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만 벗어나면 모두가 숲인 제주에서 새삼 더 나은 숲을 찾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태적으로 정서적으로 만족을 주는 명품 숲이 분명 있다. 제주도의 대다수 숲은 사실 곶자왈이다. 제주말로 숲을 뜻하는 ‘곶’과 암석과 덤불이 뒤엉킨 ‘자왈’의 합성어다. 특유의 신비감과 노스탤지어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엠디팩트는 오근식 여행작가(전 건국대병원 홍보팀장)이 선정한 제주도 7대 ‘숲 중의 숲’을 연재한다.
제주의 숲길은 낯선 환경을 살펴가며 자기 체력에 맞추어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숲속의 새와 곤충과 풀과 꽃을 바라보며 눈에 익히고 귀에 담을 수 있으니 동식물에 관심이 많다면 즐거움이 많은 곳이다.
다만 정비돼 있는 산책로일지라도 곶자왈 지형의 특성상 때로 튀어나온 암반과 나무뿌리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길이 무작정 평탄하지는 않아 주의를 기울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도무지 지루할 겨를 없이 10㎞쯤 걷고 나오면 심신이 개운한 곳이 제주도의 숲길이다.
비자림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숲이다. 수령 500~800년까지의 비자나무 2878 그루가 모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자나무는 그리 흔한 나무가 아니다. 더구나 어떤 수종이라도 수령 수백년의 건강한 고목이 이렇게까지 밀집돼 있는 곳은 없으니 제주도에 오면 반드시 한 번은 찾아가 걸어야 하는 데가 비자림이다.
비자림의 산책로는 총 3.2㎞인데 이 중 1㎞ 정도는 휠체어나 유모차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다듬어져 있다. 비자나무 숲 끝 쪽으로 연장된 오솔길 형식의 탐방로는 좀 더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2012년 봄 처음 비자림을 걸었다. 숲속에 가득한 덩굴을 무색하게 만드는 엄청난 크기의 비자나무에 압도됐었다. 그날 산책로를 나오다가 이 숲의 비자나무조차 잊게 만든 너무나도 가벼운 새우란을 만났다. 산책로에서 멀지 않은 풀숲에 세 그루의 새우란이 꽃을 활짝 피우고 자신만만하게 햇볕을 받아내고 있었다. 꽃은 마치 초콜릿색의 상의와 흰 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가씨처럼 보였다.
누군가 욕심내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근처 어디선가 이맘때쯤 또 찾아올 그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그 후로 내게 비자림은 비자나무가 아니라 거기 있던 새우란으로 기억됐다.
두 해 뒤 초여름에 찾아갔을 때는 비가 왔다. 우비를 입고 걸으며 숲이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덩굴과 그 덩굴을 뒤집어 쓴 나무들의 합창과 춤을 비자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스치는 바람에 숲의 온갖 향이 한꺼번에 실려 왔다. 빗속에서도 그 숲에 들어간 진짜 이유는 2년 전 보았던 새우란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날은 새우란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5년 뒤 다시 찾은 2019년 8월의 비자림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수령 100년의 곰솔 고사목을 잘 다듬어 ‘천년의 숲 비자림’이라는 글귀를 새겨 입구에 세워두었다. 예전에 걸었던 산책로를 걸으며 보니 숲이 텅 비었다. 비자나무 사이사이 자라고 있던 활엽수에 기대어 숲을 가득 채웠던 덩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덤불도 많이 줄어 여기저기 이끼옷을 입은 바위들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도 이 숲의 주인인 비자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숲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송악, 마삭줄, 담쟁이 등의 덩굴을 대부분 제거한 듯했다. 덕분에 숲 깊은 곳까지 눈길이 미친다. 예전엔 덩굴들의 이파리 위로 솟아 있는 비자나무의 가지를 보며 그 크기와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제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비자나무의 등걸과 가지와 그 나무가 점령하고 있는 땅위의 모습까지 하나하나 잘 보였다.
비자림도 곶자왈이다. 흙 한 줌 없이 용암 바위들이 널린 곳에 나무, 덩굴 그리고 덤불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자라는 동안 나뭇잎이 쌓이고 그 아래로 뿌리들이 끝없이 물을 찾아 뻗으며 형성된 울창한 숲이 곶자왈이다. 비자림에 우뚝 선 2878 그루의 비자나무들은 적어도 800여 년 동안 무수한 덩굴과 이 덩굴이 오르던 나무들과 그 아래의 돌들을 덮던 덤불 속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들이다.
2018년 8월 제주도는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위해 30여년 된 아름드리 삼나무를 800m 정도 베어내어 길을 내려다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했다. 삼나무는 외래 수종이고 강하게 양분을 빨아들여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없게 훼방해 생태 다원성을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또 삼나무가 너무 많아 간벌을 통해 길을 내서 주민편의를 증진하고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위험도 낮춰야 하며 삼나무로 인한 꽃가루 알레르기도 줄여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나름 절경의 하나인 삼나무숲이 베어지다보니 외지인이 보기에 흉흉한 게 사실이었다. 외래수종이라도 30년 이상된 멋있는 풍경을 훼손할 수 있느냐는 게 간벌 반대론자의 입장이었다. 관광객의 시각에서 보느냐, 주민의 입장에서 판단하느냐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누가 옳다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비자림을 찾아가는 길에 막막하게 비자림을 감싸고 있던 삼나무숲이 훼손된다면 긴 장마 후 오랜만에 드는 햇살처럼 신비하게 나타나는 비자림을 볼 수 있는 정취가 반감될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