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7 01:01:30
# Intro 터키 : 짝사랑은 그만
월드컵 덕분에 온 나라가 한층 뜨거웠던 2002년. 대한민국은 4강에서 터키를 만났다. 유럽 근방의 낯선 나라였지만, 경기가 끝난 후 우리에게 ‘형제의 나라’로 각인됐다. 하지만 터키의 한국 짝사랑은 여기서 멈췄다.
터키는 다수의 국가와 인접해 있으며,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명의 중심지였다. 터키의 짝사랑을 이해하려면 지루하지만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으로 부르는 것처럼 터키도 자신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한다. 과거 고구려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던 ‘돌궐’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두 국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로 불렀다.
돌궐이 멸망한 이후, 남은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터키를 중심으로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건설했다. 터키는 투르크제국을 건설한 그들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 어린 학생들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린 시기부터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 돌궐이라는 나라는 단지 몇 줄 언급돼 있을 뿐이다.
이같은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터키인들에게만 우리는 ‘형제’였다. 과할 만큼 한국 사람에게 친절한 그들의 모습에 과연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 그들의 역사를 훑어본 이후 역사에 무지한 우리가 괜시리 미안해진다.
# 입성
필자는 2013년 4월 인도·네팔·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9시간의 긴 비행을 거쳐 터키 최대의 도시 ‘이스탄불’ 에 입성했다. 동남아의 덥고 습한 날씨를 아직 잊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장기여행자의 세계에 입문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인도산 ‘모바지’를 입고 있다.
공항 안내센터에서 이스탄불 지도 하나를 챙겨든다. 지도를 보자 낯선 곳이라는 새로운 두려움과 설렘에 마음이 요동친다. 이곳의 대중교통도 우리나라 지하철과 별반 차이가 없다. ‘카르트’로 불리는 교통카드를 구매하고 충전해 트램을 탄다. 낙후된 아시아에 머물다 와서 일까? 창밖으로 비춰지는 도시의 첫 느낌은 화려하며 세련돼 보인다. 한번 환승한 뒤 ‘술탄아흐멧 역’에 하차한다.
그곳에 도착하니 차가운 바람이 불청객을 맞이한다. 약간 더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기대와 달리 4월이지만 추위가 매섭다. 광장 주변에 몰려 있는 관광객들은 두꺼운 패딩과 목도리를 할 정도로 마치 초겨울을 맞이하는 행색을 하고 있다.
혼자서 한 여름 복장을 하고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쌀쌀하고 궂은 날씨 때문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히말라야 등반 때 최악의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칭호를 안겨준 패딩을 꺼내야 했다. 적응하기 힘든 날씨지만 많은 이들이 추천한 여행지로 기대감이 높다. 훗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고 싶은 1순위 나라, 터키를 소개한다.
# 매일 저녁의 스페셜 요리 : ‘고등어케밥’
여행 중 어떤 도시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이스탄불을 빠뜨리지 않는다. 무엇이 좋았을까? 아시아의 소박함과 유럽의 화려함이 공존해서? 아니면 과거의 멋스러운 건축물과 현재의 세련됨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음식이 좋거나,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저렴해서? 이스탄불은 이들 이유를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관광지를 둘러본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2차선 도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트램에 올라탄다. 관광지를 요리저리 빠져나가는 트램에서 바라보는 창 밖의 모습은 매번 비슷해도 이방인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진다. 조명이 적절하게 분위기를 잡아주면 나는 밤거리의 악사가 된 것 같다. 항구의 모퉁이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과 귀에 집중해본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삼아 출발하는 선박의 뱃고동소리와 트램의 진동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끔씩 구슬프게 우는 갈매기 소리는 한층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준다. 지나가는 많은 현지인 사이에서 느끼는 감각의 향연은 영화 속 주인공 부럽지 않다.
이스탄불에 10일 동안 머물면서 해가 진 후 매일 똑같은 코스를 걸었다. 숙소를 나와 아야소피아(소피아성당)가 보이는 광장을 지나서, 트램 철로를 따라 ‘갈라타다리’ 까지 걷는다. 다리 위 매일 같은 위치에서 낚시를 하는 현지인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다리 아래 어시장으로 향한다. 내가 숙소에서 40분여를 걸어 이곳까지 오는 이유는 야경에 취하고, 고등어케밥을 먹기 위함이다.
