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을 가다 … 동 루이 1세 다리가 보이는 도우루강변서 바칼라우 요리
2016-07-08 18:57:21
포트와인의 본고장·클레리구스 종탑·렐루서점·볼샤궁전 ‘아랍방’ 인상적
2014년 봄에 방영된 ‘꽃보다 할배’에서 스페인이 중점 소개되면서 새삼 부각됐지만 그 옆의 조용한 나라 ‘포르투갈’은 여전히 생소한 나라다.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박지성의 인상적인 골이 포르투갈 전에서 나왔고, 루이스 피구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게 웬만한 한국인들이 포르투갈을 기억하는 전부다. 하지만 최근 포르투갈이 번잡한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색다른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포르투갈(Portugal, 정식명칭은 Republic of Portugal)은 15세기 바다를 누비며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브라질, 마카오 등을 식민지화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조총을 팔고 사용법을 가르쳐줬던 장본인이 포르투갈 상인이기도 하다. 포트와인과 그린와인(그린화이트와인)이 특색이고 제로니무스수도원 등 15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남서부의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에 돌출한 이베리아반도(Iberia Peninsula)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2에 수준이고 인구도 1050만명에 그쳐 대항해시대의 번영기와는 사뭇 위축된 느낌이다. 공용어로 포르투갈어를 쓰며, 국민의 80% 남짓이 가톨릭 신자다.
포르투갈은 지중해성 기후로 유럽 국가 중에서도 연중 가장 온화한 편이다. 포르투갈 본토의 연 평균 온도는 13~18도, 겨울철이라고 해봐야 평균 8.9~14.8도다. 겨울철 월평균 강수일수는 14일로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초 여행에선 이렇다할 비를 맞지 않고 무난한 날씨 속에서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포르투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13년도 여름, 회사에서 장기근속휴가를 받아 스페인을 11박 13일로 다녀왔을 때 포르투갈에서 2박을 했다. 대다수 대한민국 여행객이 나처럼 포르투갈은 스페인 갈 때 ‘잠깐 들르는 나라’ 정도로 생각한다.
3년전에 좋았던 느낌으로 2년만에 다시 찾으니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바로 접경하고 있음에도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됐다. 색깔로 비교해보면 스페인은 강렬하고 선명한 유채색, 포르투갈은 은은한 무채색 같다. 여행하다 만나는 양국인은 모두 친절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고 화려하며 열정이 넘친다면, 포르투갈 사람들은 조용하고, 시골스럽다.
국내서 포르투갈까지 가는 직행편이 없는 관계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파리를 경유해 16시간 40여분만에 리스본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에는 리스본, 포르투, 파루, 마데이라 등에 국제공항이 있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포르투다. 만약 다른 유럽국가를 경유해 포르투에 가고 싶다면 저가항공사 비행편을 이용하는 게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촉박한 여행 준비기간에 파리에서 포르투로 직항하는 비행기편을 알아보기도 힘들었거니와 포르투공항에서 포르투 도심으로 이동하는 데 45분 이상 소요된다는 정보에 포기하고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내려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포르투로 이동하기로 했다.
리스본공항역에서 출발하는 메트로(지하철)를 타고 오리엔테역(약 10분 소요)으로 가면 기차나 버스(Renex)를 이용할 수 있다. 버스는 1인당 20유로로 기차(2등석 24.3유로)보다 저렴하다. 기차는 포르투 캄파냐(Campanha)역에서 내려 환승해 메트로로 포르투의 중심지인 상벤투(sao bento)역에 내려야 한다. 버스는 환승이 필요 없는 대신 약 3시간 30분이 소요돼 기차보다 30~60분이 더 걸리고 정거장이 상벤투보다 도심으로부터 도보로 20분 가량 먼 거리에 있는 게 단점이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늦은 밤 포르투에 도착했다. 