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9 11:44:37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들이 백신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출처=SK바이오사이언스
국내 ‘자궁경부암 백신’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MSD는의 ‘가다실9프리필드시린지’의 가격 인상이 7월부터 기존 13만4470원에서 14만5900원으로 8.5% 인상될 예정이다. 지난해 4월 공급 가격을 15% 올린 지 약 1년 만에 이뤄지는 추가 인상이다.
가다실9은 자궁경부암 발생의 70%를 차지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16형과 18형을 98% 이상 차단하며 6형과 11형도 예방하는 ‘가다실 오리지널’에 5가지 항원(31형, 33형, 45형, 52형, 58형)을 추가해 총 9가지 항원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16형과 18형을 커버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서바릭스프리필드시린지(Cervarix)’와의 경쟁에서 일찌감치 앞서 있었다.
가다실9은 9가지 HPV와 관련한 자궁경부암, 외음부암, 질암,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을 예방하며 3회 접종이 권고된다. 이번 인상으로 의료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의사의 진료비(약가 마진 포함)를 포함해 기존 60만~70만원대에서 80원대로 상승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0년 자궁경부암 백신 후보물질 ‘NBP615’의 해외 1, 2상을 완료했다. 데이터 통계를 집계한 뒤 임상 3상을 진행해 추후 개발 전략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집중하면서 임상 3상 진입이 지연되고 있다.
난관 끝에 SK의 국산 최초의 코로나19 백신인 ‘스카이코비원멀티주’가 29일 허가됐지만 일부 내수 시장과 저개발국가를 제외하고 판로가 열릴지 우려된다. 아마도 세계보건기구(WHO)나 유엔을 통해 박리다매 방식으로 개도국 또는 저개발국가에 론칭할 가능성이 높다.
‘NBP615’는 4가 백신이어서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9가인 가다실9을 제치는 일도 쉽지 않다. 더욱이 SK바이오사이언스는 언제 3상에 들어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아이진은 자궁경부암 백신후보물질 ‘EG-HPV’의 임상 1상을 완료하고 해외 라이선싱아웃 계약 체결을 통해 현지에서 임상 2상을 수행하려 준비했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집중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자궁경부암 백신 후보물질의 비임상 단계에 진입했던 유바이오로직스도 코로나19 백신 등의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자궁경부암 백신 개발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궁경부암 예방 효과만 생각한다면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주장대로 2가 백신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품성에서는 당연히 4가, 9가 등 다양한 항원이 포함된 백신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다.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미생물학, 면역학 등 기초의학 인프라가 탄탄해야 하고, 국내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자본력과 누적된 경험, 탁월한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마케팅 능력 등이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는 모든 게 일천하다. 예컨대 9가 자궁경부암 백신을 만드는 것은 9가지 단가 백신을 만들어 합쳐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19처럼 이슈를 쫓아가면 언제 심지를 굳히고 자궁경부암 백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을까. 기초기술은 물론 인력도 부족하다. 한 바이오기업에 많아야 10명 이내, 대형 제약사라 해도 해당 개발팀에 고작 수 명이 연구개발에 배치돼 있고 그나마 프로젝트 조정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기 마련이다.
독일 바이오엔텍, 미국 모더나 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보기 좋게 전례에 없는 초유의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어 대박을 봤다. 두 벤처기업은 이미 수 년간 mRNA를 개발해오면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를 통해 쌓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WHO가 중국을 통해 확보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인조 염기서열을 바탕으로 mRNA를 창제했고 이를 세포질 내로 전달할 수 있는 지질나노입자(LNP)를 확보했다. 백신의 항원이 되는 mRNA 기술은 진작에 어느 정도 기술이 확보돼 있었으나 발전된 LNP를 실제 백신 개발에 적용해보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기적 같이 모든 게 맞아 떨어져 탄생한 게 2종의 mRNA 방식 코로나19 백신이었다.
mRNA 이론은 쉽지만 실제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기대만큼 실행되지 못한다. 억겁의 시간처럼 공들인 연구개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데 국내 바이오제약사들은 이를 패싱하고 외면하려 한다.
MSD가 백신 값을 올려 소비자를 애먹인다고 분기탱천할 게 아니다. ‘건강을 볼모로 장사한다’고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백신을 뒤늦게 서둘러 도입하는 바람에 지불한 엄청난 규모의 ‘급행료’ 액수를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늑장 대응’한 청와대 및 방역 당국에 비난의 화살을 쏠 것이다. 다만 급행료 규모는 화이자의 영업기밀이나 국가기밀로 웬만하면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나 누리호를 만들 때 들어가는 수 만 개 부품처럼 백신 개발에 들어가는 요소기술도 수만 가지인데 과연 어느 하나라도 경쟁력 있게 갖췄는지 자문자답한다면 얼굴이 뜨거울 것이다. 과거 녹십자, LG화학, 제일제당,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바이오제약 사업이 수익성 떨어지는, 사업 재미가 없는 분야라고 무시하지 않고 계속 정진했더라면 화이자나 모더나가 누릴 대박을 성취하지 못할 리 없었다.
특히 LG나 제일제당은 열심히 인적자원, 물적자원을 투자해놓고 결실하지 못하거나, 여기서 뛰쳐나온 연구개발자들이 바이오벤처를 차려 재미를 보는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 신세다. 우리나라의 백신 자급률은 약 27%다. ‘백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선택적이고 집중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며 ‘한우물만 파는’ 뚝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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