[TIP] 케밥은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 생선 등을 구워 밥·빵·채소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유목민족의 음식문화를 전수 받아 만들어진 요리로 우리나라의 밥처럼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음식이다. 이스탄불에서 고등어케밥과 홍합밥으로 유명한 곳은 ‘보스포러스해협’의 ‘에미뇌뉘 선착장’이다.
어시장 뒤편으로 가면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 최고의 저녁을 선사해 줄 요리사 한 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에밀’.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그는 어시장의 고유명사가 된지 오래다. 그의 가판대 앞을 가면 한국어로 적힌 글귀를 쉽게 볼 수 있다.
배 나온 후덕한 동네 아저씨 느낌의 그는 화려한 한국어 언변으로 인기를 얻지 않았을까 의심했지만, 한 번 먹어보면 오직 맛으로 승부하는 대박집이 분명하다고 믿게 된다. 그에게 5리라(2013년 기준 한화 약 3000원)을 내고 고등어 케밥을 주문하면 팔뚝만한 크기의 식빵 사이에 양파와 토마토, 상추 등의 각종 야채를 듬뿍 넣고 자리에서 바로 구운 고등어와 소스를 곁들여서 넣어준다.
맛뿐만 아니라 양도 훌륭하다. 고등어가 섞여 비린 맛이 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일반 햄버거를 먹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항상 먹을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비린내가 나지 않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에게 이 훌륭한 저녁식사를 받아 항구의 낡은 계단에 앉는다. 눈앞에 보이는 야경의 모습을 안주 삼아 배를 채우기에 더 없이 행복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에밀 아저씨의 케밥을 먹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한다. 그는 하루 중 오후의 특별한 시간에만 나타나고,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쉬고 싶을 때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잘 나가는’ 프리랜서인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 분명하다. 이스탄불에 머문 10일 중 총 7일 동안 매일 저녁 그곳을 방문했다. 낮에는 이곳저곳을 가더라도 결국은 그에게서 고등어 케밥을 사서 야경을 보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일주일 동안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항상 같은 생각을 했다.
‘오늘 그를 만나지 못한다면, 나의 운은 다 된 거야. 이제 이스탄불을 떠날 때가 된 거지’
다행히도 나는 상당 기간 매일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최고의 식사와 함께 거리 곳곳을 누볐다. 이것은 내가 이스탄불을 생애 최고의 도시로 손꼽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는 꼭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서 그 자리에 서 있을 날을 기대해본다.
# 이스탄불 볼거리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아시아 지역, 서쪽은 유럽지역으로 나뉜다. 여행지와 볼거리가 풍성한 유럽지역은 ‘갈라타다리’를 기준으로 남쪽지역인 구시가지와 북쪽지역인 신시가지로 나뉜다. 대표적인 유럽지역의 볼거리 몇 가지를 추천한다. 단, 현지인들의 냄새가 그립다면 아시아 지역을 추천한다.
△ 아야소피아
혹자는 아야소피아를 보면 이스탄불을 다 보았다고 말 할 정도로 이스탄불에 오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하는 곳이다. 아야소피아는 360년 비잔틴 콘스타티누스 2세 때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다. 화려한 내부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가진 그곳은,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이후 1453년 오스만 투르크족에 의해 비잔틴 제국이 멸망되기 전까지 약 1000년 동안 성당으로 이용됐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성당 내부에 남아있던 비잔틴 모자이크와 벽화들을 석회로 덧칠해 건물을 모스크로 개조해 이슬람 사원으로 썼다. 이후 터키공화국이 복구 사업을 펼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비잔틴 시대의 기독교 사상과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된 독특한 박물관의 모습이 매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1층 본당을 들어서면 많은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이 아름답게 관광객을 맞이한다.
대성당 벽에는 코란 문자가 적혀 있는 큰 원반이 이슬람 문화를 상징하며,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 벽화는 독특하기 그지없다. 곳곳을 둘러보면 아야소피아 박물관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 장소인 동시에, 이슬람교의 성지순례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톱카프 궁전
이스탄불에 대한 극찬 아닌 극찬을 했지만 이 곳도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많은 관광객’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멋진 풍경과 화려한 건축물을 사랑하지만, 수많은 인파로 아수라장이 된 탓에 흠결이 된다.
혹자는 ‘유명한 관광지에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지, 그 정도는 감내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득 찬 사람들로 나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뚜렷하지 못한다면 만족도는 높을 수 없다.
