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 불법 리베이트 판결이 남긴 교훈
2020-01-31 03:16:02
과징금 566억원·식약처 판매정지 처분받고도 유죄 직원은 한 명뿐 … 법리적 무죄 판결로 위법행위 면죄부 안돼
범행 자백 직원만 유죄, 문학선 전 대표를 포함한 나머지 임원은 무죄. 수십억원대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4년 가까이 끌어온 한국노바티스 약사법 위반 소송의 최종 결과다. 그나마도 공소시효가 지난 부분은 면소됐고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5단독 재판부는 불법 리베이트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준으로 삼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2016년 8월 노바티스 전현직 임원 6명, 의약전문지 5곳, 보건의료계 출판업체 1곳 등 관련자 34명을 약 25억9000만원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법정에 세웠다. 이 중 대형병원 의사 15명은 약식기소로 벌금형 처분을 받아 법정에 서지는 않았고 진행 과정에서 사망한 M매체 대표 S씨를 제외한 개인·법인 피고인 18명이 재판을 받았다.
한국노바티스는 리베이트 살포 관련 사실이 적발된 뒤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대체과징금 566억원을 납부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으며,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받는 등 위법행위가 사실상 만천하에 드러났다. 약사법상 의약품을 공급하는 제약사가 공급받는 자인 의료인을 대상으로 좌담회를 열 경우 참석 유도를 위해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판매 촉진 목적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 불법 리베이트로 간주되며 처벌 대상이다.
검찰이 확보한 노바티스 내부문건 자료에는 노바티스가 2012년 ‘M라운드테이블’이라는 이름의 좌담회를 주최했고 관련 계획안에는 회당 2000만~30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으며, 상세내역에 골프·식사 등 항목이 포함돼 있다. 또 노바티스 전직 임직원 중 유일하게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 모씨가 문학선 전 대표를 거쳐 글로벌 본사 재무 담당에게도 라운드테이블미팅(RTM) 등 행사에 집행된 예산내역을 보고하고 향후 지출 계획을 함께 조정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매출액 규모가 비슷한 다른 제약사와 비교해 노바티스가 의약전문지에 지급한 광고비가 유독 많았던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판사가 인사 이동을 이유로 수차례 교체됐고 그 때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과거 주장했던 내용을 반복하며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보니 재판부도 비슷한 내용의 심문은 생략하는 등 공판 내용도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이뤄진 공판에선 엄정한 법 집행 의지는 희석돼 날카로운 공방이 없었다. 변호인단은 검찰 측 주장에 대해 오히려 중간중간 비웃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피고인의 태도도 돌변했다. 처음 기소했을 때 전반적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피고인 진술이 많았던 것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하나같이 ‘그 때는 리베이트 관련 혐의에 대해 사실이라고 대답했지만 생각해보니 당황해서 잘못 이야기한 것 같다’는 논리로 돌아섰다.
한국노바티스 측도 라운드테이블미팅에 참여하는 의료진 편집위원 선정 등을 E출판사가 주도했으며 직접 관여한 바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의약전문지들에 광고비를 제공하고 대신 집행하도록 한 부분에 대해서도 노바티스와 전문지 담당자 선에서 벌어진 일탈일 뿐 관리자는 위법성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발뺌했다. 편집위원 선정 관여나 세부 집행내역을 증명할 객관적 자료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노바티스와 전문지·출판사 등 피고인들이 노바티스를 통해 불법 리베이트에 가담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고 위법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은 고의성이 없었고 제약사의 전문의약품 홍보 효과가 중요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다소 모호한 논리로 무죄 취지 선고를 내렸다. 마땅한 기준이 없다는 게 이유다.
노바티스 한국법인이 566억원의 과징금을 납부하고 식약처로부터 판매업무정지 처분도 받은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된 피고인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 유죄 취지의 발언을 한 직원 한 명뿐이라는 사실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이 직원이 혼자 25억9000만원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회사 결재를 받아 예산을 집행했을 뿐이다. 검찰이 주장한 대로 부서장, 한국법인 대표, 아시아지역 본부를 거쳐 스위스 본사 재무 담당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 하에서 이 돈의 성격과 집행내역에 대해 아무도 몰랐다는 항변이 사실이라면 노바티스의 경영능력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지 의심해볼 만하다.
지난해 11월 1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문 전 대표는 징역 1년6월을 구형받았다. 그는 “검찰은 적법한 광고행위를 리베이트 행위로 보고 전문지 대표 등과 공모한 혐의로 기소했다”며 “극소수 직원의 일탈 행위가 정당한 활동으로 제품 홍보에 힘쓴 직원들의 노력까지 범법행위로 만들어선 안 된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적법한 광고비 집행을 이유로 업계 생활을 마감하고 전과자가 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고 호소하며 다른 노바티스 임직원들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일로 책임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다른 전직 임원 K씨는 “글로벌 기업에선 윤리의식이 사람을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리베이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고, B씨는 “이 사건으로 경력도 단절돼 3년간 사회생활을 못하고 있어 정신적 고통이 크다”고 주장했다. 억울함과 도덕적 무결함을 주장했던 이들은 선고 당일 무죄 판결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이들은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켰지만 결백을 입증한 기쁨의 눈물보다는 실형을 면했다는 안도의 눈물로 느껴졌다.
이번 판결로 일각에선 의료진 좌담회나 다른 형태의 불법 리베이트 창구 활용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재판부가 모호한 판결을 내리면서 명확한 기준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한 부분은 꼭 제도 설계에 반영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무조건 법리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며 이기면 된다는 소송만능주의가 만연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아무리 무죄 판결을 받아도 불법 행위에 대한 개연성을 인정했다는 사실에는 추호의 변함이 없다. 이번 사건이 노바티스를 비롯한 전 제약바이오 업계에 잘못된 선례로 남아 더 은밀한 불법 행위가 만연하지 않길 바란다.
다행히도 검찰은 지난 설연휴가 끝난 28일 항소했다. 당시 법정 분위기로만 봐서는 항소하지 않을 듯하던 검찰이 1심 판결을 받아들이기에는 명분이 없어도 한참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와의 대립을 불사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며 검사들 다잡기에 나선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바티스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나라에서 기업윤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미국, 중국 등에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상당한 벌금을 물었다. 지난해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에게 로비 자금으로 120만달러를 주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의 보건의료정책을 탐지하려 한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또 지난해 그리스에선 불법 리베이트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백만 유로를 공무원에게 지불했다는 내부고발자 주장이 이어지면서 2017년 1월 시작했다가 중단된 수사를 지난 8월 그리스 검찰이 재개했다. 보건부 장관, 개발부 장관, 유럽연합(EU) 집행관 등 전직 정부 고위 인사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뒷거래가 있다는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해외 사례를 볼 때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세청으로부터 시달릴 만큼 시달리고 거액의 과징금도 냈으니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는 게 노바티스 국내법인의 절절한 희망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봄바람이 불려면 멀었다. 검찰이 항소했고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이 아니라면 진정한 단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손세준 기자 md@mdfact.com
손세준 기자 smileson@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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