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9 01:47:21
2015년 4월 25일 발생한 네팔 지진으로 인한 8600여명 사망자와 집을 잃은 50만채 가옥의 네팔리(네팔인)들을 추모한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마음속으로 나누면서 글을 써내려간다.
#. 트레킹 2~3일차 :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 푼힐 전망대
코스: 울레리 (1960m) ~ 고래빠니 (2750m) ~ 푼힐 (3210m)
산속에서의 할 일은 많지 않다. 해가 지면 더욱 그렇다. 암흑의 고요함이 활기찬 경쾌함으로 바뀌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산 속의 새소리에 기분 좋게 눈을 뜬다. 하지만 온 몸이 뻐근하다. 어제 무리한 바도 없지 않지만, 몸에 적응시간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오늘의 목적지 고래빠니(2750m)는 4시간 거리다. 어제에 비하면 계단도 많이 없는 트레킹 코스다.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걸으며 오늘의 목적지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에 빠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녹음이 우거진 숲 속의 돌길을 걷고 있으면 먼 옛날 한양 찾아가던 선비가 된 것 같다. 걷다가 힘들면 잠시 앉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쉬면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은 여유가 더해 멋스러운 향내마저 난다. 뜨거운 태양으로 이마에 땀이 흥건해질 쯤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이제 막 지난 이른 시간이다. 마을의 초입에서 ‘POLICE CHECKING’ 이라는 큰 의미 없는 절차를 통과한 후 숙소에 짐을 푼다.
어제 선크림을 많이 바르지 않아서 인지, 목 부근에 화상을 입었나보다. 마찰되면 조금씩 통증이 느껴진다. 태양빛이 무섭다. 내일부터는 화이트 팩 수준으로 발라야겠다. 세르파인 밀바두가 나에게 경고한다.
“4000미터가 넘어가면 선그라스는 꼭 써야 돼. 눈에 반사되는 태양 빛에 실명이 될 수도 있어”
강혁 군은 체력이 남나 보다. 내일 새벽에 갈 곳인 ‘푼힐 전망대’를 사전답사 하겠다고 한다. 푼힐 전망대는 해발 3210m로 이곳과 약 500m 차이가 난다. 난 고산병이 걱정되어 강혁군을 말려보지만, 체력 하나는 군대에서도 최고라면서 걱정 말라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준다.
TIP. 고산병
고산병은 고도가 낮은 곳에서 급격하게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 몸이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신체 부적응으로 보통 고도 3000m가 넘으면 두통을 호소하거나 체력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증세를 느낀다. 누구나 다 걸릴 수 있는 병으로 천천히 올라간다면 예방이 가능하다. 고산증 예방에 좋다는 음식으로는 마늘수프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이 보통 권하는 하루 상승 고도는 300m이다. 성질 급한 대한민국 사람의 ‘빨리빨리’ 문화를 접목시키다가는 어느 순간 헬기에 실려 있을지도 모른다. 고산병으로 헬기를 부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비용은 상상에 맡긴다.
새벽 5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다. 약간의 설레임이 나의 신경을 압박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저녁 밀바두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했다.
“강혁 군이 미리 다녀와서 길을 아니까 우리끼리만 다녀올게요. 너무 걱정마세요.”
옷을 두툼하게 챙겨입고 숙소를 나선다. 강혁 군이 길을 안내하지만 적막한 산속의 어둠이 두려움으로 엄습해온다. 마을 옆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니, 해드 랜턴 불빛이 우리의 뒤를 따라온다. 1시간여를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를 정도로 어둠 속에서 앞선 사람의 랜턴 불빛만 보고 오른다. 고도가 높아지자 숨이 조금씩 차오른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어둠이 사라지는 모습에 지평선 아래에서 해가 힘차게 걸음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저 멀리 전망대가 보인다. 쌀쌀한 날씨에 전망대 식료품점에서 핫초코를 한잔 산 후 그 따듯함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물이 과한 그 맛은 달콤한 기대조차 깨버릴 정도로 형편없다. 복선이었을까. 아니면 아주 멋들어지게 해가 뜨길 기대한 나의 과한 기대였을까. 해는 구름 뒤에 숨어 옅은 붉은 빛만 드러낸다. 아쉽지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기에 쿨하게 받아들인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안나푸르나를 향해 다시 출발이다.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며.