포르투는 포트와인으로 유명한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며, 역사적으로 포르투갈이라는 국가명이 탄생했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포르투의 상벤투역,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이 포함된 도우루(Douro)강 어귀의 포르투 역사지구(Centro Historico do Porto)는 기원전 8세기부터 사람들이 정착, 2000년 넘는 시간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유럽도시의 발달사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인정받아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역사지구에 위치한 건물들은 오랜 역사만큼 신고전주의,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시대별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 건물이 비교적 높낮이가 심한 구릉지대의 지형과 어우러져 미학적,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포르투 역사지구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어떻게 보면 도시 대부분이 포함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투의 빌라 노바 드 가이아의 일부인 칼레(라틴어, Cale)는 이미 타키투스시대(55∼120경)에 바이크셀강 하류에 정주하던 동(東)게르만계 부족인 고트족에게 ‘포르투칼레’(라틴어, Portucale)로 알려졌다. 포르투에 정박해 정착한 그리스에서 온 우두머리 고이델 글라스가 명명한 ‘포르토가텔루’(Portogatelo)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포르투가 포르투갈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포르투는 성탄절이 코앞이라서인지 거리마다 성탄절을 알리는 루미나리에가 도시를 환하게 밝히면서 우리를 환영했다. 포르투갈 북부에 위치한 포르투의 밤공기는 싸늘했지만, 도시 풍경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포르투에서 잡은 숙소는 상벤투역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소요되는 무브호텔(Moov hotel porto centre)이다. 1박 42유로하고 여인숙(Inn)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줄기차게 돌아다닐 목적의 관광객으로서야 잠자리야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다만 포르투는 길이 경사지고 우툴투둘한 포석이 깔려 있어 버스에 내려 캐리어를 끌고 숙소까지 이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12월 1일은 서울의 집에서 포르투의 호텔로 이동하는 데 다 보내고 다음날 드디오 밝은 낮에 포르투와 대면하는 일정이 시작됐다. 장시간의 이동에 따른 피로와 시차로 잠을 푹 자지 못한 탓에 새벽 6시에야 눈이 떠졌다.
아침 8시에 느지막하게 해가 뜨자 아침을 해결하고자 숙소를 나와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볼량시장(Mercado do Bolhao)으로 향했다. 19세기에 처음 문을 연 이래로 쉬지 않고 장사해왔다는데, 이른 아침부터 상인과 현지인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시장이 위치한 2층짜리 신고전주의 건물은 물건을 실어나르는 상인이 아니라면 시장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 역사만큼 멋스럽다. 1층에는 신선한 해산물, 치즈, 육류, 빵, 과일 가게가 있고, 2층에는 꽃가게가 주로 위치한다. 1층 초입에 위치한 과일가게에서 신선한 오렌지, 포도, 딸기 등을 9.85유로에 구입했다. ㎏이나 낱개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대형마트 탓에 전통시장은 예전만큼 규모가 크거나 활기차지는 않지만,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식재료를 사려는 현지인들에게 여전히 으뜸은 전통시장이다. 이 시장은 월~토 매일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5시에 닫는다. 단 토요일엔 오후 1시에 마감한다. 시장 입구 맞은 편에 위치한 오래된 빵집은 저렴하고 맛이 풍부해 아침부터 손님이들끓었다. 시내 중심지의 빵집이 단순히 달고 기름진 데 비해 은근한 맛이 깊다.
볼량역 앞 포르투 최대 번화가인 산타 카타리나 대로(Rua de Santa Catarina)에 위치한 ‘영혼들을 위한 예배당’이라는 이름의 예배당(Capela das Almas de Santa Catarina)이 있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푸른 타일로 덮인 대형 벽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18세기 초에 완공돼 1801년에 확장됐고, 타일 세공사 에두아르두 레이테(Eduardo Leite)가 1929년에 18세기에 유행하던 아줄레주(Azulejo, 주석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구운 포르투갈 특유의 푸른 빛 타일) 스타일을 모방해 작업함으로써 예배당 외관이 현재 모습을 갖게 됐다. 아줄레주는 아시시의 성프란시스쿠와 성녀 카테리나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다. 성녀 카타리나에게 헌정된 성당이기에 산타 카타리나 성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19세기에 완성된 아만디우 실바(Amandio Silva)의 파사드스테인드글라스도 유명하다. 내부 제단은 신고전주의 스타일이다.
이어 아침 9시반에 산타 카타리나 대로의 유명한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e)에 첫 번째 손님으로 들어섰다. 이 대로는 18세기 후반 보수작업을 마친 이후 대형 쇼핑센터인 비아 카타리나 쇼핑(Via Catarina Shopping)과 마제스틱 카페 등 수많은 상점과 맛집이 들어섰다. 약 1.5㎞로 상당히 길다.
