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의 제일 큰 섬 빅아일랜드
2015-05-10 17:30:35
눈이 행복한 곳, 하와이는 느긋해져야 화가 나지 않는다
하와이 오하우에서 5박 후 새벽에 도착한 빅아일랜드의 공항. 빅아일랜드는 제주도의 8배 크기로 섬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광활했다. 두 곳의 공항 중 비행시간 여건 상 동쪽공항인 힐로공항으로 갔다. 우리가 묵을 힐튼호텔까지 차로 두 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간단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지방공항답게 단출한 식당에서 아침식사와 커피를 시켜먹는데 짐이 워낙에 많은지라 밖에 세워뒀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바로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데다 근처에 무장경비원도 있으니 별 걱정하지 않았다. 일행 중 한명이 짐에서 뭘 꺼내려하자 그 경비원은 총에 손을 얹은 채로 네 짐이 맞냐고 물어볼 정도로 경비가 삼엄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명승지인 계곡과 폭포를 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는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빗속에서 북쪽을 돌아 서쪽으로 가는 내리막길은 여기가 만주벌판인가 싶을 정도로 광활했다. 한참을 달려도 변하지 않는 풍경에 눈이 익숙해질 무렵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떴다. 평생 처음 무지개의 끝이 땅에서 시작되는 걸 봤다. 왠지 그 무지개가 시작되는 땅을 파보면 보물이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 떠올랐다. 여행하는 마음의 여유 속에서 처음 본 무지개 풍경에 눈이 한참이나 호강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머리속에 각인될 것이다.
숙소에 도착한 뒤 또다시 발생한 고질적인 문제는 숙소의 방 정리가 덜 되었다는 것이다. 방 네 개 중 하나만 한 시간 뒤에 나왔다. 나머지는 두 시간 이상 걸려서야 나왔다. 한국사람들처럼 절대 빠르고 친절한 응대 따위는 없는 미국사람들. 그들은 ‘난 시킨 것만 해’라는 식의 행동으로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들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마카오에 갔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마카오에선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간식 제공과 방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등 적극적인 응대로 여행 내내 기분이 좋았지만 이들은 사람이 아닌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 자동응답기에서 나오는 듯한 똑같은 대답과 무표정한 얼굴.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하는 속마음이 읽혀지는 그들의 모습에 ‘왜 돈 써가면서 이런 대접을 받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짜증이 났던 두 시간이 지나고 모노레일을 탔다. 숙소는 리셉션에서 3번째 정거장에 위치했다. 모노레일과 보트 중 선택해서 탈 수 있지만 모노레일은 더 자주 오는 데다 인원도 넉넉하게 탈 수 있어 더 선호된다. 방을 배정받은 뒤 창문을 활짝 열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바다의 색이 잔디와 어우러져 색의 조합이 빗속을 뚫고 왔던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섬 서쪽은 대부분 날씨가 맑고, 동쪽은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었다.

이 섬에선 멀리 가지 말고 리조트 안에서 놀자는 주장과 그래도 여행인데 관광을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관광은 해야하지만 관광에 찌들려서 피곤하게끔 돌아다니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봐야지, 저것도 봐야지 하다보니 몇 군데 더 들리기로 했다.
화산섬이니 화산을 가보기로 했다. 화산이 흘러내린 자리와 아직도 수증기를 뿜어내는 유황냄새 가득한 화산은 가볼 만 했다. 크진 않지만 아이들에게 자료를 준 박물관에도 들렸다. 박물관 안엔 과학적인 자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섬과 관련된 전설을 설명해 아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갔다.

거북이들이 살고 있는 검은모래바닷가에는 거북이들이 줄지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이 바닷가는 화산재로 이뤄졌는데 꽤나 고운 모래였다. 신기함에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래를 가져나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나중에 보니 병에 담아 팔기는 했지만. 우리는 점심을 싸가져간 도시락으로 먹는데 원주민들은 차에 차양과 그릴 등을 바리바리 싣고 와 점심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리조트 안에서는 거북이가 살고 있는 바다와 연결된 인공호가 있었다. 아이들에 맞게 물가는 깊이가 얕지만 조금만 나가면 깊이가 깊어져 다이빙하기에 괜찮았다. 깊어봐야 3m도 안되는 곳이지만 다이빙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 정도는 됐다. 거북이를 찾아 인공호를 뒤지다 보니 폭포 아래가 거북이들의 집이었다. 거북이들은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와서 발로 툭툭 치고 가고는 했다. 폭포에서 생기는 기포에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 갑자기 눈앞에 거북이가 나타나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거북이들은 그런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자연보호가 생활화된 곳이라서 그런지 새들까지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야외 뷔페 식당에 새들이 유리창 등에 다칠까봐 그물을 쳐 놓은 곳 사이로 새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다니는 걸 보면 말이다. 이 곳 옆에는 돌고래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건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관계로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는데 아이들은 그게 많이 아쉬웠나보다. 돌고래 인형 두 마리가 아이 침대에 같이 있는 걸 보면.
돌아오는 길은 여행의 끝이 그렇듯 아쉬웠다. 날짜변경선을 다시 지나기 때문에 갑자기 하루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올 때 하루를 번 느낌만큼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갈 때는 뒷바람이 시속 100㎞ 이상으로 불어줘 더 빨리 오지만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이 돼 1시간 반 정도 더 걸린다. 한국에 도착하면 저녁 6시여서 시차적응을 위해서라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11시간 정도를 뜬눈으로 버텼다.
이코노미 좌석은 앞자리 사람이 뒤로 젖히면 뒷사람이 불편한 것은 당연지사다. 오랜 시간 가야 하니 약간 접히는 건 상관없지만 천연덕스럽게 끝까지 밀어대는 사람들은 꼭 있다. 렌트라는 개념을 한시적 소유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특성답게 내 앞자리 아주머니 한 분이 뒤로 밀었다. 자기 옆 아이의 좌석도 뒤로 끝까지 밀었다. 모니터가 의자에 달려 있다보니 그렇게 젖혀대면 모니터를 보기도 불편해진다. 좋은 말로 좌석이 좁으니 좀 앞으로 당겨달라 부탁했다. 면도를 안한 얼굴에 인상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는지 얼른 자리를 원위치 시켰지만 나중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럴 것 같아 뒤로 많이 넘어오지 못하게 책을 미리 끼워둬 그전처럼 무릎이 닿는 불상사는 없었다.
떠나는 인천공항은 설레임으로 다가오지만 도착할 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여행은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를 제외하면 참 좋았다. 다음 여행 땐 같은 돈을 쓰더라도 잘 쉬고 잘 대접받고 오고 싶다는 게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래서 다음엔 우리가 ‘갑질’할 수 있는 ‘세부’나 ‘발리’로 가기로 했다.
현정석 기자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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