나는 광활한 영토를 소유한 오스만 제국 지배자들의 삶이 궁금해 이곳을 방문했다. 어떤 이는 이곳이 이슬람 문화를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가장 넓다는 제1정원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제3정원의 보물관에는 술탄의 왕좌, 무기, 보석이 장식돼 있다. 하지만 그곳 역시 사람에 떠밀려 주의 깊게 전시물을 관찰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2정원에 자리잡고 있는 하렘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하렘은 술탄의 사적인 거주 공간이자, 수백 명에 달하는 궁정 여인들이 함께 머물렀던 공간이라고 한다. 극소수의 외부인만 출입이 가능했기에 더욱 미스터리한 이 공간은 나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 갈라타 타워
나는 야경을 좋아한다. 특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좋아한다. 그래서 새로운 도시를 방문 할 때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을 먼저 찾는다. 해가 질 무렵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대부분 매력적이다. 도시의 색깔을 가장 함축적으로 집중해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현지 숙소를 방문 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야경을 보기 위해서 가봐야 할 곳이 어디일까요?”다.
이스탄불에도 적합한 장소가 몇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갈라타 타워다. 신시가지의 이스티크랄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높이 솟아 있는 타워를 볼 수 있다. 높이는 70m로 그리 높지 않다. 화려하거나 근사하지 않아 허름한 등대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 타워는 이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바라보는 전경은 기대 이상으로 좋다. 탁 트인 전망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추천한다. 물론 낮에 바라보는 시가지의 풍경도 아름답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바람과 풍경을 벗 삼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는 충분하다.
△ 이스티크랄 거리 : 물담배
탁심광장(Taksim역)에서 갈라타타워 까지 연결되는 거리로 흡사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됐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곳에는 쇼핑거리와 레스토랑이 밀집돼 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활기차고 번화한 거리다. 특히 보행자 전용 거리로 차량 통행이 제한돼 있다.
이곳에는 ‘노스탤지어’라 불리는 명물 트램이 있는데, 복잡한 이스티크랄 거리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트램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가히 매력적이다. 이스탄불에서 종종 트램을 타고 거리를 바라보았다. 쇼핑센터에서 옷 구경을 하거나 근사한 음식점 앞을 기웃거리며 배고픔에 호소해 보기도 했다. 현지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 로컬음식을 먹고, 구석길 골목 어귀의 카페에서 물담배를 즐겼다.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카페에서 건전하게 물담배를 피며 조금은 유치해보일 수 있는 보드게임을 즐긴다. ‘나르길래’ 라고 불리는 물담배는 사과, 딸기, 커피 등 원하는 향을 고를 수 있다. 터키식 차이(홍차잎을 스트레이트로 진하게 내려서 뜨거운 물을 좀더 붓고 설탕을 넣어 마시는 차)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중독성 강한 물담배와 차이를 접해보지 못했다면, 한국의 이태원 등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니코틴이 없어서 카페에는 현지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건강에는 담배보다 훨씬 좋지 않다고 하니 체험 정도로만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입안에서 맴도는 향료의 향기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카페에서 현지 게임을 하면서 멋진 포즈를 잡고 물담배를 즐겨보는 것도 이스탄불에서 꼭 해야 할 것 중 하나다.
# 과도한 친절
터키 사람들은 유난히 친절하다. 버스에서 지도를 보고 있으면, 오지랖 넓은 현지인이 먼저 다가와 손발을 다 써가면서 알려준다. 상점이나 관광지를 방문하더라도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그들에게 친절은 몸에 배어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어리둥절할 정도로 지나친 친절은 한번쯤 의심해볼만 하다. 예컨대 맥주를 함께 마시자고 한 뒤, 약을 타서 정신을 잃게 한 다음 금품을 훔치거나 유흥주점으로 데려가 터무니없이 비싼 술값을 강제로 내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는 여성 여행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벌이기도 한다.
이스탄불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곳은 관광객이 많이 몰려있는 탁심광장이나 아야소피아 앞의 광장이다. 나도 아야소피아 광장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면서 먼저 다가온 남성일행이 있었다. 카메라를 건네자 무리 중 한명이 술을 먹자고 제안했다.
순간 친절한 그들의 인상에 혹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 거절했다. 며칠 후 나와 비슷한 유사 사례들이 포털사이트의 카페에 떠도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멀리서 그들의 얼굴을 망원렌즈로 촬영한 사진을 카페에 올려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통쾌한 복수였다. 여행객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면 누구라도 조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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