TIP. 포터가 꼭 필요한가?
포터와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고 트레킹을 하는 경우는 유럽 백패커들 사이에서 흔한 경우다.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측면은 있다.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이 처음이라면 권할 사항은 아니다. 히말라야는 지리산과 설악산과 같은 곳이 아니다. 트레킹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아니기에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경험 많은 현지 포터에게 의존한다고 수치스러운 것이 절대 아님을 명시해야 한다.
#. 트레킹 4~6일차 : 설산에 다가가는 길
코스 : 데우랄리 (2983m) ~ 시누와 (2300m) ~ 히말라야 (2900m)
트레킹 4일차다. 푼힐(3210m)을 내려온 이후 시누와(2300m) 까지는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가파른 경사를 계속 오르는 코스는 없지만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면서 안나푸르나 설산에 한층 다가간다. 마을을 지나갈 때면 그곳의 어린 아이들에게 밝은 미소를 건내본다.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눈동자로부터 내 모습이 비춰진다.
오늘은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다. 오후 2시부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근처 롯지로 피신했다. 변덕이 심한 높은 고지대의 날씨 때문에 일정이 틀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는데 산속의 어둠은 급격하게 찾아오고, 기온도 뚝 떨어졌다. 갑작스런 폭우에 산골 마을의 전기도 끊겼다. 암흑 세상에서 조용히 하루를 정리해본다.
날이 밝았음이 어제보다 더 명랑한 새의 알람 소리를 듣고 알았다. 언제 폭우가 왔었느냐는 듯이 화창하다. 창문을 열자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가 굿모닝을 외친다. 산 정상에서 막 퍼온 듯 한 차가운 냉수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며 오늘도 파이팅을 다짐한다.
아름다운 경치와 무거운 발걸음이 이제는 무뎌질 즈음이다. 어제부터 고산증을 호소한 강혁 군의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뒤쳐진다. 푼힐을 두 번이나 급격하게 오르고 내리면서 하루 동안 겪은 고도 차이를 몸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과한 욕심이 화를 가져온 결과다. 별 수 없이 나의 친절한 천성은 호의를 베풀어야만 했다. 강혁 군의 가방을 들어 맨다. 트레킹 전용 가방이라 허리와 어께에 전해지는 무리함은 나의 것에 비해 덜 한다. 그래도 10㎏이 넘는 가방이라 그 무게를 무시하기에는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지쳐간다.
트레킹 6일차. 밤부(2400m)를 지나 히말라야(2900m) 까지는 가파른 산행이다. 오늘은 ABC 캠프에 올라가기 위한 문턱인 히말라야 롯지까지 가야 한다. 오늘도 강혁 군의 가방은 나의 몫이다. ‘이런 젠장! 무리하지 않기 위해 포터 아저씨를 고용한 것인데, 내가 강혁군의 포터가 되다니.’
가방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기는 하지만, 일주일 간의 트레킹으로 산길을 평화롭게 걷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산속의 롯지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자.
#. 트레킹 7일차 : 안나푸르나 설원 위의 주인공.
코스 : 히말라야 (2900m) ~ MBC (3703m) ~ ABC (4130m)
안나푸르나를 향하여 오르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 하루를 위해 지금까지 힘겹게 올라온 것이다. 이른 새벽 분주히 짐을 챙긴다. 오늘의 코스는 MBC를 거쳐 ABC까지다. (MBC는 문화방송이 아니라 Machha puchre Base Camp의 약어다) 워밍업을 하듯 한 시간 정도 평지를 걷더니 이내 오르막의 시작이다. 도반을 지나 어느 롯지에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초콜릿을 하나 산다. 가격은 150루피, 한화로 약 3000원이다. 초코바 가격치고는 상당히 나가는 금액이지만, 그러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당의 힘으로 다시 힘차게 발길을 내딛는다.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깊은 계곡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간다. 커다란 협곡 사이를 거닐수록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지형들을 조심히 건너며 끝이 보이지 않은 오르막을 오른다.