카페 외관은 평범하지만 들어선 순간 역사를 거스르는 듯한 내부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유려한 곡선의 고풍스러운 몰딩, 초콜릿색 가죽의자, 커다란 거울이 로맨틱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이 카페는 포루투에서 제일 아름다운 카페로 꼽힌다. 트래블 웹진인 유시티가이즈(ucityguides)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톱10 중 6위를 차지했다. 카페 마제스틱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1921년 오픈한 이래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던 19세기말의 ‘벨 에포크(belle epoque)’를 추구하며 많은 예술가들과 역사를 함께 했던 카페라서 더 가치가 있다. 포르투 출신과 결혼했던 작가 조앤 롤링(J.K. Rowling)도 여기서 ‘해리 포터’의 첫 시리즈를 집필했다.
아침 일찍 에스프레소 커피를 한잔 즐기려는 커플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커피와 함께 이곳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포르투갈식 프렌치토스트 하바나다스를 시켰다. 계란을 입힌 빵에 포트와인을 넣어 졸인 커스터드 시럽을 뿌리고, 호두와 아몬드 등 견과류를 얹어 나오는 디저트다. 한 입 물면 달콤한 커스터드크림이 반숙으로 익힌 계란 노른자처럼 터져 나와 달달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반데이라극장(Teatro sa da bandeira), 테아트로(Teatro)호텔을 거쳐 1920~1940년대 건물들이 즐비한 포르투의 중심지 리베르다드 광장(Praca da Loberdade)에 도착했다. 광장 중앙에는 페드로 4세 동상(Dom Pedro Ⅳ)이 있고, 은행·여행사·관광안내소 등이 배치돼 있다. 광장 맨 위쪽에는 포르투 시청이 위치한다. 이 광장에 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맥도날드가 있는데,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은은한 조명의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고풍스럽다.
16세기 성 베네딕토 수도원 자리였던 상벤투역은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1900년 카를로스 1세가 당대 최고 건축가 마르케스 다 실바(Marques da Silba)와 화가 조르제 콜라스(Jorge Colaco)를 투입해 기차역으로 변모시켰다. 이 기차역은 이후 교통의 허브로 아줄레주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에 담긴 역사적 내용으로 유명하다. 아줄레주 벽화는 1905년부터 1916년까지 11년간 무려 2만장의 타일이 들어갔다. 그 위에는 1140년 레온 왕국와의 독립전쟁, 포르투갈의 시조인 아퐁수 1세(D. Afonso I), 주앙 1세와 그의 왕비인 필리파, 전투에서 승리한 항해왕 엔리케 왕자 등 포르투갈의 역사적 사건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포르투 대성당(Igreja de Santa Clara, Se do Porto)은 포르투의 제1성당으로 상벤투역에서 대각선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 위치한 엔리케 왕자의 청동 기마상을 지나면 건물 정면에 고딕 양식의 탑 두 개가 있는 성당이 있다. 12세기 로마네스크풍으로 건축되었으나, 개축되면서 성당 곳곳은 여러 풍이 혼재됐다. 파사드의 고딕 장미 창문은 초기 건축 이후 변형되지 않은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당의 탑은 13세기 당시 건축된 고딕 양식을 간직하고 있고, 회랑은 14세기에 지어졌으며 18세기 아줄레주로 장식해 아름답다. 주 예배당과 은으로 된 제단은 18세기에 확장됐다. 성구 보관실의 니콜라우 니소니(Nicolau Nasoni)의 바로크 프레스코화는 화려하다. 성당 앞 광장에 세워져 있는 정교한 기둥 페로우리뇨(Pelourinho)는 죄인과 노예를 묶어 놓고 매질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뒤쪽 배경으로 도우루 강변(Cais da Ribeira 히베리아)이 나온다.
성당을 나와 렐루서점으로 향하는 길에 포르투를 대표하는 76m 높이의 바로크 양식의 클레리구스 성당과 종탑(Igreja e Torre dos Clerigo & Tower)이 보인다. 18세기 초반 한 성직자(클레리구스, 영어로 Clergy) 형제가 의뢰해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니콜라우 나소니가 설계했다. 성당은 1732년에 시작돼 1749년에 완공됐다. 탑은 1763년에 지어졌다. 성당은 도금된 목재 조각으로 장식된 타원형 신도석으로 유명하며, 4가지 색의 대리석으로 제작된 로코코풍의 제단 또한 볼거리다.
