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빛 청풍호 뱃길 130리 ‘옥순봉’ ‘구담동’ … 삼한시대의 고즈넉함 ‘의림지’
2020-12-15 20:17:09
충주댐으로 수몰될뻔 했던 유산 모은 ‘청풍문화재단지’ … 한벽루·팔영루·금병헌 살린 미니 민속촌
충북 제천은 예부터 청풍명월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깨끗한 물과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한다. 벚꽃 만발한 청풍호의 봄빛, 마음마저 평안해지는 의림지, 옥순봉의 기암괴석 등이 발길을 끈다.

제천은 월악산의 약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월악산은 충북 제천시, 단양군, 충주시, 경북도 문경시에 걸쳐 있다. 월악산 자락의 물이 담긴 게 청풍호다. 제천의 중앙을 가로지는 게 충추호의 한 구간인 청풍호이고 청풍호를 향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반도처럼 튀어나온 게 비봉산이다. 이를 아우르는 청풍면은 제천의 가운데 토막을 차지한다.
청풍호반에는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길이 2.3km의 케이블카가 있다. 비봉산은 청풍호 중앙에 위치한 해발 513m의 아담한 산이다. 여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청풍호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산줄기와 짙고 푸른 청풍호의 물빛이 어우러져 황홀감을 준다.
요즘엔 카약, 번지점프를 즐기는 레포츠 천국으로도 탈바꿈했다. 여름엔 무려 162m 높이로 쏘아올리는 수경분수가 장관을 연출한다.
청풍호와 어우러지는 장관으로 또하나가 더 있다. 옥순봉(玉筍峰)과 구담봉(龜潭峰)이다. 둘 다 제천시 수산면에 속해 있다. 구담봉은 기암절벽의 암형이 거북을 닮았고 물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순봉은 희고 푸른 아름다운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는 뜻이다.
옥순봉은 조선 초 청풍군(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는데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단양 태생 기녀 두향이 1548년 퇴계에게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청풍군수를 이를 거절했고 퇴계가 옥순봉이란 이름을 붙이고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겼다고 한다. 비록 제천 땅이지만 단양으로 가는 관문이니 위로를 삼으라는 얘기다. 옥순봉이 단양팔경으로 더 알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기 두향은 풍기군수로 전임한 퇴계 이황을 그리면서 옥순봉 옆 강선대(降仙臺) 아래에 초막을 짓고 살다가 죽으면서 이곳에 묻어 달라 했다. 사후 관기들이 강선대에 오르면 반드시 제주 한 잔을 그의 무덤에 올렸다 하며, 충주댐 수몰로 지금은 강선대 위 양지바른 산에 이장하여 매년 넋을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다.
정조 때 1792년 12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연풍현(지금의 괴산군 연풍면)의 현감으로 지내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는 파직된 이듬해인 병진년 봄에 그린 병진년(1796년) 화첩 20폭 중 첫째 그림으로 ‘옥순봉도’(보물 782호)를 남겼다. 그림 오른쪽 아래 구석에 조각배에 앉은 두 선비를 그렸는데 하나는 바로 자신일 것이다. 단원은 단양팔경인 도담삼봉, 사인암도 이 무렵에 그렸다. 옥순봉 그림은 병진년 화첩 말고도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옥순봉도’에도 남아있다.
제천 청풍호는 크게 보면 결국 충주호의 동쪽 부분이다. 옥순봉을 제대로 보내면 청풍 문화재단지의 청풍나루나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소재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야 한다. 구담봉과 옥순봉 등을 돌아보고 원대 복귀하는 코스다. 약 1시간 간격이고 손님이 많으면 더 자주 출발한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해발 286m의 옥순봉의 높이는 댐 수위 기준으로 130m t수준으로 낮아졌다. 과거 김홍도가 그림을 그릴 때에는 금강산의 미니어처(소금강이란 별칭도 있었음)처럼 뾰족해 단원은 고개가 아프도록 옥순봉을 치올려봤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를 상상할 수가 없다. 퇴계가 남긴 단구동문 휘호도 물속에 잠겨 이제 볼 수 없다. 옥순봉을 보려면 옥순대교 건너 옥순봉 쉼터로 가면 된다.
직접 등산하려면 단양과 제천 경계인 계란재 지킴터에서 시작한다. 왼쪽(서쪽)은 옥순봉, 오른쪽(동쪽)은 구담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계란재에서 옥순봉까지는 2.3km 구간으로 구담봉을 경유하면 총 거리가 5.8km로 늘어난다. 겨울산행으로 많이 선호된다. 그러나 길이는 짧지만 가파른 길이라 숨이 헉헉 차오른다. 안전사고도 우려되므로 조심해야 하다.
이 때문에 요즘 많이 찾는 편한 관광코스가 청풍문화재단지이다. 1978년 6월에 시작돼 1985년 10월에 준공된 충주댐 때문에 수몰될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6000평의 부지 위에 원형대로 옮겨 놓은 곳이다.
청풍문화재단지에는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 문화재 9점(팔영루(八詠樓), 금남루(錦南樓), 금병헌(錦屛軒 청풍 관아), 응청각(凝淸閣 관아의 누각), 청풍향교, 고가 4채), 지석묘·문인석·비석 등을 포함해 총 43점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제천의 상징은 뭐니뭐니 해도 의림지(義林池)이다. 고대 수리시설의 하나로 당시 부족했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제 벽골제(碧骨堤), 밀양 수산제(守山堤)와 함께 3대 고대 수리시설로 꼽힌다. 하지만 이 중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의림지 하나 뿐이다. 저수지 가장 자리를 걷는 즐거움과 가운데 섬이 주는 노스탤지어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두 번째 천주교 신부 최양업 ‘배론 순교성지’ … 금수산과 청풍호의 조화 ‘정방사’
제천에는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가며 봉양읍 구학리로 숨어 들어와 신앙을 키워나갔다. 험준한 계곡 사이에 끼인 마을로 마을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 하여 배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신자가 아닌 사람도 한번쯤 들르게 되는 숨겨진 명소로 자리잡았다.
제천의 대표적인 사찰은 금수산(錦繡山) 자락의 정방사(淨芳寺, 수산면 능강리)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법주사의 말사이다. 정방사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청풍호와 이를 둘러싼 산하가 환하다. 고즈넉하면서도 확 트인 조망을 즐길 멋진 포인트다.
금수산의 본래 이름은 백운산이었으나 퇴계 이황이 아름다운 경치가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하여 금수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가을 경치가 빼어난 바위산으로 크게 보면 월악산의 가장 북단에 속한다.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금성면 성내리,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걸쳐 있다.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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