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6 06:53:16
중국은 정부가 비대면진료를 권장하고 각 전문사이트와 전자상거래업체들이 의사 등록 경쟁을 벌이는 등 앞서가고 있어 한국도 선점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의료산업화를 적극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엔 원격의료를 하겠다는 IT 벤처기업이 꽤 많았다. 혈압, 혈당, 체온, 체중, 하루에 걸은 거리, 체지방은 물론 심전도, 혈중 니코틴 농도까지 측정해 실시간으로 병원에 전송하면 의사가 위험신호를 감지해 즉각적으로 치료 지침을 환자에게 전달해준다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가 적잖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물러가고 뒷심 없는 박근혜 정부 때 동력은 많이 약화됐고 현 정부는 의지가 그리 강력하지는 않다.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의료노조의 눈치를 보는 측면도 있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여념이 없는 의료계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있다.
의료노조는 공공의료가 먼저 구축된 다음에 원격의료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원격의료 도입으로 노동강도가 초기엔 노동강도가 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계화, 전자화에 따른 노동수요 감소로 자기들 일자리가 사라질까 걱정하는 측면도 잠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기술개발에 공을 들였던 상당수 업체들이 도산해 사라졌다. 관련 기술은 헐값에 넘어갔거나 사장됐을 것이다. 혈당측정기를 개발해 유망 강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인포피아의 창업자는 제도 미비로 제품의 판로가 거의 없자 회사가 어려워졌고 정부출연금과 자사주 매각대금을 개인 용도로 횡령하다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회사는 상장폐지됐다.
소아 당뇨병 아들을 둔 엄마는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야 하는 어린 아들을 위해 피를 뽑지 않고 혈당을 측정하는 의료기기를 해외에서 구매했다가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고발당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런 기술이 국내에 없거나 기술 격차가 아주 커서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격의료라는 틀이 갖춰지지 않았고 의료기기 관련 제도가 엄격하고 유연하지 않아 생기는 일들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비대면진료 권장으로 일단 원격의료의 초보단계라 할 수 있는 전화진료와 원격처방전 발급은 허용됐다. 그러나 진단센서를 활용한 가정용, 휴대용 또는 모바일 의료기기를 의료시스템 안에 넣어 돌리는 원격의료는 현재 도서지역이나 외국 의료관광 환자를 위해서만 가동되고 있다. 애써 개발한 원격의료기술이 정작 내국인보다는 외국인만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내에서 원격의료는 지금 당장 불법이다. 진료실 밖 의료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고 법적 근거가 없어 의사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 특히 자칫 의료사고라도 나면 뒷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몇 달 치 심전도 그래프를 인쇄했다가 진료받을 때 한꺼번에 의사에게 보여주고 점검받는 구닥다리 진료 행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심전도를 찍어 의사에게 보낼 수도 있다. 심방세동과 같은 위험한 부정맥을 체크하는 데 유용하다. 더 정확한 것은 이식형 심전도 센서로 가슴 피부 밑에 삽입하면 24시간 심전도를 더 정확하게 체크할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이 몇 가지 원격의료 시스템을 개발해놨으나 그 핵심인 의료체계로의 내장화가 막혀 있다. 현재 이식형 심전도, 휴대용 폐활량 측정기, 전자 청진기, 체내 산소포화도 측정장치, 양압기, 24시간 혈당 측정기가 나와 있으나 대부분 환자 모니터링에만 쓰일 뿐 원격조절 기능은 일부러 가동하지 않는다.
예컨대 원격 복막투석장치는 집에서 복막투석을 하되 의사가 원격으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복막 투석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면 이상적인데 현행법에 막혀 관찰용으로만 쓰고 있다. 원격조절이 가능하면 환자가 병원으로 올 필요도 없는데 현재는 이상이 생기면 환자가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원격조절 기능은 있는데 사용하지 않고 꺼놓는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다. 따라서 심혈관질환, 호흡기질환,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이라도 먼저 원격의료를 전향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로 작년 2월 시작된 전화진료는 당시 월 2만4000건에서 현재는 20만건 안팎으로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덕분에 일단 원격의료의 물꼬는 터졌다.
원격의료를 하면 환자에게 좋다. 조기진단과 처지, 외래 및 응급실 이용 감소, 중증화로 인한 입원치료 비용 절감, 수명 연장, 삶의 질 개선이란 다양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의료도 산업이다. 2019년 614억달러 수준이던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27년 5595억2000만달러로 늘어난다는 게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 2021’의 전망이다. 지금 국내 업체들이 개발해놓은 기술과 제품들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사장되고 오히려 나중에 우리가 선진국이나 후발 주자인 중국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사와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미국, 중국, 프랑스, 호주 등은 원격의료 관련 기술개발이나 제품화, 의료제도개선에 열심히 뛰면서 정착 초입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국내 기업과 우리 정부는 잠잠하다.
예컨대 중국은 병원 외래진료의 절반 이상을 원격으로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원격의료 네트워크에 드는 비용에 우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 언제 어디서나 의료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클라우딩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중국의 원격의료 전문의사는 최소 25만명에 이른다. 수준 높은 의사에게 진료받기 어려운 중국인들은 원격의료를 통해서라도 좋은 의사에게 받기를 열망한다. 이 때문에 중국의 징동(京東)건강, 핑안(平安)보험, 알리바바와 텐센트도 원격의료 앱을 만들어 좋은 의사 유치에 여념이 없다.
최근(올 상반기) 설문조사를 해보니 미국 의사는 68%가 ‘원격진료를 확대하겠다’, 원격의료를 경험한 프랑스 의사는 75%가 ‘만족한다’며 찬성 의사를 밝혔다. 우리나라는 IT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고, 의사들의 수준도 높아 원격의료를 시작하면 금세 선발 경쟁국들을 앞서나갈 수 있다. 우리 의사들이 생존권 확보를 위해 무조건 원격진료를 반대만 해야 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원격의료가 이처럼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게 아니다. 원격의료는 무엇보다도 진료의 질이 대면진료보다 현격하게 떨어진다. 의사나 환자나 의료서비스 이용 행태는 보수적이어서 시장 확장에 탄력이 붙지 않을 수도 있다. 구글과 아마존도 헬스케어산업(원격 환자건강관리)에 뛰어들었다가 ‘개인정보 침해’ ‘당장 가시화되지 않는 낮은 수익성’ 때문에 자진 퇴출을 결정했다. 애플 역시 관련 프로젝트 축소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월마트는 올 5월 초 2012년에 설립된 24시간 원격의료업체인 미엠디(MeMD)를 인수해 전국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LG전자도 지난달 25일 원격진료 솔루션을 개발, 병원 디스플레이와 클라우딩 서비스를 의료기관에 공급할 계획이다. 완전 정착에는 당분간 어려움은 있겠지만 언젠가는 이뤄질 게 원격의료다.
원격의료는 또 의사와 의료기기회사뿐만 아니라 제약사, 약국, 간호사 등이 ‘원팀’을 이뤄야 가능하다. 예컨대 간단한 투약이나 처치는 의사 대신 방문약료나 방문간호 서비스를 약사나 간호사가 대신해주면 비용효율적이다. 이런 점에서 원격의료의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고, 위험은 높으나 전망은 아주 밝은 게 원격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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