황 모두 극진한 친절함으로 무장한 만큼 인터넷에서 평가가 대부분 좋다. 실제로 저자는 시리아(여행금지국가)를 제외한 3대 천황을 모두 만났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말 한마디에 그들의 친절함이 바로 묻어 나왔다.
욜루데니즈의 헥토르는 170㎝ 정도 키에 약간 배가 나온 통통한 체형으로 항상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다닌다. 뒤뚱뒤뚱 걷는 그의 모습은 친근감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하는 행동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액센트 하나 없는 발음으로 마치 국어책 읽듯 영어를 뱉는 그의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풍채는 대단하다. 내가 도착했을 당시에도 숙소에 대해 물어보니 ‘노 프러블럼’(No Problem) 이라는 대답과 함께 이리저리 몇 통의 전화를 걸어 싸고 괜찮은 방을 연결해 줬다. 덕분에 나는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괜찮은 숙소에서 묵을 수 있었다. 이곳에 머물던 며칠 동안 매일같이 그의 식당을 방문하여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와 친해졌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이면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주변 동네 여행과 맛집 탐방을 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낱 장사꾼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과 알면서도 당하는 친절함에 왜 그를 중동 4대 천황이라 부르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페티예에 방문해 어려움에 처했다면 그를 찾아보아라. 아마 ‘노 프러블럼’ 이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특히 시끄럽다는 중국인을 싫어하고 유독 한국인에게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그다. 아마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타국에서 만난 ‘No Problem’
여행 중 만난 무슬림 국가(인도·이집트)의 현지인들이 즐겨쓰는 ‘노 프러블럼’ 은 헥토르의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책임회피 목적으로 사용한다. 내가 무슨 문제가 발생하든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실득만 챙기려는 대답으로 한다. 실례로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에 ‘당신이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따지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언제 그랬어?’ 가 대부분이었다. 무슬림 국가를 방문한다면 그들의 친절을 100% 믿지 말아라.
#. 패러글라이딩 : 블루라곤 상공을 날다
해안에 누워 선탠하는 것을 제외하면 보트투어나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게 이곳의 전부다. 여행 전부터 이곳에 오면 패러글라이딩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미 네팔의 ‘포카라’에서 팬덤 패러글라이딩 경험이 있는 나는 고수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척, 한껏 여유로운 걸음으로 허세를 부리며 여행사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이미 그곳에는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인원 몇몇이 모여 있다. “어제는 날씨가 별로여서 산중턱인 1000m에서 점프했지만,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아 2000m 까지 올라갈 거에요.”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날씨가 좋다는 사실은 분명 행운이다.
출발한 지 20여분이 지났다. 꼬불꼬불 산길을 마구 올라간다. 산 정상에 도착하자 먼발치에 설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아름다운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아찔한 높이를 보아 진짜 2000m는 된 듯하다. 문득 포카라에서 함께 했던 파일럿의 말이 떠올랐다. ‘지중해의 도시 욜루데니즈가 패러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야’. 직접 와보니 실감이 난다.
파일럿 아저씨 한분이 옷을 챙겨준다. 칙칙한 색의 마치 우주복을 연상케 하는 그것을 주섬주섬 입고 있는 사이, 동행한 친구들은 어느 순간 출발해 하늘을 날고 있다. 안전장비를 파일럿의 장비와 연결시키자 ‘레디’(Ready) 라는 말이 들린다. 힘차게 달리며 이내 셋을 외치자 어느 순간 내 몸이 공중에 떠있다.
처음에는 바람이 강하여 많이 나가질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순항한다. 2000m 상공에서 바라본 빛에 반사된 욜루데니즈의 해변은 너무나 아름답다. 10여분 동안 해변 상공을 날다가 스파이럴(상공에서 빙빙도는 기술)을 몇 번 하고 해변가에 착륙한다. 땅에 도착하니 모두 상기된 얼굴이다. 죄다 눈부시게 밝고 푸른 해안의 모습에 감동한 듯하다. 기회가 된다면 팬덤 패러가 아닌 나만의 패러로 자유롭게 원 없이 이곳을 날아봤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 파묵칼레 : 로마황제처럼
파묵칼레는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을 데니즐리 혹은 셀축으로 가기 전 잠시 당일치기로 방문한다. 이곳의 마을 어귀에 있는 경이로운 석회층 온천이 매년 어마어마한 여행객들을 불러 모은다. 나는 시간에 쫓겨 이곳을 보는 게 싫어 큰맘 먹고 마을 내부 숙소의 도미토리 룸을 잡는다. 하지만 예상대로 숙소에는 단 한명의 숙박객도 없다. 넓은 방에 혼자 자야한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해질 무렵 파묵칼레의 모습은 꼭 보고 싶었다.
