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8 13:50:58
중국은 인구 감소를 위해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은 ‘아기 울음소리’가 점점 귀한 나라가 되고 있다.
늦둥이를 아들 딸을 둔 기자는 매일 아침 어린이집 버스에 오르는 녀석들의 모습이 참 귀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매일 아침의 짧은 이별이 이렇게 아련할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아이들이 가장 보고 싶은 요일은 월요일이다. 주말에 엄마아빠와 잘 지내다가 월요일에 어린이집에 등원해서 잘 적응하며 지냈는지 걱정이 돼서다.
저출산 여파로 지난 8월에 태어난 아기는 2만2291명으로 역대 최저라 한다. 인구절벽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 20년 후쯤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지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류는 현명하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면 되니깐 설마 무슨 인류의 대재앙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기계나 컴퓨터가 인간을 대행하는 것은 양적, 질적 한계가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자산의 뭐니뭐니해도 14억이 넘는 인구다. 중국이 지난 3월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대학입시를 위한 불법 사교육을 근절하겠다는 초강경 대책을 발표했다. 여름방학에 불법과외를 하던 교사가 적발되고 별장에 마련된 과외공부방이 단속을 당했다.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숙제와 사교육 부담을 줄인다는 쌍감(雙減) 조치에 따라 예체능을 제외한 방과 후 교습은 전면 금지됐다.
국민 사상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게임 업체까지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게임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학부모의 원성이 반영됐다. 이 때문에 미국 시장으로 뻗어가려던 중국의 교육 및 게임 IT업체들의 성장세는 발목이 붙잡혔다.
중국 정부가 교육 불평등, 입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를 훼손하면서까지 초강수를 두는 것은 결국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주 40대 초반에 초혼에 성공해 제왕절개로 득남한 양 모씨의 2주간 사후조리원 비용은 1000만원이다. 럭셔리한 곳은 2300만원이나 든다고 한다. 서울에선 아무리 저렴한 곳도 2주일에 500만원 한다. 지방에서야 70만원대도 있다지만 산후조리원 비용 때문에 아기낳기가 겁난다는 말도 나온다. 시대가 바뀌어 친정이나 시어머니가 직접 산후조리를 해주지는 않는 환경이다.
그런데 저출산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던 노무현 정권 이후 역대 대통령은 아주 찔끔찔끔 이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계정에 돈을 쓰면서도 저출산이란 이름을 붙여 집행하고 있다. 신혼부부 주거지원과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수십만~수백만원의 출산수당만이 실질적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유일한 예산인데도 각종 사회복지 관련 예산이 저출산이란 라벨을 달고 지출되고 있다. 반면 노인의 표를 의식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노인 관련 예산에는 끊임없이 재원을 늘리는 추세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길 꺼려하는 것은 육아 부담 때문이다. 몇몇 설문조사를 보면 아이를 가지려면 최소한 2명은 낳아야 가정이 화목하고 자녀의 성장발달에 좋다는 것을 가임 여성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얼마나 본능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한 셈이 빠른가. 젊은 여성일수록 ‘경력 단절’을 감수하고 아이낳기를 거부한다.
정부가 예산 부족으로 또는 사립유치원장의 극렬한 반발로 멈췄거나 점진적으로 진행 중인 어린이집(유치원)의 전면 국공립 전환은 이런 면에서 상당한 필요성이 있다.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 모든 학비와 양육비를 나라에서 떠맡을 필요가 있다. 임신과 육아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후손을 갖고 싶어하는 인류의 생물학적 본능 상 굳이 아이를 갖지 않으려 노력하는 여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예산 타령을 한다. 하지만 쓸데없이 늘려놓은 공무원 인력, 효과를 알 수 없는 고용 촉진 예산, 인도 블록 교체 같은 행정낭비성 예산, 정책홍보·문화융성·복지향상·산업육성 운운하며 헛되이 쓰이는 예산 등을 아낀다면 못할 것도 없다. 의지가 없을 뿐이지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늘 하는 상투적인 어투에 불과하다. 포퓰리스트 정치가인 허경영 씨가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는 데 상당수 시민들이 공감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요즘 최근 5년간 학생 수가 8~10% 줄었는데 교육예산은 40~50% 늘었다며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교육세는 주세, 금융세(증권거래세), 주민세·지방채권을 비롯한 지방세 등 폭넓은 재원을 바탕으로 부과된다. 그러나 여전히 교실 환경은 서울의 중산층 가정보다 협소하고 지저분하다.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치지 못한다. 그 많은 교육예산이 도대체 어떻게 쓰이길래 교육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은지 전면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학생과 부모, 교사들에게 심층적으로 물어봐서 해답을 내놔야 한다.
지난 7월 초 ‘할 마음이 없는 女 … 할 사람이 없는 男’이라는 제하의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염유식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최준용 서울대 의대 교수가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을 대상으로 성관계 패턴을 조사했더니 2000년 11%(美 화이자제약 조사)이던 ‘섹스리스’(1년간 성관계 전혀 없음)가 2021년 1~5월에는 36%로 늘어났다. 특히 20대 남녀의 섹스리스 비율은 42%, 43%라며 ‘비혼 풍조’를 우려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가족계획으로 통반장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며 피임을 권장했는데 경제가 윤택해진 2020년대에는 ‘취업난’과 ‘육아부담’을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고학력인 여성은 자기보다 가방줄이 짧은 남성을 기피하고, 그나마 고학력·중산층에 준수한 남성은 영화배우처럼 예쁜 여성만 찾다보니 ‘미스매칭’이 일어난다는 분석 결과도 최근 나왔다.
이 기사를 읽고 나니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패러디처럼 ‘섹스 권하는 사회’라는 부제가 떠올랐다. 결혼 전에는 가급적 성적 순결을 지키라는 게 7080세대의 모럴이었는데 이제는 ‘섹스를 권해서라도 사회적 역동성을 진작시키자’는 분위기이니 격세지감이다.
늦둥이를 둔 아빠로서 늘 후회되는 게 체력이 부족해 ‘빡세게’ 놀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더욱 슬픈 것은 어여쁜 자녀와 같이 지낼 시간이 평균적인 부모보다 10~20년 짧다는 것이다. 외적인 미모와 경제적 능력이 배우자감을 정할 때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엔 왜 몰랐을까? 아니, 알면서도 짐짓 외면하고 세월을 허송했을까 하는 게 이제야 후회하게 된다.
지금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는 산더미 같은 미래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노예를 낳는 것’이라는 씁쓸한 비유도 있다. 그러나 모든 걸 떠나서 자녀들이 있음으로서 얻는 ‘행복’과 ‘보람’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따라서 국가라하는 존재는 이것저것 재지 말고 육아부담, 차등 없는 교육환경 조성에 모든 예산과 정책적 배려를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오죽하면 ‘섹스 권하는 사회’ 같은 남사스러운 기사가 나왔을까 싶으면서도 이런 기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저녁이 있는 삶’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사회’가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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