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2 01:33:34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 책표지 사진 일
필자의 생활 근거지인 서울 용산에는 답답한 건물들만 들어선다. 원효로 2가 용문시장의 공용 주차장으로 쓰이던 바닥 면적이 60평 정도나 될까 싶은 유휴지에는 최근 10층 가까이 뾰쪽 솟은 사무용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건물의 모양도 사각형이 아니라 이등변삼각형으로 기형적이다.
흔히 용산을 ‘서울의 중심’ ‘은근 알부자가 모여사는 곳’ ‘아직 개발이 덜 된 서울의 마지막 황금알’ ‘서초 강남과 비견할 SKY’ 라고 칭하지만 전용면적 10평도 안 되는 오피스텔만 원효로 1가부터 3가까지 마구 들어서고 있다. 용산구청은 아무런 제재 없이 허가를 잘도 내준다.
이런 오피스텔을 구매하거나 입주해 살겠다는 수요가 충분하니 인구 감소로 10여년 후에는 쓰레기처럼 전락할지도 모를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용산역 정비기지창에는 서민을 위한하다는 현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고밀도 임대주택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창밖으로 멀리 내려다보면 높은 천막만 쳐놓고 포크레인, 불도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필자가 생각하기로 토지주인 코레일이 부가가치가 낮게 개발되는 게 내심 탐탁치 않아 밍기적거리며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그 때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여보겠다는 심산이 깔린 듯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 임기에 서부이촌동과 정비기지창이 통합 개발됐다면 기념비적 건물이 들어서고 국내외 행사가 치러지며 사람들이 북적거렸을 것이다. 또 대형 유람선이나 화물선이 용산 포트에 정박해 김포를 거쳐 인천 앞바다까지 이를 수 있었다면 관광자원으로 보나 부가되는 비즈니스 창출로 보나 싸구려 임대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스케일이 작은 나라에 사는 게 답답하다.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호 임제(白湖 林悌)는 “선비족 돌궐족 여진족 다 중원으로 가서 천자라 칭호하고 황제가 됐는데 우리 조선은 한 번도 못 했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게 부끄럽다. 그러니 (나 죽었다고) 곡(哭)을 하지 말라”고 했다. 참으로 공감되는 말이나 그 역시 풍류문객이자 호색한으로 세상을 즐겼을 뿐 높은 벼슬에 올라 조선을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지 못했으니 깊이 새겨들을 바는 못 된다.
일본인을 같은 동양인의 관점에서 명쾌하게 해석했다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의 성격상 전자제품이나 만들어야 돈도 벌고 세계도 평화로웠을 것인데, 확장지향을 했기 때문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패전을 맛봤다고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힘을 합쳐 세계를 제패하려던 그 욕망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필자의 취재 분야인 제약 부문만 하더라도 일본 다케다제약의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합병과 기존 일반약 및 대사질환 위주에서 항암제 및 자가면역질환 중심의 과감한 포트폴리오 재구축 노력을 보면 과연 일본이 소소한 민족으로 폄하돼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요즘 젊은이는 죄다 공무원,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에 들어가려고 야단이다. 대기업 입사도 이에 비하면 후순위다. 연봉도 높고 일자리도 안정되고 휴가와 품위 유지가 보장되는 웰빙 직장들이다.
