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31 18:23:12
지난 7월 2일 국회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하고 있는 윤희숙 의원. 유튜브 캡처
작년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 발언으로 일약 스타에 올랐던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위기에 몰렸다. 대선 후보로 출마했지만 부친이 2016년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소재 논 1만871㎡ 사들였으나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 투기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윤 의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하면서 얻은 정보로 또는 윤 의원의 제부(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보좌관을 지낸 장경상 씨)가 제공한 정보로 윤 의원 부친이 부동산 투기를 할 기초정보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약사 사회에서는 뒤늦게 윤 의원이 강력한 매파 자본주의자인 것을 알았나보다. 약사 커뮤니티의 한 약사는 “‘임차인’이란 발언을 할 때 너무 공감했다”며 “그런데 그 분이 최근 알고 보니 과거(2009년 11월)에 영리약국 허용, 일반약 대거 슈퍼판매 허용 등을 주창했다니 약사에겐 공적이나 마찬가지네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에 속속 들이 알지 못하는 상당수 약사들은 윤 의원이 많이 배운 엘리트요, 합리주의자요, 언행일치하는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임차인 발언 당시 서울 성북구에 자기 아파트가 있고, 세종시에 근무하면서 1가구 2주택이었다가 서초갑에 출마하면서 세종시 소유 자기 아파트는 처분하고 서초구에 전세를 얻은 임차인이었다. 진정한 임차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명문대를 나온 TK 출신의 전형적인 보수주의자, KDI에 근무한 준 관료인 윤희숙 의원인 것은 최근에야 더욱 부각됐다. 영리약국을 하면 약사들은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8할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약국이 법인화돼 약국 규모도 커지고 수 명의 약사들이 근무하면 휴가도 좀 가고 벌이도 좀 나아지고, 주말에 돌아가며 약국을 열어 국민들의 불편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지만 8할이 훨씬 넘는 동네약국은 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약국을 접고 영리약국에 취직하면 약대생도 늘어난 마당에 월급은 아주 낮은 폭의 상승 또는 동결만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
윤희숙 의원은 우리나라에 제약사가 너무 많아 신약개발이 안 된다며 몇 개 또는 수십 개가 합병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왔다. 이 또한 중소 제약사 오너들이 보면 “비록 적게 벌어도 내 몫이 충분한 데 내가 왜 팔아야 해”하는 냉소만 할 것이다.
윤 의원은 당연히 원격진료, 영리병원에도 적극 찬성이다. 2010년 기자가 서울대병원 의료경영 고위과정(AHP) 8기로 수강했을 때 당시 윤 KDI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의사들은 토요일에도 일하고 야간진료, 심야수술 등 너무나 일을 많이 해서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수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데도 전혀 모자라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며 “의사 수를 늘려 병원을 기업화해야 의료산업이 발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취지의 강의를 했다. 당시 다혈질인 일부 의사는 윤 강사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따지듯이 반박했지만 워낙 배짱이 두둑한 강사로 물러섬 없이 되받아쳤던 기억이 난다.
윤 의원이 2009년에 주장했던 대로 입법 과정을 거쳐 2012년 11월 15일부터 안전상비의약품이 편의점 등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소비자 입장에선 달랑 18가지 품목만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약사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지 않았더라면 그 품목을 편의점에 뺏기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많은 고3생들이 약대를 가려는 이유는 잘릴 걱정이 없고, 개업해서 친절하고 부지런히 일하면 평생 대기업 임원급에 하는 수익을 벌 수 있고, 먹는 장사나 입는 장사보다 클린하고, 무엇보다도 소자본으로 약국을 창업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가끔 어떤 논자들이나 소비자는 영리병원은 의료비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허용돼서는 안 되지만 원격의료는 소비자의 편의 증진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비대면 일상화에 대비해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원격의료는 영리병원으로 가는 길목의 초입에 있다는 의사들의 인식에 기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거대한 둑의 봇물은 미세한 개미구멍으로 시작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허용된 속칭 ‘배달약국’만 하더라도 원격의료를 구성하는 하위 요소다. 배달약국은 궁극적으로 영리병원으로 연결돼 대자본을 가진 의사나 약사, 또는 법인만이 큰 의료기관과 약국을 챙겨 돈을 더 벌고 영세 병의원고 약국은 몰락하는 빈익빈 부익부를 부를 게 뻔하다.
