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5 14:13:54
한국 정치판의 ‘내로남불’ 현상을 비판한 한 정치 관련 서적의 표지
수 년 전부터 권력을 가진 자의 ‘이기적 위선’과 ‘안면몰수 허위의식’을 일컫는 ‘내로남불’(naeronambul)이 한국 정치의 상징어가 됐다. 외국 영어사전에도 ‘재벌’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단어로 등재됐고 외국 언론도 한국의 잘못된 정치나 사회현상을 내로남불로 묘사하곤 한다
이 단어는 1996년 15대 총선 직후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와 관련해 야당(새정치국민회의)이 맹공을 퍼붓자 당시 신한국당의 박희태 의원이 ‘내로남불’로 응수한 게 지금은 신조어가 아닌 기성어가 된 내로남불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은 이후 두고두고 정치판에서 써먹고 있다. 야당을 하다가 여당을 하면 야당 때에 하던 주장을 뒤집고, 마찬가지로 여당하다가 야당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의 주장을 모른 체 한다.
심리학에서는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 허구적 독특성(false uniqueness), 자기 편의적 위선(self-serving hypocrisy) 등으로 보는데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거짓과 위선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로 내로남불이 활용된다.
사실 바람을 피워 본 사람은 다 알지만 결혼이란 제도의 틀을 깨고 배우자 몰래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당사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합리화한다. “아내(남편)는 말이 안 통하는데, 파트너(다른 이성)는 내 맘을 참으로 잘 이해해줘” “파트너만 만나면 모른 시름을 잊어” “파트너는 항상 나를 최고로 대해 줘” 라며 ‘도피’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파트너가 일시적으로 외도 당사자에게 최고인 것은 우리(가족)가 아닌 ‘신선한 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선감이 가시면 그저 그런 관계가 되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때로는 파트너와의 관계가 너무나 뜨거워 가정이 결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외도 관계가 발각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 서서히 쿨링하며 원상복귀하는 게 통례다.
세상에는 어떤 내로남불도 정당화될 수 없다. 배우자의 허락을 맡든가, 이혼하고 새 삶을 찾지 않는 한 내로남불은 잘못이다. 배신이자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마음에 없는 아첨을 하고, 때로는 비굴하게 하고 싶지도 않은 사과를 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은 슬프기도 하고 용인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다. 우리 모두 허약하고 생존해야 하고 위기를 모면해 거듭나야 하니깐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치판을 비롯해 사회의 이런저런 썩은 구석에 내로남불이 도사리고 있다. 부정입학, 뇌물, 취업청탁, 논문베끼기, 음주운전 등 필자를 포함한 누구도 내로남불할 수 있다면 그 유혹에서 벗어날 도덕적 저항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
내로남불은 우리가 나약한 존재임을 이해하게 하는 성찰의 단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권력투쟁을 위해 위선과 허위의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는 정치판에서는 내로남불이 언젠가부터 대수롭지 않게 행해지는 일상이 됐다.
적어도 미국, 유럽 등 현대 서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내로남불이 허용되지 않았다. 한번 배신하고 신뢰를 잃으면 ‘그걸로 끝’이고 다시는 표를 받지 못해 정치판에서 떠나야 했다. 염치와 명분이 있어야 정치를 계속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내로남불 대신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점잖은 단어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자는 역지사지에는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자인하고 서로 포용해야 한다는 너그러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내로남불은 포용이 빠져 있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이기적 동물적인 본성만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어 서글프다. 무엇보다도 나쁜 인식과 행동의 도돌이표가 내로남불을 통해 악순환되고 있음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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