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 18:05:27
이대서울병원이 지난 9월 25일 이화국제원격의료센터를 개소하고 의료진이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대유행이 원격의료(비대면 진료)의 길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원격의료를 찬성하는 의사와 반대하는 의사가 거의 반반으로 갈려 있다. 네바다주처럼 오지인 지역과 경제적으로 가난한 지역에서 종사하는 의사,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 GP)나 가정의학과 같은 소외된 진료과 전문의들이 원격의료를 선호한다.
반면 뉴욕 같은 번화한 도시의 의사들은 원격의료를 기피한다. 대면 진료하면 진료비만 해도 100달러가 넘는다. 반면 전화상담을 통한 진료는 49달러면 된다. 아이들의 감기나 어지럼증, 현기증, 구토 등으로 동네 소아과나 가정의학과 등을 찾으면 별다른 처치가 없어도 진료비만 100달러를 써야 하니 아프다고 해서 함부로 병원을 갈 수 없고 한참을 고민해봐야 한다. 만약에 참지 못해서 응급실을 찾았다가는 앰뷸런스 이용비 포함 최소 5000달러는 각오해야 한다.
미국은 영토가 넓고 의료비가 비싸 병원 문턱이 높다. 이 때문에 1950년대부터 의료낙후지역에서 처음 전화의료가 허용됐고, 1960년대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탐사대원들을 상대로 화상진료를 하는 등 기술적 진화를 거듭했다.
1990년대부턴 대면진료와 원격의료의 보험 적용에 차별을 두지 않는 법제화가 잇따랐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미 원격의료 시장은 2018년 410억달러(약 46조원)에서 2026년 3960억달러(약 446조원)로, 연평균 25~28%씩 성장할 전망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런 추세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원격의료의 대표주자인 ‘텔라닥’(Teladoc)은 지난해 3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으 ㄹ선언한 직후 정기회원이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7000만명이 됐다.
스웨덴과 영국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원격의료 비중이 각각 전체 진료의 약 35%, 20%를 웃돌았다. 원격의료제도가 없었던 캐나다, 호주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이후 원격의료의 비중이 전체 70%, 3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
프랑스는 국민의료 앱으로 불리는 ‘독토리브’(Doctolib)에 원격의료를 하겠다고 가입한 의사가 3만명이 넘고 전국민의 20%(약 1310만명)로 추산되는 프랑스인이 한번 이상 원격의료를 경험했고 지난해 1900만회의 비대면진료가 이뤄졌다.
일본 일차의료학회 테슈 쿠사바(Tesshu Kusaba) 회장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주치의 제도가 없음에도 원격의료가 1997년 처음 허가됐으며, 2018년에는 화상진료(video consultation)에 대한 수가가 책정됐다.
일본에서 원격의료 시행 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1%에서 코로나19 발생 이후 15%로 급증했다. 2020년 4월부터는 초진에 대해서도 원격의료를 허용했고, 화상진료 뿐만 아니라 전화진료도 허가했다.
오지가 많고 경제 및 의료수준이 아직은 빈약한 중국은 ‘의료빈곤 퇴치’ 차원에서 원격의료를 발전시키고 있다. 2019년 기준 전체 구(區)급 이상 공립병원 가운데 59%가 원격의료를 제공했고 지난해에 이 비율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의료는 편리하고, 비용이 저렴하며,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아 효율이 높으며,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치료가 아닌 예방 중심의 진료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접촉으로 인한 감염 기회가 줄어든다.
미국에서 원격의료는 병원이 이메일로 보내준 줌(화상회의) 링크로 접속, 주치의와 화상으로 상담하는 데 20분이면 족하다. 혈액검사는 집 근처 외주 검사 업체에서 하면 그 결과가 병원에 넘어간다. 의사가 동네 약국으로 전자처방전을 보내주면 환자는 약국으로 찾아가 수령하면 된다.
