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장인어른의 칠순잔치 대신에 여행을 가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평생 한 번이니 조금 멀리 가자는 의견이 대세여서 결정한 곳은 하와이였다. 국적기로 가게 되면 비행기값만 1인당 150만원이라는 결코 싸지 않은 여행경비에 그 때부터 네 가족은 14명의 여행자금마련을 위해 적금을 들었다.
다들 틀에 박힌 여행은 피하자며 비행기표 예약부터 호텔, 이동수단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국적기를 포기하는 대신 하와이안항공을 택했다. 가격이 80만원대로 저렴한 데다 하와이 중심지인 호놀룰루(오아후섬)에서 빅아일랜드로 이동할 때 할인 혜택까지 준다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인천공항에선 ‘기타’ 해외국적 비행기로 취급받아서인지 전차를 타고 게이트로 이동해야 했다. 비행기 이륙시간도 자기들 편의에 따라 좌지우지돼 그나마 지연했으면 다행일 텐데 오히려 앞당겨서 잘못하면 못탈 뻔했다.
하와이에 도착해서는 이동에 대한 문제가 가장 컸다. 14명이 동시에 움직이려니 가이드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짐이 20개나 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호텔까지만 기사가 딸린 미니버스를 예약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해본 결과 번화한 곳에서는 트롤리버스를 타고, 조금 멀리 나갈 경우에는 차를 렌트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와이의 주도 오아후에서 5일, 빅아일랜드에서 3일 묵었다. 오아후에서는 힐튼호텔에서 4일, 새벽비행기를 타고 빅아일랜드로 이동하는 전날에는 저렴한 방에서 숙박했다. 빅아일랜드에서도 힐튼호텔에 보냈다. 두 힐튼호텔은 수영장·인공염호 해수욕장 등 휴양시설이 다양하고 호텔단지 내 쇼핑이나 식사가 여유로워 가족여행에 괜찮은 편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불꽃놀이를 즐겼다. 아름다운 광경에 넋이 나갔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다른 것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6살짜리 조카 하나가 인파에 휩쓸려 사라지자 가족들 모두 흩어져 찾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20분쯤 지났을 때 조카가 어느 외국인 여자품에 안겨 있는 걸 봤다. 그 여자는 가족이 맞냐 물어보고는 경비원에게 말하고 데려가라 했다. 자기가 신고했기 때문에 그들이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첫번째 미아 발생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물론 미아발생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은 트롤리버스로 쇼핑과 맛집 기행을 했다. 맛집 대부분은 변형된 일식이었다. 무수비라고 불리는 김으로 싼 밥이 저렴했지만 야채나 반찬이 없이 먹는 식습관은 낯설었다. 원주민 대부분이 비정상적인 과체중인게 이해됐다. 고기와 쌀로 대부분 끼니를 때우는 그들의 식사는 우리에겐 의외로 고역이었다. 짜고 단 스타일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기에 가져간 컵라면으로 우리의 미각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컵라면과 짜장범벅은 당분간 입에 대지 않을 생각이다.
다들 바닷가에서 고기를 사다가 구워먹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원주민들은 대부분 밴을 가지고 있어 그릴이나 차양을 가지고 왔지만 우린 저렴한 그릴 하나만 구입했다. 14명이 먹어야 하니 너무 작은 건 피하자고 해서 그럴 듯 한 걸 골랐는데도 가격이 50달러가 안 됐다. 국내서는 20만원하는 괜찮은 물건이었다.
호텔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자리를 잡고 육류를 포식했다. 어두워지고 짐을 정리하려는 데 또다른 조카 하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필자는 “이쪽이에요”라고 먼발치서 말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미심쩍어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주차장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니 다른 동양계 사람들과 아이가 섞여 있었다.
모처럼 동양계 사람들이 우르르 이동하니까 아이가 가족 일행인 줄 알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따라간 거였다. 이 조카는 11살이어서 엄마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다만 외국이라 한국국가번호를 눌러야 한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 이 때문에 다들 휴대폰을 로밍해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이는 물론 어른도 일행을 놓쳐 헤매는 사태가 이날로 끝나지 않았다. 다들 영화 ‘나 홀로 집에’서 엄마가 주인공인 케빈을 잃어버리고 여행을 떠난 것에 대해 격하게 공감하게 됐다. 을 하고 있었다.
3일 째 되는 날 7인승 다목적 밴을 두 대를 빌렸다. 여행 가기 전 이미 운전할 남자들 넷은 국제운전면허증까지 받은 터라 운전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한국어가 지원되는 네비게이션도 있으니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네비게이션(그들은 GPS라 부른다)은 빠른 의사결정을 해주질 못했고 우린 도로표지판과 지도를 봐가며 운전해야만 했다.
관광지를 찾아갈 땐 대부분 두 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하지만 길이 복잡하지 않고 차량이 적은 시간대에 이동하니 운전하는 맛도 쏠쏠했다. 다이아몬드헤드로 가는 길은 드라이브코스로 꽤 좋았다.
이날 하와이에 대한 인상이 나빠진 것은 매표소 주차장 여직원의 고압적 자세였다. 자기들은 미국인이고 조그마한 동양인에 대한 멸시라는 느낌일까.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리 없어. 밖에 세워”. 나는 그녀에게 혹시 화난 거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주차장 안에 들어가 저 줄 뒤에 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와이의 관광서비스 종사자들은 동남아 등에서 대부분 들을 수 있는 sir나 ma`am이라는 호칭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와이 여행에서 가장 옥의 티라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관공서나 공항에서의 고압적인 자세는 영 거슬렸다.
렌트카 대신 트롤리버스로 14명이 이동하는 게 비용은 싸게 먹히지만 어른 8명에 아이들 6명의 이동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게다가 짐도 큰 건 들고 탈 수 없었다. 버스를 택한 것은 경비를 줄이는 만큼 몸의 피로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간과한 실수였다.
오아후는 하와이에서 제일 큰섬은 아니지만 호놀룰루가 있는 가장 번화한 섬이다. 번잡스러운 큰 휴양지가 싫었던 우리는 동네주민만 이용하는 작은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 다 합해야 20명 남짓 밖에 없던 바닷가에 우리는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인들의 특성상 자신의 사유지는 아니지만 자기집 앞에 타인이 와 노는 것을 프라이버시 침해라 생각하고 경찰을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는 미리 그곳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젊은 집주인은 나무가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부탁했다.
오기 전에 미리 구매한 스노클링 장비는 가격 대비 성능이 훌륭했다. 수경과 스노클, 핀을 가지고 수영하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해 레스큐다이버와 응급처치강사까지 딴 나로서는 다이빙을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장비들로 실컷 달랬다. 너무나 고운 모래에 해변 가까운 곳에서는 시야가 혼탁하지만 조금만 나가면 물고기와 거북이를 구경할 수 있었다. 괌에서 만났던 거북이나 상어는 사람을 피하기 바빴는데 하와이의 거북이는 사람과 친숙해서인지 가까이 다가와서 쳐다보곤 했다.
빅아일랜드로 가기 전날 우리는 김치찌개를 해먹기로 결정했다. 숙소는 방이 세 개인 제일 큰 곳을 빌렸다. 쇼파베드까지 있는 곳이어서 다들 몇 시간 눈 붙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소주와 함께 먹는 해외여행 4일째날의 김치찌개 맛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새벽에 빅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하우에서 산 그릴도 함께. 물론 이 그릴은 한국까지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