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4 17:52:10
요즘 ‘혼술’용 술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막페인’ 유튜브 홍보영상 캡처
예전에 연말연시나 신입사원, 신입생 환영회가 몰리는 2말3초에 과음을 삼가자는 기사를 쓸 때엔 횟수를 줄이는 대신 집에서 가족과 함께 가볍게 한두 잔 하는 게 어떠냐는 권고를 제법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실천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무의미한 제언이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유행 영향으로 집에서 혼자 마시는 ‘혼술’, 가정에서 직장동료나 사회인 대신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하는 ‘홈술’이 늘어났다. 이런저런 통계를 보면 한 번에 마시는 음주량은 줄었지만 술 마시는 빈도는 늘었다.
편의점에서는 혼술하기에 좋은 와인과 막걸리의 판매량이 늘었다. 칵테일용 술과 부재료(향신료, 소다, 과일, 용기)의 소비가 증가했다. 막걸리에 이런저런 과일과 향을 섞는 ‘막테일’이 유행이더니 최근엔 막걸리에 기포를 넣어 샴페인 같은 청량감을 주는 ‘막페인’까지 여성 등 경(輕)음주 마니아를 유혹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2일 코로나19 방역 4단계 조치를 내리면서 한 말처럼 과거에는 ‘짧고 굵게’ 먹고 폭음한 뒤 귀가하고 다음날을 기약하는 게 웬만한 샐러리맨의 자세였다. 특히 초저녁 폭음과 조기 귀가는 기자들의 생리와 맞아 떨어졌다. 직업상 초저녁에 폭탄주를 마시는 게 상례였다. 돌이켜보니 촌음을 절약해서 꼭 공부 같은 것을 더하지 않았더라도 좀 휴식하면서 인생을 음미하고 넓고 멀리 바라보는 시야를 키웠더라면 지금의 삶이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반성해본다.
지난해 여름에는 비가 죽죽 내리는 날이 많아 혼술하기에 딱 좋았다. 막걸리 한 병이나 와인 반병(기왕이면 화이트)이면 적당히 취기가 오고 빗속에서 과거와 대화하며 정체된 삶을 다시 활기로 가득 채울까 고민했었다. 코로나19 2년차가 되니 이젠 그것마저도 지겨워졌다. 어느 사이 우울감, 고립감, 절망감이 찾아든다. 개인적인 고민과 사회적 어려움이 뒤섞여 올해 혼술은 작년보다 운치가 없고 먹구름이 더 짙다.
한 설문조사를 보니 자식세대가 현세대보다 못 살 것이라고 대답한 한국인이 지난해 60%에 달했다. 2013년 37%에서 점차 상승하고 있다. 그도 그럴만 한 게 날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 심화될 게 뻔하다. 현 정부처럼 부동산에 자꾸 세금을 때리면 이를 감당할 최상위 부유층은 팔지 않고 버텨 더 부자가 되는 반면 어정쩡하게 홀랑 한 채 갖고 있는 사람은 집을 내놓게 돼 가난해지고 그 사이 집값은 더 뛰는 ‘부동산 디바이드(양극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짙다.
자영업이든 제법 규모가 있는 기업이든 특화된 기술이나 노하우, 네트워크, 자본력과 인력, 유통망 등 플랫폼을 가진 사람은 승승장구하겠지만 그 밑에서 하청이나 하고 중간 유통이나 맡아주고 영세한 자본력에 근근이 버티며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점차 나락으로 떨어질 법하다.
수입은 늘지 않고 갈수록 돈벌이는 어려워지는데 생활비는 늘어만 가고 있다. 예컨대 식품가격이나 외식비가 많이 올랐고 예전에 없던 구독료(음원이나 영상, 게임, 기호품, 생필품, 취미용품 등의 정기구입)에 대한 지불이 늘어났으며 학원비 등 교육비도 상승하고 추세적으로 이런 지출을 늘리면 늘렸지 줄이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소비패턴에 중독되며 기업에 돈을 빼앗기며 점차 ‘대출의 노예’가 되어가는 양상이다.