성당과 탑을 설계한 나소니는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태어나, 포르투 대성당 주교들의 초청을 받아 포르투에 이주해온 이후로 포르투 대성당의 프레스코화를 시작으로 화가겸 장식가로써 활동하였다. 그는 이 작업에 무보수로 작업에 참여했을 만큼 작업에 애정이 컸다. 죽기 전에 이 성당에 묻히는 게 소원이라고 하여 이곳에 묻혔는데 그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240개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오르면 탑에 도달한다. 직접 올라가진 않았지만 포르투 시내 전경이 멋져 매년 12만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렐루서점(Livraria Lello)은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1906년 개업한 이곳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아르 누보(Art Nouveau)풍으로 건축됐다.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영감을 얻어 석회에 페인트칠 한 붉은 계단, 서점의 모토인 ‘노동의 존엄성(Decus in Labore)’이 새겨진 천장 스테인글라스는 이 서점의 상징이다. 방문객이 구매자보다 많다 보니 2015년 8월부터 입장료(1인당 3유로)를 받고 있는데, 책을 구입하면 입장료만큼 깎아준다. 대부분의 책은 포르투갈어로 읽기 어렵거나 영어 원서로 비싼데 아동도서(그림책)은 6~10유로 안팎이라서 기념품 삼아 구입하면 무난하다.
서점을 나오니 근처에 카르무성당(Igreja da Nossa Senhora do Carmo das Carmelitas)이 보인다. 16세기에 조직된 ‘맨발의 카르멜회’ 종파는 다른 종파의 견제로 포르투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포르투 총독의 집에 머물며 열렬한 지지자인 여류 시인 베르나다 데 라세르다(Bernada de Lacerda)의 도움으로 포르투에 뿌리를 내리고 카르무성당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성당의 주춧돌은 1619년 5월 5일에 놓여 귀족과 시의회의 지원으로 1622년 완공됐다. 성당 옆면의 아줄레주가 아름답고 내부의 황금빛 장식이 화려하다. 성당 앞에 포르투대학 입구에 해당하는 분수 광장이 있고 인근에 주앙샤가스공원(Jardim de Joao Chagas)도 있다. 잠시 쉴 수 있기에 적당한 명소다.
이어 히베리아 지구로 가기 전에 볼사궁전(Placio da Bolsa)으로 향했다.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볼사궁전은 원래 성프란시스코 성당에 속한 수도원이었는데 1832년 전쟁 중 화재로 폐허가 됐다. 1841년에 마리(Mary) 2세 여왕은 재정적인 문제로 수도원 대신 상업조합 건물을 짓기로 하고 기부받았다. 한때 주식거래소, 와인거래소, 상공회의소로 사용됐고, 현재는 포르투를 찾는 여러 나라 수장들을 맞이하거나, 결혼식 등 행사장으로 시민에게 대여되고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오후 관람 일정의 경우 2시부터 5시반까지만 진행된다. 건물 2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포르투갈과 무역거래를 하던 나라들을 묘사한 회화 작품과 각 국가문장이 새겨진 국가들의 방(Patio das Nacoes)이 있다. 일본은 있는데 한국은 없다. 천장은 유리와 철로 이뤄진 직사각 돔 형태다. 볼사궁전의 하이라이트는 아랍 방(Arab Room)으로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Alhambra)을 모델로 했다. 18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대부분이 금인 벽 장식과 아랍문양은 화려하다. 목조로서 음향이 은은한 까닭에 지금은 기업이나 상류층을 위한 소규모 클래식 공연의 콘서트홀로 사용된다고 한다.
포르투에서 포르투대성당이 가장 크긴 하지만 볼사궁전 인근의 상프란시스쿠성당(Igreja Monumento de Sao Francisco)은 1910년 국보로 지정된 만큼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1244년에 세워져 1383년 페르디난두 1세의 명령으로 확장됐다. 고딕 양식의 전형이며 실내장식은 18세기에 바로크풍 유행에 따라 크게 바뀌었다. 일정에 쫓기어 목전에 두고도 들어가진 못했다.
포르투는 도시가 아담해 웬만한 곳은 도보로 관광할 수 있다. 볼사궁전 매표소에서 패키지로 궁전 관람에 크루즈를 타거나 와이너리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살 수 있다.
도우루강변의 히베이라 광장(Praca da Ribeira)은 선착장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공간에 놓인 완충지대다. 강변을 사이에 도심 쪽은 바이샤&히베이라 지역이라 부르고, 건너편 유명 와이너리가 밀집한 곳은 빌라 노바 드 가이아지역이다.
도우루강변 양쪽에는 수십개의 노천카페와 맛집이 있다. 증축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는 길이 172m의 동루이 1세 다리(Ponte LuisⅠ)는 아치가 아름답다. 1층에는 자동차가, 2층에는 트램이 다닌다. 1, 2층 모두 보행자 도로가 있어서 걸어다니며 보는 풍광이 멋지다. 낮과 밤에 보는 풍경의 느낌이 사뭇 다른 것도 이 다리의 매력이다. 이 다리는 에펠탑으로 유명한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Gustav Eiffel)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Teophile Seyrig)가 설계했다.