8시에 출발한 트레킹은 어느덧 4시간이 지났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내딛는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신의 허락을 받기가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특히 고산증을 호소하던 강혁 군은 계속 뒤쳐진다. 그 옆에서 밀바두는 계속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눈앞의 가시거리가 갈수록 줄어든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수증기 입자들로 공기는 가득 차 있다. 강혁 군이 차고 있는 시계 겸용 고도계를 흠칫 쳐다본다. 해발 3700m 까지 왔다.
MBC에서 꿀맛같은 점심을 먹는다. 그곳 롯지에는 와이파이가 된다는 놀라운 표시가 있다. 하늘과 닿을 듯 한 이곳에서 와이파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장비가 고장 나서 작동하지 않았다. 하루 빨리 부모님과 사랑하는 애인에게 풍경과 나의 건장함을 알리고 싶었는데, 아쉽다.
롯지 앞에 나와 저 멀리 ABC를 쳐다본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레임이 가득하다. 다시금 ABC 표시판을 따라 걷는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 덕분에 패딩과 바람막이 등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총 동원한다. 이런 추위가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밀바두는 빨리 가자는 말로 나를 재촉한다. 모 브랜드의 말아서 접을 수 있는 패딩위에 싸구려 바람막이를 입고, 노란색 등산모자와 검은색 선그라스를 끼고 있다. 나는 등산복 패션 테러리스트다.
롯지를 벗어나 산길을 오를수록 길의 구분이 힘들다. 앞의 포터 아저씨만 보고 숨을 조절 하면서 천천히 한발씩 내 딛는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꿈속에서 해매는 장면 같다. 온통 하얀 배경에 누군가에게 홀린 듯 쫓아갈 뿐이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오후 3시가 넘어서자 ABC가 한 시간 남았다는 문구가 보인다. 희망에 차서 힘을 내보지만, 높아지는 고도에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눈길 사이로 저 멀리 비닐 포에 쌓여져 있는 무엇인가가 보인다. 궁금하여 밀바두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잊어버려진 사람의 시체라 한다. 실제로 히말라야에서는 매년 실종자가 종종 발생되고, 그들의 시체를 고국까지 이송하지 못할 형편이 되면 저렇게 방치한다고 한다. 다시금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할 것 같다.
고도계의 높이가 4000m를 찍자 저 멀리 희미하게 롯지가 보이는 것 같다. 분명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착시현상을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숨소리는 거칠어지지만 마음은 들떠 있다. 드디어 해발 4130m 고지의 ABC 깃발을 발견,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밀바두와 강혁 군과 함께 얼싸 안고 기쁜 마음에 큰 소리로 외쳐본다.
“와! 드디어 해냈다!!!”
4000m 산속의 새벽 날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춥다. 이 지역의 평균 기온은 지상보다 10~15도 정도 내려간다. 핫팩도 소용없다. 강혁 군의 기침소리가 더욱 심각해져서 나의 신경을 자극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6시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롯지 뒤편으로 향한다. 벌써부터 일출의 모습을 기다리는 트레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구름과 안개가 완전히 걷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모습은 가히 환상이다. 롯지를 중심으로 360도 어느 방면으로 보아도 예술이 아닌 곳이 없다.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기만 했던 설산 봉우리가 눈앞에 바로 멈춰서 있는 것 아닌가!
Annapurna South(7219m), Annapurna I(8091m), Machha puchhre(6993m), Hiuchuli(6441m) 등 걸출한 산들이 360파노라마로 내 주위를 온통 감싸고 있고 그 하얀 설원 위에 내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노트와 펜을 꺼내 소중한 이 순간을 기억해본다. 영원히 잊지 못할 도전. 신이 허락한 자가 되기 위한 힘든 사투 결과 그 끝에서 맛본 환상적인 풍경. 겸허함과 감사함이 사뭇 교차 된다. 지난 일주일간 오직 이 한순간만을 위해 세상과 소통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 가치는 빛난다.
