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마지막날은 해외여행의 루틴처럼 도심의 유적지나 공원에 들르는 일정이다. 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면, 혹시나 생길 불상사를 감안하면 그렇다. 아침 일찍 서둘러 오호리(大濠)공원으로 나갔다.
오호리공원은 1927년 이곳에서 개최된 동아권박람회를 계기로 조성공사를 시작해 1929년 정식 개원했다. 지금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물의 정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후쿠오카성을 축조할 때 북서쪽 습지를 해자(垓字)로 만들었다가 성의 방어적 쓰임새가 무용해지자 하카타만으로 열린 습지를 메워 공원으로 조성했다. 연못이 공원 면적의 약 60%를 차지한다. 연못 둘레엔 3000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는 약 2㎞의 산책로가 있다. 호수 안에 세개의 섬을 네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산책로도 있다. 중국 항저우의 서호(西湖)를 모방했다고 한다. 오솔길을 소요하니 여행 마지막날의 무거운 마음이 안온해진다.
여기만 둘러봐도 좋지만 바로 붙어 있는 오호리공원일본정원으로 발길을 돌리면 그리 후회할 일이 없다. 오호리공원 개원 50주년(1979년)을 기념해 조성공사를 시작해 1984년 완공했다. 인근의 야트막한 구릉인 석가산을 병풍 삼아 흰색 벽의 치즈이베이(진흙 담)와 소나무숲이 가미노이케(상류 연못)을 감싼다. 계류는 낙차는 낮지만 나름 3단 폭포로 만든 곳을 포함해 모두 3곳에서 흘러나와 가미노이케로 흘러 시모노이케(하루 연못)으로 흘러나간다. 공원 동편 길다랗게 모래와 돌, 분재로 조성된 가레산스이정원은 정적이고 평온한 근세 중기의 일본 정원을 지향한다. 가미노야케 서편의 다실, 차회관, 로지니아(부속정원) 등은 키높은 관목으로 둘러싸 외부와 잠시 단절된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정원 입장료 외에 추가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자연 속의 일부처럼 어우러지는 한국의 고궁과 정반대로 내추럴한 맛은 없지만 인공적으로 잘 짜여진 일본정원의 정수다. 졸졸 흐르는 계류를 따라 꽃밭과 다리가 어우러진 산책로를 회유하자니 태평세상의 주인 같다. 3600평에 걸친 일본정원은 아늑하면서도 발랄하고 현대적인 세련미를 갖추고 이번 여행의 느낌표를 찍어주었다.
일본정원에서 동쪽으로 200m가량 걸으면 후쿠오카성터다. 1607년에 완공된 성터는 석벽이 튼튼하기로 유명해 세키성(石城)으로 불린다. 근대화가 시작되는 1871년부터 점차 허물어져 지금은 성터(전망대)와 일부 석벽, 무기고 건물만 남아 있다. 성내 전망대인 천수대(天守台)는 후쿠오카 주오구(中央區, 하카타 도심의 서쪽)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외적을 조망하던 성루로 각(閣)이 없다. 붉은 색으로 위용 넘치고 화려지게 지었다가 소실됐다는 설과 원래 지대가 높아 굳이 각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는 설이 전한다.
성 근처에는 후쿠오카시립미술관과 이 곳의 ‘센트럴파크’이자 소풍 장소로 사랑받는 마이츠루(舞鶴)공원이 있다. 성터 입구로 올라 벚꽃이 만개한 마이즈루공원을 거쳐 아카사카(赤坂)로 내려가는 산책로를 이 곳 시민들이 아낀다. 성터 입구에는 조그마한 연못에 수련이 예쁘고 길 건너에는 전범들의 위패를 모신 고코구(護國)신사가 음산하게 자리잡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라는 카페비미(美美)도 있으니 여성과 동행하면 꼭 챙겨줘야 한다. 예멘과 에티오피아 원두를 주문 즉시 융 드립으로 내려 서비스한다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 숙소로 돌아와 캐널시티에서 좀 떨어진 재래시장 내 나가하마케(長兵家)란 돈코츠라멘집에서 마지막 식사로 늦은 점심을 했다. 돈코츠라멘은 뼈가 붙어 있는 돼지고기(돈코츠)와 무·곤약 등을 소주·된장·흑설탕 등으로 푹 끓인 라면으로 가고시마현(鹿兒島)의 향토요리다. 요리해설가 백종원 씨가 방송해서 소개했다고 해서 가봤다. 양은 푸짐했다. 깊은 맛이나 미적 포인트는 드물었는데 돼지국물이라 그런 가 싶다. 서운해서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려고 하카타역 안근 전문점을 헤맸다. 세일한다고 해도 워낙 일본 물가가 세다보니 한국 인터넷몰에서 사는 것보다 비쌌다. 시간 낭비였다. 후쿠오카공항엔 의외로 명품 브랜드나 가성비 좋은 상품이 없었다. 늘 그렇듯 양주를 면세로 사고 귀국길에 오르니 지난 3박4일의 여정이 아스라히 포말처럼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