배달약국을 거쳐 조제 의뢰되는 약들은 대개 여드름, 발기부전, 불면증, 응급피임약 등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게 태반이고 장기 복용 만성질환 약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다고 한다. 그러니까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에 오가기 어려운 노약자나 취약계층이 배달약국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기도 귀찮아 하고, 약국에서 약을 지으려 기다리는 것도 싫은 비대면 선호 소비자들이 배달약국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나 약사가 대자본을 두려워하지만 헬스케어산업의 특성상 대자본의 공략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보화된 요즘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게 없는 구글조차도 지난 21일 헬스케어사업부를 전격 해체한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구글은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착용해 당뇨병 환자의 혈당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자회사 ‘베릴리’를 설립해 육성해왔고 1만명의 생활 전반을 수년에 걸쳐 추적하는 ‘베이스라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또 환자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의료에 활용하려던 계획도 추진해왔으나 ‘개인정보 침해’라는 반대에 부딪히고 빌게이츠재단과 약국체인 CVS헬스케어와의 협업도 무산됐다.
아마존도 2018년 1월 JP모건체이스, 버크셔해서웨이와 손잡고 헬스케어 합작사 헤이븐(Haven)을 설립했다가 올 2월 문을 닫았다. 직원 건강도 챙기고 미국 헬스케어시스템 개혁을 주도해보겠다는 목표였지만 실패했다. 애플 역시 헬스케어 프로젝트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결국 ‘개인정보 유출’ 논란과 ‘낮은 수익성’이 발목을 잡아 중도 하차했다. 미국의 의료시장은 연 4조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시장이지만 진정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질환을 원격의료에 맡길 수 없는 일이다. 대면진료와 비대면진료의 심층도와 품질 차이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큰 격차다. 이런 점에서 의사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격진료나 배달약국 같은 작은 구멍을 계기로 자신들이 대자본에 귀속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최근 MBC에 약사들에게 갑질하는 의사와 건물 소유주들이 잇따라 보도됐다. 병의원이 건물에 들어오려면 진행비 또는 개원준비금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약국 운영 또는 개설 희망 약사에게 한다. 그러면 수천만원을 갖다 바치는 것은 유(類)도 아니다. 약사가 찬조금을 냈음에도 갑을관계가 지속되고 약사는 피로해한다. 그러나 의사와 약사의 공생관계는 계속 갈 수밖에 없다. 둘이 의약분업이라는 명목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영리병원, 영리약국이 들어설 것이고 그틈에 한의사가 의사나 약사 영역에 침범할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이고 당당하며 합리적인 엘리트라고 좋아했던 윤 의원을 이제는 상당수 약사가 아니라고 한다. 자기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념의 좌우 갈등도 출신 성분에 자기의 삶의 취향이 반영된 산물이기에 절대적이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그래서 ‘내로남불’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이 집권하고 득세하면 횡행하는 것이다.
농지는 평당 수 십 만원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싸기 때문에 투자할 메리트가 있다. 그래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따라 돈 많은 도시인들이 시골 땅을 침탈하지 못하도록 농민들만이 농지를 소유하라고 법적으로 정해 놨다. 그래서 돈 좀 있거나 은퇴 후 시골을 오가면 좀 쉬고 싶은 도시인들은 불법 또는 편법으로 시골 땅을 사거나, 경자유전을 무시하고 지독하게 농지를 대거 매입해 투기 목적에 활용한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도시인의 농지 소유는 내로남불하기에 딱 알맞은 소재다. 땅을 사면서 땅값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건 당연지사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도시인이 시골 땅을 노리는 것도 이런 속내가 있다. 늙고 경제적으로 빈곤해 땅을 팔아야 하는 농민도 도시인이 아니면 팔 길이 없다. 수백평 시골 땅을 사서 좀 쉬고 싶은 도시인들은 지금도 줄을 섰다.
불편부당한 세계는 인류의 욕망이 끊어지지 않는 한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윤희숙 의원의 과거 ‘영리병원’ ‘영리약국’ 견해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서비스산업 발전을 통한 국민경제 성장(소위 파이 키우기)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대다수 의사나 약사에게는 이익에 반한다.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현실화됐을 경우 국민도 헬스케어에 더 많은 지갑을 열어야 하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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