#. 포카라 즐길거리
트레킹을 마친 여행객들은 포카라에서 트레킹의 여훈을 푼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좋지만 포카라에는 즐길만한 액티비티도 상당하다. 한적한 아침, 페와 호수를 배경으로 자전거, 혹은 스쿠터를 타거나 산책로를 걸으면서 호수에 비친 마차푸차레의 절경과 함께 여유와 평화를 느낄 수 있다. 페와 호수는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 내려만든 물로 포카라를 상징한다. 오후에는 설산과 호수를 무대삼아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해가 지면 라이브 밴드가 있는 펍(PUB)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면 완벽하다.
포카라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즐기는 패러글라이딩은 한화로 8만~10만원 정도 된다. 여행사나 숙소에서 쉽게 예약을 할 수 있으며, 차를 타고 포카라에서 30분 거리 산으로 올라간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전문가와 함께 하는 팬덤 패러를 즐기는데, 전문가와 함께 하기에 충분히 안전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한 사람이라면 약 20분여 간 환상적인 풍경에 “좋다” 라는 말을 연신 입에 달고 있을 것이다.
#. 포터 아저씨 : 밀바두 에게 남기는 편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10일간 나와 강혁 군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주었던 포터 아저씨. 그의 이름은 밀바두. 비록 수많은 관광객중 하나뿐인 나이지만 언젠간 기억해줄지도 모르는 그에게 줄 사진을 인화하고 고마움의 편지를 남겨본다. 메일 주소를 남겼지만 여태 메일 한번 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메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거 같다.
“포터”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그들은 속칭 짐꾼 이다. 1인 1짐을 들고 가이드 역할을 할 때도 있고, 많게는 1인당 2명의 짐을 짊어지고 올라간다. 그 가방의 무게는 아무리 가벼워도 대략 20kg 이상은 된다. 이런 행위는 그들의 직업이다. 산이라는 특수한 생활조건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산으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1만5000원 정도의 돈을 받고 그들은 산을 오른다. 좋든, 좋지 않든 그렇게 그와 나는 만났다.
나이는 34살. 슈퍼 노안. 이유인 즉슨 산쟁이라서 그런가 보다. 산쟁이를 비하해서가 아니라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듯하다. 귀여운 딸이 있다고 가끔 자랑하던 밀바두. 그는 한국말을, 아니 영어조차도 전혀 할 줄 모르는 토종 네팔인이다. 간혹 포터중에서는 관광객을 오랫동안 상대하여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들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돈에 능숙하다. 그 많큼 노련하게 관광객을 다를 줄 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항상 우리 앞에, 혹은 우리 옆에 그가 있었다. 포터가 할 일은 짐을 들어주는 것 말고 참 많다. 짐 주인의 컨디션을 파악하여, 일정을 짜는 것. 또는 그들의 사진기사가 되어주는 것. 매사를 맞춰줘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짐이 무겁지 않느냐? 혹은 내가 들어줄까? 물 한모금 마실래요? 힘들면 우리 조금 쉬면서 올라가죠?” 하면서 먼저 물어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 정도면 그에게 나는 최고의 짐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는 놀라울 정도로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는다. 우리의 짐은 10kg 정도였다. 그 정도는 껌이라는 듯이 아주 펄펄 날아다녔다.
문득, 그립다. 시간이 꽤나 지났구나 벌써. 아마 오늘 이 시간에도 그는 이번 나의 주인은 누가 될지? 성격은 좋을지? 아니면 40kg 폭탄 짐을 들고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등산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면서 그에게 줄 사진을 몇 장 인화하고 사진 뒤쪽에 편지를 썼다. 편지와 사진을 조심히 담아 다음날 숙소로 찾아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그는 또 다른 한국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람로! 이것은 기분 좋을 때 내는 네팔 언어이다. 다니밧 ! 이것은 감사하다는 뜻의 네팔 언어이다. 그와 소통하기 위해 그에게 배운 언어다. 그에게 배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건낸다.
“다음번엔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와서 너를 꼭 찾을게”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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