■목화의 성
파묵칼레의 의미는 목화의 성이다. 파묵은 목화를 뜻하고. 칼레는 성을 뜻한다. 석회를 품은 섭씨 35도의 온천수가 산비탈을 형성한 모습이 마치 하얀 목화로 만든 성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설산의 형상을 띄고 있는 파묵칼레는 흡사 계단식 논을 닮았다. 하얀 석회를 이룬 물이 흘러내리면서 층을 이루고, 각 층마다 푸른 물을 담고 있다. 푸른 물은 한낮의 하늘 빛을 온전히 담아 눈부시게 밝다.
하지만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태양의 붉음을 전수 받은 석회층 물은 매혹적이기 까지 하다. 현재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어 목욕이 금지된 상태다. 아쉽지만 예전처럼 파묵칼레 안에서의 온천욕을 즐기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영복을 챙겨가서 허락된 공간에서 잠시마나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것은 가능하다. 혹은 석회층에 걸터앉아 멍하니 사색에 잠겨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추천한다. 먼 옛날 로마 황제들에게 이곳은 최고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친근한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을 아주 사랑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마치 과거의 그들처럼, 잠시 이곳에서 즐기는 여유는 나에게 최고의 휴식일지도 모른다.
■히에라폴리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 언덕 위에 새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 때 처음 도시로 형성되어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전성기에는 인구가 10만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그리스어로 신성함을 뜻하는 ‘히에로스’의 명칭을 따서 예전부터 성스롭고 신성한 도시로 불렸다. 파묵칼레를 따라 오르다 보면 로마 시대의 잔유물을 볼 수 있다. 넓은 평지 곳곳에 원형극장과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의 흔적이 있다.
가이드북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을까 생각해본다. 왼편으로 로마욕탕이 보인다. 유물 훼손으로 현재 출입이 통제된 게 아쉬웠다. 길을 따라 쭉 걷다보니 ‘네크로폴리스’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띈다. 고대 도시와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 묘지를 뜻한다. 과거 대도시의 흔적이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곳까지 닿지 않아서 음산한 느낌마저 든다. 발길을 돌려 원형극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이 유적 천지다. 고대 도시의 입장을 알리는 ‘도미티아누스 문’을 지나 풀길을 따라 걷다보니 공사를 하고 있는 원형극장의 모습이 보인다. 무대부분 공사를 하고 있어 완벽한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아쉬웠지만 잠시 계단에 앉아 숨을 돌려본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로마인의 복장을 하고 눈앞에 펼쳐진 연극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을 해본다. 빗방울이 떨어짐을 느끼고, 이내 발길을 마을로 돌린다. 안녕. 고대도시여.
TIP. 터키 추가 여행 도시
■셀축
파묵칼레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거리의 터키 서부 이즈미르 주에 있는 도시다. 터키어로는 셀추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에페소스’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는 곳이지만, 도시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터키를 일주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원을 그리며 여행한다. 나도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여행을 시작, 셀축을 마지막 도시로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넘어갔다. 에페소스는 로마제국시대 아시아 최대 도시였다. 찬란했던 당시의 역사를 뒤로 한 채 현재는 건축물 잔재와 조각들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 당시 모습에 궁금증을 갖고 이곳을 방문한다.
특히 기독교 초기 역사에 중요한 도시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이밖에 1일 일정으로 방문할 수 있는 근교도시 ‘쿠사다시’와 ‘시린제 마을’ 등이 있다. 셀축에서는 또 스카이다이빙, 마이크로라이팅(초경량비행기)과 같은 레저도 즐길 수 있다. 비용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할 것이다. 스카이다이빙은 2013년 기준 약 20만원 수준이다. 단 6월 중순부터 시작해 여름 시즌에만 도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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