동루이 1세 다리를 건너 도우루와인(포르투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와이너리 투어 지역으로 건너갔다. 비수기인 겨울이라 관광객이 드물다. 볼사궁전에서 구입한 티켓으로 ‘도우루 아줄’(Douro Azul) 유람선에 올랐다. 크루즈 선착장에는 옛날 영국으로 포르투와인을 실어 나르던 운송선을 개조한 ‘라벨로(Rabelo)’ 유람선도 보인다.
다국어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약 50분 동안 유람선을 타고 동쪽으로 갔다가 반환점을 돌아 해가 지는 서쪽 끝(대서양)으로 갔다가 다시 선착장에 내렸다. 좁은 강폭에 양측 강변에 다소 수직으로 늘어선 오래된 건물과 레스토랑, 와이너리를 보니 입체적이면서도 정겨운 느낌이다. 6개 다리(동루이스1세, 마리아 피아, 인판테, 상주앙, 프레이소, 아라비다)도 나름 특색이 있다. 이 강변을 따라 포르투와인을 대서양을 통해 영국 등으로 실어날랐다니 와인이 담긴 오크통을 실어나르던 인부들과 돈버는 재미가 쏠쏠했던 상인들이 떠오른다. 당시 대상(大商)들이 볼샤궁전을 지배하면서 와인 거래를 좌지우지했다.
겨울이라 오후 5시가 되자 해가 지면서 싸늘한 바람이 분다. 크루즈 투어가 끝나고 바로 와이너리를 투어하기 위해 물색하다가 테일러(Taylor) 와이너리로 향했다. 입장료는 1인당 5유로. 이곳엔 이밖에도 샌드맨(Sandman), 그라함(Graham), 카렘(Calem), 오플리(Offley), 크로프트(Croft), 도우(Dow), 라모스 핀토(Ramos Pinto)등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다.
테일러 와이너리 투어는 40여분 와이너리 역사, 특징, 재배 및 제조과정, 저장 중인 와인 종류와 특징 등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12월에는 1인당 입장료가 5유로였는데 최근 7유로로 올랐다.
투어를 끝내니 해가 져 캄캄하다. 저녁에 동루이스1세 다리의 2층에서 본 풍경은 오후 풍경과 사뭇 다르다. 아침 꼭두새벽에 점심을 과일과 과자로 때우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더니 시장하다. 도우루강변의 풍경이 놓치기 아까워서 히베리아지구 강변에서도 뷰가 좋은 레스토랑인 쉐라팡(Chez Lapin)으로 향했다. 쌀쌀하지만 운치있게 야외 테라스에서 포크를 잡기로 했다.
포르투갈은 테이블에 앉으면 웨이터가 쿠베르트(Cuvert)라고 불리는 빵, 올리브, 치즈로 구성된 세트를 갖다 놓는다. 에피타이저라 하기는 뭐하고 시장기를 달래는 식전 주전부리 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별도로 요금을 받으니 먹기 싫으면 놔두거나 치워달라고 하면 된다.
쉐라팡은 30년 전 요식업으로 시작한 가족기업 이시모의 대표적 레스토랑 중 하나다. 웨이터 추천을 받아 문어(Polvo), 대구(Bacalhau)로 조리한 포르투갈 대표적인 요리를 시켰다. 따근하고 양 많은 고품질 올리브오일 속에 오븐에 구은 감자와 신선한 해산물이 잘 어우러졌다. 식감이 부드럽고 충만한 풍미가 입가에 감돈다. 배가 고팠으니 한층 맛있게 느껴질 수밖에. 현지의 그린화이트와인(PLANALTO)과 함께 주문했다. 도우루강과 동루이 1세 다리의 풍경, 맛있는 음식에 매료되어 포르투의 하루 일정을 행복하게 끝냈다. 포르투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푸근함을 간직한 도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강변길에 ‘바르카스 다리(Ponte das Barcas)의 비극’이 빚어진 장소라는 동판이 보인다. 1809년 3월 29일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의 하중을 다리가 견디지 못해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슬픈 얘기다. 아름다운 도시의 비극적인 사연이 그 아름다움을 깊게 한다.
황영기 여행칼럼니스트 zerotwo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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