하지만 취업이 보장된 약대생들에서 입장에서는 공직조차도 별 매력이 없다. 최근 보건복지 관련 고위직에서 은퇴한 지인도 요즘 약대생들이 7급 또는 8급 공무원으로 입사하려 들지 않는다며 첫째는 직장이 세종, 청주(오송)에 있다는 것이고, 둘째 급료가 박하며, 셋째 공직자로서 행정력을 행사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약대가 6년제가 되고, 나이를 몇 살 더 먹은 여자 신입생이 늘고, 세태가 명예 또는 적극성 중시에서 실리 또는 안정 지향으로 바뀌면서 10년 전, 20년 전보다 약국을 경영하려는 지망생들이 훨씬 늘었다는 한탄이다. 약대생들이 보건복지 행정에 덜 참여한다고 해서 이 나라가 잘못되는 것은 하나도 없겠지만 약사의 위상이 떨어지면 언젠가는 제약사, 도매상, 약국, 보건당국 등으로 탄탄하게 맺어진 약업계 권익이 크게 훼손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지난달부터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축소하고 사무실로 출근해 일하라고 독촉 중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50%를 넘기면서 집단면역 형성의 기반이 마련되자 기업 CEO들이 대면 근무로는 도저히 기대치를 뛰어넘는 업무성과를 올릴 수 없다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JP모건, 웰스파고 같은 금융그룹이 대표적이다. 도제식으로 업무를 익히고 대면 소통해 산 경험을 체득해야 하는데 재택근무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이들 회사 CEO의 공통된 견해다. “식당은 가면서 왜 회사는 못 나오냐”는 게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CEO의 쓴소리다.
조그만 매체의 경영자인 필자도 경험했다. 사원 모집에 몇 장의 원서가 들어왔지만 그나마 일할 역량이 엿보이는 지원자에게 전화하면 재택근무가 아니면 입사하지 않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의학 약학 용어 등 배울 것도 많고 글쓰기의 감을 익히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출근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냥 수화기를 놓기 일쑤다. 창업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제대로 회사를 키우지 못한 나를 자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요즘 젊은이들은 낯선 이와 대면하는 것도 싫어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착용으로 이런 성향은 심화됐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 지망생도 날이 갈수록 줄어 언론이 3D 직업이 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낯선 이를 취재하는 게 흥미롭고 공명심을 세우며 펜으로 권력을 창출하던 시절에서 이젠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직업이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10평이 안 되는 원룸 또는 부모님의 방 한 칸에서 살며 중원의 꿈을 꾸기는커녕 아늑한 온실 속의 화초이기를 바라는 젊은이가 많다. 뭐가 되고 싶다는 욕망도 없고, 돈을 악착 같이 벌겠다는 의지도 없고, 눈빛이 흐린 젊은이가 널려 있다. 그에 비하면 폭염에 엘리베이터로 제품을 싣고 나르는 이곳 용산전자상가의 몇몇 젊은이들은 비록 남루하고 부가가치가 적다 하더라도 열심히 사는 청춘들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훈계조’로 얘기하지 말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면 ‘꼰대’ 또는 ‘라떼’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 삼가라고 제지를 받는다. 정의당, 기본소득당과 이에 동조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령, 성별, 종교, 사상, 정치적 의견, 고용 형태, 신체조건(외모), 장애, 병력 및 건강상태,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혼인 여부, 임신 및 출산 여부, 학력, 가족 및 가구 형태와 상황, 성적지향, 성적정체성, 사회적 신분,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등 무려 23가지에 대한 일체의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을 지난달 발의했다.
내가 며느릿감과 사윗감을 고를 때 같은 값이면 좋은 학교를 나와 안정된 직장을 잡은 사람을 선호하는 게 인지상정일 터인데 이처럼 무조건적이고 포괄적인 차별금지는 인간의 자유와 선택 의지를 말살하는 폭거나 다름 없다. 필자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학력이고 다음이 한 직장을 얼마나 오래 다녔다는 것인데 만약에 이런 법들이 입법되면 감방이라도 보내겠다는 것인가. 다른 수많은 영세기업 사장의 입장도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기성세대는 ‘꼰대’ 또는 ‘라떼’라는 비난을 회피하기에 연연할 게 아니라 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어떤 점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설명해주고 신세대들이 험난한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조언해줘야 할 것이다.
내가 젊은이라면 지금 신세대들이 대면 서비스를 싫어하는 점을 활용해 새로운 업태를 만들어보겠다. 이미 ‘배달의 민족’ ‘배달약국’ ‘택배’ ‘소셜커머스’가 등장했으니 뭔가 새로운 게 있을지 궁리해보겠다. 축소지향에서 탈피해 세상을 뭔가 하나로 평정해보겠다는 의지를 태우길 권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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