게다가 이런저런 세금이나 준조세가 왜 그리 많은지. 현 정부는 날로 공무원을 더 뽑고 공공일자리를 늘리겠다며 난리다. 복지증진을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한다. 젊은이들도 공무원 아니면 공기업에서 안식처를 구하길 원한다. 이젠 대기업도 ‘직장인 수명이 짧다’며 싫다고 하는 마당이다. 이런 고민에 혼술할 당위성만 커진다.
혼술로 음주 빈도가 잦아지면서 ‘나 진짜 알코올릭 맞네’라는 자괴감도 든다. 예전에 화통하게 ‘마시고 죽자’ 이런 건배사도 남발하며 지인들과 벌컥벌컥 즐기던 시절이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2년 여 전인데 아스라이 한 십년은 된 듯한 과거 같다.
혼술이라고 건강에 덜 나쁜 것은 아니다. 혼술을 하면 아무래도 음주 속도가 빨라진다. 그래서 건강에 나쁘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을 못 느낀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혼자 마시나 여럿이 마시나 속도가 빨랐다. 빠른 음주 속도는 절제력이 없다는 반증이고 블랙아웃에 더 쉽게 빠지게 하는 요소가 된다.
똑같은 알코올을 섭취하더라도 혼술처럼 매일 마시는 것보다 2~3일 간격을 두고 마시는 게 간에 더 좋다는 건 어느 정도 상식이 됐다. 휴간일(休肝日)이 꼭 필요한데 혼술에는 휴간일이 없기 십상이다.
광복절이 지나고 처서(23일)도 지나니 이젠 제법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누구는 지긋지긋한 여름이 간다고 시원섭섭해하지만 여름만큼 푸르고 왕성하며 늙지 않는 계절이 없기에 보내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지구 온난화로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봄, 가을은 짧아진다고 하니 걱정이긴 하지만 조만간 북국의 찬바람이 내려오는 계절이 다가오는 게 우울감을 더한다.
혼술의 근저에는 우울감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우울감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 앞으로 행복해지기 어려워질 것이란 감정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행복이 반드시 ‘정상적’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감정 상태는 아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의 오류를 바로 잡아야 불행감으로 인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복은 대체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얻어지는 결과물이지 지향해야 할 과정이나 목표가 아니다.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순간 느꼈다가 사라지기 쉬운 찰라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 우울함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를 찾아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
이러려면 자신의 인지를 왜곡하는 수밖에 없다. 즉 인지를 달래가며 고쳐야 한다. 오늘 좀 우울한 것은 생명체로서 삶을 이어갈 때 생기는 필연적 부산물 정도로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오늘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게 ‘코로나블루’를 이기는 길이고 혼술을 줄이는 방책이 될 수 있다.
기자도 혼술로 허비하는 세월을 줄여볼까 싶어 술 대신 매실청에 오미자청을 섞어 1대 2로 섞어 마셔보는데 맛이 제법 괜찮다. 단맛을 싫어하면 매실청을 조금 더 넣으면 된다. 하지만 매실청에도 알코올이 0.5~3%나 들어 있다. 처음에는 피곤이 풀리나 싶더니 매일 와인잔으로 한 잔 마시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정도의 차이일 뿐 상습적 음주는 몸에 해롭다.
코로나19로 가난한 사람일수록, 연령이 어릴수록,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정신적 우울감을 갖고 지낸다는 보도다.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 한국은 자살인구가 인구 10만명당 24.6명이다. 코로나19 영향 탓에 술집 장사는 망했지만 내수 주류 소비는 홈술, 혼술 증가로 그런대로 유지되는 듯하다. 이럴 경우엔 주류업계가 사회에 기여할 착한 일을 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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