또 미국에서는 지역 내 약국체인점 외에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아마존을 통해서도 처방약을 받을 수 있도록 약품전달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는 약국방문 없이 항시 처방약을 배달해주는 것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집에서 처방약을 당일배송으로 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서는 처방전을 팩스로 보내는 것만 허용돼 있다. 전자처방전은 대형 또는 중형병원에서 키오스크를 통해 인근 문전약국으로 보내 조제 대기시간을 짧게 하는 데 머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019년 미국 내 전체 진료 건수의 0.15%에 불과했던 원격진료는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선언 직후 13%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 도시지역 의사들 다수는 대면진료하면 톡톡히 진료비를 받아낼 수 있는데 굳이 비대면진료를 해서 수익을 줄일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적 입장이다.
원격의료에 필요한 웬만한 진단기기는 이미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에 걸쳐 거의 다 개발됐다. 혈압계, 체온계, 심박수 측정기, 혈당 측정기, 심전도, 체내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은 진즉에 개발됐다. 감염질환 유행과 젊은층의 대면접촉 기피 등 해야 하는 여건이 조성돼 있고 관련 기기나 장비도 꽤 완벽해졌는데 진행을 억누르는 것은 위선처럼 보인다.
의사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자세한 문진과 검사가 이뤄지지 않아 오진할 수 있다는 것과 항생제·발기부전치료제·비만약·향정신성의약품 등의 오남용이다.
미국에서 외래진료의 오진율은 성인의 경우 5%로 추산되는데 영국에서 원격의료로 인한 오진율은 이보다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4~7월에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1500명의 류마티스 환자, 일반의(GP), 임상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한 결과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보다 편리하지만 환자의 약 86%와 의사의 93%는 웹이나 전화를 이용한 진료의 정확성이 대면상담보다 나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영국 사회에는 비대면진료 확산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영향으로 코로나19 이전 대면진료비율은 80%이상이었으나 올 8월에는 58%로 떨어졌다가 9월에 61%로 소폭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준 공무원 성격의 영국 의사들은 진료량이 늘어난다고 크게 수입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어서 비대면진료를 선호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다만 오진율을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영국 의료계와 보건당국의 고민이 깊다.
원격의료에서의 오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분야는 피부질환이다. 염증이나 통증의 원인을 잘못 판단해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오진을 줄이는 것은 주치의를 두고 비대면진료도 이를 통해 받는 것이라고 외국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응급실이 만날 미어터져 환자가 응급실보다는 구급차 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영국에서 의사단체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진료를 보고 있는 GP의 과부하 해소를 위해 인센티브 부여, 해외 의사 수입 등 다양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정부에 주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14일 영국 왕립약사회 클레어 앤더슨(Claire Anderson) 회장은 더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복지부 장관의 약사처방권 확대 방침에 환영을 뜻을 표했다. 지금은 병원약사에게 일부 독립처방을 허용하고 있으나 지역약국에더 일부 허용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영국의 일부인 웨일즈는 ‘약사독립처방’이 정착돼 있고 코로나19로 그 경향이 더 심화됐다. 약사들이 웬만한 항생제, 소화기질환 약물, 피부약물 등을 직접 처방 및 조제하고 있다. 의사 부족에 따른 환자 대기시간 감소와 건강보험재정 절감을 위한 정책들이다. 의료 부하를 원격의료로 극복한다는 선을 넘어 준 전문가인 약사를 활용해 가벼운 의료에 대한 니즈를 해결하겠다는 방안이 신선해보인다. 기실 국내서는 인공눈물, 기능성소화불량 약물 등 너무나 많은 안전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약들이 전문의약품으로 묶여 있어 소비자의 선택을 제약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약국체인 CVS, 월마트 내 약국 등에서 코로나19 주사를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 중에서 골라맞았다. 비용은 병원보다 1달러 정도 싼 수준이지만 다수의 미국인들이 백신을 접종했다. 원격의료와 이를 위한 약 배달 서비스는 코로나19로 불거진 비상의료상황과 향후 의료체계 효율화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내 대학병원은 이미 원격의료 서비스에 대한 준비가 다 돼 있는데 중소병원, 개인의원 눈치를 보며 펼치지를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 의료법인이 개인의원 고사 작전에 들어가 의원이 썩 잘 되는 편이 아니다. 피부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정도의 개인클리닉이 있는 정도다. 원격의료가 의료에서 규모의 경제를 선도할지, 특화된 개인의원에게 활로를 열어줄지는 위험한 실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소비자에겐 당연히 원격의료가 열리는 게 좋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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