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8 18:38:56
과거 과도한 척추수술이 비난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수술을 지양하고 비수술적 치료로 안전하게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려는 방향으로 관련 의료계가 움직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상관 없음.
아프리카에선 척추수술을 하는 환자가 거의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연하고 운동을 많이 해서 허릿병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척추질환을 진단할 의사가 없어서이다.
숱한 언론의 지적에 척추수술 과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러 척추 전문병원이 있는 한 그 수가 크게 감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병원은 수술을 많이 해야 생존하고 부가가치를 올려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척추수술은 신경마비가 발생해 사지를 움직이기 곤란하거나 배뇨장애 등비 발생할 때, 극심한 통증으로 일상생활에 곤란할 때, 장기간 반복적으로 보존적 치료를 해도 전혀 호전이 없을 때 권장된다.
그래서 척추질환 환자의 10% 안팎만이 수술 대상이다. 과거에 김영란법이 없을 때 기자들은 수술 명의를 사적으로 많이 알선해줬다. 그런데 암수술이나 심혈관수술, 뇌수술, 심장수술과 달리 척추수술은 마땅한 대학병원 교수를 추천하기 어려웠다. 정통의학에서는 수술을 최소화하다보니 막상 술기가 개원의보다 별로 나을 게 없거나 오히려 뒤떨어졌다. 개원의들은 수익을 올리려 온갖 궁리를 하다 보니 술기가 늘었고 다양한 테크닉을 발굴하고 연마하는 반면 오히려 교수들은 교과서적인 치료법만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젊은 의사들이 고위험을 감수하고 메스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고참 의사들은 겁을 먹고 수술을 기피하는 요즘 신세대 후배 의사들에게 수술을 권유하다가 인내심에 한계를 느껴 자기가 직접 메스를 잡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러다가 수술 기법 전수의 맥이 끊길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수술실에만 들어가면 손발을 벌벌 떠는 젊은 새내기 의사들이 한둘이 아니라니 수술과잉도 문제지만 수술부재 시대가 올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게다가 요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여론도 의사에게 부담이다. 일단 의무화 방침은 의사들의 저지 노력과 정치권의 유보 결정으로 소강 상태지만 언제 재점화될지 모를 일이다. 일부 환자들이 CCTV 촬영을 요구할 경우 이를 수용하거나 거절하는 일이 의사들로선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인천의 한 40대 중반 신경외과 의사는 자발적으로 최근 수술실에 CCTV를 설치했다. 여론의 향배도 설치를 찬성하거니와 수술 잘하는 신뢰감 주는 병원이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비위생적, 비윤리적인 수술 과정이 하나도 없어 환자에게 못 보여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지만 그처럼 수술에 자신감 있는 일부 의사에게나 해당할 일이다. 대다수 의사들은 실수에 의한 의료사고 증거로 남을 수도 있고, 까탈스런 환자와 가족들이 수술 후 불편함과 후유증을 이유로 녹화영상을 보여달라고 강압하면 대처하기 곤란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의료사고를 회피하려는 트렌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압박 때문에라도 의사들은 수술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요즘 동네 정형외과는 단순한 접질림(염좌)이나 골절 정도만 치료하지 웬만한 중등도 이상 질환은 전문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보낸다. 수술실다운 수술실을 갖춘 개인의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물리치료, 도수치료, 재활치료에 중점을 둔 정형외과, 신경외과가 태반이다.
한 정형외과 의사는 “수술 한번 하면 마진이 500만~700만원이지만 리스크를 감안하면 이들은 비수술적 중재시술이나 물리치료로 유도하는 게 훨씬 현명한 일”이라며 “비급여 도수·재활치료는 회당 30만원 이상의 수익이 창출되는데다가 요즘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어 이들이 보험으로 비용을 커버하기 때문에 본인부담도 적어 점차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회당 30만원이라도 10회 이상 치료받으면 위험 대비 수익 기준으로 볼 때 수술보다 비수술 치료가 훨씬 안전하고 메리트가 있다는 게 요즘 의사들의 대세로 굳어가고 있다.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의 이런 행보에 하나의 걸림돌이자 라이벌이 있다면 바로 한의사들이다. 한의사들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근골격계 통증질환에 침, 뜸, 도수치료, 추나요법, 전기자극치료로 경험을 쌓아왔다. 1만원 남짓한 저렴한 치료비 덕분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양방 대신 한방 의료기관을 찾아 위로를 찾고 병을 고친다. 한방 의료기관은 전기자극치료나 첨단 물리치료기기를 도입해 환자를 고쳐주고 싶고 수익원도 넓히고 싶지만 의사들의 견제에 제약받고 있다. 양방 냄새가 나는 의료기기를 썼다가는 의사들로부터 신고를 당해 보건소나 경찰서로 불법의료(면허외 의료) 혐의로 불려가야 하는 실정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한방의료기기’라는 법적 개념이 없다. 오로지 ‘의료기기’라는 개념만 있다. 한의사에게 허락된 것은 침구와 부항, 맥진기, 간단한 전기자극치료기 정도다.
한의원 손님은 ‘노장파 저가’ 고객이고 양방 손님은 상대적으로 ‘소장파 고가’이어서 고객층이 사실상 분리돼 있지만 한의원 경영이 날로 힘들어지고 있어 언젠가는 한의사들이 들이 대고 양방 의사들의 영역을 파고들기 위해 대동단결할 게 뻔하다.
수술 감소는 반길 일이지만 젊은 의사들이 근성이 떨어져 수술이 기피된 탓이 있다는 것은 좀 씁쓸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필요한 인공관절이나 인공디스크 삽입술의 과도한 시행, 사전에 고지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 청구서를 환자에게 들이대는 관행, 실손보험 환자에게 어떻게든 많이 돈을 긁어내려는 의원들의 상업적 행보는 우려할 일이다.
비수술치료의 급여화를 확대하면 조금만 아파도 병상에 누우려는 환자들이 대폭 증가할 것이고 이는 또다른 의료과잉을 낳을 게 뻔하다. 선제적인 비수술치료로 중증질환으로 진행을 막는다면 이 또한 유익한 방안일 것이나 인간의 편의를 찾는 개인적 이기주의는 언제나 공중의 이익과 이상적인 모델과 상치되는 게 인간사회의 모순이다.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게 결국 해법이 될 수 있다.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