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2 09:55:48
자전거전용도로(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 (통행구분),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비분리형), 자전거전용차로 교통표지판
5살, 7살 아이를 키우다보니 인도 보행, 횡단보도 건너기에 예전보다 민감해졌다. 러시아워에 차가 꽉 막히면 배달 오토바이들이 인도로 올라오기도 하고, 어린이가 인도와 인도 사이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도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무시하고 제 갈길을 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우리가 둔감해하는 것이 있으니 인도 속에 난 자전거도로의 자전거 주행 횡포다. 불법일 수도 있고, 불법은 아니지만 상식으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행이 계속되고 있다.
대체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난 인도 속 자전거도로는 자전거로의 교통수단 분산 및 건강증진을 위해 처음엔 환영받았다. 세월이 지나 논리적,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니 왜 그렇지 않아도 좁은 인도 한켠에 자전거도로를 깔았는지, 그마저도 아무런 펜스나 경계석 없이 라인만 치고 자전거도로라 명명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로교통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명 피해와 교통사고 최소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 속 자전거길은 사람과 자전거(물론 자전거에도 사람이 타고 있다)를 같은 레벨로 보고 있다는 관점을 만든다.
사람이 자전거보다 약자이기에 우선 보호돼야 원칙 때문에 양자가 충돌하면 도로교통법이나 보험피해 정산에서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이나 보상이 이뤄진다 해도 다치고 나서 보상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용한 인도를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다니고 있는데 뒤에서 자전거가 오면서 갑자기 따르릉 소리를 낸다. 자전거도로와 인도의 교차점에서 자전거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느긋하게 자전거도로를 건너는 행인에게 욕을 한다.
도로교통법 상 자전거 전용도로는 시속 30km,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시속 20km, 자전거전용차로는 시속 20km이지만 이런 속도를 지키는 사이클러는 거의 없다. 이런 것을 일일이 숙지하는 라이더나 보행자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일부 사이클러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속도감에 방해를 준다는 이유에서 행인에게 화를 낸다. 비록 횡단보도는 없다 할지라도 멀리서 사람이 자전거도로를 건너는 것을 봤다면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자전거도로를 킥보드가 다닐 수 있도록 2020년 12월 10일부터 허용됐다. 자전거나 킥보드나 자전거도로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이용하고, 없으면 우측 차선 끝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킥보드의 소리 없는 진격은 규정 시속 25km를 넘어 40km이상으로 인도 속 자전거도로를 다닌다. 조용하게 다가온다는 측면에서 어찌 보면 자전거보다 더 위험한 게 킥보드다. 게다가 타고 나서 인도나 차도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놓고 사라지는 공유 킥보드 이용자들.
인도 속 자전거도로는 대체로 차도 쪽으로 나 있지만 가로수나 전봇대, 가로등, 신호등, 소화전, 버스 택시 정류장 등의 시설 때문에 훨씬 인도 가운데 쪽을 향해 점령한다. 더욱이 인도의 폭이 1.5m도 안 되는데 이를 사람과 자전거(퀵보드)가 각각 절반씩 점유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인간 무시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인도 속 자전거도로는 없애야 마땅하다. 단계적으로 없어야 한다면 대인 충돌사고가 날 경우에 거의 전적으로 자전거나 퀵보드가 배상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 전에 아무리 법적으로 인도 속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게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지나가는 행인에게 위협적이고 불쾌감을 주는 빠른 속도의 주행, 느닷없는 경적, 자전거도로를 불가피하게 또는 부지불식간에 점령한 행인에 대한 라이더들의 욕설이나 짜증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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