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4 10:16:44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은 2018년 11월 7일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50%+1주, 50%-1주를 가진 대주주로 공동 경영하고 있다.
지난 연말 H 경제지가 삼성그룹이 미국 바이오젠을 인수할 것이란 설이 나왔다. 삼성그룹은 즉각 부인했고 바이오젠은 소문이나 언론의 보도에는 코멘트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내 업계는 즉각적인 인수합병(M&A) 성사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언젠가 가능할 수도 있는 시나리오라는 반응이다.
바이오젠의 시가총액은 3일 오후 4시 종가기준 244.14달러로 시가총액으로는 358억6200만달러에 달한다. 한화로는 물경 42조7407억원이다. 2020년 우리 기업의 M&A 총액이 14조4000억원, 2021년 예상액이 32조원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반면 전세계 2021년 M&A 규모는 6691조원이다.
2019년 1월초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가 세엘진(Celgene)을 740억달러(약 89조원)에 인수했다. 이는 당시로는 세계 기업 M&A 역사상 10위 규모이고 제약업계 역대 최대 기록이었다. 그 해 6월에는 미국 애브비(Abbvie)가 630억달러(약 75조6000억원)를 들여 아일랜드 엘러간(Allergan) 인수를 발표, 2020년 5월 절차가 마무리됐다. 2019년에는 전례없이 많은 대규모 제약바이오기업 간 인수합병이 이뤄진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의 인수합병 규모가 위축된 가운데 2020년 12월 12일에야 당해 년도 최대 거래인 아스트라제네카의 390억달러 규모 알렉시온(Alexion) 인수가 이뤄졌다.
2021년에는 호주의 글로벌 생명공학기업 CSL리미티드(CSL Limited)가 스위스 제약기업 비포르파마(Vifor Pharma)를 117억달러에 인수‧합병한다고 12월 14일(현지시각) 발표한 게 최고치다. 그 다음이 9월 3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소재 중증질환‧희귀질환 신약개발 기업인 액셀러론파마가 주당 180달러, 총 115억달러에 미국 머크(MSD)에 인수된 것이다.
3위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알렉시온 인수에 따라 알렉시온의 유력한 경쟁자로 수상한 부상한 스웨덴 스톡홀름 소재 ‘소비’(Sobi, 원래 풀네임은 Swedish Orphan Biovitrum AB)가 9월 2일 사모펀드 회사인 어드벤트인터내셔널(Advent International) 및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GIC로부터 694억스웨덴크로나(SEK), 미화로는 약 80억달러에 피인수된 것이다.
4위는 2021년 아일랜드 제약사 재즈파마슈티컬즈(Jazz Pharmaceuticals)가 대마초 추출 의약품 전문기업인 영국 캠브리지 소재 GW파마슈티컬즈(GW Pharmaceuticals)를 72억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이밖에 칼라일그룹과 블랙스톤그룹 등 사모펀드가 작년 6월 7일 의료기기 제조 및 유통업체인 메드라인(Medline)의 지분 과반수(50%+α)를 340억달러 회사 가치의 절반인 170억달러에 사들였다.
또 세계적인 과학 및 기술혁신 기업인 다나허코퍼레이션(Danaher Corporation)이 지난해 6월 17일 세포 및 유전자 기반 신약 개발 생명공학기업인 알데브론(Aldevron)을 96억달러라는 거금에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의료기기 전문 업체인 메드라인과 생명공학기업인 다나허는 보통 미국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헬스케어’ ‘진단기업’으로 간주하지 정통 ‘바이오파마’로는 쳐주지 않는다.
어쨌든 지난해 부진한 미국 바이오파마 M&A 시장에서 삼성이 바이오젠을 인수한다는 것은 그저 ‘상상의 나래’에 가깝다. 우선 42조원을 지를 재원과 배짱이 없다. 삼성은 지난해 8월 반도체, 전자산업, 바이오 등에 240조원을 향후 3년간 투자한다고 했다. 이 중 반도체에 들어가는 돈이 얼추 170조원이다. 나머지는 배터리, 통신장비,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실제로 돈을 투입하면 돈이 벌리는 분야다. 이에 비해 바이오는 투입된 만큼 아웃풋이 분명한 산업이 아니다. 과연 70조원 중 40조원을 바이오파마에 쏟아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둘째 삼성이 돈을 버는 바이오시밀러는 전체 글로벌 제약 규모로 치면 ‘새발의 피’다.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글로벌 바이오파마 시장에서 통한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망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의약품 시장 규모는 1조5700억달러, 바이오의약품 4000억달러, 바이오시밀러 200억달러 정도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1년 3분기 누적매출액이 1조1237억원으로 전년도 연간 총 매출액 1조 1648억원 수준의 실적을 한 분기 앞당겨 기록했다. 이에 따라 산술적으로 작년도 총 매출은 1조4982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달러로는 12억5400만달러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삼성의 바이오파마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고집행부가 반도체나 전자의 산업적 마인드를 갖고 있어서 글로벌 바이오파마, 특히 미국 시장의 생리를 모른다는 것이다. 기자는 수 년 간 미국 바이오파마의 인수합병을 관전하면서 인수합병 발표는 예고도 없이 ‘눈사태’처럼 일어나고, 몇 억달러 같은 ‘푼돈’ 아끼려고 지체하지 않으며, ‘태산 같은’ 리스크를 안고 덤벼든다는 것을 알았다.
자질구레한 것을 떼고 발표하겠지만 글로벌 빅 파마들은 수십억 달러 단위로 인수합병 규모를 발표한다. 프리미엄도 엄청 준다. 보통 발표 전 주가의 한달 가중평균의 100% 또는 적어도 50% 이상을 얹혀준다. 그 사이 기밀이 유지된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또 하나 미국의 세법이 비싸게 웃돈을 주고 사도 이런저런 비용이 공제돼 세금이 감면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부에서 지원금도 나오기 때문에 부담을 덜하다는 점이다. 다만 이를 명확하게 그려낸 기사는 국내외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신기하다.
아울러 유효성 논란이 많은 바이오젠의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이나 GW파마슈티컬스의 대마초 추출 의약품 같은 다루기 힘든 아이템을 인수, 이를 컨트롤할 역량이나 배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바이오젠이 ‘스핀라자’ ‘텍피데라’ 같은 특허만료 의약품으로 매출이 줄어들고 애듀헬름 때문에 비난을 면치 못하고 주가도 연중 최고치인 468달러에서 현재 244달러로 절반 가까이 떨어져 고전하고 있어 삼성그룹에게 인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더라도, 또 삼성이 과감하게 베팅한다 하더라도 이런 국민정서에 거스르는 의약품, 희귀질환에 바가지를 씌우는 의약품을 능숙하게 받아들여 효과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을지 도의문이다.
미국 제약사의 철면피는 공분을 자아낼 정도다. 연간 수억원이 드는 약값을 희귀질환 환자에게 청구한다. ‘피폐한 삶을 되살릴 수 있는’ ‘삶의 질을 극도로 떨어뜨리는 질병으로부터 삶의 질을 개선하는’ ‘치명적인 위험에서 구제해주는’ 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고가 전략을 밀어붙인다. 미국 제약사들은 높은 약가의 원인이 천문학적인 임상개발 비용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하지만 임상개발 비용에 대해서는 적잖은 세제 혜택이 주어지고 더러는 정부 보조금이 나오기도 한다. 제약사의 결론은 ‘고위험을 감수하고 개발했으니 약값 책정은 내 맘대로’라는 극도의 ‘자본주의적’ 지향성이다. 미국 정부와 소비자는 이를 용인하면서 적극적으로 저항할 움직임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랬다가는 ‘생명을 담보로 한 패악질’이라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아마도 한국의 좌파적, 포퓰리즘적 민중들이 삼성이 미국에 진출해 직접 신약을 개발하고 글로벌 제약사가 하는 행태의 ‘마케팅’을 벌인다면 국내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데 트집잡고 훼방놓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든다.
자고로 사람은 서울로, 말을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큰 물에서 놀려면 삼성도 미국에 직접 진출해야 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인수합병 말고는 없다.
그런데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삼성바이오에피스 간부들이 국내에 유망 바이오벤처를 인수하려 순례했는데 ‘조그만 회사가 몇 십억, 몇 백억원이면 되지 왜 공이 하나 더 붙냐’고 투덜댔다는 소리가 전해온다. 비록 국내 기업들이 기술력이 떨어지기 하지만 예컨대 300억원짜리 가치가 있는 회사를 삼성이 400억~500억원 준다고 넘길 이유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꿈을 먹고 사는 벤처에서는 수 배에 달하는 보상을 줘야 꿈을 포기하는 대가로 회사를 넘길 수 있다. 국내에서 잘 보면 괜찮은 회사도 몇몇 있다. 국내사를 못 믿겠다면 미국, 유럽, 일본에서 될성부른 떡잎을 찾으면 된다. 따라서 수백억달러보다는 수십억달러를 들여서 실질적인 기술력을 가진 업체를 인수해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삼성 수뇌부들이 바이오파마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 그런 혜안을 가졌는지 미덥지 않다. 미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거칠게 말해 미국 시장주의에 적응해 ‘되바라지는 일’이다. 수업료를 적게 내고 성공하려면 ‘창의적이고 황당무계할 정도로 획기적이며 최종적으로는 성과를 기어코 얻어내고야 마는 전문가’부터 찾아내서 영입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삼성이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인적 네트워크 구성, 마케팅 및 영업 노하우 축적, 해외 인허가제도 관행에 대한 깊은 이해, 핵심적 경쟁력을 갖춘 원천기술 확보 등 갖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삼성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그나마 조급하지 않게 관망할 수 있는 것은 빅파마가 쌓아놓은 인적, 지적, 물적 인프라가 삼성 같은 신생 바이오 추격자를 이길 정도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반도체에서 벌여놓은 ‘초격차’나 빅파마가 의약품산업에서 확보해놓은 ‘초격차’나 매한가지다. 역지사지로 삼성이 빅파마를 추격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면밀히 따져봐야 할 전환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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